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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 / 마 4:12~17 (겔 3:16~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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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 
본문 : 마태복음 4:12~17 (에스겔 3:16~21 참조) 

 
  여러분은 예수님을 과연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빛으로... 때가 되어 예수님이 스불론과 납달리 근처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마태복음 기자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증거했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그의 증거에 따르면 예수님은 어두움에 거하는 사람들을 위한 빛으로 오셨고, 더 나아가 죽음에 처한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친히 자신을 그렇게 증거하시지 않았습니까? 요한복음 8장 12절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고 하는데 그 빛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특히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빛은 생명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닙니다. 광합성 원리에 따르면 빛이 있어야 식물의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유난히 비가 자주 왔기 때문에 일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농작물 재배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식물은 빛을 통해서 결실을 맺습니다. 쉽게 말해서 빛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빛이 없을 것 같으면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것 같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 같으면 그 누구도 결코 죽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가장 귀한 구원의 진리입니다.

  일찍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 세례 요한이 누구입니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또한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 요한의 목소리가 온 유대 광야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증거한 그 예수님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세상의 구주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가 물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그 후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사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며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비로소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메시야로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이던 헤롯 안티파스가 그의 동생 빌립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참으로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짐승만도 못한 그런 짓을 못 본 척하고 있을 세례 요한이 아니었습니다. 헤롯을 드러내 놓고 꾸짖었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세례 요한은 체포되었고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이 역사의 무대 전면에서 사라진 다음 예수님이 비로소 등장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말씀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광야에서 회개를 촉구하던 세례 요한의 외침과 같지 않습니까?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미 시작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도 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 어째서 사람들에게 또 다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까? 도대체 회개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회개는 말 그대로 뉘우치고 고치는 것입니다. 때문에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이념, 또는 이기적인 욕심이나 편견 따위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기로 결단하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 속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나는 것이요 회개로 말미암는 중생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삶의 시작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할 것 같으면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사람만이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를 삶 속에 영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예수님도 가장 먼저 회개를 촉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회개의 촉구를 회개의 복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개의 복음은 그 때와 같이 오늘 여기서도 계속해서 선포되어야 합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8~19)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회개의 복음이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이르렀습니다. 원래 네 사람의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갈릴리 바다가 그들의 삶의 터전이요 고기를 잡는 것이 그들의 돈벌이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람을 낚는 어부로 그들을 부르신 그 부르심을 받고 그들은 즉시 삶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가족들과 함께 고기 잡는 일이 삶의 전부였지만 이제 그들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삶의 중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비롯한 대부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 일시적이나마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겁에 질려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예수님의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고 또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엄청난 환난과 핍박, 심지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생명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지 않았습니까? 사도행전 4장 19절, 20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 구원의 복음, 즉 생명의 복음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구원은 빛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영생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오직 빛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그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복음은 예나 지금이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파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 전하는 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전하고 증거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옛날 선지자 에스겔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의 귀에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이 항상 맴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봉독한 에스겔서 3장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악인이 죄 때문에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러나 그 악인을 깨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악인이 그 죄로부터 돌이킬 기회조차 얻지 못해서 죽을 것 같으면 그 책임을 파수꾼으로 세운 에스겔에게 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명의 중대함을 바르게 인식한 에스겔은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죽기까지 충성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서 빛으로 오셨습니다!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죄를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생명의 파수꾼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옛날 선지자 에스겔, 세례 요한, 베드로, 요한 그리고 사도 바울이 걸어간 발자취를 따라 걸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목숨을 걸고 계속 전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장차 찬란하게 빛나는 주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게 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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