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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로 주를 수종들라 (눅 4: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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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4장 38-39절
*제목: “감사로 주를 수종들라”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39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서론
  추수감사절 예배는 미국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영국에 살고 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국가교회가 심한 핍박을 가하자 그 환란을 벗어나기 위해서 종교의 자유가 있던 화란(네덜란드)으로 1608년에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역사에서는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자류를 찾아 국가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란에서 분리주의자들이 12년 동안 살면서 화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자녀들의 교육적인 문제도 힘들어지자 또 다시 새로운 나라를 찾아서 떠나가게 됩니다. 이때에 용감한 102명의 사람들이 메이플라워호라는 180톤 정도의 조그마한 배를 타고 신앙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무려 65일간의 항해 끝에 드디어 오늘날의 미국인 신대륙에 도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필그림 파더(Pilgrim Fathers) 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기름진 땅과 풍성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도착한 시기가 추운 바람이 무섭게 몰아치는 한 겨울이었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다오 먹을 음식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웠습니다. 청교도들은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가면서 한 겨울을 보내었지만 그 기간 동안 절반에 가까운 52명의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교도들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의 열정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서 열심히 씨를 뿌리고 황무지와도 같은 땅을 경작해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듬해에 청교도들은 신대륙에서 풍성한 곡식을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청교도들은 제일 먼저 그동안 자신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서 수확한 풍성한 곡식들을 쌓아 놓고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주일을 미국의 전역에서 시행할 것을 법적으로 공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에 와서는 전 세계적으로 각 교회마다 추수감사주일이 지켜지고 있으며,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정기적으로 매년 11월 셋째 주를 추수감사주일로 정하여 지난 한 해 동안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감사는 단순히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
는 표시가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의 은혜로 기적적인 치유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홉 명의 문
둥병자는 예수님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대로 제 갈 길을 찾아서 떠나가 버
렸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문둥병자가 예수님 앞에 와서 감사하다는 표
시를 드러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이방인 문둥병자를 더 크게 축복해 주셨
다는 사건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문둥병자는 자신의 육신뿐
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고침을 받고 구원을 얻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
럼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하여 진정으로 감사의 표시를 주님께 드릴 때에 작
은 감사가 더욱 더 큰 감사로 나타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말씀인 누가복음 4장 38-39절을 보시면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수종’이라는 단어입니다. ‘수
종’이란 단어의 뜻은 어떤 한 사람을 옆에서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즉 병고침을 받
은 베드로의 장모가 감사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수종을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수종
이라는 단어는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을 보시
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
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열왕기상 19장 21절에서는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
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
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마가
복음 1장 31절에서도 “나아가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
에게 수종드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구약시대의 레위 
지파 사람들은 성전에서 여호와를 수종드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로마의 카톨릭과 구
별되는 개신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표현으로 ‘전신자의 제사장 직분’이라고 부
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본분이요 사명이요 가장 기본적인 직책은 바로 하나님을 수종드는 삶입니다. 
즉 하나님을 수종드는 삶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직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기록된 누가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기도하신 장면
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4장 1절에서는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
고 증거합니다. 의사인 누가는 예수님의 성령충만에 초점을 맞추어 관찰을 하였습니
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성령충만으로 어떠한 기적을 행하셨는가에 누가는 집중하였습
니다. 의사인 누가의 눈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이 크게 두 가지로 두드러지게 보
였습니다. 첫 번째는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의 권능을 예수님께서 행하셨다는 사실입니
다. 두 번째는 육신에 병든 사람을 성령의 권능으로 치유하시는 치료자의 역할도 예수
님께서 감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의사인 누가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그 어느 복음서보다도 더 많은 축사의 현상과 질병 치유의 역사가 두드러지게 부각되
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교회도 늘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이 두 가지의 역사가 강
하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귀신
을 쫓아내는 축사의 역사와 육신의 병을 고치는 치유의 역사가 우리 교회에도 많은 성
도님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에 동일하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 같은 성령의 충
만한 역사를 위해서 더 열심히 모여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누가복음 4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을 
쫓아내신 축사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소문이 사
람들의 입을 타고 그 마을에 순식간에 퍼지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 4장 37절을 보시
면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
수님께서는 회당을 나가셔서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시몬은 우리가 너무
나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입니다. 시몬의 집에는 마침 장모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집을 방문했을 때에는 중한 열병에 붙들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열병이 즉시 떠나
고 시몬의 장모가 곧 일어나 예수님을 수종드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의 역사에 대한 시몬의 장모의 행동은 곧 일어나 수종을 드는 것이었습
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좀 더 잘 수종
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고자 합니다. 

수종은 은혜받은 사람의 첫 번째 표식이다.
  이같은 질문에 대하여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진리는 바로 
‘예수님을 수종드는 것은 은혜받은 사람의 첫 번째 표식이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해도 자발적으로 주님을 수종
드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주님께로부터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 집
안 전체가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은혜받기 전
에는 예수님을 수종들이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수종드는 일은 은혜받은 이후
에 오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몬의 집이 예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는 참으
로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위인 베드로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밤새 수고를 다 하여도 고기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
기를 잡을 수가 없으니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상태였습니다. 대가족이 오직 어부인 베
드로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있는데 생계의 수단인 고기를 잡을 수가 없으니 매우 어려
운 형편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베드로의 장모는 지금 사위의 집에 눈치를 살피면서 
살고 있는데 중한 열병까지 걸려서 누워만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입니까! 경
제적으로도 힘들고 육신적으로 병이 든 주위를 둘러보아도 도와 줄 구석이 없는 참으
로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작년 이맘때에 열병으로 말미암아 한 달 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입맛
도 없고 몸에 기운도 없고 매우 힘든 나날들을 보내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최
고의 의학기술로도 무려 2주 이상의 치료기간을 요하는 것이 바로 열병의 고통이었습
니다. 하물며 예수님 당시에 살던 사람들은 그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었습니
까? 지금처럼 좋은 병원도 없고 훌륭한 의사고 없고 마땅한 약도 없이 그저 병에 걸리
면 집에 가만히 누워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소망없는 시몬의 집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예수님의 방문이 있었습니
다. 베드로가 불러서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시몬의 장모가 
사람들을 청하여서 예수님을 모신 것도 아닙니다. 동네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신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대하여 본문 38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이것이 바
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오셔서 살피
시는 것이 우리 주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여 
오는 은혜도 있지만 가장 큰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 가운데에 주권적
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로 구원받은 성도는 마땅히 주님께 수종을 들어야만 합니다. 
  지금 베드로의 집이 이와 똑같습니다. 아무런 부탁이 없어도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신 주님께서 미리 찾아오셔서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순식간에 고쳐 주셨습니다. 그
리고 이 일 이후에 한낱 어부에 지나지 않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
가 되어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의 반열에 올라서는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
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도 사도가 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 
집안에서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가 2명이나 나오는 영광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첫 번째 증거가 바로 베드로의 장모가 곧 일어나
서 예수님께 수종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가 아니면 받지 
못하였는가를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지금 현재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주님
을 수종들고 있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감사한 마음으로 수종들고 있다면 그 사
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방언의 은사와 신유
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께 수종들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참된 은혜
의 첫 번째 표식은 바로 주님을 수종드는 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자신을 고쳐준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
님께서 친히 고쳐 주셨습니다. 또한 베드로의 장모는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구원 받았
는지도 잘 알았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질병에서 구원받았음을 확실하게 깨달았습
니다. 바로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을 얻었음을 베드로의 장모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장모는 무엇 때문에 구원을 받았는지도 잘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수종들기 위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장모는 치유의 은혜
를 입은 그 즉시 곧 일어나 예수님을 수종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상상을 한번 해 보았습니다. 만약에 베드로의 
장모가 질병에서 치유함을 받고 일어나서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을 했다면 어떻
게 되었을까요? “아니, 예수님 왜 이 좁고 가난한 집에 와서 민폐를 끼치십니까? 우
리도 먹을 양식이 없는데 제자들까지 데리고 와서 음식을 축나게 하십니까? 내가 아파
서 누워 있을 때에는 일하지 않아도 사위가 불평하지 않았는데 이제 건강한 몸이 되었
으니 일할 수 있는 일거리도 주십시오.” 이런 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적반하장’이
라고 합니다. 그리고 속담으로는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내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그런
다’고 표현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뉴올리언스 신학교를 다닐 때의 일
입니다. 한번은 차를 타고 가는데 길에서 미국 거지가 손을 흔들고 차를 태워달라는 
신호를 보내었습니다. 목사 체면에 그냥 갈 수도 없고 주님의 사랑으로 그 거지를 차
에 태우고 무려 1시간 30분 동안 달렸습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무사히 내려 주었습니
다. 그런데 거지가 이제는 배가 고프니까 밥을 사먹을 수 있는 돈을 달라고 저에게 요
구를 하였습니다. 이왕 도와 준 거 끝까지 도와주자는 심정으로 지갑을 뒤져보니까 어
제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받은 사례비 5달러가 있어서 전부 다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상당부분 이
런 요소들이 있습니다. 죄와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은 십
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희생을 하셨건만 그분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소위 성도들
이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는 현실이 힘들다고 해서 불평하고 또 때
로는 사업이 잘 안된다고 해서 원망만 한다면 이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받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수종드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 수종이야 말로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믿음
의 예물이 될 줄로 믿습니다. 

수종의 네 가지 특징
  그렇다면 베드로의 장모가 주님을 수종드는 그 모습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일상성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일은 자신이 집에
서 평소에 하던 일이었습니다. 누추한 시몬의 집까지 들어오셔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
신 예수님을 위해서 틀림없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을 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서 이땅에 오신 예수님의 시장기를 덜어 드리기 위해서 늘 하던 대로 맛있
는 음식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께서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는 방을 마련하기 위해서 깨끗하게 집안 청소를 하였을 것
입니다. 걸레도 빨고 먼지도 털면서 존귀하신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청결한 곳에서 모
시기 위하여 최선의 서비스를 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특별한 행동이 아
닙니다. 단지 시몬의 장모가 날마다 하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
은 이와 같이 평소에 자신이 하던 작은 일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수종드는 것을 기뻐
하십니다. 그리고 작은 일을 통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실한 믿음의 자녀들에게 
점점 더 큰일을 맡겨 주십니다. 바로 이것을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법칙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자세를 갖고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
신 각자의 직분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다른 사람은 큰 직
분을 감당하고 나에게는 남들이 인정해 주지도 않는 작은 일을 맡긴다고 불평하며 원
망하는 사람은 결코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아무
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큰 사명을 맡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아무
리 눈을 뜨고 찾아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천만의 말씀
입니다. 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까? 기도도 못한다는 말입니까! 아무런 직분이 없
어도 교회에서 감당할 사명이 없어도 교회에 와서 무릎을 꿇고서 얼마든지 기도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교회의 부흥과 영혼구원을 위해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가 있습니
다. 주위에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얼마든지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일거
리가 없다고 불평만을 하십니까? 우리도 베드로의 장모처럼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서 
주님께 수종을 들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통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수종드시기 바랍니
다. 
  둘째, 즉시성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열병에서 고침을 받자 5년 후에 주님을 
수종들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곧 일어나서 수종을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
름다운 모습입니까! 베드로의 장모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병들어서 연약해진 육신의 기력을 완전히 회복한 후에 주
님을 수종들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베드로의 장모가 곧 일어나 수종을 
들었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
의 마땅한 삶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그 즉시 
수종드는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님
을 위하여 수종을 들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날마다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일들이 있으면 그 즉시 일어나 주님께 
마땅히 수종을 드는 삶을 살아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자발성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주위의 사람들이 억지로 시켜서 주님을 
수종든 것이 아닙니다. 중한 열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그 순간에 베드로의 장모의 마
음속에는 자신을 일부러 찾아오셔서 병을 고쳐주시고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주님
을 향하여 스스로 수종들기를 원하는 자발적인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마음은 그 누
가 시켜서 생겨 난 마음이 아니라 마음 깊은 중심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입니
다. 유명한 다윗왕도 시편 51편 12절을 통해서 주님을 향한 자발적인 섬김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을 하였습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
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우리 하나님은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은혜받은 그 영혼
이 자원하는 심령으로 수종들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감사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향한 베드로의 장모의 수종에 있어서 가
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님을 수종드는 사람의 가장 필수적인 요건은 마음의 깊은 데
서 우러나오는 감사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증
거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불평하며 원망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처
럼 돈도 없고 권세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싼 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리라고 요구
하십니까? 우리는 지금 먹고 살기도 힘이 듭니다. 하나님 그렇게 맛있는 고기를 잡수
고 싶으십니까?” 성도 여러분! 이러한 제사를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죄송
한 말씀이지만 이러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차라리 드리지 않는 것만 못합니
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불평과 원망의 마음을 갖고서 제물을 드린다면 그것은 가
인의 제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인의 제사에는 하나님의 어떠한 축복도 역사도 일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
러분 모두는 스스로의 마음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옆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
면서 그 사람의 마음과 믿음의 분량을 짐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 각자의 
마음만을 겸손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내가 이시간 어떠한 마음을 갖고서 여
호와 하나님 앞에 나와 왔는지를 체크해 보시기 원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마음속에 
불평과 원망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있다고 한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으시고 주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으시고 그 마음속에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감사
로 충만히 채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
하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지옥의 형벌과 권세
로부터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공로와 수고와 노력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하
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평생을 갚아도 만분지일이라도 갚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
다. 오늘 이시간 무조건 여러분의 마음을 감사로 충만히 바꾸십시오. 항상 감사한 마
음을 갖고서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늘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살았
던 욥은 그 어려운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
지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
과 욥은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이 이전에 누렸던 축복의 갑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한 가지 별명이 있다고 한가면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입술
을 벌릴 때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행하시기 원합니다.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에게 더욱 더 큰 감사의 조건들을 우리 하나님
께서 풍성하게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위한 수종은 가장 큰 은혜요 영광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수종드는 일은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피조물
인 우리가 창조주인 주님을 감히 수종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
다. 세상의 대통령을 수종드는 것도 그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우리는 그 사람을 가리
켜서 비서관이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대통령을 수행하며 비서로 섬기는 비서관은 개인
적으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비서관이라고 하는 그 직책에 대한 
큰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토록 세상의 대통령을 5년 동안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토록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영원무궁토록 만왕의 왕
이 되시는 주님을 수종드는 일이야말로 그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을 수종드는 
일은 이 세상의 아무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진실
로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참으로 복된 사명임을 믿음으로 확신하시기 바랍니
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도 자신이 주님을 수종들 수 있다는 사실에 대
해서 무한한 영광으로 여겼던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12절을 보시면 “나를 능하
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
기심이니”라고 증거합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3장 9절에서는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사람
을 정죄하는 직분도 영광이 있지만 더욱 더 큰 영광은 복음을 가지고 주를 수종드는 
일이야말로 지극히 큰 영광이 있다는 진리를 사도 바울은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 이
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수종이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큰 영광임을 확실하게 깨닫
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만약에 대통령이 와서 자신의 직분과 
저의 직분을 바꾸자고 부탁한다면 일언지하에 거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대통
령도 그 직분이 귀하고 소중하지만 주의 종이 되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는 직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의 장모가 주님을 수종든 일은 자신에게도 큰 축복이 
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가정 전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는 놀라운 역사
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으로 신음하던 시몬의 집이 이제는 그 마을전체
에 위대하신 예수님의 권능을 증거하는 복음의 센터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시몬의 집
이 마을 사람들의 동정을 받았던 비참한 신세였지만 이제는 그 가정에 모든 병자들과 
육신의 연약함과 영혼의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게 되었습니
다. 시몬의 집에 모든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들어가기를 소원하는 귀한 축복의 가정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받은 시몬의 장모
를 존경하며 진심으로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시몬의 장모는 기독교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사도인 베드로의 장모가 되어 성경에 기록이 되는 엄청난 축복의 주인
공이 되었음을 믿음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시몬의 장모처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
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즉각적으로 일어나 주님을 수종드는 사람들에게도 이와 동
일한 축복과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을 수종드는 신실한 믿음
의 백성들을 결코 배반하거나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필요에 
따라서 밑의 사람을 부리다가도 개인적인 출세와 명예와 유익을 위해서라면 조금의 망
설임도 없이 버리는 무자비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주님은 영원무궁토록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배반하고 부인할지언정 주님은 결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는 영원한 구세주이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 하늘의 영원한 영광과 존귀를 사모하신
다면 주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수종드는 삶을 날마다 살아가십시오. 예수님을 먼저 섬
기시고 그 다음으로는 주님의 사랑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가 된 교회의 성도들을 겸손
한 마음으로 섬기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믿음의 백성들
이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마땅한 본분이요 사명인줄로 믿습니다. 교회에서 사랑이 
부족하다면 여러분께서 주님의 사랑으로 그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십시오. 교회가 낡아
서 보수할 곳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 각자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그 떨어진 부분들을 
새롭게 세워나가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이 사회를 위한 봉사와 섬김이 부족하다고 한
다면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과 시간과 열정을 통하여 봉사하시기 원합니다. 바
로 이것이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한 수종드는 아름다운 성도의 삶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감사의 수종’이라는 다섯 글자를 깊이 새겨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
여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와 이 세상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
신 모든 축복들을 되돌아보는 가운데에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다시 한번 주님을 향한 
‘감사의 수종’을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비단 추수감사주일인 오늘만 주님을 위한 
‘감사의 수종’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는 최후의 순간까지 날마
다 ‘감사의 수종’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에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항상 풍
성하게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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