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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원하는 대로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라 / 출 35:4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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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너희가 원하는 대로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라
본문 : 출애굽기 35 : 4 - 29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애굽에서의 노예생활 430년을 청산하고 가나안으로 향하는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출 3:12,16). 이른바 신앙자유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시내 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성막 건축을 명하셨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지정된 처소였습니다. 그 성막은 곧 광야 교회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성막 건축을 위해 필요한 각종 종목들을 열거하시기 전에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Ⅰ. 성막 건축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본문 35장 4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6장에 나타난 성막은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과 만나는 장소로 친히 모세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성막의 건축방법이나 재료에 대한 일체의 것들은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모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 성막은 저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이동식 예배 처소였습니다. 곧 광야 교회당이었습니다. 성막은 성경에 여러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

1) 성막에 대한 다양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1) 장막(The tent)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장막(왕상 2:28), 여호와의 전(출 23:19), 하나님의 집 장막(대상 6:48) 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2) 회막(Tent of meeting) 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주시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교통이 이루지는 곳입니다. 곧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는 장막(Tent of revela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언약의 장막(The tabernacle of the covenant) 이라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곳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출 29:42, 43; 민 17:4).

(4) 거주지(Dwelling place) 라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중에 혹은 그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는 장소로 이해되어야 합니다(출 25:9; 26:1).

(5) 증거막(The tabernacle) 혹은 법막(The
testimony)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성막 안에 있는 성물들이나 혹은 이 성막에 하나님 자신의 임재의 표징인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출 38:21; 민 9:15; 대하 24:6).

(6) 성소(Holy place sanctuary)라고도 했습니다.
성소의 뜻은 '거룩'( , 카다쉬)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곧 이 세상의 모든 것과 구별되는 장소입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성막은 하나님 자신이 자기 백성을 만나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출 25:8; 레 10:7).


2)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8장 1-31절에 나타난 것은 모두 신약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소의 뜰에 있는 번제단은 희생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물두멍은 성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소 안에 있는 떡상은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요 6:35), 금촛대는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단은 기도의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와 법궤 안에 있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요 11:25), 만나를 담은 항아리는 역시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요 6:35), 십계명의 두 돌판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요 1:14).
성막은 그리스도의 몸 된 오늘 신약교회의 모형입니다(엡 1:23).


Ⅱ. 성막 건축에 필요한 예물입니다.

본문 35장 5절에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 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원하는 예물로 성막을 건축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로 해야 합니다.
본문 35장 5절에 『너희는…』이라고 했습니다.
선민들의 예물입니다. 곧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물로 해야 합니다. 성막 건축은 반드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물로만 해야 합니다.

2)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본문 35장 5절에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35장 21절에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 『자원하다』라는 말은 자발적으로 아낌없이 드림을 말합니다. 본문에만 자원이라는 말이 무려 5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물에 있어서 철저히 요구되는 것은, 그 예물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 예물의 가치와 겸하여, 드리는 자의 정성과 자원하는 마음입니다(말1:6-10).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출 23:15; 34:20). 그것은 물질적 요구라기보다는 경배자에게 전(全) 인격의 헌신을 요구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마 6:21).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은 자원하는 마음과 최대의 정성만 있으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시 24:1). 인간의 원래 소유주도 하나님이십니다(행 17:25).
저와 여러분도 역시 하나님의 것입니다(사 43:1).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관리하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창 1:28; 2:15).
하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요구가 있을 때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인색함이 없이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고후 9:3).
자원하는 예물은 구원에 기초하고 드리는 예물입니다.

①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다 드리는 예물입니다(출 35:10).
② 이스라엘 전체가 합심하여 드리는 예물입니다(출 35:20).
③ 마음에 즐거워함으로 그 마음이 감동된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출 35:21).
④ 그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드리는 예물입니다(출 35:22).
⑤ 그 마음이 슬기로운 여인이 드리는 예물입니다(출 35:25).
⑥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예물입니다(출 35:35).

3)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예물의 종류는 다양하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본문 35장 29절에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린 예물은 ① 금과 은과 놋입니다(5절). ②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이었습니다(6절). ③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이었습니다(7절). ④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이었습니다(8절). ⑤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입니다(9절). ⑥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과 사람마다 여호와께 드리는 금 예물입니다(22절).
성막은 백성들의 감동으로 지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자발적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특별히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드렸다는 말은 모세를 통하여 드렸다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전했고 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막(Tabernacle)은 성전 다음으로 중요한 예배의 장소입니다. 성막은 곧 장막입니다. 이것은 화려한 천막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 성막은 매일 거주지를 옮겨 살던 광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천막으로 지어졌다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광야 시대에 성막은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백성들과 만나주시던 장소입니다(출 33:9).

성막의 기능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임재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하였다』는 말 헬라어 스케노오( )는 성막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으로 말미암아 그 본래의 의미가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 성막은 성전과 함께 이해되어야 합니다.

성전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역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 사실은 성전을 가리켜 '하나님의 집' 혹은 '주님의 집'으로 표현하는 여러 성경구절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전은 성막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즉 성전은 땅위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표현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그 임재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교회는 성막과 성전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광야교회에는 임시로 세웠던 성막이 있었습니다. 구약종교의 중심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보이는 건물 즉, 교회당 혹은 예배당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건물 속에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공동체로서의 그의 백성 안에 그리고 그 사이에 거하시는 것입니다(고전 3:16-17; 고후 6:16-18; 엡 2:20-21). 교회는 몸처럼, 가족처럼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특히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마지막 혼인 잔치로 말미암아 그 절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연보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시민적 권리를 행사하는 표식이기도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건축 연보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물질로 나타내는 신앙 고백적 표현입니다.
갈보리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인색하지 않도록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될 것입니다. 자신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연보는 누구와 의논하지 않고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아니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해야 될 것입니다.

한 과부가 연보궤에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유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입니다(막 12:41-44).
고린도후서 8장 2절에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하였느니라』고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 위대하고도 영예로운 행군 대열에 함께 하셔서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 앞에 언제나 정직하셨듯이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갈보리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행 20:28).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갈보리교회는 1989년 5월 1일자로 이 땅에 설립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사실상 개척이 시작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갈보리 교회는 감히 측량할 수 없는(beyond measure)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신림동에서 단독건물을 가지고 조직된 교회로서 우리 교단 중심교회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은혜에 동참했을 뿐입니다.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한국교회에는 맥맥히 흐르는 직분자들의 충성과 헌신의 몫에 따르는 기본정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그 기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지나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의 평가이고 앞으로는 우리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교회의 비젼과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가 장차 받을 축복을 가지고 계십니다. 확실히 믿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실, 개척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비 된 축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축복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주시는 갈보리 교회에 이른바 이미 배정된 축복입니다. 이것은 우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은 2003년도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언제부터인가 추수감사절에 건축헌금을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우리 교회 당회는 이 일을 결의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절대 공간이 부족합니다. 예배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문화공간과 교육 공간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땅 한 평은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고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을 확보해야 하고 건물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드릴 것을 취해야만 합니다. 보통의 마음을 가지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원하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을 취해야만 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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