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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즐거워하여… 묵상하는 자 / 시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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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자 : 2003년 1월 18일
제  목 : 즐거워하여… 묵상하는 자
성경본문 : 시편 1편 1~3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1~3절) 

<목회기도>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를 살게 하신 하나님
존귀와 영광을 돌려 드리며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는 험한 세상에 살며 지은 죄가 많고 부끄러운 허물이 많아 회개합니다.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여 주시옵소서.
사함 받은 확신으로 기뻐하며 예배드립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세상에 살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낙담할 때도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이해하려들고 있습니다.
확신하여 의심 없이 믿고 순종하는 겸손을 구합니다.
이 시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은혜로운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 원치 않는 곳에 갇혀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 군대 간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잘 견디게 하시고
  상함이 없는 은총으로 돌보아 주시옵소서.
- 객지에, 외국에 나가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 병상의 환자들도 있고
- 믿음이 없어/낙심하여/이런 저런 핑계로…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진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는 부족한 종의 입술을 지키시고,
목소리에 기름 부으셔서 능력의 말씀, 생명의 말씀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과 영생의 길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이 주간에는 구정 명절이 들어 있습니다.
해가 바뀌어 2004년 달력을 걸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나이 1살 더 먹지 않았다고 좋아했던 분들도
이제 떡국을 먹으면 꼼짝없이 한 살 더 먹게 됩니다.
 
제 아내 친구가 늦게 아이를 낳았는데,
자기 엄마가 다른 친구 엄마 보다 나이 들어 보였던지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절대 떡국 먹지마" 하더랍니다.
 
떡국을 드시되 정신을 차리고 사시기 바랍니다.
들뜬 마음으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 드릴 가능성이 많은 주간입니다.
고향을 가셔도, 친구를 만나도 자신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줄 알아
범사에 근신하고 깨어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지키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금년에 마음 정한 대로 주일성수하며 살기를 결단했으니
주일을 범하지 않도록 예배의 자리에 꼭 있기를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다음 주일에도 예배의 자리에서 만납시다."라고 인사합니다.
 
 
복된 사람
 
복(福)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있습니다.
- 돈이 많은 것을 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12:20)
- 그리고 향략에 도취되어 망각하는 것을 복으로 여기는 이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런 모든 체험을 한 후에 "헛되고 또 헛되다"고 했습니다.
(전1:2, 12:8)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8)
- 그런가 하면 명예와 안락을 추구하는 것이 복을 누리는 줄 알지만
그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복(福), 행복은 관계를 통해서 얻게 되는 만족이기도 합니다.
-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만족하는 사람이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거울을 보고 "하나님, 참 멋있게 빚으셨네요."라고 생각하며
자기에 대해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거울을 보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돈을 들여 성형을 하기도 합니다.
- 그런가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족을 얻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편, 아내, 자식, 친구, 애인… 상대방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 그리고 물질관계에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식이 오르고, 땅값이 오르는 것을 보고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모든 것을 극복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천막에 살든, 궁궐에 살든, 높은 산에 살든, 들판에 살든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참된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여러 가지 관계에서 긴장과 갈등 없이
참 만족과 평안과 감사가 넘치는 상태가 행복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영생과 천국을 보장받았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천국을 보장받았다는 말과
영생을 보장받았다는 말에 별로 감동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천국을 보장받은 것이, 영생을 보장받은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천국은 가장 행복한 곳이고, 행복의 극치가 있는 곳입니다.
물론 천국을 거절한 사람에게는
불행의 극치가 있는, 가장 불행한 지옥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행복의 시작일 뿐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의 세계가 보장되었으니
우리는 이미 복된 삶을 시작한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예수 믿고 천국을 보장 받은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행복, 천국과 영생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福音)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행8:35, 롬1:1~4).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8:35)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1~4)
 
 
복 있는 사람은 투쟁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숨을 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세상을 포기한 것처럼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목숨이 몇 개씩 더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죽는다고 며칠 후에 또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예수 이름으로 희생하는 것… 감수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고통 받고, 짐승의 밥이 되고, 목이 잘려 죽어도…
기꺼이 그 일을 감수했습니다.
그들은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담대한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진정으로…  참 행복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참 행복을 선택했기 때문에 의지적인 투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조건이 좋아서,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참 행복을 선택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시편 1편) 1절에 나오는
복있는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복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입니다.
때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고난 당하면서도 즐거워하고,
10을 가지고 살기도 어렵다는데 10중에 1개를 드리고 살면서도 만족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참는 것을 보면 한심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믿고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엄마의 소리를 좋아하는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 좋아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빠 보다는 엄마를 더 좋아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엄마 치마만 붙잡고 엄마 없으면 '엄마 엄마' 찾다가
조금 철들고 뼈가 굵어지고 머리가 커지고 배우는 것이 많아지면
사람의 악한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엄마를 우습게 알고 엄마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엄마에게 귀찮으니 잔소리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즐거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기뻐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이신 성경말씀을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읽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 전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자기 편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하는 말씀에 "아멘"하며 듣기보다는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그건 어렵지'하며
자기 판단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첫 목회를 나가면
학교에서 잘 배웠으니까 잘 할 것 같지만 실수가 많습니다.
저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굴이 달아오르는 부끄러운 실수들이 많습니다.
 
신학대학을 갓 졸업한 전도사님이
어느 시골교회로 부임하여 첫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첫 설교인지라 긴장이 되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제목으로 설교를 시작하였는데 너무나 당황하여
이렇게 소리를 치고 말았습니다.
"성도님들이여! 우리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2000마리와 보리떡 5000개를 가지고
5명이나 먹이시고 남은 것이 12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 전도사님이 교회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데
교회 나온 지 얼마 안되는 분이 전도사님과 악수를 나누며
"전도사님, 그 정도는 저도 할 수 있겠네요."
설교 내용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된 전도사님은 너무 부끄러워
교인들하고 인사하는 것조차 대충하시고 사택으로 들어가 버리셨습니다.
다음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난 주와 같은 본문을 가지고 말씀 증거를 시작하였습니다.
"성도님들이여~ 우리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그 정도는 자기도 할 수 있다고 했던 분에게
"이래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잠시 망설이던 그 분이
"전도사님, 지난 주 먹다 남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나누어주면 될 것이 아닙니까?"하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깨닫고, 결단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바르게 전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하고 이해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 묵상이란 무엇입니까?
묵상(默想: 묵묵할 묵, 생각할 상)은 사전적인 의미로
  ① 연구적인 태도로 깊이 생각하는 것
  ② 말을 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것
  묵상(Meditation) :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묵상의 어원은 원래 라틴어 '메디켈루스'라는 말로서
'약'(Medicine)이란 말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약이 몸 안에 들어와 온 몸에 퍼져 약효를 내듯이
묵상이란 어떤 생각이나 사실이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지켜 행하면 평탄과
형통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수1:8).
또한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의 행사가 다 형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1:1~2)                                  [비전 성경사전] 참조 
이렇게 묵상해야 합니다.
1. 묵상을 하며 "깨닫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2.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며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이 말씀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진리(영적 통찰력)는 무엇인가?
  ·내가 따라야 할 모범은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할(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회개해야 할 죄는 무엇인가?
  ·내가 계속 구해야 할 기도제목은 무엇인가?
3. 묵상의 유익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닮아가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된다(엡4:13)
  ·길이 평탄케 되고 형통함의 복을 누린다(수1:8)
  ·지혜를 얻는다(잠3;15)
  ·과실을 맺고 형통한 삶을 누린다(시1:2~3) 

 
 
주야로 묵상하며
 
그렇다면
●● 밤낮으로 묵상, "주야로 묵상"(~meditates day and night)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 말씀은 하루 종일 성경만 읽어야 한다거나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눈감고 묵상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을 피해, 사람을 피해 산 속 깊은 곳이나
수도원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중세의 수도원 제도와 수도원에 들어가 살던 수도사들의 결정적인 오류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뭔가 해보려는, 이루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제도의 힘으로 인간적 욕망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고
자력(自力)으로 자기를 낮출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끊고 은둔해서 모진 수도의 삶을 살아도
남만을 돌보고 자신은 없는 것 같은 삶을 살아도
하나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제자 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습니다.
골방에 숨어, 산 속에서, 기도원에서, 수도원에서… 혼자 거룩하고,
혼자 신령한 삶을 살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살며
세상에서 빛 되고 소금 된 삶을 살려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은
'묵상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복 있는 사람은
깨달음과 삶의 태도가 하나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감동받고,
설교 시간에 마음에 깨달음이 오고 감동은 되었으나
삶의 현장에 나가서 그대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말씀을 들은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 주일 설교를 듣고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믿음과 행위가 일치되는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회를 하시다
속썩이는 교인들이 많아서인지 신장이 녹았답니다.
목사님이 그 사실을 통보 받고 얼마나 당황하셨겠어요.
그 목사님은 용기를 내서 설교 중에 이 사실을 밝히면서 성도들에게 말했답니다.
"누가 제게 신장 하나 기증해 줄 분이 있습니까?
혹 제게 신장을 하나 기증해 주실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 보세요."
순간 긴장, 침묵이 잠시 흐르고
여기 저기서 한 사람 두 사람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그 예배에 참여했던 성도들 대부분 손을 들었답니다.
이 목사님이 너무 감격이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답니다.
"감사합니다. 딱 한분만 제공해 주시면 됩니다.
혈액형이 맞지 않아도 그분이 제공해 주시는 것과 교환하면 되거든요.
누구의 것을 받을 지 한 주간 기도하고 다음 주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드디어 한 주간이 흘러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빠졌더랍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이제 목사님이 강단에서 한 사람을 선택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한 주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제가 직접 선택하는 것보다는 제비를 뽑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새털 하나를 꺼내 보이며 "제가 이제 이것을 불겠습니다.
이 새털이 떨어지는 분의 신장을 이식받겠습니다"하고는
새을 후~하고 불었답니다.
이 새털이 날아가서 앞자리에 앉았던 장로님 머리 위로 날아갔답니다.
오리털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장로님은
"아부(푸)~지"하며 입바람으로 불어 올렸답니다.
장로님 머리 위에 내려앉으려던 오리털이 다시 날아 권사님 위로 날아갔답니다.
그것을 확인한 권사님, "오 주~(추)여" 하며 입바람으로 불어 올렸답니다.
다시 그 새털은 날아 올랐습니다.
지금도 그 교회에서는 '아부지'와 '추여'가 계속되고 새털이 날고 있답니다.
 
말로 사랑하는 것, 쉽습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합니다"라고 말은 잘하고
"아멘"하기는 쉽지만, 자신의 신장을 떼어 놓아야 한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복있는 사람의 신앙은 믿음과 행위가 일치되는 신앙입니다.
믿음을 갖기는 쉽지만, 행위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냐? 행위냐?"하는 논쟁은 필요 없습니다.
사실 그런 논쟁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그 믿음이 행함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교회에 나오기 쉽습니다.
성경 찬송 들고 다니고 "아멘"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주야로, 낮이든/밤이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
 
성경본문(시1:1~3)을 자세히 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의 환경은 전혀 복스럽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에는 복된 사람의 환경이라면,
악인도 없고, 죄인도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보면 복된 사람은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사람들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복되지 못한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복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상황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혼자 남아 고독하면 자유롭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어서,
병들면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지금의 삶의 현장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살던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거기서 죄를 짓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미움 받아 노예가 되고 죄수가 된 요셉을 보세요.
어디 가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습니다.
요셉이 비록 노예가 되어 감옥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기가 하나님 나라지요.
바울과 실라를 보세요. 매맞고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거기서 찬양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옥터가 흔들렸고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났습니다.
거기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복된 곳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어렵고, 막혔고, 묶였고, 닫혔더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주야로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의 현장을 흔드시고,
묶인 것을 풀으시고, 닫힌 것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복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말씀을 듣고 아멘한 것으로 그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며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 복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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