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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 요 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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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성경본문 요한복음 6장 3~13절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한복음 6장 3~13절) 

<목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 드리며 예배드립니다.
우리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기 원해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예배에 성령으로 임하시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오늘, [어린이주관주일]예배로 드립니다.
기둥교회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의 경쟁과 승리만을 생각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의 눈물의 기도와 생명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기둥교회의 어린이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큰 일꾼이 되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중히 여김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모였습니다.
우리들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보고 두려워하던 우리들
하늘보고 강하게 담대하게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귀한 시간에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있는 기둥교회 성도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귀한 예배를 하나님이 홀로 주장하여 주시고 영광 받으시며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 본문 말씀 요한복음 6장 3~13절에는
들판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신약성경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요한복음>
4복음에 모두 소개된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를 하고(막6:30) 쉬려 했지만,
예수님이 병 고치시는 기적을 본 사람들은(요6:2)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막6:31~33).
해는 저물었고 마을과는 멀리 떨어진 들판에(막6:35)
성인 남자만 세어 보아도 5000여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막6:44,요6:10)
 
해는 저물고 식사 때가 되어 사람들은 배고팠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마6:36)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요6:5)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막6:37)
 
요한복음에 보면, 그때 빌립이
예수님 "200 데나리온을 가져도 부족합니다."(요6:7) 라고 했습니다. 
1데나리온은 도시노동자 1일의 충분한 임금입니다.
그러니까 200명의 사람들이 번 돈으로도 먹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빌립은 참으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입니다.
계산이 정확한 사람입니다.
그런 빌립의 판단으로는 불가능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이성적인 빌립의 판단이 옳은 것입니다.
돈이 있어도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어디 가서 구해 오겠습니까.
똑똑한 머리로 계산하여 판단한 확실한 답은, "안됩니다"입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들, 스스로 머리가 좋다는 사람들의 그런 똑똑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우찌무라 간죠]는
"하나님 앞에서 계산하는 죄를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실 계산만 앞세우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습니다.
빌립 같은 사람은 신앙생활을 해도 큰 일을 하기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무슨 일을 하자'고 하고, '하라'고 하면
먼저 똑똑한 머리를 굴려 계산하고, 자기 경험에 비춰 비교해 보고
"어려운데요, 무리일 것 같습니다. 때가 아닙니다…"하며 일을 막습니다.
그런 분들은 어떤 쉬운 조건을 내세워도 일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해는 저물었고 동네와 멀리 떨어진 한적한 들판에서,
어른 남자만 세어도 5000여명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가 "애 하나가 떡 5개, 물고기 2마리를 가졌습니다!"라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보고하는 안드레도 기가 막혔던지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요6:9)  했습니다.
그러나 그 보고가,  그 드림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의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말하고/행동합니다.
'내가 못하면 남도 못하고', '내가 어려우면 남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되느냐, 안되느냐],
[가능]과 [불가능]은 너희가 말하지 말고
[있는 것]이 있는지 가서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풍습으로는 사람의 숫자를 셀 때도
여자와 어린이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의 주인공은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어린이였습니다.
 
 
어린이의 관심(예수님을 만나러 갔던 어린이)
 
오늘 본문의 어린이는 예수님을 따라와서
저녁 무렵이 되도록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막10:13~1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 소자라도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눅17:2)
 
오늘 본문의 어린이는 어린이들을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 갔습니다.
어쩌면 부모님들이 데리고 갔을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온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은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면서
자녀들이 예배 드리는 삶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위해서는 자녀들을 새벽부터 학원에 보내고
늦게 끝나게 되면 자동차로 데리러 다닙니다.
좋다는 곳이라면 먼 곳이라도 일부러 데리고 다니면서도
예배 드리는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적당히 가까운데서, 아무데서나 하라'고 쉽게 생각해 버립니다.
 
부모는, 주일에 자녀가 교회 나오는 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신앙의 현주소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영적 상태를 늘 체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어린이는 도시락을 준비해 왔습니다.
도시락을 가져온 것으로 보아 어린이의 집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을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은 어린이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분명히 그 부모가 준비해 주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은 지금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주일 성수 하지 않고, 예배의 자리에 있지 않은 자녀들은 없습니까?
여러분은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몸부림 쳐 보셨습니까?
아이에게 도시락을 준비해 주고 예수님을 만나게 했던 그 부모처럼…
그런 관심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을 만나러 간 어린이는 벌써 마음의 자세가 달랐습니다.
부모님의 마음 자세도 달랐습니다.
도시락을 준비하고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뭔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그 사람은 남다른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 사람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그때 마다 준비된 사람, 믿음 가진 사람, 순종하는 사람,
드릴 줄 아는 사람을 통해서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어린이의 헌신(예수님께 도시락을 내놓은 어린이)
 
오늘 본문의 어린이는 자신도 배고팠을 텐데 도시락을 내놓았습니다.
어린이는 보통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이 많은 시기인데
그것을 내놓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제 사무실 탁자 위에는 사탕, 쵸컬릿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가 먹으려고 둔 것이 아니라 제 방에 오는 어린아이들에게 주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님을 따라 제 사무실에 온 아이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한번 와서 먹어봤던 아이들은 부모님들에게 목사님 방에 가자고 한답니다.
사탕이 담긴 상자의 뚜껑을 열고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하면 대부분 처음에는 안먹겠다고 합니다.
그래도 계속 먹으라고 하면 한 움큼 쥐고는 이쪽 저쪽 주머니에 넣고,
그것도 모자라 엄마의 주머니에 넣고 심지어 통째로 가져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이처럼 먹는 것에 대해 욕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어린이는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안드레를 통해 예수님께 내놓았습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주님 앞에 내놓았을 때 그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는 이같은 일이 많았습니다.
자기의 작은 것을 내놓음으로 크게 쓰임 받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 베드로를 비롯한 갈릴리 어부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위해
  자신들의 조그만 고깃배를 내어놓았습니다(막4:1).
-. 무명의 나귀주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나귀새끼를 내어놓았습니다(막11:6).
-.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해
  자신의 무덤을 내어놓았습니다(막15:42~46).
-. 사도바울도 크고 작은 것으로
  그를 도왔던 많은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막15:42~46).
  (자주장사 루디아 : 행16:14~15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 행18:2 이하
  디모데 : 롬16:21 / 마가 : 골4:10~11 / 야손 : 행17:5~9 등)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믿음으로 내어놓음으로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시고,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1813~1873년 동안 살았던 [리빙스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어느 교회에서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를 돕기 위하여
헌금을 하기로 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하는 사람들 중에 간절히 헌금하기를 원하지만
동전 한푼 없는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헌금 바구니가 자기 앞에 오자 그 바구니 위에 올라앉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주님 앞에 드릴 돈이 없어요.
    그러나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에 가서 죽을 때까지 일하겠어요."
그가 바로 "리빙스턴"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하여 방적공장에서 일하며 고학으로 글래스고 대학에 진학하여
그리스어(語), 신학, 의학을 공부하여
1840년 의료선교사로 남아프리카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사자를 만나 한 팔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가
풍토병에 걸려(이질에 걸려 사망하였다는 기록도 있음) 
아프리카에서 주님을 위하여 죽었습니다.
 
한 아이의 순종이, 한 아이의 드림이 그 일생, 선교사로의 삶을 살게 했습니다.
 
 
신앙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보면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 현명한 사람,
계산이 정확한 사람이라고 모두 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믿고 순종하는 사람, 믿고 맡기는 사람,
믿고 드리는 사람…을 쓰셨고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먼저 네 자신부터 바치라" 하였습니다.
사실 마음의 드림이 있어야 시간도, 몸도, 물질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모임이든지, 어떤 조직이든지 그 모임을 위해, 조직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는 사람이 있어야 그 모임이, 조직이 됩니다.
일반 사회 모임이나 조직도 그렇지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회나 목사, 장로, 부서장…등이 자신의 생각,
자신의 시간, 자신의 물질, 희생하지 않으면 그런 곳에는 말만 많습니다.
문제 많은 교회, 소란스런 교회를 보면
대부분 희생하지 않는 목사, 희생하지 않는 장로,
희생하지 않는 부장/팀장…등이 섬기는 것, 내놓는 것,
희생 없이 "입"만 가지고 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희생, 물질의 희생, 육체적 섬김의 희생이 없으면
5병 2어 같은 기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연말이 되면 교회 임원을 뽑는 당회가 있습니다.
임원을 선출하는 데 있어 기준이 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얼마나 주일 성수를 잘 하며 예배에 잘 참석하는가?
두 번째는, 얼마나 시간을 드리고 몸으로 봉사하였는가?
세 번째는, 성경에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씀처럼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교회에 있는가를 봅니다.
아무리 헌금을 안해도 최저로 해야 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일을 하지 않아 소득이 없다면, 생활의 십일조라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하는 일(선교, Vision Center 건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확장과 선교에 전혀 동참하지 않은 사람,
무관심한 사람을 교회의 임원으로 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 부서장(팀장) 맡은 사람의 주머니가 열려야,
그래야 자신도 일하게 되고 다른 사람도 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서의 팀장이 교회의 예산을 받아 일하려 한다면
그 부서는 뻑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드림이 없는 것, 주머니를 열지 않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고,
이웃을 향해 베풀고, 여러분 자신의 삶도 넉넉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손에 맡기고 드리면
우리 보기에, 우리 판단에 안되는 일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면
우리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나의 욕심을 포기하면 모두가 풍요로워집니다.
어린아이가 비록 [떡 5개, 물고기 2마리]지만 혼자 먹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안드레의 손을 거쳐 예수님께 전달되었을 때 기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내 욕심 때문에 평안치 못한 것입니다.
- 여러분의 가정이 평안하지 못합니까.
  다 자기 욕심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평안하지 못한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 대접 못 받았다"고, 아내는 "아내로서 자존심 상한다"고 합니다.
  다 자기 입장만 내세웁니다.
  부부간에, 고부간에, 형제간에 화목하지 못한 이유는
  자기의 것을 움켜 쥐고 챙기려 하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것을 양보하면 쉽습니다.
  내놓으면, 버리면, 양보하면, 풀어놓으면 평안합니다.
  내 생각, 욕심을 접고 평안하게 넉넉하게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잘 ~ 들으세요.
예수님을 따라가도 해는 저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도 먹지 못하면 배고픕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가수를 따라간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선동을 하는 사람을 따라 간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고침 받기 위해, 말씀 듣기 위해, 하늘의 비밀을 깨닫기 위해…
어떻게 하면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어린아이는 도시락을 준비해 가면서까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도 해는 저물었습니다. 그런데도 배고팠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는 사람,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도 이 세상의 어둠을 만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배고픈 상황, 먹을 것이 없는 상황도 만납니다.
언제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모시고 가면, 주님 따라가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주님을 따라가면 비록 힘들고 어렵고 캄캄함을 만나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룰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보처럼 보여도, 어려운 길인 것 같아도
결국 나만이 아닌 우리를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여기만이 아닌 천국을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피 흘리게 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으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뜻이 있지만,
하나님은 험한 세상, 희망이 보이지 않고 어두워만 가는 세상에…
우리가 빛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두워도, 날이 어두워져도, 삶이 어두워지고 힘이 들어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보잘 것 없는 것 같아도 주님께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움켜 쥔 것, 내가 가진 것을 나 혼자 쓰면 나 뿐이지만,
주님께 드리면 모두가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자녀들을 예수님 만나는 자리에 보내시기 바랍니다.
도시락을 싸는 정성으로 보내야 합니다. 함께 가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어린 아이일지라도 천하보다 귀한 생명입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아이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 예수 믿어도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
도와 주어야 하고, 도시락을 준비해 줘야 할 그런 사람일지라도
그런 영적인 어린 아이일지라도 주님 앞에 안내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예수님을 향한 신앙, 드리며 사는 신앙,
움켜 쥔 것을 내놓고, 어린 아이 같은 심령들을 주님께 소개하고
그들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 같은 정성을 쏟을 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풍요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이 힘들고 어렵고 캄캄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5000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풍요로움으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와 평강을 모두가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 예배의 자리에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며 어린 아이를 예수님 앞에 보냈던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예수님 앞에 내놓은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이 시간 헌신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모든 이들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어린 아이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우리도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간구하옵기는 기둥교회 교회학교 어린이들, 중고등학생들,
청년을 지도하는 교사들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람들이 저들을 인정하고 알아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일꾼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예배 드리는 모든 어린이들의 일평생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일꾼으로 삼아 주시고
하나님이 길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3년 11월 30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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