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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과 양심 / 행 23:1, 행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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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양심

본문: 행23:1, 행24:16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행23:1)
"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24:16)

어느 목사님이 독일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을 안내하던 집사가 차를 몰면서 "목사님, 바로 저 집 대문 있잖아요. 언젠가 오밤중에 차로 대문을 받아 부서졌는데 아무도 보지 않았기에 천만 다행이었지요. 운전이 서툴렀던 때인데....." 작은 농촌의 마을을 지나면서 하는 말입니다.
마을이 수백 년 되었기 때문에 길이 꼬불꼬불하여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대문만 보면 늘 생각이 나지요. 주인이 어딜 갔는지 인적도 없고 해서 무사했죠. 참으로 '할렐루야'지요."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꺼림직한 마음이 들어 '집사님, 안 들킨 것이 어째서 할렐루야입니까?'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었다고 합니다. 남의 집 대문을 부수어 놓고 들키지 않은 것이 '할렐루야'라니 신앙양심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또 목사 중에는 교통법규를 어겨 교통순경에게 딱지를 떼게 되었을 때 자기 신분이 목사라는 것을 밝히고 눈감아 달라고 불의한 부탁을 하는 한심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이 생활 속에서 잘못과 실수를 범하고도 윤리적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입버릇처럼 '할렐루야'와 '은혜'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주변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거짓말을 잘하고 더욱 엉터리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가짜 꿀을 만드는 부모 때문에 교회를 멀리했다는 어떤 분의 간증이 귀에 맴돕니다. 실로 믿는 자는 더욱 조심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행24:16)
믿음과 착한 양심은 기차의 두 레일과 같고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이라는 선로와 양심이라는 선로가 있어야 신앙의 기차는 잘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은 있지만 양심은 버렸다고 합니다.(딤전1:19) 신앙의 양심이 그만 화인을 맞아 버렸습니다. 양심이 마비되면 조금도 가책이 생기지 않습니다. 양심이 마비되었기에 짐승과 같이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인간화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양심을 마비시키는 것일까요?
첫째, 인간의 물욕이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약1:15) 황금만능주의가 사람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양심을 파는 사람은 끝이 불행합니다. 말세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물욕으로 인해 양심이 화인을 맞고 끝내 믿음을 잃게 될 수도 있으므로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톨스토이는 "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양심은 나침반과 같다."고 했습니다. 선장은 날씨가 불순하여 좌우를 구별할 수 없을 때 나침반을 보고 항해합니다. 우리도 인생의 바다를 항해할 때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양심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양심을 회복하여 정직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수고한 만큼 대접을 받는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정욕이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육신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으로 양심이 마비됩니다.(요일2:15-16)
삼손은 정욕에 눈이 어두워 눈이 뽑히는 참극을 당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정욕으로 눈이 어두워지면 안됩니다. 특히 크리스천은 눈을 즐겁게 하는 데 몰두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성경을 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보루는 교회입니다.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책임은 교회에 있습니다. 세상이 다 썩어 부정부패가 판을 쳐도 교회만은 정의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이 바로 서면 우리 사회도 변화될 것입니다. 양심을 정욕으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셋째, 사탄의 역사가 인간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사탄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고 합니다.(딤전1:20) 사탄은 양심부터 마비시킵니다. 사람은 천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짐승도 아닌 중간자라고 합니다. 양심이 마비되면 짐승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후 발악을 하고 있는 사탄은 여러 가지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흉악한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말씀과 기도로 물리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말씀과 기도와 성령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양심은 해시계와 같다고 합니다. 해시계는 햇빛이 있어야 바른 시간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양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성경 말씀이라는 밝은 빛을 받음으로 비로소 올바르게 작동을 할 수 있습니다. 목적만 선하다면 수단이야 어떠하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상황 윤리가 판을 치고 있는 요즘, 우리는 더욱 더 성경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할 강한 필요성을 느낍니다. 요즘 당신의 양심은 어떻습니까? 혹, 상황에 따라 적당히 타협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살전5:22) 사회적으로도 개혁의 과도기라 하지만 더 혼란스럽고 많은 추악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정신세계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을 켜 보면 폭력물이 난무하고 술 먹는 장면 아니면 담배를 피우는 것이나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낯부끄러운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야 합니다. 믿는 성도의 양심이 바로 서야 합니다. 믿음의 가정은 자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몇 년 전 경향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떡값이란 이름으로 수억 원을 은밀히 주고받는 혼탁한 세태 속에서 한 장의 편지가 우리들을 더욱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애경백화점에서는 채형석 사장 앞으로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 동봉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습니다. 발신인은 서울 유한공고 2학년에 재학중인 홍 모 군입니다.
홍군은 편지에서 중학시절 누나와 함께 애경백화점에 왔다가 누나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요구르트 하나를 몰래 마시고 돈을 내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지내던 홍군의 양심을 깨운 것은 고교에 와서 만난 국사선생님, 그는 수업시간에 요즘 뉴스거리가 되는 한보비리를 이야기하다가 '너희들 중 전철과 버스를 무임승차하지 않은 사람은 손들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아무도 손들지 않자 그는 '너희들도 도둑이다. 이러한 너희들이 앞으로 사회에 나가 올바로 생활할 수 있겠느냐, 세상을 탓하기 전에 그동안 저지른 잘못을 먼저 사죄하는 편지를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홍군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때 일이 생각나 사죄의 편지를 보낸다면서 다음과 같이 끝맺었습니다.
"사장님, 여기 요구르트 값 500원과 저의 양심을 판 값 500원을 더해 보내드립니다. 부디 철없던 어린 시절의 행동으로 생각하여 용서하여 주십시오"
애경백화점 고객만족센터 박연순 대리는 '기성세대로서 한없는 부끄러움과 함께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났을 때입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이 동경 땅에 발을 디디었습니다. 이때 동경 시민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이 적국(敵國)의 장군을 뜨겁게 환영했다고 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그 환영 군중을 향하여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의 마지막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온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 문제입니다. 경제 문제는 군대 문제입니다. 군대 문제는 정치 문제입니다. 정치 문제는 정치가의 양심 문제입니다. 양심 문제는 도덕 문제입니다. 도덕 문제는 종교 문제입니다. 종교 문제는 신학적 문제입니다" 하고 연설을 맺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전쟁도 아닙니다. 경제도 좋고 정치도 좋고 제도도 좋지만 양심의 문제, 도덕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현대인에게 결정적인 문제가 경제 문제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요, 정치적인 수완의 문제도 아니요, 오로지 진실의 문제요 양심의 문제임을 우리는 확실하게 보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선한 양심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조지 워싱턴이 어렸을 때에 그 아버지가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쓰는 조그마한 도끼를 하나 사주었다. 손으로 던지면 빙빙 돌다가 벽에 탁 박히는 게 어린 워싱턴은 너무도 신이 났다. 그래, 도끼를 들고 사방에 뛰어 다니다가 실수로 그만 아버지가 제일 아끼는 체리나무를 찍어버렸다. 이것, 큰일났다. 겁이 난 워싱턴은 아무도 몰래 땅을 파고 그 나무를 묻어 버렸다. 그리고 모른 척했다. 하지만 아버지 보기가 민망해서 슬슬 피해 다녔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자 조지 워싱턴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 서재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붙들고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사준 도끼를 휘두르다가 실수로 그 체리나무를 찍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얘야, 나는 네가 한 짓인 줄을 벌써 알고 있었단다. 너 외에 누가 했겠느냐? 그러나 네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단다. 너는 참으로 위대하구나." 칭찬해 주었다. 거기서 조지 워싱턴이 다시 태어났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둘째, 하나님이 가르치신 교훈을 지켜야 합니다.(딤전1:3-5, 딤전 1:18-21)
미국의 미시간 주 잭슨에 있는 성 요셉 고아원에 타미와 지미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 지미가 중학생 나이가 되자 양부모를 따라가느라고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생 타미 역시 양부모 밑에 들어가 중학생이 되었지만 문제아가 되어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교문을 나서는데 불현듯 고아원에서 자기를 지도해 준 베라다 수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큰 별을 따도록 노력해라." 타미는 용기를 내어 피자가게에 취직했고, 열심히 배워 피자 한 개를 11초에 반죽하는 놀라운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 잇는 피자 체인점 중에서 두 번째로 큰 것이 '도미노 피자'인데 이 '도미노 피자'는 학교에서 퇴학당한 고아 타미, 즉 토마스 모나한이 창설한 것입니다. '착심한다'는 말은 마음에 붙인다는 뜻입니다. 훈계를 듣는 것은 달갑고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훈계에 착심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훈계와 교훈을 싫어하면 변화도 발전도 없습니다. 어리석음의 구덩이 속에서 계속 뒹구는 돼지와 같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듣는 귀로 훈계와 교훈을 받고 열린 마음속 깊이 간직하여 어리석음을 내어쫓고, 나날이 지식과 지혜를 더하며, 부단히 변화되고 성장해야하겠습니다.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기울이라"(잠23:12)
셋째, 하나님을 올바로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고전8:6,7)
하나님을 올바로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말씀을 수시로 묵상하고 읽을 때, 우리 마음의 더러운 부분을 발견하고 주 앞에서 회개하여 씻어 냄으로 선한 양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무시하거나 저버리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넷째,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로 깨끗케 됨을 믿고(히9:14), 다시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6)
다섯째,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성실히 행해야 합니다.(디모데전서 6:6)
한 대학교 총장이 학교 건물을 한창 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물을 완성하는데 1백만 달러가 모자랐습니다. 어려운 사정으로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정부 고위관리로부터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의 말은 2장의 서류에 사인을 해주면 1백만 달러를 희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가 사인을 하게 되면 고위관리에게는 3백만 달러가 생기고 총장에게는 건축에 필요한 1백만 달러가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총장이 그 서류를 자세히 검토해보니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만든 위조서류였습니다. 총장은 고민에 빠졌습니다.‘눈을 감고 사인을 두 번만 하면 경제적으로 유익하고 아무에게도 손해를 주지 않고도 학교 건물을 완성할 수 있는데…’ 그러자 그 고위관리는 사인을 해도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그냥 해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총장은 결국 거절했습니다. 이 사실은 그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도 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초만에 1백만 달러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양심에 의해 어리석은 자가 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경건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사는 모습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요일3:18-20)
이번에는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질 이유가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첫째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1, 22)
둘째는 죄의식으로부터 해방 받기 위해서 입니다.(히9:13,14)
오스트로 왕국의 왕 가운데 데오도링이란 유명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삼십 여 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즉 여러 가지로 좋은 왕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혈기를 못 이겨서 무죄한 신하 두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습니다. 한 사람은 보에디스오스이고, 또 한 사람은 디메 커스라고 하는 사람인데 비참하게 목을 메달아 죽였습니다. 그런 지 얼마 후에 왕은 자기가 실수한 것을 알고 항상 후회하였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늘 후회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궁중 요리인이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것은 생선으로 만든 좋은 요리였습니다. 왕이 생선을 볼 때 빨간 눈알을 들여다보니 거기에서 자기가 죽인 신하의 눈알이 보였습니다. 생선의 입안의 날카로운 이빨을 볼 때 마치 자기가 죽인 그 두 사람이 자기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어 나오는 것 같아서 무서웠습니다. 이 데오도링 왕은 너무나 무서워서 "나는 오늘 몸이 불편해서 저녁을 먹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자기 침상에 돌아가서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는 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삼일 후에 죽고 말았습니다. 죄를 지으면 마음에 펑안이 없습니다. 마음의 평강을 되찾는 길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선행을 욕하는 악인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까닭 없이 크리스천을 미워하고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행할 때 그들도 비난할 말이 없어지고 때론 우리의 선행으로 인해 감복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올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이학박사인 마츠무라(松村)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북해도에 있는 제국대학의 전신인 농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영광스럽게도 교장으로부터 모교에서 교편을 잡으라는 지시가 내렸습니다. 그러나 마츠무라는 교수 중에 친근한 이도 별로 없고, 또 자기의 학업성적이 우수하지도 못한데 어떻게 해서 선택되었는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감사하여 직무에 충실하고 연구에 몰두하여 크게 대성하였습니다. 그 후 1935년경에 제네바로 유학 갔을 때에 국제연맹본부 차장으로 있던 은사인 니토베 박사의 저녁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다가 자기가 왜 모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니토베 박사가 마츠무라에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지금 생각날는지 모르나 내 처가 마츠무라 군에게 크게 감사할 일이 있었다네." 마츠무라는 도무지 아무 기억도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내 처가 무더운 여름날 부채를 들고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에 그만 실수하여 부채를 아래로 떨어뜨렸네. 그 때에 한 학생이 조용히 나와서 부채를 집어서 선생님에게 드렸네. 그 학생이 바로 자넬세. 그 후에도 내 처는 자네를 칭찬했다네. 부채를 집어서 선생에게 드리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내 처는 그 학생의 태도와 인품을 보고 과연 훌륭한 장래가 있을 사람이라고 했네."
니토베 박사는 당시 그 농학교의 주인이었으므로 처의 감탄하는 말을 듣고는 마츠무라를 교수로 채용했다고 하였습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시편 37편 26절)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5,16)
한국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양심대로 바르게 살면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우리 온 백성이 바른 믿음과 양심을 가지고 살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http://bigjoy.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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