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순종의 길에서 만난 환란 / 창 12:10-20

  • 잡초 잡초
  • 325
  • 0

첨부 1



*본문 : 창세기 12장 10-20절
*제목 : “순종의 길에서 만난 환란”

10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
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
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
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
니라 14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
았고 15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
하여 들인지라 16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17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
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
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
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
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서론

  아브람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 순종의 대명사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브람도 처음부터 순종을 잘 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됩
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고향 본토를 떠났지만 아비와 친척과 함께 여행길에 올
랐습니다. 그리고 하란에서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을 허송세월로 낭비하고 말았습니다.
즉 아브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완전한 순종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후에 아브람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세겜과
벧엘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음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하나님과 교제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아브람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습니다. 창세기 12장 7절을 보
시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
신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같은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도 아브람
은 처음부터 완전한 믿음을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순종의 사람 아브람은 처음에는
불완전한 순종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완전한 순종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믿음의 사
람 아브람도 처음에는 불완전한 믿음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열심과 훈련
으로 인하여서 완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이 만난 환란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순종과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하나의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려움입니다. 즉 환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환
란이라는 인생의 힘든 과정을 통하여 아브람을 순종과 믿음의 대명사로 세워 가셨습니
다. 그렇다면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만난 환란을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에 대하여 오
늘 본문 창세기 12장 10절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
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
음이라”. 이 말씀처럼 아브람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극심한 기근이 임하게 되었습
니다.

  아마도 이때에 아브람은 자신이 과거에 살았던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곳에
는 기름진 음식도 많이 있고 편안하게 먹고 쉴 수 있는 좋은 집이 있는데 괜히 하나님
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곳으로 왔다가 애매한 고난과 환란을 당하고 있다고 불신앙적
인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아브람은 먹을 것
이 풍성한 애굽으로 내려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아내인 사래
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아브람은 자신의 신변에 위
험이 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본문 11-12절을 보시면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
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아브람은 미모가 출중한 아내인 사래로 말미암아 자신의 목숨
을 애굽 사람들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하
여서 아브람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하였습니다. 본문 13절을 보시면 “원컨대 그대는 나
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
하겠노라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순종과 믿음의 대명사인 아브람이 여기에서
는 그야말로 잔머리의 대명사로 등장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내인 사래를 애굽의 사람들에게 누이라고 소개를 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람은 아내인 사래를 애굽의 사람들에게 누이라고 거짓말하는 죄를 범하였다는 사
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아브람과 사래가 원래는 사촌누이지간이지만 그래
도 지금은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있는 남편과 아내라는 부부임을 생각해 볼 때에 아브
람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지 못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아브람이 믿음을 가졌다면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요? 만약에 아브
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붙잡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
이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땅에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을
분명히 하셨기에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고 절대로 이 약속의 땅을 떠나
지 않으리라.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이 기근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건져내 주시리
라!”. 이러한 굳센 믿음을 갖고서 끝까지 가나안 땅에 머물러 있었으리라고 저는 생
각합니다. 따라서 애굽에 내려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
하는 수치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는 그만한 믿음이 없었습니
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을 수 있는 믿음의 수준에 올라가
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같은 아브람의 모습을 통하여서 그의 믿음이 아직
까지는 큰 믿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애굽으로 가는 것은 언제나 세상으로 내려간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애굽은 불신앙의 세계요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
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서 31장 1절에서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
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
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음을 소유하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필연적으로 환란은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
여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람에게도 기근이라는 환란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 결정은 필연적 사망의 길

  그런데 우리에게 이같은 어려움이 다가오게 되었을 때에 두 가지 기로가 놓여져 있
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는 비록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하
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살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이 위기의 자리에서 기적과 축복
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갖고서 신본주의적인 결정을 하는 자세입니다.
반면에 또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와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이
렇게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나의 지식과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가야겠다
는 인본주의적인 결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지금 아브람의 입장에서 극심
한 기근이 와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끝까지 가나안에 남아 있겠노라고 결정하
는 것은 신본주의적인 자세입니다. 하지만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
가겠노라고 결정하는 것은 인본주의적인 자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깨달아야만
하는 귀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본주의적인 결정은 항상 실패라는 사실
입니다. 인본주의는 처음에는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필연적으로 그 결과는 사망입
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선택을 하지 못하고 인본주의적
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진리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은 “아니, 애굽에 내려간 아브람은 죽지 않았는
데요?”라고 반문을 하실 것입니다. 죽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물질과 짐승을 얻었다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 16절을 보니까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
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고 증거하
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이가 65세나 된 사래를 보고서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그 미모
를 칭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왕궁에 있는 바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명을 내려서 사래를 왕궁으로 취하여 들였습니다. 따라서 바
로는 사래의 사촌이 되는 아브람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그 대가
로 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브람은 자신의 처를 팔아먹고 그 대가로 많은 짐
승과 노비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과연 아브람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재물은 아브람에
게 있어서 수치와 치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이러한 방법으로 공
재물을 얻지 않겠노라고 작정을 하였을 것입니다. 창세기 14장을 보시면 소돔에 살고
있는 롯이 네 왕에 의해서 잡혀가자 아브람이 사랑하는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집에서 기르던 318명의 군인들을 데리고 가서 네 왕을 물리치고 조카 롯을 무사히 구
출하였습니다. 거기에다가 많은 재물도 전리품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창세기 14장 21절입니다. “소
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원하
기만 하면 엄청난 재물들이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애굽에
서 사래로 인하여 얻었던 불의한 재물들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이 완강하게 거부를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창세기 14장 22-23절을 보시면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
르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
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노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
한 모든 성도님들도 앞으로는 너무 공짜라고 해서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군다
나 그것이 내가 땀 흘려서 얻는 정당한 대가가 아니라 불의한 수단으로 얻게 되는 물
질이라고 한다면 과감히 거절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뿌린 대로 거두시게 하
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비상한 개입이 일어납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죽지도 않았
고 아내 사래도 바로에게 빼앗기지도 않았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
은 바로 아브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비상한 개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에 대하여 본문 17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구하고 바로의
손으로부터 사래를 보호하기 위해서 비상한 개입을 하십니다. 그날 밤중에 하나님께
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깜짝 놀란
바로는 그 즉시 아브람을 불러서 사래를 다시 집으로 내려가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습
니다.

  이같은 사실에 대하여 오늘 본문인 창세기 12장 18-19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
습니다.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
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
고” 이것은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입니다. 아브람과 그의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
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비상섭리는 인간이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상섭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비상섭리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
시면 비상섭리는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신앙생활을 함에 있
어서 날마다 하나님의 비상섭리를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상섭리는 우리의 일생에 있어서 많아야 한두 번 일어나는 특
별섭리입니다. 예를 들자면 수능시험을 목전에 둔 수험생이 있습니다. 수험생이 하나
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제가 연필을 굴리기만 하면 답이 나오는 비상섭
리를 주시옵소서!” 이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
하는 매우 무례한 행동입니다. 수험생의 올바른 자세는 먼저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
다. 그런 후에야 “하나님, 제가 그동안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 시험칠
때에 실수하지 아니하고 공부한 내용이 잘 생각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수험생의 자세요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시기 바랍
니다. 하나님의 비상섭리는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서 선택하신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완성해 가시는 그분의 특별한 섭리
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만약에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비상섭리가 없었다고 한다면 아
브람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번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상섭
리가 없었다고 한다면 사래는 틀림없이 바로의 후궁이 되었을 것입니다. 호화로운 왕
궁에서 바로의 총애를 받으면서 사래는 물질적으로는 매우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 것입
니다. 그러나 과연 사래의 마음속에 참다운 기쁨과 평안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사
랑하는 남편 아브람을 잃은 슬픔과 아픔으로 인하여서 사래의 마음은 너무나 고통스러
웠을 것입니다. 아무리 바로의 왕궁이 좋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남편의 품만큼 포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남은 생애 동안 남편 아브람을 날마다 그리워하면서 한 많
은 삶을 마쳤을 것입니다. 또한 아브람의 인생도 평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역
시 사랑하는 아내 사래를 빼앗긴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면서 참으로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그만 삶을 마감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비상
섭리가 없었다고 한다면 애굽으로 내려 간 아브람은 패가망신하고 결국에 가서는 죽음
을 맞이하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인본주의 적인 결정은
반드시 사망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진리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위기의 순간
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본주의적인 결정 대신에 자신의 의지와 소견과 힘을 의지하
는 인본주의적인 결정은 반드시 더욱더 큰 실패와 낭패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될 진리는 바로 인생의 환란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절대로 믿음의 자리
를 떠나지 말자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끝까지 남아있어야
만 합니다. 아무리 애굽이 풍요롭고 기름진 음식들이 차고 넘쳐난다고 할지라도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는 가운데에 가나안 땅에서 그 믿음
의 자리를 영원토록 지켜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믿음의 자리를 최후의 순간까
지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비상섭리의 역사가 반드시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환란을 주신 이유

  그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왜 환란을 주셨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환란이 아브람에게 복을 주는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때로는 어려움을 주시는 목적이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
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는 어려움에 처해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
서 이 환란을 통하여 나에게 어떠한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가라는 믿음을 갖고 인내하
면서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만약에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끝까지 머물러 있었
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온갖 기적을 통하여 그와 가정을 먹이시고 입혀 주셨을 것입
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떨어지고 반석
이 갈라져서 시원한 물이 나왔던 기적이 틀림없이 아브람에게 임하였을 것이라고 저
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브람과 그의 가정을 통하여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큰 민족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어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아브람은 하나님
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후대의 사람인
엘리야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시면 엘리야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합의 눈을 피해 요단 앞 그
릿 시냇가에 숨어 있는 엘리야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들을 통
하여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또한 믿음의 결정을 내린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
님의 동일한 기적이 임하였습니다. 어느 날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되었
습니다. 열왕기상 17장 8-9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
대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
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엘리야는 하
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르밧 과부가 살고있는 성으로 갔습니다. 마침 성문 가까이
이르러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그 과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과부는 자신
의 집에 있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을 조금 남은 기름으로 음식을 해서 아들과
먹고 그 후에 죽을 작정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
지 이 불쌍한 과부에게 자신을 위하여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 때에 우리 같으면 어떠한 반응을 했을까요? 아마 틀림없이 인본주의적인 생각을
갖고서 버럭 화를 내면서 자신을 위해서 떡을 만들어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
법은 죽는 방법입니다. 만약에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 엘리야를 위
해서 음식을 만들지 않고 자신과 아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더라면 틀림없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는 신본주의적인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어
차피 죽을 목숨인데 주의 종을 위해서 접대나 하고 죽자라는 믿음을 갖고서 떡을 만들
어 엘리야를 대접하자 그 가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
도 밀가루 통의 가루를 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생겨났습니다. 기름도 마찬
가지입니다. 아무리 따르고 따라도 기름이 조금도 줄지 아니하고 자꾸만 기름이 쏟아
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에 대하여 열왕기상 17장 16절은 이
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
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저는 아브람이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가나안에 끝까지 남아 있었더라면 하나님의 최
상의 축복이 틀림없이 임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받은 복은
정상의 복이 아니라 비상의 복입니다. 최상의 복이 아니요 차선의 복이었습니다. 따라
서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믿음의 성도 여러분들은 끝까지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가운
데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최상의 복과 정상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환란을 통하여 아브람의 자아를 깨뜨리기 원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힘든 것이 바로 자아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서 예수님께서
도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를 온전히 따르고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부인이
있어야만 합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결코 주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
아가 강한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싸움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 가정에서
도 부부싸움이 왜 일어납니까? 그 원인은 바로 서로의 자아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남
편과 아내가 서로 대접받기를 원하고 섬기지 않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렇다
면 자기부인이란 어떤 것일까요? 옛날에 김신조라는 간첩이 우리나라에 침투한 사건
이 발생하였습니다. 김신조가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을 때에 이런 교육을 받았습니
다. 훈련을 시키는 교관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각오를 남한에 남파할 간첩들에게 시
킵니다. 첫째 너는 굶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둘째 너는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셋째 너는 얼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라는 철저한 의식교육을 김신조는 받
았습니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자아를 완전히 깨뜨리는 훈련입니다. 나
는 조국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굶어 죽을 수도 있고,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얼어 죽
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훈련된 사람만이 간첩으로 내려온다는 사
실입니다. 그러나 간첩활동을 하다가 자신의 생명을 더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절
대로 성공적으로 간첩의 사명을 완수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자신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
는 사람은 결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일보다 자신의 일
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절대로 위대한 신앙의 반열에 올라 설 수가 없습니다. 그
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환란을 통하여 아브람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자아를 철저하게 깨
뜨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
보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환란을 통하여 변화시키어 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환란을 주신 목적이었습니다. 오늘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몸
부림을 치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어떠한 상
황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도록 환란을 통하여
연단시키고 계신다는 진리를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
중에서 어려움과 환란으로 말미암아 큰 인생의 위기 가운데 처한 분이 계십니까? 사업
의 어려움, 가정의 어려움, 부부관계의 어려움, 부모와 자식간의 어려움, 직장 동료와
의 어려움 등 인생의 많은 문제로 인하여 갈등하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오늘 선포되어
지는 말씀을 통하여 위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땅을 떠나서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비상섭리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사랑하는 믿음
의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기 위하여 특별한 섭리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
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자주 하나님의 비상섭리를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
면 우리 믿음의 성도는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정상적인 섭리를 따라서 살아갈 때에
그 길이 최상의 축복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인생길 가운데에 어려움이 생기면 생길수록 하나님
을 더욱더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발생할수록 하나님을 보다 더 신뢰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지식과 힘과 수단과 방법을 이용한 인본
주의적인 결정은 반드시  그 결과가 죽음의 길이요 사망의 길이라는 진리를 꼭 명심하
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람처럼 잠시 잠깐의 환란을 피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 갔다가 더 큰 환란을 당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마시고 하나님의 약
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아무리 인생의 어려운 순간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그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는 믿음을 갖고서 신본주의적인 결
정을 내리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아브람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
와 기적이 동일하게 임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