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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을 위한 시작 / 느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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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을 위한 시작
느헤미야 1:1-5


  존 맥스웰(John C. Maxwell)과 짐 도넌(Jim Dornan)이 지은 ‘영향력(Becoming a person of influence)’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떻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에 한 시인의 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 내 삶은 수십 명과 만나겠지.
저녁 해가 지기 전 좋고 나쁜 수많은 흔적을 남기겠지.
내가 항상 바라는 소망, 내가 항상 간구하는 기도가 하나 있다오.
주여, 제 삶이 도중에 만나는 다른 삶을 돕게 하소서.'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좋은 영향을 주고받느냐 나쁜 영향을 주고받느냐 입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에게 영향을 주느냐 아니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느냐, 또 일시적으로 영향을 주느냐 오랜 기간 영향을 주느냐…….

오늘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일어났던 일을 배경으로 합니다. 오랜 포로생활 후에 주어진 익숙하지 않은 자유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는 분열과 다툼으로 어려울 때였습니다. 더불어 외부로는 이방인들이 공격해오면서 방어할만한 능력도 없이 성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사로잡혀 가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배감과 자괴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함께 성을 쌓는데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함께 일을 이루었고 삶의 터전을 지켰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큰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가서 예수님 오시기까지 유대백성들 삶의 중요한 영향을 주는 일들을 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하면서 백성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느헤미야의 지도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우리는 바로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시대를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 스스로를 살펴보아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그냥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어!’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느끼는 영적 부담감을 갖고 계시다면 느헤미야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영향력을 통해서 이 시대가 다시 살아나고, 내 인생 여정 동안 만날 사람이 다시 일어나고 희망을 얻고 깨졌던 가정이 회복과 행복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자기 민족에게 아름다운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지혜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성경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느헤미야는 역사의 현실을 들을 수 있는 열린 귀가 있었습니다. 역사의 현실을 들을 수 있는 열린 귀를 다른 말로 역사의식이라고 합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도대체 어떤 시대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현실에 눈 감고 하늘 소망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바꾸어 나가는 역사와 현실 앞에 책임지는 ‘책임적 존재’ 입니다.

여러분! 이란에서 발생했던 지진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동기도제목으로 놓고 같이 기도하셨죠? 마음에 와 닿으십니까? 별로 그렇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와 관계한 일에는 책임을 느끼며 내 문제라 생각하지만, 멀리 이란에서 있었던 지진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실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정치를 보며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특징과 상황, 사람들 마음의 흐름을 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본문 4절 말씀,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느헤미야가 울고 슬퍼했던 이유는 자기 백성들이 큰 환란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과 800마일 정도, 즉 서울과 부산 거리의 약 4배 정도 되는 만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이방나라에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입니다. 성경 표현에 의하면 술관원입니다. 고대에는 독을 탄 음식이나 술로 왕을 독살하려 했기 때문에 왕은 자기가 신뢰하고 총애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국사도 논의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비서실장이나 경호실장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조국이 어려움에 처하고 성은 무너진다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형편을 더 자세히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멀리 수산궁에서 느헤미야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며 별 어려움이나 곤고함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신문 보도에 따르면 강남 사는 사람들이 이웃돕기 참여도에 있어 가장 낮다고 합니다. 모두 자기처럼 사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사정을 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관심을 가질 수 없고, 관심이 없으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일에 몰두하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정치란 어떻게 하면 권력을 잡을 것인가, 잡은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당시 정치의 가장 핵심부에 있었습니다. 왕으로부터 어떻게 신뢰를 유지할 것인가는 느헤미야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런 느헤미야에게 조국의 사정이 보일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일로 인해 금식 하고 괴로워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정치와 경제,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의 소리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나와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가슴 찢어지는 이야기에 대해서 귀를 열고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역사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의 아픔을 듣고 함께 아파하는 열린 귀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행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행동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와 시대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한반도와 청소년, 청년들을 함께 맡기셨습니다. 바로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열린 귀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야 할 모습에 대해 분명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대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이 갖추어야 할 모습, 하나님 백성다운 삶이 어떠해야하는 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10절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라고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다투고 싸우는 것과 외부의 적이 쳐들어왔을 때 무참히 깨어지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다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사야 42장 6절에서 7절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하는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과 어려움 당한 사람들을 이끌어 내어 빛 가운데로 인도해야 될 사명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또 이사야 49장 6절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말씀과 같이 느헤미야가 보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렇게 헤매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일어서서 이방의 빛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느헤미야는 가슴 아파하고 울면서 기도합니다.

저도 상담을 통해 혹은 그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관찰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많이 돌이키는 때는 주로 ‘맞아!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어. 이렇게 살려고 지금까지 고생한 게 아니야!’ 깨닫고 처음 마음을 회복할 때입니다. 자기 비전과 꿈이 새롭게 세워질 때 인생은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느헤미야가 울며 금식한 이유는 자기 민족을 보는 기준 때문이었습니다. 기준…….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혹은 아무렇게나 살 백성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꿈꾸며 이 민족을 향한 비전이 느헤미야에게는 있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만들어야할 이 백성이 오히려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어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이 좀 손해보고 자존심 상하면 몸부림치며 괴로워는 해봤지만, 하나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울며 금식해 보았습니까? 내 안에서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들, 예를 들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책임 의식,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몸부림 등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내 자식들과 작은 이익 앞에서는 몸부림치면서도 하나님 계획이 무너지고 하나님 사랑이 감춰지는 것에 대해서는 정작 무덤덤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녀다운 삶의 기준과 꿈과 비전이 없습니다. 기준이 없는 사람은 자기 기준에 따라 살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번 선거가 끝나고 선출된 몇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짧게나마 이야기하면서 이해하게 된 그분들 생각은 본인들은 감당할 능력이 없으니 직분의 옷을 입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두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직분이 여러분 인격을 나타내고 신분을 나타내는 옷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일하라고 주신 쟁기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구원에 확신이 있습니까? 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사셨던 것처럼 당신도 하나님을 위해 사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당신이 자격과 용기, 능력이 있어 세워진 것입니까 아니면 특별히 훈련하여 하나님 일에 쓰임 받도록 하고자 세워진 것입니까?’ 두 분 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직분자에 대한 그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안수집사라면, 권사라면, 장로라면 하는 그림과 현재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사실은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직분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 위해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몸부림치시면서 기도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목사와 장로, 안수집사와 권사로 세우셨는데 정작 하나님 영광릏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가슴 치며 울어보셨습니까? 이런 안타까움이 없으면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직분과 직위로 권위를 행사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주어진 권위(Given authority)는 없습니다. 스스로 만들어 가지 않으면(owning authority)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느헤미야의 통곡을 회복하십시다. 느헤미야의 금식을 회복하십시다. 내 속에 하나님 자녀다운 삶의 모습이 없음을 안타까워 할 수 있는 양심, 그 인생 기준을 회복하십시다. 그것이 사회와 역사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힘이 됩니다.

1791년 2월 26일 요한 웨슬레가 노예무역 폐지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영국의회의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한 장의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힘이 당신을 키우지 않았다면 당신은 종교와 영국, 더 나아가 인간 본성의 적인 혐오스러운 그 죄악에 맞서 영광스러운 투쟁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 일을 위해 당신을 키우지 않았다면 당신은 인간의 적과 악마에게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 편이면 누가 감히 대적하리요? 하나님보다 강한 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과 그 강대하심으로 끝까지 나아가십시오. 해 아래 가장 사악한 노예제도가 사라질 때까지……. 어릴 적부터 당신을 인도하신 분께서 이 일뿐 아니라 앞으로도 당신을 강하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의 친애하는 종 존 웨슬리.‘

이 편지를 보낸 지 웨슬리는 4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웨슬레는 노예제도를 폐지하며 심한 고초를 겪고 있는 윌버포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끝까지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싸우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국 1807년 노예무역제도는 폐지되었고, 1833년 윌버포스가 죽고 난 몇 달 후에 영국 제국 전역에서 노예제도가 법으로 금지되었습니다. 웨스트민트 사원에 있는 윌버포스의 비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대중의 편에 선 훌륭한 인물이자 박애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리더/ 동포의 육체적 영적 필요를 충족시킨 인물/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영국에서 미국노예무역이라는 죄악을 쫓아버린 업적/ 대형제국의 모든 식민지에서 노예제도 폐지의 길을 닦은 업적/ 그의 이름은 이런 업적으로 칭송 받으리라!’

여러분은 자신의 어떤 현재를 사랑하십니까? 좀더 많은 돈과 유명세를 사랑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자녀답게 살 때 때로는 고난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계속해서 그리워하고 사모하며 인생의 목표로 삼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금처럼 빛처럼 사용됩니다. 여러분 자신과 가정, 이 시대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바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시는 인생 기준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가 민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던 셋째 이유는, 운명을 바꿀 진정한 영향력을 가진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4-5절 말씀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 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는 바로 메데파사였습니다. 지금 느헤미야가 섬기고 있는 왕은 고대근동 아니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자였습니다. 메데파사 왕의 영향력과 힘으로라면 고향에 돌아가 성을 건축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왕과 느헤미야는 절대적인 관계였습니다. 왕은 느헤미야를 무척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느헤미야가 청한다며 왕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왕에게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의 미래에 가장 본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하나님께 먼저 아뢰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의 자리로 나갔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왕에게 바로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보다 하나님을 움직일 때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기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느헤미야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알고 기도의 능력을 믿었으며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 뿐 아닙니다. 어두운 역사를 밝혔던 수많은 사람들과 자기 운명을 극복하며 하나님 영광을 드러냈던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의 공통점은 기도였다는 사실입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느헤미야 1장을 강의하면서 느헤미야 1장 말씀은 느헤미야의 기도와 행동이 너무나 잘 어우러진 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가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다음과 같이 4가지 항목으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기도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이에게 참을성을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기도 전에 먼저 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하실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둘째 기도는 사물의 본질을 보게 합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것을 보고 생명을 걸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나고 나면 쓸데없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게 되면 그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셋째 기도는 마음을 안정시켜 줍니다. 두려움과 근심이 있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마음에 안정을 주고 평안 가운데 간구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믿음에 생명력을 더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 믿음이 더욱 생명력 있게 살아나 환경을 보지 않고  여건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붙들고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나폴레옹 장군이 전쟁을 치를 때면, 고지에 올라가 전쟁을 지켜보며 상황을 분석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누가 이길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전투를 바라보고 있던 나폴레옹은 옆에 있는 네이(Ney)장군에게 명령했다고 합니다. “장군 저기 저 언덕에 농가가 보이지 않소? 저 농가를 점령하시오!” “아니, 장군님 저 농가는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데요.” “아니오. 내 말대로 하시오! 저 농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괜찮소. 꼭 사수하시오.” 네이 장군은 나폴레옹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복종했고, 농가를 점령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이렇게 승리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었던 나폴레옹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승리에 능한 장군들은 어디를 거점으로 해야 할지 잘 압니다.

영적인 사람은 무엇이 승리의 길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남편 되시는 분들 본인들이 자기 아내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아내는 내 말이면 껌뻑 죽어!’ 아내들께서는 남편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녀들에게 한번 물어 보십시오. ‘엄마 아빠가 너희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예’라고 대답은 할지 모르지요.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나도 내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누군들 내게 절대적인 존재일 수 있겠습니까? 내게 가장 영향력 있는 분이 누구일까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아내에게 가장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자녀에게 가장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아내와 자녀를 설득하기 전에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향력 있는 하나님께 내 자신이 먼저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너무나 고달프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언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을 통해 나라가 달라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통해 달라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역사를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내 가정의 역사와 시대의 역사가 흘러가는 데에 눈 뜨시기 바랍니다. 책임지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한 그림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린 삶의 모습이 되지 못할 때 통곡 하십시오. 그때 금식하시고 회개 하십시오. 눈앞에 조그마한 이익 앞에서 괴로워하고 고통스로워 몸부림치지 말고 조금 더 거룩한 일로 울면서 금식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능력의 하나님 앞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가 다른 누구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기도 앞에 꼼짝하지 못하시도록, 여러분의 부르짖음 앞에 듣지 않으면 안 되시도록 존귀하고 귀한 존재가 되십시오. 여기서부터 우리는 회복의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내 삶과 가정, 역사와 민족이 회복하는 일에 쓰임 받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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