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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흘러! 흘러! / 겔 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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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 흘러! / 에스겔 47:3-4 

오늘 주신 본문 말씀에서 우린 아름다운 환상을 보게 됩니다. 지금 주의 천사와 선지자 에스겔이 손을 잡고 하나님의 성전 문을 나서서 함께 길을 걸으며 이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특이한 사실은 주의 천사가 무작정 길을 가지 않고, 자를 가지고 일정한 거리를 정확하게 재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으로 일천 척을 척량하여 그 지점에 도착하자 천사와 선지자의 가는 길을 흐르는 물이 가로막습니다. 그런데 강물이 나타나자 주의 천사는 잡고 있던 선지자의 손을 놓아 버립니다. 선지자 홀로 강물을 건너라는 겁니다. 다행히 그 강물의 깊이는 발목까지 잠기는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로 일천 척을 척량하자 또 다른 강물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도 천사는 잡았던 손을 놓고 선지자 홀로 그 물을 건너게 합니다. 이번엔 무릎까지 잠기는 정도였습니다. 발목 깊이의 물을 건널 때 보다는 힘이 조금 더 들었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일천 척을 척량하자 어김없이 흐르는 강물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도 천사는 똑같은 방법으로 그 물을 건너게 합니다. 그런데 앞의 두 경우와 달리 이번엔 그 강을 건너는 데 상당한 힘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강물이었기에 걷는 자세부터 달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강물 역시 잘 건널 수 있었습니다. 주의 은혜이지요.

마지막으로 주의 천사가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자 이번엔 건널 수 없는 강물이 나타났습니다. 그 강에 물이 얼마나 창일한지, 곧 차고 넘치는지, 사람으로서는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었습니다. 헤엄을 쳐야만 건널 수 있는 강이었습니다. 여러분, 은혜의 강을 건너기 위해 수영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 장면에 대한 고백을 직접 들어봅시다. / 47:5 / (읽기)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그 인생의 영적 수준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인생은 평생을 발목 강가에서 퐁당거리며 삽니다. 그의 영적인 수준이 발목까지인 셈이지요. 어떤 인생은 무릎 강가에서 물장구치며 삽니다. 그의 영적 수준은 무릎 아래인 것이지요. 어떤 인생은 허리 강가에서 그 물을 걸어 건너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써도 여전히 허리 아래 수준의 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지요.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인생들, 평생을 살면서 단 한번도 저 깊고 넓은 은혜의 강을 체험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물과 관련된 서술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3절 마지막 대목을 보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라고 합니다. 물이 차올랐다는 겁니다. 4절에 보니 역시 물이 무릎에 오르고, 또 허리에 차올랐다고 합니다. 자, 지금 물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은혜의 강물이 창일하자 더 이상 사람의 힘으로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됩니다. 당연히 온 몸을 그 강물에 맡기고 헤엄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물이란 하나님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교회를 다녀도 어떤 성도는 은혜의 발목 강가나 무릎 강가나 허리 강가에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말이 강물이지 실제로는 강물이라 부를 수도 없는 작은 개천이지요. 자고로 개천에선 용이 나기 어렵다 했던가요? 왜? 은혜의 강물이 발목, 무릎, 아니 허리춤까지 밖에 차오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분들, 평생을 믿어도 은혜의 강물에 푹 빠져 보는 체험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참 안타깝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간곡하게 말씀드립니다.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도 창일한 은혜를 주십사고 매달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여 하늘로서 내리는 은혜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허락하신 깊고 푸른 은혜의 강물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천사를 보내시어 선지자 에스겔에게 이런 환상을 보게 하신 것일까요? 이 환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을 품고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 47:6-9 / (읽기) / 거기 6절에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주께서 물으십니다. “에스겔아,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이것을 보았느냐는 주님의 질문이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에스겔을 인도하여 은혜의 강가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은혜의 강물을 따라 가며 선지자 에스겔은 계속하여 환상을 봅니다. 그런데 흐르는 그 강물을 따라가는 선지자의 가슴에 점점 감격과 은혜로 벅차오릅니다. 견딜 수 없는 은혜로 충만합니다. 그 환상 속에서 그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가 보니 강 좌우편엔 아름다운 나무들이 무성하지요,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명이 다시 살아나지요, 심지어 죽은 바다까지 다시 생명의 바다로 소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환상을 보기까지 선지자가 사는 그 곳은 마치 마른 뼈들만 즐비한 죽음의 골짜기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로서 내리는 은혜가 차고 넘치자 생명의 강줄기를 따라 모든 생명이 다시 살아나다니,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여 선지자의 입에서 감사의 찬양이 절로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물과 관련된 서술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8절을 보니 물이 흘러 내려갔다고 합니다. “흘러내리는 물”이란 표현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은혜의 강물은 우선 흘러내리는 물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저 생명의 강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늘로서 흘러내리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는 하늘로서 흘러내리는 무엇입니다. 흘러내리는 그 은혜를 받아 내 안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은혜가 차고 넘치는 사람, 죽었던 심령이 살아납니다. 은혜로 충만한 가정, 사랑과 행복이 회복되며,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은혜로 충만한 교회,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8절에 보니 이 흘러내리는 물이 죽음의 바다라 불리는 아바라 바다의 물까지 소성시켰노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은혜의 강물은 흘러내리는 물입니다. 이 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9절에 보니, 서술어가 바뀝니다. 9절 중간쯤인데요, 이 물이 흘러들어간다고 합니다. 아하, 흘러내린 강물이 이젠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단하늘로서 내린 은혜의 단비는 강물이 되어 흘러내려가면서 이르는 곳에서 여기저기로 흘러들어갑니다. 이 강물이 흘러, 흘러, 이르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은혜의 강물이 이르러 흘러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생명이 살아납니다. 죽었던 바닷물이 소성합니다. 어디든 이 강물이 흘러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여기서 강물로 상징된 하나님의 은혜란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그 흘러내리는 은혜의 단비를 받아 내 안을 채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흘러내린 은혜는 생명의 물줄기가 되어 흘러, 흘러, 갑니다. 이 강물이 흘러, 흘러, 이른 곳, 그 곳에서는 생명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여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 47:12 / (읽기) / 거기 몇 개의 서술어에 표시합시다. 시들지 않습니다. 끊어지지 않습니다. 달마다 새 실과를 맺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은혜의 강물이 흘러들어가기만 하면!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날마다 더 큰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평생 발목 강가에서 첨벙거리며 살 순 없습니다. 평생 허리춤도 넘지 못하는 그 얕은 강물에서 제대로 몸 한번 푹 담가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살 순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발목 강물을 건너 무릎 강가로, 무릎 강물을 건너 허리 강가로, 허리 강물을 건너 저 은혜의 깊은 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 안을 은혜로 채워야 합니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이 나약하고 또 간사해서 그토록 큰 은혜를 주시건만 그 은혜를 이내 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감사는 잠시 뿐, 또 다시 주신 은혜 내 팽개치고 죽음의 골짜기로 도망가는 한심한 인생들이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해서 우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해서 우린 찬송하는 것입니다. 해서 우린 날마다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내 안에 은혜가 고갈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인생에 은혜의 강물이 마르지 않도록 더욱 뜨겁게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내 가정에, 내 일터에, 내 교회에 은혜의 생명수가 넘치도록 말씀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은혜의 강물이 넘치는 그 곳, 은혜의 강물이 흘러들어간 바로 그 곳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만난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주, 저는 영성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놀라운 은혜를 주신 세미나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분은 그 곳에 만난 분인데요, 우리 조의 조장으로 봉사하신 분이며, 현재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요, 서울역 앞 모 교회의 장로로 봉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알고 보니 그 분의 따님이 제 모교의 후배였습니다. 우리는 이 장로님의 간증을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참석자 모두는 남성이었는데요, 그 밤 그 사나이들이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한 가지 그 분께 누가 될까 하여 익명으로 소개해 드림을 양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번 영성 세미나에서 저에게 주셨던 그 놀라운 은혜를 여러분도 같이 체험하게 되시기를 소망하며, 이제 그 분의 간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간증 / 저의 아버지는 일찍이 스님이 되고자 절에 들어가셨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환속하시어, 결혼하시고, 장남으로 저를 낳으셨습니다. 하지만 환속한 아버지의 인생은 좌절과 고통의 나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 속에 각인된 아버지는 날마다 술에 취해 세상을 탓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와 저를 증오하시는 듯한 눈으로 노려보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술이 깨어 있으실 때는 그토록 순한 양 같으시고, 별 말씀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당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과 이 세상의 현실적인 삶 사이에서 갈등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인생에 우리가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의 삶은 가난 그 자체였습니다. 어머니의 품삯은 무언가 사업을 하신다고 자주 일을 벌이시는 아버지의 뒷감당을 하기엔 턱 없이 모자랐습니다. 자연히 부모님은 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물쭈물 하는 사이, 그만 취학 적령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딱했든지, 같은 동네 사시는 국민학교 선생님 한 분이 저를 남산국민학교에 입학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입학서류를 만들기 위해 구청엘 갔더니, 호적에 제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없이 저는 그런 서류가 없어도 받아주는 상동교회의 공민하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하나님”이란 단어를 듣게 되었고, 그 분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앳된 처녀 선생님이 저의 담임이셨습니다. 그 분은 제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존댓말로 이름도 불러주시고, 자주 칭찬도 해주시고, 곧잘 제 머리며 양 볼을 만져 주셨습니다. 제 집안 이야기도 물어주시고, 그 질문에 제가 열심히 우리 집 이야기를 해 드리면, 어인 일인지 저를 선생님 가슴에 묻으시고 기도를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눈을 뜨고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더니 선생님은 울고 계셨습니다. 선생님의 눈물을 보니 저도 모르게 네 눈에서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사람을 보면 두려워했고, 그래서 늘 사람 앞에서 경계하고 경직되어 굳어지곤 했었는데, 이제 그 선생님과 함께 있기만 해도 모든 것이 평안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실 때면, 내 선생님의 사랑을 빼앗아간 그 하나님에게 질투도 났지만, 하나님이 여자라면 아마 이 선생님 같으신 분일 게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저는 기쁨이 충만했고, 온 세상이 밝다고 느꼈으며,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루 종일 교회에서 놀았습니다. 학교 공부가 끝나도 어머니가 업혀주신 동생 등에 달고 그렇게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개 밑에서 행복하던 그 삶은 몇 달을 먼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났습니다. 6.25전쟁입니다. 계시나 마나한 아버지가 전쟁 통에 훌쩍 사라지셨는데, 풍문에 방위군인가에 입대하셨다고 들렸습니다. 저와 여동생, 그리고 막 태어난 남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졸지에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우리 어린 남매는 매일 공회당에 모여 “인민군” 노래를 배우고 쌀 한 되씩을 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영각해서 다른 애들보다 활달하게 노래도 잘하고 말도 잘 들었습니다. 덕분에 다른 아이들보다 배급양도 많았고, 거기에 새치기도 잘해서 이밥 확보가 잘 되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3년에 걸친 전쟁 동안 우리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소문을 따라 아버지를 찾아 만났습니다. 가서 보니 다 쓰러져가는 어느 건물 안에 허리를 다쳐 거동 못하시는 아버지가 누워 계셨습니다. 우리 집은 효자동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래도 세월은 갔고, 저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침저녁으로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봉지쌀로 연명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확장지로 나온 여분의 신문을 길에서 팔았습니다.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몇 푼의 돈으로 군고마를 샀습니다. 식구는 모두 여섯이었지만, 다섯 개밖에 살 수 없었습니다. 막내는 아직 젖먹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따끈한 군고구마의 온기와 냄새가 굶주린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 몫의 고구마를 먹기로 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게 눈 감추듯 하나를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더 먹고 싶어졌습니다. 그래, 꼬마 동생은 반개만 먹어도 될 거야, 행각이 거기에 미치자 자연스레 하나를 더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만 반절만 먹는다는 것이 그만 한 개를 온통 다 먹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몰려오는 죄의식과 떨림은 제 자신에 대한 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고구마 세 개를 방에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고구마 하나씩을 주고는 자신의 몫이 없어 뒤돌아 앉아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제 자신이 미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 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어머니, 저는 그 분을 사랑합니다.

저의 학창시절은 공부가 아니고 투쟁이었습니다. 정학, 휴학, 퇴학, 그리고 전학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담임선생님에게 불려나가 월사금 재촉을 받고는 교실 밖으로 쫓겨 나가 창문 너머로 공부하는 교실을 바라보는 그런 꿈을 꾸곤 합니다. 가위에 눌려 깨고는 그 때의 서러움에 잠을 설치곤 합니다.

저는 사범학교를 나와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렵사리 사범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등록금이 없어 군에 입대했고, 월남 전쟁에 자원하여 월남으로 갔습니다. 등록금을 벌어오고 집 살림에도 도움을 주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더욱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저는 극도의 외로움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술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음료가 아닌 병원용 알코올을 물에 타서 수통에 넣고 다니며 마셔댔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세상이 더 미워졌습니다. 술은 위로를 주지 못했습니다. 사람만 강퍅해지고 끝내는 동료들마저 저를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꾸준하게 편지를 보내주던 고국의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여학생이 공부는 잘하는데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게 된 친구가 있다는 사연을 무심코 적어 보내왔습니다. 불현듯 저의 과거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는 그 학교에 즉시 편지와 함께 그동안 모았던 제 등록금을 몽땅 보내주었습니다.

2년 후, 월남에서 귀국했습니다. 귀국은 지겨운 일상의 시작이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가 성인이 되었다는 것과 그리고 삶에 지친 술꾼이 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여 우리 집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와 저, 그렇게 술꾼이 둘이나 되었습니다. 술을 먹는 날이면 아버지에게 모든 원망을 퍼붓고는 집을 뛰쳐나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점점 악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결국 깡패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전우를 만났습니다. 신문사에 근무하는 친구였습니다. 그가 저에게 글 하나를 쓰라 했습니다. 원고지 5매 분량의 글이라 했습니다. 저는 파월 장병의 귀국 소감을 썼습니다. 그 글이 신문에 실린 후, 독자들의 많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한 여인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일찍이 알았지만 주저하다가 이제야 글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제가 월남에 있을 때 저에게 편지를 보내주던 그 친구의 짝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편지를 피를 토하며 인사불성이 되어 시립병원에 실려 간 곳에서 링거주사를 꽂은 채 받았습니다. 지독한 궤양이라 장의 일부분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술비가 없어 응급조치만 받은 채 저는 곧바로 퇴원했습니다. 그 여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녀의 편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녀는 저의 불평과 불만을 다 받아주었습니다. 상처 입은 제 마음을 위로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차차 병세가 회복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교회를 갔습니다. 낯설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 교회 교우의 추천으로 교단이 운영하는 출판사에 취직도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저는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을 했고, 드디어 집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중고등부 교사로 봉사하며, 중고등부가 부흥하는 체험도 하게 해 주셨습니다. 제 생활이 바빠지고, 또한 주변 분들의 칭찬이 늘어가면서, 제 마음 속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도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착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낮에는 경건한 신자인 척 하다가, 밤이면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이중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럴 즈음 그 여인과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렵사리 우린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타락과 방종으로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과거 그녀의 환경이 좋았고, 고생도 모르고 성장한 것 자체가 나에겐 트집이 되었고, 그런 그녀를 저는 구박하곤 했습니다. 더욱이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는 아내가 싫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13평 아파트에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 좋지 못한 형편을 그러나 묵묵하게 견디는 아내에게 저는 오히려 심술을 부린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아내는 임신을 했습니다. 산기가 있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거꾸로 섰다는 것입니다. 수술을 해야 한답니다. 백방으로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급히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통 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뜬 눈으로 밤을 새며 비로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처갓집에 알리지 못한 것은 알량한 제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종합병원을 퇴원하여 작은 의원으로 옮겼습니다. 수술이 아닌 유도 분만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기를 살려 주시면 주님께 바치겠습니다!”제 입술로 이렇게 서원하며 매달렸습니다. 다섯 시간의 피땀 흘린 고통 중에 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딸아이는 잘 커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월이 지나면서 서원 기도를 잊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잊지 아니하시고 딸자식의 인생을 예정하신 계획대로, 아니 저의 서원대로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딸아이는 거창고등학교와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거쳐 지금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인가 봅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주셨는데도, 시간이 갈수록 그 은혜를 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는데도 못나고 사악한 이 사람은 자꾸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세상의 길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제 삶의 조건은 점점 더 좋아져갔습니다. 하나님의 계속되는 은혜였지요. 그러나 그 기본적인 사실도 잊은 채, 제가 잘 나서 그런 줄로 또 착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엔 훨씬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 중책을 맡기까지 하여 마음의 교만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를 나갔고, 그나마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를 자주 빠지게 되었습니다. 핑계는 핑계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점점 교회와 주님의 품을 떠나 세속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지요. 배은망덕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직장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침에 병원에 진찰 간다던 아내였습니다. 담당 의사가 보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지간해서 병원에 가지 않던 아내인지라 불안한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내의 한쪽 유방에 종양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입원해서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라는 겁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너무나 지쳐 있었습니다. 저에게 귀했던 사람에게 저는 너무나 무심했고, 때론 의식적으로 그녀에게 한풀이를 해댔으며, 심지어 아내의 신실한 신앙에 대하여 불경스러운 농담으로 그녀의 속을 상하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음 날 입원했습니다. 수술하다가 만일의 경우 아내가 사망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아내는 오히려 명랑한 척 하며 나를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입원 수속을 마치고 잠시 집에 들렀습니다. 덩그마니 혼자 남은 듯 했습니다. 딸아이는 거창에 있을 때였습니다. 문득 아내의 손때 묻은 화장서랍을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잘 정돈된 서랍 안에는 메모 쪽지 한 장이 있었습니다. 꼭꼭 눌러쓴 아내의 글씨였습니다. 보험 종류와 보험증서, 저금통장 내역들, 빌린 돈, 빌려준 돈, 아이들 등록금 내는 날, 과외선생님 사례 드리는 날, 그리고 얼마의 현금을 책꽂이의 가계부 중간에 끼어 놓았다는 메모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다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탕자처럼 방황하며 주님의 은혜도 잊은 채 살아온 저를 지금까지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신 주님,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이제 주님께 돌아가겠습니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주님 사랑하시는 저 딸, 제 곁에 조금만 더 남아 있게 해 주십시오. 이제 사랑하겠습니다. 이제 헌신하겠습니다. 이제 제대로 살겠습니다.”

두 시간 반 동안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병원 복도에서 또 기도했습니다. 목사님도, 온 성도들도 함께 기도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죄인의 기도를 또 들어 주셨습니다. 수술은 성공이었습니다. 그 후 아내와 함께 다시 예배를 드리던 날, 하나님은 제가 아내로부터 받은 편지에서 감동을 받았던 그 말씀을 다시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때 비로소 자기 인생의 몫을 빼앗긴 어머니, 고통과 상처투성이인 아버지의 모습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날 저는 모든 것을 내놓고 울었습니다. 실컷 울었습니다. 강퍅한 마음, 허세, 이 모든 것들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쉴 곳은 주님의 품이요, 마음의 평안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불복종하고 반항하며 탕자가 살던 이 못난 죄인을, 그러나 주님은 오래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신 은혜는 제 삶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20년 이상 근무하던 직장을 떠났습니다. 대접받으려 했던 헛된 욕심도 버렸습니다. 사장이라는 직분, 장로라는 직분으로 인해 오히려 교만했던 옛 사람도 벗어 던졌습니다. 지금은 아주 작은 기업을 자영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벌어 봉사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자 저의 눈에 섬겨야 할 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들 섬길 수 있는 건강과 시간과 물질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저는 봉사자로, 주님의 제자로 살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연약한 이 죄인을 붙들어 주옵소서.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과 동행하게 해 주옵소서.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실족하려 할 때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 도와주소서! 주님 인도하여 주소서!”이렇게 기도하며,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예수님 닮은 장로, 예수님 닮은 가장, 예수님 닮은 기업인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부족한 사람이 계속 은혜 가운데 걷도록 기도해 주시기 부탁드리며,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도 오직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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