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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평생에 기도하리라! / 시 1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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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에 기도하리라! / 시편 116:1-2
2003. 12. 28.

오늘은 2003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렇게 복된 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제목은 “내 평생에 기도하리라”입니다. 이 말씀 통해 크신 은혜를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여기서 말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먼저 기도에 대한 잘못된 통념 몇 가지를 내려놓고 가려고 합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통념들인데요, 혹시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으면 이 시간 이후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1) 통념 하나, 기도는 무언가 부족한 자들만이 하는 것이다.

통상 우리는 기도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음~! 무언가 부족한 모양이구나!”하고 지레 짐작을 해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만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부족함이 채워지고 나면 더 이상 기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부족함을 채워달라는 기도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부족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란 그보다 먼저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과 감사를 고백하는 행위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16편 1절을 보면, 먼저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다윗은 평생 기도하겠노라 서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기본적으로 주님을 향한 내 사랑의 고백이요, 하나님을 향한 내 감사의 고백인 것입니다. 기도는 무언가 부족한 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2) 통념 둘, 기도는 고난과 역경을 당한 자들만이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통상 고난과 역경을 당한 자들만이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음, 또 무슨 일을 당했구나!”하고 단정해 버립니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또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 우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함으로 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난과 역경을 당한 자들만 기도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통념입니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기기 위한 기도는 기도의 절반일 뿐입니다. 기도의 나머지 절반은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한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슴에 꿈과 비전을 품은 사람, 누구보다 먼저 기도합니다. 자기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고난과 역경을 당한 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3) 통념 셋, 기도는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자들만이 하는 것이다.

우린 흔히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는 하고 싶은데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세 번째 통념이 자리를 잡으면 기도하러 나오지 않는 일에 대하여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난 바쁘니까, 여유 있는 분들이 기도하시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한번 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긴박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의 시간표를 작성할 때 제일 먼저 기도시간을 정해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절대로 기도는 내 볼 일 다보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나 하는 신앙적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기도는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런 통념과 함께 기도와 관련하여 꼭 깨버리고 싶은 관행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응답 받기 전까지는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이 일단 응답을 받고 나면,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이젠 끝났다는 거죠. 나는 볼 일 다 보았다는 거죠. 해서 자기 인생에는 앞으로 더 이상 기도할 일이 생기지 않을 것처럼 기도의 제단에서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번 응답으로 인생이 다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서 응답을 받은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들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 응답 받은 후에 기도하기를 멈추는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합니다. 기도는 평생을 두고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고백이 옳습니다. “내 평생에 기도하리라!”

자, 그러면 이제 오늘 주신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 보실까요? 시편 116편인데요,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기도란 무엇인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가지고 평생 기도하겠노라 서원한 다윗의 시편으로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1. 기도는 평생을 두고 하는 일입니다.

거기 2절 말씀을 보니,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라! 지금 다윗 왕이 고백하는 말, 평생을 두고 기도하겠다는 겁니다. 바쁘기로 치자면 왕 보다 더 바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왕으로서 처리해야 할 일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지금 고백하는 말, 평생 전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요, 평생 정치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요, 평생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요, 오직 평생 기도하겠다는 겁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지금 내 가슴 속에 평생을 두고 해야지 하면서 결심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죽는 순간까지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이 것만은 꼭 해내야지 굳게 다짐하며 품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평생 돈만 버시렵니까? 평생 출세만 하시렵니까? 평생 공부만 하시렵니까? 평생 불평만 하시렵니까? 평생 싸우기만 하시렵니까? 평생 세상 속에서만 헤매시렵니까? 평생 동안 꼭 이루어 내고 싶은 그 무엇이 있긴 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평생 기도하는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인생, 그 자체로 이미 복 받은 인생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입을 열면 기도가 터져 나오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입니다. 왜?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들, 제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 기도의 영이 떠난 사람들, 입을 열었다 하면 육두문자요, 입을 열었다 하면 불평불만이요, 입을 열었다 하면 거짓부렁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인생이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그에게 죄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다윗이 다윗으로 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평생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요, 다윗은 죄인이었습니다. 죄로 치자면 죄인 중의 괴수 급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죄인으로 자기 생으로 끝내지 않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그가 평생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인 것입니다.

여러분! 평생 기도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족할 때만 기도하지 마시고 평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역경과 고난이 닥쳐와야만 기도하지 마시고 평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간 날 때만 어쩌다 기도하지 마시고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평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기도는 평생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매 순간 숨을 쉬듯, 숨쉬는 순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이 끼니마다 밥을 먹듯,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평생 기도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감하시기 바랍니다. 한 해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감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평생 기도하시다가, 기도하시다가, 마침내 돌아가실 때도 기도 가운데 하늘나라 가시기 바랍니다. 가장 행복한 인생길입니다.

2. 기도란, 평생 은혜에 보답하며 사는 일입니다.

다윗은 기도할 때마다 응답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정말 부러운 사람입니다. 다윗이 기도하여 응답받지 못한 일이 없었습니다. 하여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16편의 6절과 8절의 서술어를 보실까요? 주께서 나를 구원 하셨다, 주께서 나를 건지셨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환난과 슬픔을 만날 때마다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망에서, 눈물에서, 그리고 넘어짐에서 건져주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생각만 해도 그 은혜가 너무 커서 마침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116:12 / (읽기) /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무슨 뜻입니까? 지금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기도란 평생 은혜에 보답하며 사는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의 생활화를 넘어 생활의 기도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나의 삶 전체가 기도가 될 수 있도록 신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해서 살아가듯 기도하고, 기도하듯 살아가는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여 평생 은혜에 보답하는 삶으로 기도를 완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초보 신자는 대개 달라고만 기도합니다. 물론 중요한 기도입니다. 부족한 것 채워달라는 기도, 중요한 기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의 기도는 거기서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도 처음엔 주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마감하는 지금, 다윗은 무엇으로 그 은혜에 보답 할꼬!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선 것이지요. 그러면서 다윗은 기도를 완성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소개합니다. 잘 들으시고, 기억하시어, 그렇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기도의 완성, 하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서원을 갚겠습니다.”

116:13-14 / (읽기) / 여기서 다윗은 중요한 결단을 합니다. 기도에 응답을 받은 후 구원의 잔을 높이 들 것이요, 또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평생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은혜 받은 후에 다시 세속으로 돌아갑니다. 문제는 세속으로 돌아간 이후에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 크신 은혜 받았으면 세상에 나가 은혜 받은 티를 좀 내 주련만, 아무리 보아도 성도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들어진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세속과 동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 구원의 잔을 높이 드는 대신 자기 품속에 깊이 숨겨 놓고, 여호와의 이름 대신 세속의 이름을 소리 높여 외치기 때문입니다.

아니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 기도를 완성하는 길, 그것은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 찬양하는 것이라 합니다. 은혜를 받은 후, 응답을 받은 후, 우리는 오히려 주님의 이름을 더욱 높이 불러 찬양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주시는군요. 14절인데요, 함께 읽어봅시다. / 116:14 / (읽기) / 무어라 합니까? 서원을 갚겠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갚겠다고 합니까? 하나님께 갚겠다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도 속엔 이미 서원이 담겨 있다는 뜻이요, 그 서원은 오직 하나님께 갚아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나와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무어라 서원하셨는지 담임목사인 저도 잘 모릅니다. 해서 하나님께 갚아드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다급할 땐 자기 맘대로 이것저것 서원 기도를 해 놓고는 정작 응답을 받고 난 후 그 서원을 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다급할 땐 그렇게 절절하게 서원 기도하더니, 문제 해결되니까 언제 그랬느냐는 식입니다. 아니요,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어서 그 서원을 갚아 드리라는 겁니다. 그 서원을 갚아드리는 것이 기도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윗은 오늘의 시편을 마감하는 18절과 19절에서 이를 다시 반복합니다. 함께 읽읍시다. / 116:18-19 / (읽기) / 거기 보니, 14절, 18절. 19절에서 세 번이나 반복하여 서원을 갚고, 갚고, 또 갚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우선 2003년 한 해 마감하시면서 아직 못다 갚아 드린 서원이 있거든 어서 갚아드리시기 바랍니다. 나의 기도를 완성하는 첫 번째 길입니다.

2) 기도의 완성 둘, “야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제를 드리겠습니다.”

116:16-17 / (읽기) / 여기서 다윗은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무어라 합니까? 16절,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또한 주의 종이라, 무슨 뜻입니까? 어느 모로 보나 나는 주의 종이라는 고백입니다. 왜? 주께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 죄인의 결박을 풀어주시고 그 때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여 이제 나는 온전히 주의 종이라 합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그것도 King of kings, 왕 중의 왕이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다윗을 가리켜  King David! 곧 왕이라 부르곤 합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가리켜 종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 앞에 겸손하게 기도하는 자의 자기 고백입니다. 세상에서 나를 무어라 불러도 나는 주의 종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든, 전혀 상관없습니다. 우린 오직 주님의 종일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의 종이라는 고백이 감사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왕이 스스로를 종이라 고백하며 오히려 감사하다는 겁니다. 세상은 종이 되는 것보다 왕이 되는 것을 더 감사한 일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된 것 보다 주님의 종 된 자신이 더 감사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기도로 주님을 만난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종이라 스스로를 부를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지는 체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이 기도의 신비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서 감사 자체에 대해서 긴 말씀을 드리진 않겠습니다. 대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제를 드리는 것으로 기도가 완성된다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에 대해서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감사로 완성됩니다. 하여 2003년 한 해, 큰 감사의 기도로 마감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로 마감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더 큰 소망으로 2004년을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기서 오늘의 말씀 이해를 돕기 위해 동광 가족 한 분의 간증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 나온 “늘 빛”지 제22호에 실린 글이기도 한데요, 요즘 새벽마다 맨 앞자리에서 기도하시는 분, 사랑하는 김형규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이 간증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겐 큰 깨달음의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간증 / 저는 손에 빵이 있어 배고픈 줄 모르고, 손에 재물이 있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며, 내게 있는 건강마저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끼던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그 도를 넘어 교만과 자만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그러나 저는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어느 해 여름,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바닷가 풍경을 즐기려고 보트를 타고 나갔는데, 코스가 다 끝나 해안에 접어들려는 순간, 보트에 기름이 떨이지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썰물이어서 배는 망망대해로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삽시간에 보트는 바다 한 가운데로 떠내려 왔습니다. 이제 보이는 것은 온통 바다뿐, 저 멀리 지나가는 큰 배를 향해 아무리 살려 달라 외쳐도 소용없었고, 살아날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희 가족을 살려주신다면, 이제부터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구조선이 우리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조대원들이 나에게 해 주는 말이 더욱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 때가 썰물이었기에 작은 배가 뒤집어지지 않았지, 만약 밀물이었다면 벌써 배가 뒤집어졌을 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후 저는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바쁜 일정에도 주일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생활의 안정은 하나님께 약속했던 나의 서원을 잊게 했습니다. 약속이 희미해질수록 신앙생활의 나태함은 그 도를 더해갔습니다. 어느 샌가 다시 세상 사람이 되어 친구들과 어울려 술로 지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은 뇌출혈이란 병으로 치셨습니다. 그 때 의사들은 죽을 확률이 80%요, 살아도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결국 모든 가족들이 모여 장례식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 장례식을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저는 한 가닥 남은 나의 의식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정말 염치가 없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주님, 이 죄인, 한번만 다시 살려 주신다면, 이제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 죄인을 다시 살려 주시고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가요? 또 세월이 흐르면서 내 마음에 사탄의 유혹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살아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내가 본래 건강했기 때문이라고까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신앙생활이 의무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즈음, 장빈 목사님과 새벽 제단을 쌓으면서 어머님의 대장암이 완치된 것과, 그렇게 완강하게 부인하시던 어머님이 주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무지한 죄인은 그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인지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혼이 나고서도 여전히 세상의 인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향해 하나님은 또 다시 매를 드셨습니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면서 그때서야 저는 또 주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주님,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신 주님, 이 죄인 염치불구하고 기도하오니 이번 한번만 더 살려 주십시오. 이번이 마지막 기도입니다. 다시는 곁길로 가지 않고 절대 순종하겠습니다.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주님!”

저의 병이 재발하여 두 번째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가 이번엔 일어서기 힘들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번에도 이 죄인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는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공식을 믿습니다. 저를 담당하신 의사 선생님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셨기에 이렇게 복을 받느냐고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선행을 베풀지도 않았고요,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기도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잘 살겠습니다.”감사하게도 병실 제 옆 침대의 환자가 저의 고백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는 기쁨도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다시는 교만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약간의 건강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기도할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입원한지 한 달 만에 퇴원했고, 그 얼마 후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해 주시더니, 이내 산에도 오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동광 가족들과 산기도 올라갔던 어느 날 “주여 병든 몸을 고쳐 주소서” 찬송을 부를 때 놀라운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그 때까지 아직 떨리고 힘들었던 저의 다리로 정자세를 하고 앉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어느 날 새벽제단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릎을 꿇었을 때, 그 전에는 불가능하던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저의 다리로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그동안 몇 차례 목숨을 건졌고, 또 다시 건강을 찾게 된 저를 가리켜 기적의 주인공이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기도함으로 응답받은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비록 아직은 달릴 수 없지만, 끊임없이 새벽제단에서 기도하는 부족한 죄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언젠가 다시 달릴 수 있는 온전한 건강도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기도하십시다. 우리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일전에 김 집사님의 부인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에 심방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가서 기도제목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는데요, 질문을 받자마자 주저함 없이 대답하시는 김 집사님의 답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김 집사님의 대답입니다. “저에게 한 가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사랑하는 아내, 이구순 권사와 함께 매일 새벽 제단을 쌓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가 여기서 일하는 대신 날마다 교회에서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그 후로 단 하루도 새벽제단을 거르지 않고 맨 앞자리에 앉아 기도하시는 김형규 집사님, 얼마 전부터 사랑하는 아들이 그 옆자리를 지키더니, 최근엔 아내도 함께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마침내 우리 김집사님, 다시 달릴 수 있는 그 날까지, 아니 평생토록 기도하셔서 우리의 기쁨과 자랑 되어 주시기를 소망하며, 오늘 귀한 간증 들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박수!

오늘의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평생 해야 하는 것, 우리 이제로부터 하나님 불러 가시는 그 날까지 평생 기도하십시다. 이 서원을 가슴에 품고, 우선 2003년 큰 감사로 마감하시고, 2004년 큰 소망으로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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