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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Buffet, just for God!(10) / 말 3:7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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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et, just for God! (10)
말 3 : 7 - 12.

오늘 2004년 첫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하시는 여러분들 가정과 가족 그리고 경영하시는 모든 일 위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작년부터 하나님의 식탁에 올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메뉴를 매 주일마다 함께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2004년 첫 주일 하나님의 식탁에 올려드릴 메뉴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저는 엉뚱해 보이지만 말라기 3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십일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십일조 설교는 참 부담스러운 설교 중에 하나입니다. 별로 나이스하고 세련된 설교가 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무식하고 기복적인 설교로 매도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2004년 첫 주일 메뉴로 십일조를 정하였습니다. 틀림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한 십일조를 그 어떤 것보다도 기뻐하시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믿음을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온전한 십일조에 쌓을 곳이 없도록 쏟아 부어주시는 복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한 십일조를 그 어떠한 메뉴보다도 기뻐하시고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돈을 좋아하실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주 깊이 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돈이 단순한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만이 마음과 사랑과 생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돈은 아주 구체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사랑과 생명을 전달하는 도구가 될 수 있고 지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목사님 중에 방선기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랜드의 사목으로 계시고 직장사역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시는 목사님이신데 생각과 삶이 반듯하여 저와 비슷한 연령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목사님입니다.

작년에 코스타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방 목사님이 우리나라 사교육비 줄이는 캠페인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퍼센테이지와 액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현재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얼마나 과다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과다한 사교육비의 지출로 말미암아 꼭 지출해야만 하는 돈들이 쓰여지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이런 저런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방 목사님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 중에 하나는 연세 드신 부모님들에게 드리는 생활비와 용돈의 감소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이들 때문에 연세 많으신 어른들과 노인들이 너무나 비참하리만큼 소외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방 목사님은 과감하게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줄여서 연세 드신 어른들과 부모님들에게 좀 더 넉넉한 생활비와 용돈을 보내 드리는 캠페인을 전개하자는 건의를 제게 하였습니다. 김 목사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설교를 할 기회가 많으니 설교 때마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좀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막내 아이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소홀히 하였습니다. 막내를 붙잡고 어느 날 엉뚱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버지 원로목사 안 할 꺼다. 아버지가 만일 원로목사를 한다면 우리 교회가 작은 교회 가 아니니 아마 평생 네 신세 안 져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꺼다. 그런데 아버진 교회 덕 보고 살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이 다음에 네 덕보고 살랴 아니면 교회 덕 보고 살 랴?”

우리 막내가 정색을 하며 자신 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야 당연히 제 덕 보고 사셔야지요”

저도 정색을 하며 막내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려면 자식아 공부 좀 열심히 해라. 그래서야 애비가 이 다음에 어디 네 덕 보고 살겠니?....”

자식 덕을 보려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번 생각을 바꾸어서 해 보실 수 있기 바랍니다. 세상에 덕 중에 자식 덕 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 중의 하나가 자식 덕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늘그막에 자식 덕을 보며 살게 해 주세요”

저는 동안교회를 떠남으로 원로목사를 포기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에 오면서 정년을 65 세로 함으로 저에게 원로목사는 완전히 물 건너 간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욕심이 없어서 그 좋은 조건을 포기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보다 좋은, 비교도 되지 않게 좋은 조건을 하나님으로부터 보장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교회 덕을 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식 덕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세 아이들이 늙은 저희 부부에게 매달 용돈과 생활비를 기쁜 마음으로 보내 줄 수 있으리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고 저희 늙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크게 뒤 바뀌지 않는다면, 저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이와 같은 수준의 삶을 계속 살게 해주신다면 저는 상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전혀 신세지지 않아도 노후를 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자식 덕을 보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제 연금으로, 제 능력으로 사는 것보다 정말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자식들 때문에 살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자식들을 나름대로 크게 부족함 없이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제게 주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제 자식들에게 이 다음에 자기 자녀들은 물론이요 저희 부모까지 넉넉하게 봉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일도 구체적으로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확신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의 모든 어른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 덕을 보며 자식들 때문에 늘그막에 호강하며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방선기 목사님의 말씀과 걱정과 같이 자식에게는 해가 되도록 투자하고 부모에게는 해가 되도록 인색한 우리의 어리석은 가정경제를 좀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덕을 보시기 위해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도움과 덕을 보셔야만 사시는 그런 나약한 늙은이도 아니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덕을 보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은근히, 아니 노골적으로 바라십니다.

자기가 정직하게 땀 흘려 번 돈 중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의 몫을 뗄 줄 아는 마음을 하나님은 그 어떤 것 보다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과 힘으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 보다 우리가 드린 그 몇 푼 안되는 십일조로 일하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메뉴 중에 하나는 우리들의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때 제 아내가 은행에서 하는 노후 연금을 들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때 큰 아이가 제 어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연금 제게 부으세요”

많은 분들이 늙어 은퇴를 한 후 모든 재산을 다 아이들에게 주면 안 된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늙을수록 돈이 있어야 하고 재산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쥐고 있는 돈이 있고 재산께나 있어야 자식들이 그래도 명절마다 찾아오고 인사도 하고 효도도 한다는 것입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상 자식들에게 모든 재산을 다 물려주게 되면 자식들은 자기 자식들 사교육비 챙기느라 바빠서 늙은 부모는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주 확률이 희박하지만, 그래서 사실은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자식이 정말 늙고 힘없는 부모에게 마음이 있어서 자기 자식 돌보고 투자하는 것의 몇 분의 일이라도 떼어서 부모를 섬기려고 한다면, 정말 하나님께서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제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제가 정말로 자식의 덕을 보고 살 수 만 있다면 저는 저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다 투자하고 살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이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말라기 3장을 다시 읽으며 뜬금없이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천하없어도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며 아낌없이 소득의 온전한 십일조를 떼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라기 3장 10절 이하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 3 : 10 - 12)

여러분이라면 부모 생각하고 천하없어도 부모 몫을 먼저 떼고 쓰겠다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주고 싶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혹시 쏟아 부어 주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어서, 또는 능력이 없어서 못 줄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하여 부모 공경하듯 하나님의 몫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쏟아 부어 주시겠다 말씀하셨으며 너희 땅이 아름다움으로 모든 이방인들까지도 너희를 복되다고 부러워 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 설교 중에 ‘엘리사의 기름병’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시대에도 ‘엘리사의 기름병’ 기적은 있습니다. 써도써도 떨어지지 않는 ‘엘리사의 기름병’의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리석어서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 3:9)

막내 아이가 자라면서 제일 먼저 배운 말이 셋 있습니다. 첫째는 엄마, 둘째는 아빠, 셋째는 100원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막내가 유난히 그렇게 돈을 좋아하였습니다. 어느 날 막내가 100원 짜리를 손에 몇 개씩이나 들고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하도 100원 짜리를 좋아하기에 제가 막내에게 ‘정열아 아빠 100원만 줄래?’라고 물었습니다. 막내는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가 달라니 안 줄 수는 없고, 그러나 주자니 좀 아깝고 그래서 아이는 잠시 망설이며 제 눈치를 보았습니다. 제가 별로 심각하지 않은 얼굴로 장난삼아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 막내는 돈이 든 손을 뒤로 감추었습니다.

그때 참 별것 아닌데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놈이 아빠보다 100원을 더 좋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철없는 어린 아이의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좀 섭섭했습니다.

막내에게 100원을 달라고 했을 때 저는 주머니 속에서 1,000원 짜리 한 장을 쥐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저에게 100원을 주었으면 저는 그 자리에서 아이에게 1,000원을 주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우리가 100원을 드리면 1,000원을 주시고 우리가 100원을 드리지 않으면 속 좁은 사람처럼 1,000원을 감추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십일조를 말씀하실 때마다 저는 그 때의 막내를 생각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십일조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고 믿음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틀림없는 사실이 몇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십일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잔칫상을 마련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십일조 메뉴를 빠트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나 안 주시나 그리고 얼마나 주시나 한번 시험해 보라고 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복이 너무 커서 온전한 십일조를 도적질하여 그 복을 놓친 사람은 저주 받은 사람 같아 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말라기 3장 10절 이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사람들은 십일조의 말씀이 구약의 말씀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을 샘나하는 사탄의 말입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서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일조가 마음과 사랑 그리고 진실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부적처럼 여겨지는 것을 비판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십일조에 대하여 비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니 십일조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은 온전한 십일조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려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십일조 제도를 폐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 안에 숨어있어야 하는 하나님 사랑의 진심을 가르치심으로 십일조를 온전케 하려 하신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잔칫상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온전한 십일조를 올려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 하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약속하신 축복의 증인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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