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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 이렇게 나셨습니다. /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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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이렇게 나셨습니다.
마1:18-25

예수님 이렇게 나셨습니다.

얼마전에 제가 호적등본을 한번 발급받았습니다. 목회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서류라고 제출을 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동사무서 어디에서나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간혹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는 경우는 있어도 호적등본을 제출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발급받은 호적등본을 좀 자세하게 보았습니다.거기에는 저에 대한 모든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의 출생과정과 고향과 또 내가 누구랑결혼했고 우리 자녀들의 출생에 대한 모든 기록이 빠짐없이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록 중에 저의 생년은 맞는데 월일이 잘못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0월 9일인데 10월7일로 잘못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했더니 그냥 고쳐주지 않고 호적등본을 기록한 원본을 보고 맞으면 수정을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원이 나의 신고를 받고 호적원본을 보더니 자기들이 실수했다고 하면서 기록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들이 바로 여러 가지 증명기록들입니다. 주민등록등본과 호적등본과 나의 주민등록증 나의 운전면허증들이 그것들입니다.
세상에서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호적등본과 같은 것들을 요구합니다.그래서 철저하게 모든 증명원들을 기록하고 그 기록들을 아주 중요한 곳에 잘 보관하여 둡니다.그리고 언제든지 나를 알고 싶고 내가 누군지 알기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 기록과 자료들을 통해서 나를 증명하여 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예수님의 출생과정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우리는 직접 예수님은 본적도 없고 만난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주님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의 호적등본이 바로 성경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는 성경이 2권있는데 한권은 마태복음이고 한권은 누가복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대하는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해서 1장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이르거 구체적으로 에수님이 어떻게 오셨는지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중에 한명인 마태를 통해서 예수님의 나심을 우리에게 자세하게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탄생과정을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지 우리가 알 수 잇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당연히 성탄의 주인공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경우 성탄절의 주인공이 산타클로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역사 속에 실제로 오셨습니다.주님께서 실제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냥 오신 것이 아니고 분명하게 목적을 갖고 오셨습니다. 그분의 잉태과정과 이름과 출생의 모든 과정이 선하신 목적을 갖고 이땅에 오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다시한번 성탄절을 통해서 우리 주님을 바로 이해하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여기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에 귀한 도구로 사용되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면서 그 육신의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가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서에서는 그 아버지 요셉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어머니 마리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19절에 보면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누가복음 1장 28절 30절에 보면 “은혜를 받은자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천사가 마리아를 향해 부르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었고 마리아는 그 은혜를 받아누리면서 사는 자였습니다.

여기 요셉과 마리아는 아직 젊습니다. 그리고 아직 정혼을 하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입니다.그런데 젊은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면서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먼저 우리 교회 속에 이런 요셉과 마리아같은 많은 젊은이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믿음의 부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실때에 이런 좋은 육신의 부모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나심이
특별한 것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처녀인 마리아를 몸을 이용해 성령님께서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본문은 18절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20절에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중에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성령으로 잉태된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요셉이나 마리아도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이 일이 믿어지기 어려웠습니다. 성령님께서 처녀의 몸 마리아의 몸에 생명의 씨앗을 주시고 잉태하게 하시었습니다. 사실 이 일을 당하는 요셉과 마리아도 처음에는 “어찌 이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질문하면서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일하셨지만 결국은 성령님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질문하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처녀의 몸을 성령님께서 이용하여 예수님을 탄생하게 하셨습니까? 사실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서 7장 14절에 주신 말씀의 성취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 탄생시간을 볼때에 800년전에 예언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처녀를 통하여 잉태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하실때에 이스라엘의 상황은 굉장한 고난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 이사야가 활동하선 유다나라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였습니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갈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남쪽 유다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성탄의 예언을 받을 당시에 유다나라는 왕이 아하스때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때에 유다나라는 큰 고난을 겪게 됩니다. 아람나라와 북쪽 이스라엘이 동맹하여 남유다를 공격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었을때에 백성의 마음은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불안해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유다나라 아하스에게 가서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두려워말라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아람왕과 이스라엘왕으로 인해서 걱정하지 말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하스왕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시 이사야를 시켜서 아하스에게 가서 징조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다왕 아하스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습니다.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믿음이 좋은 것같지만 불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면서 아하스에게 징조를 보여주겠다고 하십니다. 지금 북쪽 이스라엘 왕과 또 아람왕이 연합하여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징조가 무엇입니까? 바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징조입니다.
물론 이 말씀의 약속은 800년 뒤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에 왜 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까? 아하스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람나라의 침공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아무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긴다’고 하였지만 아하스왕은 믿지 못합니다. 그때 유대나라가 이긴다는 징조로 “동정녀의 탄생” “성령으로의 탄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다시한번 우리가 생각하여 할 것은 바로 우리가 아하스와 같이 세상에 둘러싸여 있고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징조,보여주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처녀의 몸을 통하여 우리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삼키려고 찾아오는 수많은 대적,수많은 공격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나약하고 힘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아하스왕처럼 대적자 앞에서 나약한 신세가 바로 오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볼 것은 처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잉태케하여 우리 예수님을 이땅에 오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그 능력의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2003성탄절을 맞이하여 이렇게 예배하는 우리들이 먼저 성령님이 일하시는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귀한 도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나셨습니다.

21절 아들을 낳으니리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기 예수님의 탄생은 철저하게 목적을 갖고 오신 것을 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이름도 지어졌습니다. 여기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구원자로’라는 의미입니다.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위해 오시고 구원을 위해 사시고 구원을 위해 부활하신 것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죄와 악으로부터 건짐받고 해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건져주기 위해서 오신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4:18-19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최대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경제가 최대의 문제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못먹고 못입고 못살아서 문제가 됩니까?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잘 먹고 잘입고 잘 살게 되면 될 수록 더 문제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육이 문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교육비 문제는 심각합니다. 그런데 교육이 잘 되고 교육의 질이 높아지면 우리 인생은 행복하게 됩니까? 오히려 교육받을수록 더 삶에 불만지수가높아지는 것을 봅니다.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가 인정하고 알아야 할 것이 인생에 최대의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보면 결국 죄의 문제입니다. 엊그제 보도된 뉴스중에서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도 아프게 한 뉴스가 한가지있습니다. 20대의 아버지가 자기의 5살 6살 아들 딸을 다리에서 한강에 내더진 사건입니다. 결국 어제 싸늘한 시체가 된 그 자녀들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최후의 보루가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요 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죄는 그것마져도 점점 소망이 없게 합니다. 물론 그 아버지가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는데 장애가 있다고 하여도 자기 자녀들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여야정치인들이 불법대선자금 때문에 난리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구정치인들의 불법과 부정을 개혁하겠다고 한 386세대의 정치인까지도 불법대선자금에 같이 빠져들어 구속당하더라는 것입니다.어떤 의욕과 말과 의지로 우리 삶과 사회가 결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구원받아야 합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아야 합니다. 진정 예수님으로 구원받고 변화되어지는 삶을 사는 가 있는 곳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누가 이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마치 우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누가 도울수 있습니까?
[유교] - ‘너의 바른 윤리와 도덕으로 헤엄쳐 나오라!’고 합니다.
[불교] - ‘너의 운명으로 받아들여라!’고 합니다.
[도교] - ‘스스로 수영을 터득해서 나오라!’고 합니다.
[기독교]- ‘예수께서 직접 나만 의지하고 붙드러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오직 에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는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이 진리는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시간상으로 어떻게 보면 이 고백을 하는 것이 단 1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에 이것이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구원을 믿되 특별히 예정교리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기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미 성경 곳곳에서는 하나님의 ‘예정’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합니다. 이땅에 오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시는 사역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예정가 선택의 뜻으로 세워지는 거입니다.

하나님이 예정의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얼마나 주님을 핍박하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까? 그런데 어느날 홀연히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줍니다. 바울은 나중에 철저하게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엡1:4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고 합니다.
엡1:5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되게 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에수님을 선택할때라고 하는데 여러분 죄악으로 전적으로 죽어 무능한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선택했다면 분명히 중간에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구원을 인간의 선택으로 보는 분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구원받으면 절대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끓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종종 예정교리를 말하면 불안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연내가 선택을 받은 주님의 사람인가? 아닌가? 불안해합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주님의 선택된 백성이요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 구원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를 선택하여 주시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땅에 나를 위해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나를 위해 오셔서 나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다시한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이 나심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마1:23에 보면 여기보면 에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심은 하나님이 살아계시어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느날 빌립이 예수님께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오니 제발 하나님을 보여 주십시요 그러면 족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빌립아 내가 너와 함께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무슨 하나님을 또 보여달라고 하느냐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증거를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관여하신다면 적어도 크고 화려하고 높고 영화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셔야 할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가장 열악한 환경과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을 정말 만났고 체험햇습니까?그렇다면 이제 우리를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먼저 가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4절에 보면 제직의 자격을  말하면서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율법시대에는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 쉬웠습니다. 잘못할 때는 매를 때리고 호통을 치면 자녀들이 부모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은혜시대에는 그렇게 해서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오늘날  말세가 되어져서 율법을 가지고 가정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형제나 심지어 자식도 내 마음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좋은 말로 타일러도 잔소리 정도로 여기고  걸핏하면  아버지 어머니 시대는 우리 시대와 다릅니다 세대차이입니다라고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가족을다스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육신하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의모습으로 살아갈 때 우리 주님처럼 낮아지고 희생할때 저들이 주님의 함께 하심의 모습을 볼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속에서 우
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보고 경험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은 진정 낮아지고 희생합니다.. 한알의 밀알이 됩니다.
우리 주님처럼 한알의 밀알이 될 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말을 잘하고 큰소리 치는  것으로  남을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희생하여 우리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만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받아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아기로 구유에 탄생하심으로 가장 낮은 자로서 우리를 섬기신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가장 낮은 자로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세상에 널리 증거하시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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