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 잡초 잡초
  • 465
  • 0

첨부 1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오늘은 세례식을 거행하는 성례 주일로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사건과 관련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30세가 되셨을 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고 물위로 나올 때 예수님에게는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즉 첫째는 하늘이 열리는 사건이 있었으며 둘째로는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에게 임하셨으며 세 번째로는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건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의 사건은 물론 예수님에게만 일어난 아주 독특한 사건들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예수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일어나야 할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구원자로서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하며 이 메시야라고 하는 말의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나오실 때 일어난 이 세 가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야의 직분을 받게 된 것이고 그 날로부터 이 땅 위에서는 마귀의 나라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다 작은 메시야들이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으심을 받고 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세 가지의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예수님에게 일어난 세 가지의 사건은 각각 무엇이었습니까?

  제일 첫 번째로는 하늘이 열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하늘나라를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영광스런 천사들이 하나님을 수종드는 그 영광스럽고 찬란한 하늘나라를 예수님은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해 나가는 데에는 어려움도 많았고 고난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조금도 그런 어려움들에 굴복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들을 해 나가실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공생애 사역의 시초에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고 그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무언가 하늘에 속한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 사람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세속적인 삶을 사는 것도 하늘나라의 영광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사람을 가리켜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란 본 것만큼 살아 내며 본 것만큼 일해 낼 수 있습니다.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듯이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것을 본 사람은 땅의 일을 버리고 하늘에 속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하늘의 환상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환상을 그들은 보았기에 그들은 고난이 많은 현실에도 굴복하지 않고 충성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늘에 속한 환상입니다. 하늘나라의 환상을 본 사람은 절망하거나 좌절하지를 않습니다. 불의한 세상 가운데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선포하며 하나님 나라의 의를 추구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신령한 눈이 열려서 영광스런 하늘나라의 비밀과 환상을 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나오실 때 일어난 사건은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예수님에게 임한 이 사건은 이제 예수님을 메시야가 되도록 하는 구속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구약시대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들로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그 직분에 임직받을 때 감람(올리브) 기름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메시야로 임직받을 때 땅에서 나는 감람나무의 기름이 아닌 하늘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기름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공생에 기간 동안 수많은 착한 일을 하시는데 그 모든 일을 하시는 능력의 근원은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었습니다(행10:38, 눅4:18-19).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일마저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행하셨던 것입니다(히9:14). 뿐만 아니라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신 것도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엡1:20).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성령을 자기를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부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시자 그때까지만 해도 영적으로 우둔하고 용기가 없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지혜가 충만한 자들로 변했고, 세상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담대한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믿는 자들과 우리 교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이러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합니다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지 않고 하기 때문에 그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권능과 영광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현대 교회들은 은과 금은 있지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조직이나 경영학적인 방법을 모방해서 제도도 있고 프로그램도 있고 인간적인 열심도 있지만, 그 모든 활동 안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기 때문에 능력이 없습니다. 교회가 많은 복음 사업을 하는 것 같지만 마귀의 나라가 무너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교회에는 다시 새롭게 성령으로 기름 부으시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교회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을 때 그 교회를 통하여 마귀의 나라는 무너지게 되며 사람들이 변하게 되고,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과 어둠의 세력들은 물러가게 됩니다. 오늘 이 나라, 이 민족, 이 사회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세력은 그러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교회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새로워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나오실 때 일어난 사건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시는 가운데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마3:17).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하신다는 것이었으며 예수님을 보시고 너무 기쁘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시고 이처럼 사랑스러워 하시고 기뻐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이제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시고자 고난과 낮아짐과 섬김의 삶을 결단하신 분이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단하셨을 때에도 하늘로부터 이와 같은 음성을 들으셨습니다(마17:5).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이 음성을 듣고 위로를 받으며 새 힘을 얻으며 고난을 극복해 나가셨다고 하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성도들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이 음성은 자기의 유익과 안일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명목적인 기독교인에게는 이 음성이 들릴 수 없습니다. 내 뜻보다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며 결단하는 사람, 세상에서 인정받기보다 그리스도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고자 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그 음성을 들려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자는 낙담하지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도 인내하며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저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늘 들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