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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생활, 어떻게 해야 잘 할까? (엡 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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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어떻게 해야 잘 할까? (엡 4:10-16)

하나님께서 다시금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 2004년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1년은 자연스레 시간이 지나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는 참으로 귀한 선물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는 시간들입니다.

윤형 방황(輪形彷徨)

알프스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13일간 방황하다가 구출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매일 12시간씩 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길을 잃은 장소를 중심으로 불과 6Km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눈을 가리면 똑바로 걷지 못합니다. 20m를 걸으면 약 4m 이내의 간격이 생기며 100m를 가게 되면 결국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되는데 이 현상을 윤형 방황(輪形彷徨)이라고 합니다.

눈을 가리고 가급적 똑바로 걷는 데는 두 가지의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과감한 보조(步調)로 성큼성큼 걷는 것이며 또 다른 비결은 약 30보 걸어간 후 잠깐 멈추었다가 새 출발의 기분으로 또 30보를 걷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생에도 윤형 방황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눈 가리고 걷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소신대로 과감하게 전진하고 가끔 새 출발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새해의 소망 

전쟁과 지진,분쟁과 질병 등 온갖 죽음의 그림자로 점철됐던 2003년의 묵은해가 저물고 새 희망의 2004년 밝은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굴곡 많았던 한해를 접고 새로운 희망 속에 2004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난제를 안고 출발하는 새해이지만 우리는 올바른 영적 결단을 통하여 역사의 희망이 되는 교회 공동체 건설의 비전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격랑이 될 2004년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의 의지가 집약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보혜사 성령이여 깨끗하게 하소서' 라는 주제를 따라 교회의 성결과 건강한 국가 사회 건설을 향해 매진하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해는 집권세력의 국정 미숙과 국가 내부의 이념적 대립, 지역 이기주의 등으로 1년 내내 혼란이 계속되었고 극도의 패륜적 사회상이 노출되었습니다. 이는 세상을 성결케 하는 교회 본연의 사명 수행에 소홀히 대응한 교회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새해에는 더욱 심각한 정치적 대결구도와 물질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사회의 윤리적 기능상실이 심히 우려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철저한 자기 갱신과 관리를 통하여 교회의 성결을 유지하고 혼란한 사회를 바로잡는 예언자적 교회 역할에 충실 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복음증거의 열정과 능력을 회복하도록 하는 특단의 결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서 점점 상실되어가는 복음증거의 열정과 능력의 회복은 모든 사역에 앞선 제 1순위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교 1백20주년을 맞는 금년이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의 신기원을 수립할 수 있도록 모든 교회들이 특단의 결의와 각오를 다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증거의 선두에 위치한 모든 교회들의 각성과 분발이 있을 때 우리 사회의 많은 부정적 장애물을 극복하고 하나님나라 확장에 성공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한국교회와 함께 할 것입니다.

한국기독교 선교 1백년과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우리 한국교회의 상황은 우리 교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적잖은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장이나 부흥이 아닌 침체, 정체, 감소라는 말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교회의 사회에 대한 영향력의 감소와 비례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오늘날처럼 교회나 교인이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조차 작은 교회였음에도 위기의 한국사회의 희망의 등불로,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는 소외된 이들의 위로자로,때로는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선구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생명력이 있는 교회였기 때문에 오늘의 교회성장을 이루는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30여년 사회의 경제발전과 함께 급속도로 성장 팽창한 한국교회는,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분명하고 일치된 방향이나 대안들을 제시하지 못해 오늘날의 정체 혹은 침체를 가져오게 했다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새해의 한국교회는 분명 달라져야 하며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IMF보다도 더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 속에 있음에도 주도권 싸움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정치권과, 노동자 농민들의 분규, 단속에 내몰리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현실들은 과거와 같은 교회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합니다. 또한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기준을 넘어서서 빛이 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교회공동체와 개인들의 삶도 복음전파와 성장에 저해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는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고 자성하는 기회가 되었고 새로운 선교적 대안인 생명 살리기- 생명존중, 생명보전, 정의 평화, 사랑, 폭력극복, 환경보전 등의 운동으로 사회적인 책임을 통한 복음 선교를 하게 한다는 점에서 소망이 되고 있습니다. 신앙과 경제 등의 생명 살리기를 통해 과거 위기의 한국사회에서 빛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선교초기의 한국교회로 변화가 될 때 우리는 또 다른 한국교회의 성장이 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고 영향력이 있는 교회로 변화 될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는 얼마나 힘든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가요? 순간순간마다 기도를 하지 않고, '그 분'이 보내주시는 도움의 손길 없이 어떻게 그 힘든 세월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을까요? 2003년 지난해 사람들은, 예순다섯 혹은 예순이 정년이던 시절은 가고 이제 마흔 다섯 살이 되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의미로 '사오정'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뒤이어 56세까지 회사에 남아 있으면 도둑××이라는 뜻의 '오륙도'라는 섬뜻한 말에 이어 정년 나이는 45세가 아니라 38세라는 의미로 '삼팔선'까지 등장했습니다. 급기야 '이태백'이라는 억장이 무너져 내릴 듯한 말도 나돕니다. 이태백은 '이십대의 태반은 백수'라는 뜻의 줄임말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신조어입니다. 어찌 기도가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십대에 아버지가 된 어느 가장이 다섯 살배기와 네 살배기 아들을 한강에 내다 버렸느니,수능 성적을 비관한 고3 수험생이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는 침통하고 그저 가슴이 먹먹해지는 뉴스를 우리가 어떻게 기도도 없이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강도를 더 해가는 충격파 뉴스들이 텔레비전과 지면을 장식했고,2004년 새해라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그런 강도 높은 뉴스를 대할 수가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에이즈에 감염 되었고,빈곤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하는 시에라리온(서남아프리카의 한 나라)의 아이들이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현장의 선교 보고를 들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멈출 수 있겠습니까? 부모 형제를 포탄에 빼앗기고 영문도 모른 채 분노를 키우는 이라크의 전쟁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기도에 게으를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혹은 나라와 민족의 번영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도 우리는 두 손을 모이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나와 가족의 복을 비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도를 하고 사회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대승적(大乘的)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또 주위의 어려운 처지에 놓이거나 건강이 좋지 못한 이웃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뉴스위크 한국판 2003년 12월 24일자는 '신앙이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흥미로운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영국 듀크 대 종교 영성 건강 연구소의 해럴드 쾨닉 소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환자가 의사에게 '함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환자가 같은 종교를 믿으면 증세가 심각한 경우에는 의사들이 환자와 함께 기도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뉴스위크는 쾨닉 소장의 말을 빌려 "의사가 달리 손쓸 방도가 없을 때 그 문제(함께 기도하기)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소개했습니다. 뉴스위크의 보도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뇌활동이 활발해져서,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치심대로 기도로 2004년 한 해를 호흡하시기 바랍니다. 2004년, 걱정과 근심 그리고 한숨은 뒤로 하고 기도부터 하고 2004년 새해를 기도로 열어야 할 것입니다.

비젼 있는 인생은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고 은혜로 충만케 하시는 그 일을 교회를 통해 하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서지 못하면 이 세상도 소망이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교회 중심적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순교하기 직전에 했던 설교를 보면 광야에 모여 생활했던 그 무리들을 ‘광야교회’ 라고 칭했습니다. 그들은 신앙공동체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이 중심이었고 믿음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먹여주시면 먹고 안주시면 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하나님이 전부였으며 시작이요 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교회를 통해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며 정화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려면 교회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비젼은 교회에서 나와야 합니다.

교회를 가족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며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며 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한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가족이 될 때의 유익은?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게 한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우리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우주의 시작도 하나님이시며 인류의 시작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가정의 시작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담에게 그 아내 하와를 보내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둘이 한 몸을 이루어 가정을 시작하게 하셨고 거기서 자녀가 나와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시간의 시작도 하나님이시며 일주일의 시작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주일이 일주일의 첫날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하고 일주일이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바른 시작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러분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십니까? 우리의 신앙은 예배드리는 자세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첫 단추입니다. 이것이 잘못되면 뒤가 다 틀리게 됩니다. 좋은 신자의 표지는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에 실패하는 사람은 다른 것은 볼 것도 없습니다. 올 한해 예배에 성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는 법 4가지

1)미리 준비하라: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사람은 준비된 만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준비하고 옷도 준비하고 헌금도 미리 준비해야 하며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배에 실패하지 않도록 매 예배시간마다 예배를 위한 기도 후원팀이 있는 교회가 많은데 우리교회도 금년부터 중보기도학교를 통해 훈련된 분들에 의해 예배를 위한 중보기도사역을 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도 기도하십시오. 자신 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교회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 생명력 있는 말씀의 은혜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2)시간을 늦지 말라: 시간이 늦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더욱 나쁩니다. 조금만 일찍 서두르십시요.

3)예배시간에 집중하라: 생각이나 행동 집중해야 합니다. 일주일의 168시간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시간입니다. 사단은 할 수 있으면 우리의 예배시간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몸은 와 있는데 생각이 다른 데 가 있으면 안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4)말씀을 기억하라: 예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간은 설교말씀 시간입니다. 이 말씀을 설교노트를 활용해 참고하고 메모하는 것을 습관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훨씬 더 귀에 잘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말씀 노트를 잘 보관하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신앙생활에 좋은 교과서로 삼으십시오.

풍성한 교제를 나누게 한다.

살전5:10,11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사람이 살면서 문제가 없을 수는 없으며 문제는 누구나 다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들을 혼자 해결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형제들을 통해 도움을 주고 받기를 원하십니다.

전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래서 소그룹에 소속이 되는 것 중요합니다. 교회가 커져갈수록 소속감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교회의 소그룹에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너무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며 신앙생활의 적신호입니다. 다시 말하건대 가장 중요한 것을 등한히 하고 있고 가치 있는 것들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멘토를 찾아라

멘토(mentor)라는 말은 고대 그리이스 신화인 오딧세이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타이카 왕국의 오딧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 텔리마쿠스(Telemacus)를 자신의 충실한 친구인 멘토에게 맡깁니다. 멘토는 그에게 때로는 아버지로, 때로는 스승으로, 때로는 친구가 되어 자신의 지혜를 전달하여 줌으로 훌륭한 왕자로 키우게 됩니다. 이후로 멘토라는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어왔습니다. 멘토란 “비교적 경험이나 연륜이 많은 사람으로서 상대방의 잠재력을 내다볼 줄 알며,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꿈과 비전을 이루도록 도전과 격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인생의 코치, 영적인 스승으로서 항상 상대방이 균형 있게 성숙하도록 돕고 정한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돕는 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이와 같은 멘토들이 사역의 현장에서 많이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가족부 기초성경공부반, 바나바, 일대일 제자양육훈련, 구역, 남선교회, 여전도회, 전도폭발 훈련, 제자훈련, 장년성경공부반, 경로대학에도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나의 믿음을 자라게 한다

히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

우리의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또한 자라려면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것이나 먹으면 안됩니다.

예)한 번은 소년이 학교 가기 전에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 오늘 학교 가기 싫어." 하고 소년이 말했다. "왜 가기 싫어?"  "지난주에 학교 농장에서 닭 한 마리가 죽었는데 다음날 점심으로  닭 스프를 먹었고 3일 전에는 돼지 한 마리가 죽었는데 그 다음 날에는 돼지 불고기를 먹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왜 학교에 가기 싫으니?"  "어제 옆에 반 담임 선생님이 돌아가셨단 말에요!" 가려서 드시길 바랍니다. 잘못 먹으면 병도 걸리고 죽기도 합니다.


나의 사역을 발견하게 한다

엡4:11,1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딤전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직분자를 교회에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직분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라가게 하고 온전케 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성도의 온전함은 봉사를 통해 온전해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우리의 봉사(사역)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사실을 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떤 사역을 할 것인가? 자신의 열정과 은사를 따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유하게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점이 고유한가요? 사역과 관계되어 우리는 다른 사람과 적어도 5가지가 다릅니다. 그것을 SHAPE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영적은사, 열정, 재능, 개성, 경험 등입니다. 이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스타일도 다 다릅니다. 바로 그것을 잘 찾는 것이 사역을 잘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열정이나 은사나 스타일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임명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발견하는 것입니다. 자기에 맞는 사역을 발견해서 그 사역을 할 때 내 기쁨과 열매는 배가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우리가 꼭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리빙스턴 목사가 성전을 건축하면서 세 석공에게 이러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소"라고 하자 한 사람은 "돈을 벌어서 가족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당신과 맺은 계약 때문이라"고 했고 마지막 한 사람은 "부족하지만 목사님과 더불어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맡은 일을 사명으로 알고 기쁨으로 신앙생활과 봉사와 섬김과 사역을 감당하는 감격적인 삶인가요?

200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김없이 새해의 태양은 맑고 밝게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새해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 앞에 선물을 받은 감사의 보답으로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 힘차게 믿음의 경주를 행진해 나가며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해나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낡고 묵은 생각을 버리고 깨끗한 영혼으로 새해를 맞게 하소서"

새 출발

새 날의 문턱에서 나는 두려움을 쫓아버리겠습니다. 내일 병마가 덮칠지라도, 오래 견디기 힘든 사건이 휩쓸지라도, 이 해의 경주가 눈물의 경주가 될지라도, 그 때마다 힘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겠습니다. 내일 험한 벼랑길을 걷게 될지라도, 모레 쓸쓸한 광야에 내던져질지라도, 날마다의 양식을 주시고 헤치고 나갈 지혜를 그 때 그때마다 주실 주님의 사랑을 믿겠습니다. 나는 미래를 모르고 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아는 것은 그때 그날에 주께서 필요한 것을 주시리라는 사실 뿐입니다. 나의 나그네 길에 그것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나의 욕심을 채우지 마시고 주님의 생각을 이루어 주십시오. 주께서 주시는 복을 한꺼번에 듬뿍 받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날마다 필요한 만큼만 도와주십시오. 아주 쓰러지지 않도록 다시 일어날 만큼의 힘과 아주 낙심하지 않도록 다시 출발한 만큼의 희망을 떨어지지 않게 공급해 주십시오. 지저분한 화젯거리에 벙어리가 되게 하시고 남을 뜯어 내리는 이야깃거리에는 귀머거리가 되게 하시며 남의 실수에 대해서는 장님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새해의 문을 또다시 열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지난해야 어쨌든 지금 시작되는 새 날들은 얼룩지지 않았사오니 이번만은 멋진 걸작을 그리게 해주소서. 오늘부터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채우게 하시고 남에게 기쁨을 주는 날들이 되게 하소서. 물질을 모으는 것보다 인격을 닦는 것이 내가 남기는 진짜 유산이오니 사랑의 본을 남기고 믿음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나의 기쁨을 보람있는 일로 삼게 하시고 나의 행복을 주께서 알아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하나님, 부족한대로 최선을 다해 사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시고 누가 뭐라고 하든지 결과적으로 당신을 기쁘게 하는 일들을 하게 하소서.

아버지여, 당신의 그 능력 있는 날개로 나를 감싸 주셔서 화 날 때 잘 참게 하시고 미울 때도 남을 욕하지 않게 하시며 거짓말  공해, 과장 선전 공해의 주범이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당신의 사랑의 눈을 주셔서 역사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시고 신뢰와 소망으로 보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로운 귀를 주셔서 이웃의 아픔의 소리를 듣게 하시고 고통의 신음소리를 듣게 하소서. 당신의 능력 있는 입을 주셔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희망을 속삭이며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이제 미지의 날들을 향해 출발합니다.

폭풍의 밤에도 주님이 한 가닥 빛을 던져 주실 것을 믿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그것을 이길 만한 힘을 주실 것을 확신하오며  담대하게 출발하겠나이다. 나는 내일을 모르나 미래 속에 하나님께서 계시오니 실수해도 잘 봐주시고 혼란스러운 십자로에서 바른 길을 일러주소서. 염치없는 말씀이오나 계속해서 용서해 주시며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고 넘어지면 내버려두지 마시고 꼭 일으켜 주소서. 그 동안 하나님이 주신 복을 소모한 것을 나무라지 마시고 새 복으로 새해를 채워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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