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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기 예수의 탄생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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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의 탄생 (눅 2:1~7) 

저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사탕 생각이 납니다. 교회에서 성탄절 때 얻어먹었던 맛있는 사탕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한 동안은 성탄절에 예수님 생각이 먼저 나는 것이 아니라 사탕 생각이 먼저 나는 것이 창피해서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도 주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사탕 한 알부터 시작해서 로마의 황제까지 무엇이건 누구이건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예수님 탄생 기사를 우리에게 전하면서 바로 이 점을 먼저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과 함께 탄생 기록이 시작됨.

그의 탄생은 당시 사람들에게 전혀 뉴스가 못됨.
동방 박사 몇 사람과 목동 몇 사람이 그의 탄생을 알고 축하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라.
헤롯왕이 이혼을 했다더라
그가 제수를 사랑해 왕비로 삼는단다
로마 총독으로 이번에 부임해 오는 양반은 변방으로 쫓겨오기 싫어 애를 쓰다 할 수 없어 왔다더라
이런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탄생은 평범한 애기 얘기에 불과했다. 그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던 젊은 랍비가 기득권 계층의 벽을 깨지 못하고 결국 그들의 손에 잡혀 죽고 말았다더라....... 그게 세상 사람들이 아는 전부였다.
세상의 역사가들이 예수 사건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던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된지 20여 년밖에 안되던 이 때에, 누가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발견했다.

v.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무슨 뜻인가? 누가는 지금 유럽과 소아시아를 다스리는 최고의 권력, 로마 황제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일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물론 로마 황제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그 분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로마 황제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은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움직였다. 그들은 황제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로마황제의 명령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되고 있다. 황제의 명령은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도록 돕고 있다. 황제의 명령이 없었다면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가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누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오늘 한국을 움직이는 이가 누구인지 아는가? 잡지나 신문에서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 1, 2, 3위가 누구든가? 김대중? 이회창? 이건희? 박찬호? 당신은 그들이 가이사 아구스도와 같은 자들임을 아는가?

당신은 당신의 삶을 움직이는 이가 누구인지 아는가? 당신의 사장인가? 당신이 투자해 놓은 주식 시세인가? 당신의 마음을 조리게 만드는 사랑인가? 당신은 그들이 아구스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그렇다. 이 땅의 정치가 우리를 베들레헴까지 가게 만든다. 주식 시세가 우리를 애굽까지 가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를 그 곳까지 인도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시다.

그 분이 오늘도 당신과 한국을 현대의 아구스도를 통해 인도해 가고 계신다.

2. v.4,5. 황제의 명령을 따라서 유대 땅 베들레헴을 향해 가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의 발자국 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가는 이 기록을 하면서 다윗의 집, 베들레헴, 다윗의 동네 등의 말들을 쓰고 있다. 이 말들은 구약 성경을 어릴 때부터 암송하며 자라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에 아주 익숙한 단어들이다.
이 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만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단어들이다. 누가의 이 표현은 아기 예수가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그 분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기 예수가 구약 성경에서부터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임을 말하고 있다.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찾아온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기억하고 있는가?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 1:31-33)

그 분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이 땅에 오셨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누가는 더 크고 새로운 약속이 우리 앞에 있음을 얘기하기 위해 이 첫 약속을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다.
누가는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가? 그는 그 자신의 삶을 무엇을 위해서 바쳤던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우리의 인생을 걸라고 얘기하고 있는가?
요즈음 마음 속에 많이 떠오르는 두 단어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 과  “민족 치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다른 어떤 동물들에게도 주지 않은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셨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지혜, 거룩성, 자율성, 창의력 등을 주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아담 하와에게는 에덴을 맡기셨지만 우리에게는 이 땅을 맡기셨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살도록 주신 이 땅은 지상 어느 나라보다 상처와 눈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동서와 남북의 대립과 갈등,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점점 더 깊어져 가는 갈등,
몇 해 동안 300만명이 굶어 죽어 가고 있는 북녘 땅의 눈물과 고통,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는 이 땅의 모습이 바로 이러하다. 이 민족을 치유할 수 있는 이들은 한나라당이 아니다. 새천년 민주당도 아니다. 재벌 그룹의 총수와 임원들도 아니다. 좋은 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계층도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슴에 품고 사는 언약의 자손들이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 날 전국 어디에도 눈이 오지 않았지만 한 병원의 암 병동 앞마당에만 눈이 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암 병동 중환자실에 근무하던 한 간호사가 만든 기적이었다.  이 병동의 김록수간호사가 11월 28일 췌장암을 앓으며 중환자실에서 죽어 가고 있는 88세의 할머니를 만남. 92세의 할아버지가 그 날 밤이 고비라는 할머니 때문에 안타까워하면서 김록수 간호사에게 어려운 부탁을 함. 퇴근하려는 그녀에게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곁에 있을 수도 없으니 손녀 딸을 닮은 간호사가 자기 강아지 곁에 있어줄 수 없겠느냐고. 그 날이 생일이어서 친구들이 준비한 파티 약속이 있었지만 이 간호사는 아내를 강아지라고 부르며 안타까워하는 이 순애보 할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남편의 사랑과 기도 때문이었는지 할머니는 건강이 좋아짐. 성탄 몇 일 전 할아버지가 간호사에게 이번 성탄절에 눈이 온다더냐? 물음. 아니라고 했더니 어깨를 떨구고 낙심함. 왜 그러시냐? 물었더니 할아버지 왈 이번 성탄절이 자신들의 결혼 7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자기 강아지에게 결혼 70주년이 되는 크리스마스날 눈이 꼭 오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눈이 오는 것을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늙은 아내에게 어쩌면 마지막 성탄절이 될지도 모르는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약속했노라고. 이 어린 처녀 간호사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아 그건 하나님밖에 못하는데.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아니 기적이 만들어졌다. 하나님께서 친히 한 것이 아니라 하니님의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간호사의 오빠가 스키장에 근무.
하나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사람보다 스스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기 원하는 사람을 기다리심.

3. v.6,7. 말 구유, 말밥통에 누이신 예수님이라고?

메시아로 오신 그 분이 있을 곳이 없어 말밥통에 눕혀졌다고?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다고 누가는 전하는데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돈이 없어, 요셉이 가난해서 만삭의 아내를 마굿간에 있도록 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이 여관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사람들이 방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여행하는 요셉이 다른 사람보다 빨리 마을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늦게 마을로 들어간 그들 부부에게 돌아온 방은 마굿간이었다.
마굿간은 더럽고 누추한 곳이었다. 성탄 카드에서 볼 수 있는 깨끗하고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다. 로마 황제를 동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메시아의 탄생에는 마굿간밖에 준비하지 못했을까?
그 분은 섬기기 위해서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그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그 분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낮은 자리로 오심. 그의 가난 때문에 우리가 부요해짐. 그가 고통을 당하므로 우리가 기쁨을 얻음.

그리고 우리 또한 섬기는 자로 살라고.
파리 연합교회 장로님이 예수를 만난 까닭. 동경제대 총장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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