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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표적 /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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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표적 / 누가 2:8-14 

누가복음에 기록된 성탄 기사를 보면, 주의 천사가 밤을 새워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려 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온 천사들의 말입니다.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정말 크고도 놀라운 소식입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 분이 오신다니, 그것도 다윗의 동네에 나신다니, 당연히 저들은 하늘의 영광 가운데 휘황찬란하게 강림하실 위대한 메시야를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목자들은 전혀 예상 밖의 말씀을 듣습니다. 천사들의 말을 직접 들어봅시다. / 2:12 / (읽기)

여기서 먼저 표적이란 단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표적이란 헬라어로 증거, 상징, 표시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표적이란 곧 성탄의 증거요, 성탄의 상징이요, 성탄의 표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천사들이 전해준 그 성탄의 표적이란 것이 좀 거시기하다는 데 있습니다. 아니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누어있는 아기가 표적이라 하시니 말씀입니다.

그럴 거면 오시지나 말든지, 기왕에 오셨으면 좀 그럴듯한 표적을 주시던지, 어떻게 해서 창세 이래 지금까지 기다려온 그리스도 탄생의 표적이 구유에 누어있는 아기일 수 있느냐 이 말씀입니다. 명색이 메시야요, 그래도 그리스도이신데 그 성탄의 표적은 좀 더 그럴 듯해야 하지 않느냐 이 말씀입니다. 왕궁은 아니라 하더라도 말구유는 좀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거리낌 없이 바로 그 구유에 누인 아기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표적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구간과 말구유와 강보에 싸인 아기, 이것이 성탄의 표적이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아기 이외에 성탄의 표적으로 주신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구유에 누어 계신 아기 예수가 성탄의 표적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도대체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아기가, 그것도 변변히 자기 몸 하나 뉘일 곳 없어 말구유에 태어난 아기가 그리스도 탄생의 표적이란 선언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정말 아기 예수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마구간 말구유에 나신 아기가 정녕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세주라는 말씀입니까? 아긴데, 그 아기가 무슨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겁니까? 얼른 답이 나오지 않는 난제들입니다.

또한 생각할수록 성탄의 표적에 대하여 인간적인 섭섭함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니 왕궁이 너무 호사스럽다 하면 어디 민박집이나 모텔 방이라도 하나 잡아서 태어나실 일이지, 꼭 냄새나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느냐 이 말씀입니다. 예수님 믿고 따르는 우리들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내 놓을만한, 좀더 자랑스러운, 좀 더 그럴싸한 표적을 주시면 안 되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섭섭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말구유에 누인 아기가 성탄의 표적이란 말씀을 씹고 또 씹으며 명상하면 그 안에서 참으로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은혜만이 아닙니다. 성탄의 표적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엄청난 메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이요 그래서 말씀입니다. 그러면 말구유에 누이신 아기를 성탄의 표적으로 주신 의미와 메시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성탄의 표적, 그 첫 번째 의미 - 진정한 위대함의 의미.

그리스도께서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나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는 위대한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는 저간의 상식과 통념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가 성탄의 표적이라는 선언이 갖는 첫 번째 의미는 위대함에 대한,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상식과 통념을 완전히 거부하고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라는 표적으로 인하여 진정 위대한 것이 어떤 것인지 그 판단기준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온갖 형태의 힘과 권력을 장악한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 믿고 또 추앙했던 것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괄시하고 무시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이 모든 상식과 통념을 뿌리로부터 흔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함이 어떤 것인지를 바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세상은 조금만 위대한 듯 하면 자기를 알리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합니다. 그것이 우리네 인간의 상식이요 통념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 모든 형태의 자기 과시를 일체 거부하셨습니다. 내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그 어떤 의도적이고 조작적인 작업도 거부하셨습니다. 그 대신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 곧 말구유에서 나신 것입니다. 말구유로 상징되는 힘없는 백성 편에 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의 표적이 갖는 첫 번째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탄의 표적이 지니는 첫 번째 의미는, 진정한 위대함이란 낮은 자와 함께 하는 겸손함을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시며 그에게 하늘의 일을 맡겨 주십니다. 그리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성탄의 표적을 따라 주님 계신 오늘의 마구간으로 가야 합니다. 그 곳에서 우리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을 다시 만나는 성탄절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성탄의 표적, 그 두 번째 의미 -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우리는 오늘 주신 본문 말씀에서 요셉의 무능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만삭이 다 된 아내를 데리고 마구간으로 가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조금만 더 재력이 있었더라면 갓 태어난 자기 아들을 말구유에 누이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구간 이 외에 그 어떤 대안도 만들어 내지 못한 무능한 남편이었습니다. 말구유 이외에 어떤 것도 가져오지 못한 무능한 아버지였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런 요셉이었으니 마구간도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능력의 상징인 말구유가 성탄의 표적이며, 그 표적이 곧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대목입니다. 오갈 데 없어 마지못해 들어간 마구간, 그 곳에서 가장 불쌍하게 태어난 아기, 하여 지금 부모의 심정은 찢어지는데, 그런데 바로 그 아기의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니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그렇다면 구유에 누운 아기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10절의 말씀을 다시 봅시다. / 2:10 / (읽기) / 거기 누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고 합니까? 온 백성에게!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 위해서 마구간 말구유에 나셔야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 때 예수님이 헤롯 왕궁에서 태어나셨거나, 로마 총독의 관저에서 태어나셨다면, 온 백성에게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아기 예수와 그 부모는 행복했을지 모르나, 예수의 탄생이 크고 기쁘고 너무나 좋은 소식이 되진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당시 헤롯 왕가와 로마 권력으로부터 이중으로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던 백성들에게 그의 탄생은 오히려 가장 나쁜 소식, 가장 슬픈 소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자만, 가장 낮고 천한 몸으로, 가장 낮고 천한 곳을 통하여 이 땅에 나셨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2003년에도 다시 오십니다. 소외당하고 버림받고 무시당한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시려고 오늘도 마구간 말구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나도 당신에게 큰 기쁨의 소식, 좋은 소식, 복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의 표적을 주심은 주신 표적 가슴에 품고 너도 가서 그렇게 살아달라는 분부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당신에게 크고 기쁜 소식, 좋은 소식, 곧 복음이 되는 행복한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히 오늘도 구유에서 태어나야 하는 모든 아기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아름다운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성탄의 표적, 그 세 번째 의미 - 평화!

아기 예수님이 구유에서 나셨다는 표적의 세 번째 의미는 평화입니다. 그렇습니다. 말구유에 누워 가장 평화롭게 잠이 든 아기 예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전쟁 대신에 평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얼굴 바라보고 있노라면 완악한 마음도 평온한 마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기 예수님은 평화의 표적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세계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진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도 폭력을 사용하여 평화를 이루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니, 탄생에서부터 예수님은 평화의 표적으로 오셨고, 하여 우리는 그 분을 평화의 왕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고자 하신 그 평화는 어떤 평화인가? 여기서 에베소서 2장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 에베소서 2:14-18(311쪽) / (읽기) / 거기 14절을 보니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인지 한 마디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평이십니다. 평화의 표적으로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모신 곳에서는 둘이 하나가 됩니다. 주님이 오시기만 하면 막힌 담이 무너집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면 원수까지도 화평을 이루게 됩니다. 16절에 보니, 원수된 것까지 십자가로 소멸하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가 아니면 원수가 변하여 화목한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린 십자가의 은혜로 서로를 용서하며 다시 화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베소서 2장 18절 말씀 다시 읽어 볼까요? / 2:18 / (읽기) /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과 내가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 주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화목하지 않고서는 주께로 나아올 수 없습니다. 화목하지 않고서는 같이 살수도 없습니다. 평화가 깨진 가정, 화목하지 못하는 부부, 차라리 혼자 사는 쪽이 더 낫습니다. 날마다 싸우는 친구나 애인,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낫습니다. 정말입니다. 세상을 다 가져도 그 안에 평화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 주님 오시기만 하면,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그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기만 하면, 이제 나도 원수와 하나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 올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주와 함께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래서 성탄 선물입니다. 그래서 성탄의 표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오신 사건 자체가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 선생님이 전하는 천사들이 합창을 다시 들어보실까요? / 누가 2:14 / (읽기) / 여기 14절에서 주목하고 싶은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아하, 성탄의 표적이 나에게 축복이 되기 위해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군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탄의 표적은 기쁨이요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2003년을 살면서 아직도 풀지 못한 원한관계가 남아 있습니까? 서로 등을 돌리고 반목하는 분이 계십니까? 이유 불문하고, 이번 성탄절에 내가 먼저 그를 찾아가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마주 잡은 손을 통해 주의 사랑을 나누시고, 마음의 상처들, 시기, 질투, 미움, 다툼, 그 모든 부정적인 것들, 오직 십자가의 사랑으로 불태워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 되어 주님 앞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탄의 표적을 선물로 받은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마당을 닫으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가 나신다는 성탄의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탄의 표적도 받았습니다. 이제 그 표적, 가슴에 품고, 세상으로 나가, 평화의 사신으로 살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성령께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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