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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던 일을 셈하라 (눅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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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8. 송년주일
누가복음 16:1-8
보던 일을 셈하라 

오늘 본문 말씀에 청지기가 등장합니다. 이 청지기를 오늘 직업으로 말하자면, 관리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청지기는 아주 묘한 직책입니다. 주인에게는 종입니다마는 다른 종에게는 주인입니다. 주인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을 가지고 다른 종을 부리는 사람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이 청지기가 주인을 대할 때는,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복종해야 합니다. 주인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시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종들을 대할 때는, 주어진 권한 안에서 그 휘하의 많은 사람을 다스리고, 많은 재산을 나름대로 관리합니다. 이렇게 상당한 자율권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청지기는 언젠가 주인 앞에서 결산을 해야 합니다. 할 수 없었던 일을 점검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해아 할 일을 안 한 것은 문제가 됩니다. 얼마나 성실히 일을 해서 이를 남겼는가, 그 보던 일을 셈할 날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주인이 청지기를 보고 ‘네 보던 일을 셈하라’ 합니다. 결산하자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을 때 좀 가슴이 뜨끔해 지는 분은 안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끔 마트나 큰 가게 같은데 가서 컴퓨터로 계산해 뜨르르 소리를 내며 찍혀 나오는 계산서를 볼 때마다 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살아온 삶의 내용이 저렇게 쏟아져 나와 계산되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자, 오늘 본문 말씀은 내용이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부자 집에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꾀가 많고 불성실한데다가 부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소유를 제멋대로 유용하는가 하면 낭비했고 주인을 속였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이 그를 불러 소문의 진위를 따지면서 모든 장부를 다 가져오게 한 다음 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청지기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이 그 나이에 쫓겨나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지만, 할 만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취직도 어렵고 막노동도 어렵고 그렇다고 빌어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생각 끝에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빚 문서를 들고 다니면서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기름 백말 빚진 사람은 오십 말로, 밀 백석을 빚진 사람은 팔십 석으로 탕감해 주었습니다. 내가 선심을 베풀었으니 앞으로 저들이 이 은혜를 생각해서 자신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줄 것이라는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8절입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을 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고,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분명 이 청지기는 게으르고 부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청지기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칭찬받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청지기가 윤리적으로 칭찬받고 인정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부정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이 청지기가 선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진실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쁜 사람입니다. 그가 저지른 악이 정당화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이 악한 청지기로부터 지혜, 그것만은 배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악한 자에게서도 인생의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겸손히 배우려 들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도 얼마든지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혜를 배우라는 것이지, 악한 청지기의 잘못된 모습을 배우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악한 청지기로부터 어떤 지혜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먼저 그는 자신의 존재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청지기인 것을 늦게나마 바르게 깨달은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권한에 대해서 내 물질처럼, 내 시간처럼, 내 능력처럼 행세했지만, 주인이 말씀하시는 그 때에, 아, 이것이 내 것이 아니구나, 주인의 것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내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돈이 내 것입니까? 건강이 내 것입니까? 지혜가 내 것입니까? 사실 어느 하나 내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지요. 아무리 지금은 똑똑할지라도 얼마 안가서 가물가물 기억력이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처럼 위하는 건강도 점점 멀어져 갈 것입니다.

내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내 것처럼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 깨닫습니다. 그 청지기는 이것이 주인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지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내 자신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정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관리권이 있을 뿐입니다. 소유권과 회수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어떤 자세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청지기일 뿐이다’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만 합니다.

둘째로, 주인이 잘못을 묻고 보던 일을 셈하라 명했을 때에 청지기는 구차하게 변명 따위를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주인님, 그건 헛소문일 뿐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누구누구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고, 나아가 구차하게 기회를 다시 달라고 애걸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주인이 네가 잘못했으니 청지기 직분을 중지해라 명하자, ‘예, 알았습니다’하고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이것 참 중요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무 변명도 없습니다. 심판을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때로 보면 이미 빚더미에 올라앉아서 사업은 망한지 오래되었는데, 여전히 큰 소리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전히 회장입니다. 벌써 일은 끝 난지 오래 되었는데,이 사실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청지기에는 그 지혜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모르고도 아는 척, 없고도 있는 척, 안되고도 된 것처럼 구는 것은 쓸데없는 노릇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이 청지기는 지혜로웠습니다. 변명이 없습니다. 자기 나름으로서는 그래도 한 마디쯤은 변명할 수 있었을텐데, 주인이 심판해 주시는 대로 시인하고 맙니다.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올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한 일이 그러하니 이런 일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하는 금단의 열매를 따 먹어 놓고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왜 따 먹었느냐?”하니 아담은 대답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저 여자가 따 먹으래서 따 먹었습니다” 핑계를 댔습니다.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한심한 사람입니다. 또 하와에게 묻기를 “너는 왜 따먹었느냐?”하니 “저 뱀이 따먹으라고 해서 따 먹었습니다” 핑계를 댑니다.

죄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은 내가 짓는 죄입니다. 다음은 죄를 계속하는 죄입니다. 내친 걸음에 계속 죄를 짓습니다. 그 다음은 죄를 변명하는 죄입니다. 죄가 아니라고 이리저리 변명하면서 죄를 더 짓습니다. 나아가서 죄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미루어버리는 죄입니다. 죄는 이렇게 점점 깊어집니다.

대개 보면 “내가 잘못되었습니다만”하고 나서 어쩌구 저쩌구합니다. 그러나 이 청지기는 누구 때문이다, 무엇 때문이다, 말하지 않고, 주인이 네가 잘못했다, 하는 순간에 맞습니다, 하고 즉각 시인해 버립니다.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야 새 출발을 빨리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그 청지기는 남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남아있는 기회를, 남아있는 시간을, 남아있는 권한을 최대한 사용했습니다. 여기 지혜가 있습니다.

없는 것을 서러워하지 아니하고, 없어진 것에 미련을 품지 아니하고, 현재 남은 시간, 주인이 셈하라고 주신 시간을 잘 이용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지혜로운 청지기였습니다.

어느 날 정신과 병원에 한 중년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의사가 물었습니다. 그 부인은 말은 하지 않고 슬프게 자꾸 울기만 합니다. “말씀을 하셔야 제가 도와 드리죠.” 그 부인은 간신히 말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제 청춘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 선생일지라도 청춘을 되돌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신 이렇게 조언을 했습니다. “잃어버린 청춘을 생각하지 말고, 아직도 손에 쥐고 있는 중년을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일본 작가가 쓴 소설 가운데 “아끼루”라는 책이 있습니다. “산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25년간 시청에서 근무하던 아주 건강한 사람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위암입니다. 의사는 앞으로 6개월을 살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고민합니다.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직장에 나가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만, 재미가 없고 절망뿐입니다.

그러다가 꽃 파는 불쌍한 어린애하고 앉아서 얘기를 합니다. 말동무가 됩니다. “나는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단다” 슬프게 말합니다. 이 철없는 어린애의 대답이 “그래도 6개월은 있쟎아요?” 합니다. 아,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단 말입니다. 여기서 정신을 차립니다. 6개월 밖에 없다가 아니라, 6개월은 있다 입니다. 그는 여기서 새로운 용기를 얻어 앞으로 6개월 동안 내가 뭘 할까하며 가능한 일을 찾습니다. 귀중한 사명을 감당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보람 있게 생을 마감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가진 바가 있습니다. 없는 중에도 있는 것이 있고, 모르는 중에도 아는 것이 있습니다. 다 할 수 없는 것이면서도 아직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잘못은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나간 잘못은 슬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또 하나의 남용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미래를 과거로 인해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청지기는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준비했다는데 그 지혜가 있습니다. 주인은 사실 이 불의한 청지기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봤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은 그를 감옥에 넣지 않고 화를 내어 욕하지도 않고 도리어 웃으면서 그 청지기를 칭찬합니다. 내일을 위해 비록 부정직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준비할 줄 안다고 도리어 인정해 주었습니다.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사람은 내일 일을 모릅니다. 사람은 현실적인 동물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분명 내일은 다가옵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어느 날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은 들려 옵니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그때는 우리 모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에 있는 것은 결코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우리 손에서 빠져 나갈 날이 옵니다. 그때는 버둥거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건강, 젊음, 사랑, 돈, 자식,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청지기로서 주어진 것뿐입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서 우리는 다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모래를 잡는 것과 같아서, 놓지 않겠다고 힘 있게 더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다 우리 손에서 빠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청지기 직분을 셈해야 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성경 말씀입니다.

그 때를 위해서 무엇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우리를 받아줄 무엇을 예비해 놓고 있다고 생각됩니까? 이 불의한 청지기도 비록 불의한 방법이긴 하지만, 자기 미래를 위해 준비할 줄을 아는데,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그날을 위해서 무슨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을 사는 데야 분명 이 세대의 자녀들이 훨씬 더 지혜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저 세상을 준비하고 저 세상을 위해서 살아가는 데야 아무래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 지혜로워야 할 것입니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언제 이 주인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릴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기쁨으로 그날을 위해 올바르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성실하게 이 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날을 위해 준비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200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주일입니다. 이런 때 우리는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인생을 마무리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내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일 뿐임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 잘못을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회개하며, 앞으로 남은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을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지혜로운 신앙인의 자세로 한 해를 마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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