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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며 살 때 / 욥 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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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욥42:1-6
제목: 감사하며 살 때
2003. 11. 30

  이 세상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행한 사람도 있지만, 살다가 불행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어떤 불행한 사람의 내력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맞춰 보십시오. "그는 태어날 당시 어머니는 사생아로서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그는 4살 때 남동생을 죽음을 보았고, 9살 때는 어머니, 18살 때는 여동생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결혼했지만 아내는 거의 정신이상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두 아들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야 하는 인생의 처절함도 맛보았습니다. 그는 전쟁에 참가했다가 든든한 버팀목이던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는 정치에 나섰으나 연거푸 낙선했습니다. 그때 가진 재산도 모두 잃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온통 고난과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때 그를 미국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특히 역대 대통령가운데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뛰어난 지도자인 링컨의 화려함 뒤에는 이런 불행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성경의 인물가운데 링컨처럼 불행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욥'이란 인물입니다. 성경에서 '욥'하면 '고난, 불행'을 떠올립니다. 욥만큼 어렵게 산 사람이 일찍이 없었습니다. 욥의 불행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자기의 잘못으로 빚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록을 보면,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도대체 그의 인생을 통해 경험했던 불행이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그는 재산을 잃었습니다. 욥기 1장에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졌는가를 "양이 칠천, 약대가 삼천, 소가 오백겨리, 암나귀가 오백..." 이라고 밝힙니다. 욥이 살던 시대에 부의 기준은 가축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재벌중의 재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동방에서 가장 큰 자, 부자'라고 소개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권에 당첨되어 얻은 것도 아닙니다. 평생 모은 재산입니다. 물론 열심만 가지고 모아지는 것은 아니지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의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더욱 감사하며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없어진 것입니다.

  둘째, 그는 자녀도 잃었습니다. 욥은 자녀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아들 일곱, 딸 셋입니다. 물론 자녀가 많은 것이 결코 축복은 아닐 것입니다. 말썽만 피우는 자녀라면 차라리 적은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욥의 자녀들은 정말 잘 자란 자녀였습니다. 욥은 무엇보다도 가정의 화목을 강조했습니다. 재물이 많고, 형제도 많기에 형제끼리 싸울 수 있는 요소가 충분했습니다. 오늘날 그것을 우리가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러나 욥의 가정은 달랐습니다. 1장 4절을 보면, 자녀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떨어져 있는 누이들도 불러 함께 즐거워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죽을 때도 장남의 집에서 잔치를 할 때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욥은 자녀를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잔치가 끝나면 혹 자녀들이 세상을 즐기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죄를 범하지는 않았을까 염려하면서 자녀들을 성결케 했고,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번제를 드렸습니다. 욥에게 자녀는 재물보다 천배, 만배,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두 죽었습니다.

  셋째, 욥은 자신이 몹쓸 병으로 고난을 받습니다. 당시 욥은 일종의 '피부병'을 앓았습니다.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악창이 났고, 몸이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손으로 몸을 긁다가 나중에는 기와장으로 긁기 시작합니다. 곳곳에 피가 터지고 열이 올랐습니다.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 몸에는 더러운 벌레가 득실거립니다. 살에 고름이 배어 나왔고 그것은 점점 검은 색으로 변했다고 성경은 처참한 광경을 말합니다.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인도 탄식했고, 친구들도 위로하기 위해 오자마자 일주일동안 그냥 울기만 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불행한 사람입니다. 평생 모은 재산이 없어지고, 사랑스런 자녀들이 졸지에 죽고, 자기 몸은 갈기갈기 찢겨져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극한 상황은 없습니다. 당시 그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에서 찾아온 불행 앞에 포기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평온할 때보다 고통의 때에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인생의 처절한 때에도 감사했습니다. 욥기를 보면, 그가 극한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한 고백들이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1장 21절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23장 10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그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비관하거나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는 과정으로 알았습니다. 고난의 끝이 보이지 않아 정말 힘들고 어렵게 지낸 세월이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불평하지 않고, 끝까지 감사하며 살 때,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첫째는 회복의 은혜입니다. 본문을 포함한 42장은 욥기의 결론입니다. 1장부터 불행으로 우리를 아프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지만, 욥기의 결말은 모든 것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42장 10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무엇을 회복시키셨는지 보십시오.

먼저 재물을 회복했습니다.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남은 생애)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라고 말합니다. 재물의 회복입니다.

또한 자녀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마치 연속극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두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물론 처음과 같은 자녀는 아니었지만 더 귀중한 자녀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 주신 자녀들이 얼마나 귀했는지 15절에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리고 건강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기와장으로 몸을 긁으며 절망과 고통 속에서 괴롭게 살던 그를 하나님은 낫게 해 주셨습니다. 16절을 보면 건강을 회복한 그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여기에서 '그가 나이 늙어 죽었다'는 것을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그는 질병이나 사고로 죽지 않았습니다. 처음 같으면 금방 끝날 것 같았는데 건강하게 살다가 자연사로 인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물질도 가정도 건강도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이끌어 가셨습니다. 욥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배웁니다. 성경을 통해 잔잔히 흐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한마디로 회복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든 에덴동산이 망가진 후, 하나님은 천국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아담과 하와의 결과는 삶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영광의 형체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으나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범죄하여 끝없이 추락했으나 나중에 다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회복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신앙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서 날마다 울며 절규해야 하지만,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 믿음으로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갑절의 축복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하나님은 욥을 단순히 회복시키지 않았습니다. 원상으로 복귀시킨 정도가 아니라 그는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재물도 갑절이나 받았고, 건강도 갑절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갑절의 축복을 주신 말씀을 토대로 욥의 연수를 계산하면 이렇게 됩니다. 16절에 회복 이후에 욥은 140년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그가 처음 고난을 당한 때를 70세로 봅니다. 그렇게 보면 그는 적어도 210세를 살았음을 발견합니다. 일반적으로 욥은 창세기의 족장들과 동시대의 인물로 추정합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이 대부분 100년대를 산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욥은 갑절로 장수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실 뿐 아니라 갑절의 축복을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갑절로, 넉넉하게,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 시간 십자가를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의 모양이 '플라스'로 된 것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현상유지도 아닙니다. 언제나 플라스입니다. 내 인생에 십자가는 뭔가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십자가만 품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품고 살던 바울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갑절의 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만큼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한 세월만큼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회복시키시고, 갑절의 축복으로 갚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자기의 발견입니다. 본문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욥이 감사할 때, 마지막으로 그에게 임했던 진정한 은혜는 바로 자기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까지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물론 믿음이 있었지만 교만했고,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고난을 계기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점점 그는 자기의 정체성을 정립해 갑니다. 그러면서 그가 보였던 신앙의 행동이 바로 '회개'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무리 보아도 회개할 것이 없던 사람입니다. 누구 보아도 잘못이 없었습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당당했습니다. 처음 그는 고통에만 초점을 두었지, 내면까지 들여다 볼 여유나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고통 속에서 자기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가 하나님께 눈물 흘리며 호소했던 것은 자기를 변호하거나 항변이 아니었습니다. 살려달라는 간청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회개였습니다. 그것이 본문의 주요 내용입니다. 특히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고통가운데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감사하면서 자기를 알았습니다. 그러자 스스로 티끌과 재 가운데서 가슴을 치며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죄를 지어 죄인이고, 죄인으로 태어난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씻어도 씻을 수 없고,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자기의 내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힘으로, 능으로도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성숙한 사람으로 변해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는 '참회록'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욥기를 문학적인 특성 때문에 시편 바로 전에 삽입했습니다. 그러나 욥기는 시가 아닙니다. 참회록입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이나 윤동주의 참회록보다, 세상의 어떤 참회록과 비교되지 않는 회개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욥기의 주제입니다. 감사하면서 점점 자기를 알아 가는 욥의 회개와 참회를 통해 하나님은 그를 우뚝 세웠습니다. 이것이 욥기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진정 자기를 알게 되어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에 있어서 자기를 아는 것만큼 귀한 일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은 한마디로 날마다 나를 알아 가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모르고, 심지어는 자신도 모르는 자기의 발견이 필요합니다. 특히 신앙의 깊이가 깊어갈수록 더욱 자기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일수록 더 회개할 것이 많고, 더 자기의 부끄러움을 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면 회개할 것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신앙이 깊어갈수록 더욱 눈이 밝아져 나의 구석구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많이 닮았다는 중세기의 성자들이 더욱 회개했던 것입니다. 신앙은 철저히 자기를 알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아는 방법이 고난 속에서는 더욱 가속도가 붙습니다. 평범할 때에 나를 아는 속도보다, 고통 속에서 나를 아는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그래서 고통을 통과하면 반드시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신앙도 삶도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시편을 기록한 시인의 고백이 틀리지 않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제 우리는 2003년 감사의 달을 마감합니다. 지난 한달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감사의 중요한 요소인 생각, 동기, 표현을 살펴보았습니다. 감사, 그 이후가 역시 중요함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감사하며 살 때, 우리 삶에 나타나는 놀라운 결과도 배웠습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감사에 있고 감사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감사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합니다. 이제 남은 생애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회복의 은혜, 갑절의 축복, 그리고 자기의 발견으로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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