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질서를 지키자

첨부 1


-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담임목사)

미국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방문하면 이곳저곳 볼거리들이 많다는 것과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그곳을 소개하는 기록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어림짐작으로 5백여 명이 입장할 수 있는 영화관 안에는 이미 세계 각처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득 차 있었다. 10여 분쯤 지났을까 안내방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희 스튜디오를 찾아 주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곧 영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죄송한 것은 뒤에 서 계신 분들과 늦게 들어오실 분들을 위해 앉아 계신 좌석에서 안쪽으로 한 칸씩만 움직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방송이 끝나자마자 30초만에 빈자리를 메우는 이동을 끝내는 것이 아닌가. 필자의 경우 “앞자리부터 채워 주세요, 빈자리부터 앉아 주세요”에 입이 닳아온 터라 마치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빨리빨리, 새치기, 그리고 끼어 들기에 조련된 필자로서는 가는 곳마다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그네들이 마치 밥 먹고 할 일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는가 하면 신기해 보였다. 결국 그 날 겨우 세 군데 둘러보고 그곳을 떠나긴 했지만 그들의 질서 지킴이 곧 민주주의의 텃밭이라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자동차의 경우 무조건 끼어 들고 손만 흔드는 사람들, 버스 전용차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는 승용차, 어쩌다 추돌이나 접촉사고라도 나면 길거리에서 멱살 잡고 덤비는 사람들, 파출소건 동사무소건 가리지 않고 덤비는 사람들, 그래서 목소리 큰사람이 이긴다는 통설이 적용되는 사회라면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본래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윤리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큰 목소리나 집단행동에 의해 유린된다든지 폭력이나 물리적 작용이 집합되어 어떤 결과를 결정한다면 그것도 민주주의 일 수가 없다.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 먼저 온 차가 건너가고 기다리던 차가 그 후에 건너가고 그래서 차들의 뒤엉킴 없이 소통질서가 이어지는 거기가 민주주의의 교실이어야 한다.

공동체란 상호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는 질서를 필요로 한다. 신체의 경우 유기적 관계가 무너지면 신체대란이 일어난다. 머리 따로, 눈 따로, 손발 따로 허우적거리는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국가공동체의 경우 철저한 유기적 관계와 질서가 쇠기둥처럼 축을 이룰 때 문제를 풀고 국가 발전을 일궈낼 수 있다. 그러나 각 부처가 손 따로, 발 따로 처럼 기능과 역할과 사고를 달리하다보면 후진에 가속이 붙게 마련이다.

교회는 어떤가. 교회질서의 기본은 성경이다. 교단이나 교회의 헌법이나 장정 위에 성경의 권위가 우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권위인 성경은 제쳐놓고 집단의 이해를 따라 갈팡질팡한다든지 사람이 만든 법이나 제도를 절대화하기 위해 말씀의 권위를 제치기 시작한다면 교회와 시장이 다를 바 없다.

질서를 위해 법은 존재하고 그 법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너는 지키고 나는 빠져나가도 된다는 저급 발상을 거듭하는 사람들 때문에 공동체의 균열이 오고 아픔이 배가된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돌로 떡을 만드는 것은 사단의 질서지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인 것이다. 크든 작든 정해진 질서를 그 날 거기서 지킬 때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