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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성경이 가진 생명력 (시 119:105-112, 계 22:1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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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가진 생명력
( 시 119:105-112, 계 22:18-19 )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매년 지키는 주일이지만 성경의 가치를 다시 일깨우는 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성경이 있다는 것이 인류 최대의 축복이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을 신앙의 근거로 삼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최고의 은총이다”. 정말 성경이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성경은 우리 전 지식의 시작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도구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삶의 기준을 설정해 줍니다. 다른 종교는 경전 없이도 믿지만 기독교는 성경이 믿음의 중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근거합니다. 종교개혁은 성경을 재발견한 운동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있던 성경의 진리를 다시 발견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성경이 가진 생명력을 발견한 것입니다. 어떤 것도 성경의 가치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경을 믿음의 첫째 법칙(prima fidei regula)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성경을 믿음의 유일의 법칙(sola fidei regula)이라고 합니다. 성경 외에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장로교신조 제1조에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유일의 법칙이다”라고 합니다. 신구약 성경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존 웨슬레가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고 한 것처럼 우리의 신앙과 삶은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하고 성경 중심이어야 합니다. 어느 통계에 보면 일주일 내내 주일 외엔 성경을 펴보지 않는 성도들이 그렇게 많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보다 지식을 얻기 위해 성경을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성경의 가치를 다시 보고, 성경의 생명력을 다시 확인하고, 성경이 삶의 기본이 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입니다. 숨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숨을 불어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령이란 살아있는 영입니다. 하나님의 숨은 흙이 생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숨은 흙이 사람이 되게 합니다. 흙으로 빚었지만 숨이 있는 동안에는 사람이고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숨이 있는 동안에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숨이 끊어질 수도 있지만 성경은 숨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항상 살아있는, 죽지 않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 다음에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이 때 떡을 먹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너희도 가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요한복음 6:68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영원한 생명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경을 이 지상에서 없애려고 한 시도는 많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자신의 지식으로 부인하려고 한 시도도 계속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은 사람들은 오히려 변하여 변증하는 책을 썼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성경과 기독교는 백년이 못가서 없어질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1778년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됩니다. 200년 뒤 그의 집은 프랑스 성서공회가 되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성경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40:8에는 말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세상에 성경 외에 영원한 힘을 주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생명을 주는 것이 성경 말고 또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잡지는 문자 그대로 잡스런 책입니다. 이상벽이 왜 아침마당을 떠났는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고현정이 새벽 3시에 고수부지에 왜 있었나? 이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모든 여성지마다 그 내용이 똑같해요. 그런데 “단독입수”, “단독 인터뷰”라고 써놓았습디다. 성경 외에는 꼭 알아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많은 부분들을 안다고 샘솟는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만 아픕니다. 성경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무디목사님은 1871년 브룩클린에서 처음 목회를 하였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설교해도 교인들이 다 떠나고 고작 18명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말씀만 설교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 때부터 무디의 설교 80%가 성경읽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교회는 부흥하고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고전 음악이나 문학, 미술을 보세요. 거의 모든 예술이 성경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습니다. 모든 예술이 성경없이 위대한 예술은 없습니다. 성경은 예술의 생명력입니다. 주의 말씀은 달아야 할 때에 달고, 써야 할 때 씁니다. 시편 119:103에는 “주의 말씀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0:10에는 “천사가 책을 먹으라 입에는 꿀같이 다나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합니다. 쓴 약이 유익합니다. 단 약이 맛이 있습니다. 생명은 둘 다가 필요합니다. 단 것도, 쓴 것도 성경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쓰다는 말은 공동번역에는 “아프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아픈 것도 유익하고 생명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소성케 하는 힘입니다.

시편 119:107에는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합니다. 주의 말씀은 소성케 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소성케 해달라고 합니다. 또 주의 말씀은 그 자체가 소성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이므로 사람을 살립니다. 성경은 사람을 소성케 하며 살립니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요한계시록 10:9에는 “천사에게 책을 달라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다 먹으라”는 말입니다. 전부 먹고 완전히 소화시켜 살과 피가 되게 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과 유사한 말씀이 구약의 에스겔 3장에도 나옵니다. 3:2에는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니”라고 합니다. 성경은 먹으면 영혼이 살집니다. 성경을 먹으면 생명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감동이 있습니다. 성경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성경은 구원을 얻게 합니다. 왜인지 압니까? 성경은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에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합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 일을 합니다. 성경은 죽은 자를 살리고, 좌절한 자를 위로하고, 힘을 상실한 자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합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성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의 환상을 보세요. 골짜기에 죽은 뼈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뼈들이 서로 맞추어지고, 힘줄이 생기고, 피부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이 되살게 되어 살아있는 군대가 됩니다. 말씀은 죽은 뼈들도 살게 하고 하나님의 힘 있는 군대가 되게 합니다. 성령 강림 후에 베드로는 한 번 설교할 때에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설교할 때에 한 말씀은 별다른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얘기가 아닙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살아나셨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씀에 힘이 있고 수많은 생명들을 살렸습니다. 말씀이 가지고 있는 살리는 능력이었습니다. 베드로의 가이사랴 설교는 성령이 강림하시는 조건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강림했지만 11장에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강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이 강림하시는 조건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강림하자 함께 세례를 받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4:12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살립니다. 칼보다 더 예리한 도구가 말씀입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한결같이 성경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애독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던 중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회개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흉악범 김대두씨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사형수들의 수기를 모은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신앙간증집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사람을 잔인하게 16명이나 죽인 김대두씨의 실화가 실려있습니다. 이 분은 사형언도를 받고 어느 권사님이 감방에 넣어주시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성경을 넣어줄 때마다 받지 않고 던지던 사람이 권사님의 사랑 때문에 성경을 받게 되고 읽게 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좋은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형집행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가?”라는 집행관의 질문에 “저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님을 믿고 구원받게 해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영영 이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목사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못고칠 병이 없습니다. 성경은 돌이키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온 몸을 방어하는 갑옷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예비한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합니다. 아무리 모든 준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칼이 없으면 이기지 못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방어용입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해야 합니다. 칼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도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만약 도망한다면 갑옷이나 투구나 방패가 오히려 도망치기 불편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칼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말씀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말씀은 이기게 하는 무기입니다. 예수님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에 말씀으로 공격하시고 물리치시고 이기셨습니다. 성경에는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온갖 진리가 다 있습니다. 역사, 문학, 과학, 상식, 도덕, 미래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없는게 없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성경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상고하였다고 합니다. 신사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날마다 봅니다. 성경은 신사적 사람들을 만듭니다. 헬렌 켈러는 삼중고를 극복한 현대의 영웅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잃어버린 세계 되찾게 한 것 책의 힘이었는데 가장 애독하는 것은 성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를 어두운 세상에서 일어나게 만든 것은 성경입니다. 그녀를 장애에서 극복하고 세계적 위인이 되게 한 것도 성경입니다.

우리 교회가 성경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교회창립 11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입니다. 110년만에 성경을 써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제 다음에는 220주년에 쓰기 할 겁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현재로 860명 이상이 참여하여 열심히 성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저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집사님의 아들은 몸이 불편한 청년입니다. 1쪽을 쓰는데 5-6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현재 요한복음 11장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집사님, 권사님 부부는 각각 3개월만에 신약쓰기를 끝냈습니다. 어느 권사님은 늦게 시작했으나 현재 신약을 다 쓰고 시편을 쓰고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은 신약을 다 쓴 다음 이사야를 쓰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신약을 다 썼습니다. 지난 주간에 경북 지방의 경안노회 강의가 있어 안동에 다녀왔습니다. 그 교회는 김광현목사님께서 원로목사님이십니다. 오늘은 그의 후임이신 김기수목사님께서 원로목사로 추대되시는 날입니다. 아마 두 분의 생존하신 원로목사님을 모시는 교회로는 세계 유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처럼 안동에 갔기에 제가 가서 김광현목사님과 사모님께 큰 절을 올리고 왔습니다. 김광현목사님의 사모님은 90노인이지만 성경을 쓰고 계셨습니다. 치매기가 약간 오셨지만 한글, 일어를 다 쓰시고 지금은 영어로 쓰고 계셨습니다. 아마 성경을 쓰지 않으셨다면 완전히 치매가 왔을 것입니다. 작고 또박또박한 글씨로 성경을 쓰고 계셨습니다. 성경을 쓰면 힘이 생깁니다. 말씀이 주는 능력을 받습니다. 말씀이 영을 살립니다. 성경 쓰기는 육의 힘도 더해 줍니다. 성경을 쓰다가 중단한 성도가 있으면 지금도 늦지 않으니 쓰세요. 90세가 안된 분들 다 쓰세요. 그러나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쓴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기도하며 만나기를 기도하며 써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완독하는데 약 56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매일 40장을 읽는다면 30일이면 다 읽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쓰고,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살리기 때문입니다. 산 사람은 성경을 읽어야 하고, 살 사람은 성경을 읽어야 하고,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합니다.

성경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빠진 것이 없습니다. 더할 것도 없습니다.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에 무엇을 더하면 재앙을 더하고, 무엇을 제하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린다고 계시록 22장에는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34:16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가감이 없는 완벽한 책입니다. 이 절 앞에 부엉이 솔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떤이는 부엉이와 솔개가 다 짝이 있다고 해석합니다. 부엉이와 솔개가 짝이 있는 것을 여호와의 책을 볼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부엉이와 솔개가 에돔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4:2에는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합니다. 가감하지 말고 지켜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우리의 지혜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7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합니다. 성경은 온전케 하는 책입니다. 성경이 온전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성경과 같은 책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매케너의 ‘영적 성장으로 가는 즐거운 책읽기’란 책에 보면 “성경은 최종적이다. 그러나 정체된 말씀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책이지만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성경만큼 보편적이고 영원한 책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어떤 것보다 성경을 제일 좋아하고 사랑합니까? 성경은 40명 이상의 저자가 1600년 이상 긴 세월을 통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저자의 생각이 일체가 되며 중심 주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파의 특징 가운데는 사도신경을 부인하는 것과, 성경을 가감하는 것과, 현실 교회를 비판하는 것과, 내세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성경은 가감이 없는데 가감이 있다면 분명히 사이비입니다.

결론

메릴랜드의 우주 항공사에서 컴퓨터로 십만년전까지 소급하여 달과 해의 궤도를 측정하였습니다. 인공위성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연구소의 내노라는 과학자들이 다 시도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십만년동안 24시간의 시간적 오차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행여나 우주선이 충돌사고를 일으킬까 하여 열심히 찾았지만 해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한 타이피스트가 소장에게 말했습니다. “소장님,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옛날에 성경이야기를 들려주실 때에 여호수아가 기도했을 때에 태양이 멈추었다고 들었습니다.” 소장은 타이피스트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연구실에 돌아온 소장은 그녀의 말이 귀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0:13을 보니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의 시간적 오차가 23시간 20분인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하면서 나머지 40분도 성경에서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열왕기상서 20:1-11에 히스기야의 기도가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하여 15년이란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무슨 징조를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해 십도를 나아가게 하시겠습니까? 물러나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당시 해시계는 24시간을 360도로 정했습니다. 10도란 정확하게 40분입니다. 성경의 확실성을 말합니다. 중세시대의 전승에는 성경 읽기를 장려하였습니다.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강조하였습니다. 거룩한 책읽기는 먼저 읽기(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그리고 관상(Contemplati)을 통하여 책읽기가 장려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달으라고 합니다. 이런 신앙적 자세는 우리에게 잊지 않고 삶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을 매일 사랑하며 내 마음에 새기고 늘 가까이 하며 순간순간 말씀에 감동되고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변화를 체험하며 사는 우리 사랑하는 연동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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