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찬양의 능력(2) / 시 34:1-6

  • 잡초 잡초
  • 449
  • 0

첨부 1



      찬양의 능력(2)

본문: 시편 34:1-6절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음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심장의 맥은 리듬이요, 말은 선율이요, 억양은 음정, 이미 음악의 기본적인 요소를 갖춘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말은 곧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음악에서의 가치관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아주 조그마한 일에도 기뻐하며 즐거워 할 때가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하찮은 그런 것에도 본인에게는 말할 수 없이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두가 축하하며 즐거워해야 할 때 기꺼이 노래하며 춤을 출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얻게 되는 자그마한 기쁨에도 우리는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의 삶 자체가 찬양이었고, 마리아도(눅1:46-56), 사가랴도(눅1:67-79), 시므온도(눅2:29-32), 심지어는 최후의 만찬까지도 찬양으로 마침을 볼 수 있습니다.(마26:17-29,30) 하나님에 대한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찬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함께 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은혜를 더욱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 찬송합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입니다. 우리는 보통 주어진 시간에 하루 세끼를 먹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우리 신체에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야만이 인간이 살아갈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찬송은 언제 하는가요? 시도 때도 없이 해야 한다면 넌센스일까요? 사도바울은 옥중에서도 찬미하였다고 하는데 시간을 정해서 했겠습니까? 유대교는 제사를 정해진 시간에 드린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제사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어느 때든지 드려야 합니다. 항상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인하는 성도들은 항상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3장 15절에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146:1,2)
로렌스 형제는 파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수도원의 주방에서 일하던 요리사였는데, 자신이 맡고 있는 낮고 오히려 하찮은 직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란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그가 수도원 주방에서 감당해야 하는 산더미 같은 일들-접시 닦기, 대형 후라이팬에 달걀 부치기, 바닥 훔치는 일을 하면서도 도리어 그는 그 모든 혼란의 와중에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찬양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일시 중지' 시간을 갖고 그 시간에 잠시나마 하나님께 주목한 후 그분께 찬양과 감사기도를 몇 마디 올리고 나서 다시 계속해서 자신의 직무를 돌봤습니다. 그의 삶이 그처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통로가 되었기에 그로 인해 그의 인격 전체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이 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충고를 듣고자 유럽 전역에서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하기 위해 그의 주방을 떠난 적도 없고 오히려 일생동안 거기에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께 온전히 주목하는 비결을 터득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기도가 상달되는 비결입니다. 그 한 가지 사실이 그의 생을 변화시켰고, 그에게 곧 바로 엄청난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거기서도 낮고 보잘것없는 하찮은 일을 맡았습니다. 우리 역시 어디 있든지 간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설사 여러분이 부엌에서 복잡한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 하더라도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란 바로 여러분의 전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부엌에서, 학교에서, 가게에서 사무실에서, 혹은 시장에서 그분께 전심을 드릴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찬양과 기도와 말씀 그리고 봉사라는 4가지 요소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찬양이 얼마나 귀한 능력을 우리에게 주는가에 대하여 말씀을 상고하면서 은혜 받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일찍이 다윗이 시련 당하던 시기에 그를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시를 읊었는데 그의 감사의 심경이 잘 표현된 부분의 시를 우리가 감상한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니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라고 시작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생활을 쉬지 않겠다는 다윗의 가슴 깊은 결심이요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2절 상반에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찬양이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곧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찬양에 무슨 능력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첫째, 곤고함이 물러가고 기쁨이 솟아납니다.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곤고함은 피곤하고 고달픈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아마도 짜증이 나고 신경이 예민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니 듣고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곤고함이 물러나고 기쁨이 넘칩니다. 다윗이 악기를 탈 때 사울왕 속에 있었던 악신이 물러가고 그 마음이 상쾌해졌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속이 상하고 환경에 고통이 닥쳐올 때, 마음이 심히 괴로울 때 찬양하면 그 모든 시험을 능히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에게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하십니다. 4절에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라고 했으니 이는 기도의 응답이 찬양하는 자에게 임한다는 말씀이 됩니다. 늘 찬양하면서 하나님을 높이는 생활 속에는 하늘에서 임하는 기쁨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찬양은 과연 향내나는 제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하면서 "찬양은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셨습니다. 찬양의 제사를 올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을 속히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소원이 속히 성취되기를 원하시면 부지런히 열심히 찬양하십시오. 기도하는 자는 항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로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드리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람원이라는 산으로 가시면서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26장 30절에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환난에서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6절에 보세요.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피곤하고 고달프다고 자포자기하지 마시고 찬양하여 새 힘을 얻고 일어서서 전진하시는 여러분 되십시오 아무리 환난이 극심할지라도 찬양하면 헤쳐나갈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넷째, 찬송은 회개하고 주를 의지케 합니다.
영국 뉴 잉글랜드 어느 농가에서 살고 있던 한 여인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를 언제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앉으나 서나 아이에게 젖을 줄 때나 재울 때는 늘 찬송을 불렀습니다.
"새 예루살렘 복된 집 네 이름 높도다 이 수고 언제 그치고 나 거기 가리까
나 거기 가리까"(찬송가 225장)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자라면서 이 찬송을 듣기만 하면 행복한 얼굴 표정을 지었습니다. 울다가도 이 찬송을 듣기만 하면 편안함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들어 점점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찬송소리가 점점 약하여지더니 드디어 그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말입니다. 아이의 행복은 그친 것 같았습니다. 얼마 후 새 엄마가 생겼습니다. 구박이 심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어머니가 보던 성경을 품에 안고 도시로 가출하였습니다. 혼자 살면서 결국 타락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청년이 되었지만 생활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는 방탕생활을 하가가 결국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하숙집에 누워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옆 교회 전도사가 그 이야기를 듣고 하숙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간곡하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하여도 이 청년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전도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청년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습니다. 냉정하였습니다. 전도사도 힘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하다 말고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서 혼자 흥얼거리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새 예루살렘 복된 집 네 이름 높도다 이 수고 언제 그치고 나 거기 가리까
나 거기 가리까"
이 찬송을 듣는 순간 청년은 갑자기 몸부림치며 탄식하였습니다.
<아! 어머니의 찬송!> 청년은 어머니가 읽으시던 성경을 꺼내들었습니다. 그 청년은 몸부림치며 울어댔습니다. <어머니!> 그러면서 갑자기 방탕한 생활을 회개하였습니다 인생의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죄악의 쇠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청년의 얼굴에서는 평생 맛보지 못 하였던 기쁨의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찬송이었습니다. 찬송은 능력입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40:3)
다섯째, 한 밤중에도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합니다.(대하 20:22)
영국의 여객선 스텔라호가 암초에 부딪쳐 난파됐습니다. 거친 파도는 승객들이 탄 구명보트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여성이 탄 구명보트는 노가 없이도 계속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그 보트에는 유명한 가수인 마가렛 윌리엄스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승객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여러분, 이제 하나님께 의지합시다. 믿음의 징표로 함께 찬송을 부릅시다"
12명의 여성은 찬송을 부르며 공포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사나운 폭풍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순양함이 생존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짙은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여인들의 찬송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 보니 여인들이 구명보트에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크리스천이 12명의 여인들을 구출했습니다. 신앙은 삶의 위기에서 더욱 빛납니다. 고난 속에서 부르는 찬송은 기적을 창출합니다.
"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16: 25, 26)
여섯째,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욥35:10)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 자신의 축하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때때로 어려움을 당할 때 떠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제가 어렸을 때 옆집에 살았던 부인으로 이분은 종종 피아노를 치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찬송가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그 가정이 큰 불행을 당했고 부인은 찬송으로 그 아픔을 이겨나갔던 것입니다. 이런 광경을 본 저도 이후 어려움에 빠질 때마다 찬송하며 그 고통을 이겨나가곤 했습니다. 찬송은 제게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주었고 삶의 힘을 주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일곱째, 찬송에는 힘이 있고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찬송은 악한 귀신을 몰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불행과 저주와 어둠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능력입니다. 잠든 영혼을 깨우고 어두운 세력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옥에 갇혀서 찬송을 불러 이겼습니다. 부정적인 생각, 어두운 생각, 파괴하고 미워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고 불안과 걱정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생명의 본질, 바탕 근원은 기쁨입니다. 삶의 껍데기, 표피적인 데서 이런 저런 근심걱정으로 지겹고 따분하고 답답하게 지내지만 생명의 본 바탕에 이르면, 죄를 벗고 하나님 앞에 맨 몸으로, 맨 영혼으로 서면 기쁨이 솟구칩니다. 오히려 세상적 기쁨의 이유나 근거가 없을 때, 순수한 생명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독하고 답답한 상황, 절망적이고 두려운 상황이고 시들어 말라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놀라운 것은 속에서 자꾸 기쁨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다 뺏기고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 상황에서 배짱이 생기고 기대와 욕망을 버린 상태에서 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하늘도 맑은 샘물도 푸른 강물도 하나님을 노래하고, 푸른 나뭇잎과 붉은 꽃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생명의 기쁨이 피조 세계 안에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세상을 창조하고 좋다고 하셨습니다. 감옥에서의 기쁨, 기쁠 것 없는 상황에서 직접 인생의 바탕과 접할 수 있고 기쁨에 이를 수 있습니다. 기쁨이나 찬송은 죽음에 대한 생의 승리입니다. 죽음의 골짜기, 시련의 골짜기에서 기쁨의 찬송이 터질 때 지옥의 권세는 무너집니다. 믿음으로 탄식과 한숨과 저주가 기도로 찬송으로 바뀝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데 희망을 갖고 줄기차게 삽니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시105:2,3)
여덟째,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56:4)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음악이 있습니다. 하나는 감각적이면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영혼의 깊은 곳까지 즐겁게 해주며 기쁨을 가져다주는 음악입니다. 감각적인 음악으로 인한 즐거움은 잠시 잠깐이고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에 드리는 찬송은 우리의 영혼에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세상의 근심과 괴로움으로 방황하거나 마음의 평안이 없으신 분이 있습니까?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만한 대상을 찾지 못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찬송을 하십시오. 찬송을 모른다면 찬송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아니 감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혼이 맑아지고 힘이 납니다. 괴로울 때 지친 영혼을 감싸줍니다. 코넬이라는 분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흘러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시네.”
여러분, 정말로 찬송을 듣고, 부르고 해보십시오. 마음 속에서 생수의 강이 솟아날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아홉째, 마음을 치료하고 평안을 줍니다.
식물도 동물도 찬송가를 들을 줄 압니다. 두 호박 넝쿨 옆에 라디오로 각각 다른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한 곳에는 찬송가를, 다른 곳에는 록 뮤직을 계속 들려주며 길렀습니다. 찬송가를 듣는 호박 넝쿨은 라디오쪽으로 자라면서 라디오를 칭칭 감았습니다. 그런데 록을 듣고 자란 넝쿨은 라디오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듯이 자랐습니다. 일본의 한 대안의학자는 물에도 음악을 듣는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물을 떠놓고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려주었더니 물의 결정체들이 잘 정돈되었고 반대로 분노에 찬 거친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결정체들이 흐트러졌다고 합니다. 우리 몸의 70%가 물입니다. 음악을 들으면 우리 신체도 잘 정돈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곡식이 자라는 들판에서 풍악놀이를 하였습니다. 풍년을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의 찬송은 능력이기 때문에 감옥문도 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16:23)
열 번째, 영영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실수하게 되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죄와 실수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찬송하는 자는 영영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합니다. 다윗이 범죄하였지만 그는 항상 주님을 찬양하였기에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고 높이셨습니다.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욜2:26)
열한 번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합니다.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대하20:21- 23)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송할 때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찬송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ce.ro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