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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기회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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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지막 기회
본문 : 누가복음 13:6~9

  2003년도가 이제 3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의 흐름은 나이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이 우리가 경험을 합니다. 세월이 빠르다고
말들 하지만 세월은 언제나 똑같이 갑니다. 시간이 빨라지거나 늦추어지는
것이 아닌데 사람의 의식 변화가 느낌을 다르게 합니다. 대체적으로 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시간의 흐름을 빠르다고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
까? 아마도 그것은 세상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내가 살아갈
날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생각이 안타까움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생겨지는 강
박개념이라고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다 싫어하는 말이 분명합
니다. 늙었다는 말입니다. 또 누구나 다 좋아하는 말이 젊어졌다는 말입니
다. 누구나 다 젊은 때가 있었고 누구나 다 늙어 가는 똑같은 사건인데도
그것이 그렇게 큰 관심거리가 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아주 많이 관계하는 일이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 청
빙하는 문제를 저한테 의논을 참 그 동안 보니까 많이 했고, 목사님들도 제
게 와서 목회자를 좀 소개해 달라고 하는 목사님들이 저한테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아주 거룩하고 좋은 일이니까 내가 좀 수고하면 목사님도 교회도
좋은 일이 생기니까 많이 했어요. 지금도 또 그런 부탁을 많이 받고 있는
형편에 있습니다. 제가 교회에다 묻습니다. "어떤 목사님을 원하십니까?"
묻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많은 경험에서 공통적 소원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젊어야 합니다. 나이가 50이라고 하면 목사로서 목회하
기에 굉장히 좋은 나이거든요? 제 경험에 보면 '50대가 참 풍성한 영혼의
지도자, 이때가 제일 좋은 때다!' 이렇게 생각이 됐었는데, '5'자는 나오지
도 못하게 하더라고요. 5학년이라고 하면 "아, 그건 꺼내지도 마십시
오." '3'자나 '4'자가 나와야지 '5'자는 뭐, 사람 취급도 안 하려고 합니
다. 제가 갈보리교회에 올 때 그걸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내가 그
런 일들을 많이 했는데 내가 이제 6학년으로 가야 되는데 가자마자 보기 싫
다고 가라 그러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사실 40대 초
반, 이런 정도의 후임 목사님이 왔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이제 할 수 없어요.

  청구영언의 우탁시조 가운데 그런 말이 있죠?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
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게 우리가 다 느끼는 거란 말이죠?
오늘 말씀의 뜻을 우리가 몇 가지로 생각해 보면 이 말씀 속에는 해가 바뀌
는 시간적 개념이 오늘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3년을 와서" 라는 말씀이
나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하는 대목은 모두 시간 개념이 됩니다. 먼
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를 보면, 오늘 말씀 그 위를 보면
나옵니다. 13장 1∼5절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사회에서 있
었던 사람이 죽은 두 가지 큰 사건을 말씀하셨어요. 하나는 인위적 불행의
사건으로서 빌라도가 유대 나라에 와서 통치자를 하다가 죄도 없는 갈릴리
사람 몇 명을 살해했어요. 그들이 죄도 없이 죽었단 말이에요. 그들의 그
억울한 죽음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 궁금해하는 사건에 대해서 예수님이 언
급을 하셨고, 또 하나는 자연적 불행의 사건으로서 실로암 망대 붕괴 사건
으로 치어죽은 18명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영적으로 관찰하려는 그런 사건
이었습니다.

  어제, 오늘 이란에서 대지진이 나서 수만 명이 지금 죽었다고 하잖아
요? 그런데 그런 사건에 대해서 "이거 왜 이렇습니까?" 그것을 예수님이 말
씀하신 겁니다. 이러한 인간 불행의 사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뭐냐
면 "이 세상은 누구나 또 어디나 너희들이 잘 알 수 없는 원인과 이유가 분
명치 아니한 불행의 사건이 항상 있다! 너희들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
장이 없다." 라고 하는 대답을 하시면서 오늘 말씀을 하셨어요. 바로 이 시
간적 개념의 인생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설교는 이렇습니
다. "이 죽음이라는 사건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네 곁에 있다. 그러니
까 빌라도에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나 망대가 무너져 치어죽은 사람이나
너도 언제 그런 불행한 사건에서 인생이 마감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
다는 것은 죽음에로 간다는 것이죠? "이 피할 수 없는 시간 속에 내가 들어
있는데 왜 죽는가? 언제 죽는가? 이것을 따지는 일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는 것을 안다. 그게 뭐냐면 이 주어진 시간 안에서 내가 무엇을 했는가
라는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그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는 것이다." 이러
한 인생론을 예수님은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 같은 마지막 주일에 그
것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죠? 우리 나라 말에 '지근'이라는 말이 있어
요. 땅 지(地), 가까울 근(近)! 그래서 "땅이 가깝다", "땅이 가까워 온
다" 그래서 50이 되면 쉬지근합니다. 땅이 가까워오고, 기운이 아주 없을
때 뭐라고 그러죠? 녹작지근하고 맥작지근해져서 땅에 들어갈 시간이 가까
워 왔다! 그게 '지근'이예요. 사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땅이 가까워올수록
편합니다. 비행기를 타면 자동차 탄 것 보다 불안감이 커지죠? 사실 비행기
가 자동차보다 안전해요. 사고 날 확률이 훨씬 적어요. 그런데도 불안해서
비행기 안에서 모두들 기도합니다. 이 비행기가 떨어지지 말라고... 땅에
서 많이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서 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것이 훨씬 편하
죠? 땅이 가까워서 그렇습니다. 누우면 더 편하죠? 땅 속으로 들어가면 영
원히 들어가는 겁니다. 지근한 겁니다.

  오늘 말씀의 첫 번째 의미는 인생의 시간 한계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학
교에서 여러 가지 성현님들에 대해서 배울 석가에 대해서 배웠잖아요? 궁중
에서 왕자로서 온갖 좋은 조건을 다 누리다 어느 날 종들을 데리고 세상을
나갔을 때 몇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길가에 어떤 병든 사람이 험악한 모
습을 하고 있어요. "얘들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보기가 싫게 되었느
냐?" "예! 병이 들어서입니다." "왜 병이 들었느냐?" "사람은 누구든지 다
병이 듭니다." "그러면 나도 병이 드느냐?"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아주
늙어 꼬부라진 노파를 보았습니다. "얘들아! 저건 뭐냐?" "예, 사람입니
다." "그런데 왜 저렇게 되었느냐?" "늙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나도 늙
느냐?"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장례식 행렬을 보았어요. "저건 뭐 하는
것이냐?" "사람이 죽은 것을 땅에 갖다 묻으려고 가져가는 것입니다." "사
람이 죽느냐? 땅에 묻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렇게 되느냐?" "그렇
습니다." "인생은 무상하다." 그래서 왕궁을 뛰쳐나와서 보리수나무 밑에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깨달음의 종교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가 학교
에서 배웠잖아요? 고려 말년의 충신 야은이 500년 고려 왕업을 빛내신 개성
을 말을 타고 한 바퀴 돌면서 지은 시(詩)를 우리가 재미있게 읽었습니
다. "오 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
다. 아∼ 그렇게 좋던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게 다 시간의 개
념! 앞으로 100년 후에는 우리는 모두 어떻게 되겠습니까? 옛날이나 지금이
나 인간에게는 꿈이 있어요. 조금이라도 더 지상에서 오래 살려고 노력합니
다. 앞으로는 생명이 조금 더 길어진다고 그래요. 120세는 넉넉히 인간이
살 수 있는, 의학의 힘을 통해서 될 거라고 나는 봅니다. 인간은 인간의 한
계를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시편에 "우리의 날 계수 함을 알게 하시고
지혜의 마음을 주옵소서." 그러니까 "이러한 시간의 개념 속에 들어있는 내
가 지혜가 있어서 내 인생을 얼마나 계산하고 훌륭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대답을 내게 주옵소서." 그렇게 시편에 나와있습니다.

  그 다음에 오늘 말씀에 두 번째 의미는 3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
입니다. 이 시간 개념은 365일이 세 번 지나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충분
한 시간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본래 '3'이란 숫자의 영적 의미는 성경
에 완전수! "완전하게 주워졌다. 충분한 기회가, 그리고 여건이 너희에게
주어졌다. 3년을 기다렸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교인들
의 인생의 마지막을 종결시켜드리는 일을 항상 하게 됩니다. 일년에도 수
십 번을 합니다. 거기에서 얻어진 통계가 있고 경험이 있습니다. 평생을 살
면서 소원하고 성취하느라고 몸부림쳤던 자신의 과거사를 너무 늦게 바라봅
니다. 너무 늦게 인생을 깨달아서 어떤 때는 이제 하루가 새로워졌어
요. "나에게 건강한 하루가 다시 한번 주어진다면..." 이 소원이 그렇게 많
아요. '평생이 건강했는데 그 많은 날과 세월을 어디에다 다 날려보내고 계
수 하시는 지혜가 없어서 이제 이 하루를 소원하고 있을까?' 그런데 그 하
루가 안 주어집니다. 저한테 남긴 말을 그대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그래
요. 집사님, 이 하루가 주어지면 뭘 하시겠습니까? 목사한테 말해보세
요." "하루 온 종일 교회 가서 기도 드리고 찬송 부르고 그 이튿날 하나님
께로 가고 싶어요." 아니, 그렇게 새벽기도 나오라고 광고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예배 좀 나오라고 많이 얘기했는데... 그 소원한 것이 이제 후회가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성전에 가서 자신이 남기고 가야되
는 뒷일을 하나님께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하나님께로 가
고 싶어요." 안 주어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교회에 가서 교회
청소 깨끗하게 다하고 그 이튿날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청소하라고 그
렇게 많이 날을 주었는데... 또, 이런 사람도 있어요. "돈을 한 만불 손에
들고 거리에 나가서 가장 고난스럽고 불쌍한 형제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리
고 나서 죽었으면 좋겠어요." 착한 사마리아인 주일 그렇게 헌금하라고 했
는데... 그런데 그 하루가 안 주어집니다. 절대로 주어지지 않아요. 늦었어
요. 미국 사람들이 잘 쓰는 말 가운데 "Too late!" 그런 말이 있어요. "이
미 늦었다." 그런데 그 말의 뜻이 본래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조금 쑥스러
운 이야기지만 들으세요.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막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건강한 남자 하나가 소변이 마려운 겁니다. 그런
데 화장실이 없어요. 그런데 버스는 저기서 온단 말이에요. 저걸 타고 오
래 가야 되는데 큰일 났단 말이에요. 소변이 급하단 말이에요. '에라, 모르
겠다!' 그리고 그 전주 옆에 가서 실례를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막 뭐라
고 그럴 거 아닙니까? "아, 이보시오! 그 뭐 하는 겁니까?" "Too late! 이
미 늦었다!" 다시는 안 주어져요. 어떤 사람은 "내가 건강해지면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Too late!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때가면 모두 다 하나
님 쪽으로만 생각해요. 똑같아요.

  오늘 말씀의 뜻은 그런 생각을 미리 하라는 것입니다. "3년 전에 했어야
지... 그런 좋은 생각을 하고 실천할 수 있었던 시간은 너에게 충분하게 주
어졌었어!" 사람들끼리 거짓말하잖아요? 어떤 때는 통해요. 아주 새빨간 거
짓말도 통해요. 거짓말 잘 하는 사람은 아, 거짓말로 답 다해가요. 하나님
하고는 안 통합니다. 또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그럴만한 기회나 여건이 없었
다고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 소리 말아라! 나는 너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 여건을 주었다. 네가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 민
자들에게 첫 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항상 합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그
나라에서 이민자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왜 이민을 왔느냐?" 이 질문입니
다. "네가 왜 이민 왔는가?" 그 질문이 항상 일등 질문이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어느 민족이나 일등 답변이 나옵니다. "자녀 교육 때문에!" 맞습
니다. 우리 갈보리 교회 자녀들도 지금 외국에 유학 나가있죠? 많이 나가
있습니다. 웬만한 가정은 거의 한 사람씩! 왜 보냈어요?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데... "앞서가는 학문을 터득해서 인생의 빛이 되라!" 그거잖아요? 그
래서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돈을 벌어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는거 아니겠어
요? 이민자들은 똑같습니다. "나는 돈이 없고 그래서 유학 보낼 수 없으니
까 내가 이민 가버리면 자연 유학이 되니까 나는 고생하고 외롭고 그래도
이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서..." 그게 어느 민족이나 다 똑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미국 유학은 될수만 있으면 보내세요. 교육은 미국입니
다. 저도 여기서 4년 대학 공부했지만, 4년 동안 공부한 것 거기서 1년 치
도 안됩니다. 그렇게 무지하게 공부를 시킵니다. 그러니까 보내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교육 제도와 혜택 속에서 공부해야 되는 학생들이 공부
를 열심히 하느냐 하면 그 혜택을 몰라요. 이란 사태가 났을 때 예일 총장
이 말입니다, 이란 학생들 전부 모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더는 못하잖아
요? 미국하고 이란이 전쟁을 하는데? 총장이 이란 학생들만 모아놓고 하는
말이 있었죠? "돈걱정하지 말아라. 학교가 다 대주겠다. 너희 나라 돈 안
와도 괜찮다. 먹을 것과 용돈까지 다 줄 테니 걱정 말아라. 연구만 열심히
해라." 원수의 나라하고 전쟁하면서도 총장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다
양한 혜택을 줍니다. 세계에서 교육제도가 가장 우수한 나라! 그리고 학생
에게 최고의 인격 대우를 훌륭하게 하는 나라! 도서관 시설이 세계에서 제
일 좋은 나라! 과학 기구 시설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나라! 학교의 급식도
영양사가 따져서 학생에게 식사를 시키는 나라! 교육 효과 프로그램이 세계
에서 제일 화려하게 마련된 나라! 고등학생만 거의 50% 이상의 학생들이 자
기 자동차를 가지고 등교하는 나라! 그러고 있는데 공부 안해요? "나는 너
희에게 주었어!" 부모들이 그럽니다. "우리들은 고생하면서 너희들에게 기
회를 충분히 만들어 주었어! 이제 네 책임이야!" 하나님도 그렇게 질문하십
니다. "나는 3년을 주었어. 다 주었어. 완전하게 주었어. 왜 땅만 허비하느
냐?" 이 질문입니다.

  세 번째, 주인이 원하는 것은 열매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열매
인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필요한 사역의 내용들, 나를 통
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확장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내가 너에게
건강을 주고 물질을 주고 시간을 주고 지혜를 준 것은 그것을 이용해서 하
나님의 역사가 이 땅에 확장되라고 너희에게 주었다! 왜 땅만 버리고 있느
냐? 내가 만약 너희에게 주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면 훨씬 더 큰
효과가 나타났을 텐데..." 그래서 "떼어서 이 사람에게 주어라!" 주인이 이
러잖아요?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창조되어야 되고 우리 교회가 있기 때문에, 또 우리 나라가 존재하
기 때문에 이 세상에 하나님의 것이 성취되어져야 하는 그것이 삶의 목표
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 갈보리교회가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죠? 그게 뭐냐
면 담임 목사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까지 본 교회가 걸어온 창조
적 목회 철학을 제가 중단하지 말고 변함없이 순례 길을 똑같이 갔습니
다. "중단 없는 순례의 갈보리 공동체를 그대로 하겠습니다!" 일년의 목표
로 정하고 여러분과 함께 1년을 걸었습니다. 세계 108군데 지급되는 선교비
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약속한 제 시간에 틀림없이 지급했습니다. 14번 실
시한 착한 사마리아인 주일은 불우이웃에게 100% 따뜻한 사랑의 체온을 전
달했습니다. 지역 사회 봉사 활동, 세계 지도력 개발원 활동을 통한 몽골
과 일본, 시카고 그리고 국내 목회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에 경비와 지혜
를 총동원했고, 미 자립 교회 두 곳 교회 건축에 50% 건축비를 보내서 두
개 성전 건축 완성, 헌당 예배를 제가 가서 설교를 하였고, 목양회를 비롯
한 모든 선교회와 봉사회가 금년 연초에 계획한 모든 사업이 하나도 미진하
지 않고 완결한 보고를 날마다 받고 있습니다. 일년 동안에 교인의 숫자와
헌금이 10% 증가한 사실도 기쁘게 생각하며, 매우 부족한 조건에 있던 주차
장 문제와 교육관 시설을 위해 건축위원회가 성의 있는 기도와 노력을 통해
서 해결이 마무리 단계가 된 것을 또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새벽기도를
드리는 성도님들이 많아진 것을 매우 큰 열매로 고백하며, 화평의 능력으
로 모두가 즐거운 신앙생활을 일년동안 잘 하면서 오늘을 맞이한 것을 하나
님께 감사드리고, 우리 갈보리교회 교우들에게 담임목사로서 감사를 드립니
다. 그동안 하늘나라 가신 20분의 성도님들이 지금은 주님의 안식 품에 계
신 것을 위로로 삼으며, 결혼한 52명의 새로운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
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너무나도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본 교회가 군부
대 장병을 포함하여 2,000여명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는 일에
몸을 바친 것을 매우 큰 수확의 열매라고 생각을 합니다. 큰 일은 못했지
만 주어진 대로 하나님 나라 확장이 본 교회를 통해 성취된 것이 영적 수확
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2004년에는 현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선교나 다른
것을 조금은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받은 자가 왜 땅만 허
비하느냐?" 책망 받지 말아야 합니다. "2003년 일년이라고 하는 이 365일
의 긴 시간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 내가 준 건강과 지혜와 내가 준 물질
을 가지고 어떻게 했니?" 이게 이 쓸데없는 과일나무의 운명은 찍어버리라
는 주인의 사형선고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여기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자비가 나
타나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
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
다 하시니라." 그러면 여기서 한가지 발견되는 것이 나타나는데, 이 나무
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그 나무의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병리적인 현
상 때문입니다. 본래부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아무리 1년을 더 기다
려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거름을 많이 준다 하여도 본래부터가 열매
를 맺을 수 없는 나무이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게 생리적 현상입니다. 그런
데 이 나무는 그런 게 아닙니다. 병리적 현상입니다. 병리적 현상은 그 병
만 고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우리 중에 본래
부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큰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큰 수확을 볼
수 있는 기본적 생리 현상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들었기
때문에, 병리적 현상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여기 나타나는 과원지기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
스도는 인간을 어떻게 보셨는가? "찍어버려라!" "아버지, 조금만 기다려 주
세요." 종말적 기회로 인간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어디에
다 쓸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일곱 귀신이 들린 여자라고 성경에 나타나 있습
니다. 창녀 생활을 해서 정신과 건강이 만신창이가 되어 망가진 사람! 누구
도 그를 인격 대우하지 않는데, 복음서에 나타난 여자 중에 그가 주님에게
제일 필요한 여자로, 주님을 위해서 가장 많은 일을 했던 사람으로 나타납
니다. 왜? 병리적 현상을 고쳐주었잖아요. 베드로 같이 실수 많이 하고 다
혈질적인 성격의 사람이 세계 선교에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가 지니고 있는 생리적 현상을 넉넉히 할 수 있다!" 병리적 현상을 고쳐버
리니까 그렇게 되었지요? 죄인의 집이라 해서 이웃 집 사람들도 들어가지
않는 삭개오의 집에 예수님이 초대도 없이 자청해서 가시겠다고 하셨습니
다. 그랬더니 그렇게 돈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삭개오가 "재산의 절반을 이웃
을 위해 쓰겠습니다." 여러분, 하시겠어요? 못하죠? 그러면 우리 삭개오만
못하는 겁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 삭개오의 병리적 현상을 고쳤기 때문입
니다. "이제부터는 네 병은 없어졌어! 이렇게 살아라!"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큰 열매가 맺도록 주님은 소망을 가지고 우리
를 마지막 종말 지점까지 붙잡고 계시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비입니
다. 주님은 오늘도 나를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심판의 팔을 막으시며 "금년
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생리적 현상은 건
강합니다. 병들었을 뿐입니다. 병리적 현상을 고쳐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이후"라는 미래의 단어가 한마디 나타납니다. 이후에 대
한 해석이 뭡니까?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나의 존재! 빌라
도 처형 사건이나 실로암 망대 붕괴 사건의 이유를 묻지 말고, "왜 이란에
서 저렇게 지진이 나서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그것을 이유
를 밝히기 그 이전에 "너도 그런 인간 이유가 알 수 없는 불행 속에 들을
수가 있다!" 지금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에 더 마음을 쓰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때에는 찍어버리소서." 마지막에는 예수님도 포기하시겠다 그런
말입니다. 새해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리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이
말씀에 영적 교훈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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