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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전신갑주(2) 영적 무기 / 엡 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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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신갑주(2) 영적 무기
에베소서 6장 14-17절/ 주일 낮 예배/ 040118

< 말세에 활발해지는 귀신의 활동 >

지난주에는 영적인 세계와 귀신의 존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은 말세입니다. 귀신도 말세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귀신의 마지막 발악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이 가만히 놔둡니까?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의지 부족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상 우리의 잘못된 습관과 잘못된 행동의 근원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영적인 힘이 관련된 경우가 많습니다.

영국에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라는 세계적인 석학이 있었습니다. 그가 무신론자였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자 세계 지성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10명이 술좌석에서 웃고 떠들면 그때 웃음소리는 11명의 웃음소리가 날 것이다. 만약 누가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그 뒤에서는 귀신이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20세기 최대의 석학 입에서 귀신 얘기가 나오니까 세계 지성계는 더욱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귀신은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강신술, 무속신앙이 크게 번지고 있고, 우리 나라에서도 점이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믿는 사람도 점집을 찾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호기심과 불안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저주 받을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안타깝고 무서운 일입니다.

무속신앙에서는 굿을 해야 저주가 풀리고 귀신이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상한 방법을 씁니다. 어떤 무속인은 귀신을 쫓아낸다고 사람을 가둬 놓고 나뭇가지로 마구 때리면서 "나가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면 맞는 사람이 견디다 못해 "나가겠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귀신이 나간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이 방법을 구타법이라고 합니다.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때리면 사람이 아프지 귀신이 아픕니까?

어떤 무속인은 갑자기 목에 뱀을 걸어주고 "귀신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귀신이 나간다고 하는데 그 방법을 경악법이라고 합니다. 어떤 무속인은 귀신이 붙은 물건을 태워 쫓아내는 화공법을 쓰고, 어떤 무속인은 귀신을 달래서 스스로 물러가게 하는 순종법을 쓰고, 어떤 무속인은 주문을 외우거나 부적을 만들어 주어 귀신을 쫓아내는 주부법을 씁니다. 귀신이 그런 모습을 보면 귀신이 나가기는커녕 "웃겨도 한참 웃긴다!"고 좋아서 웃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무속 신앙에서 그런 방법을 씁니까? 죽은 자의 영혼이 귀신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죽은 자들의 영혼은 결코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고 사람과 교통할 수 없습니다. 영매들이 죽은 사람의 영혼과 접촉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접촉하는 존재는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위장해 나타나는 귀신들입니다.

기독교에서 왜 제사를 반대합니까? 제사상을 받는 존재가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아니라 '조상의 영혼으로 위장한 귀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우리의 멸시의 대상이지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상의 정신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는 것은 좋지만 제사하고 절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전신갑주 >

귀신은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 영혼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공격을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 귀신의 공격에서 우리 영혼을 지킬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귀신의 공격에서 우리 영혼을 지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6가지가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그 6가지의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

1. 진리의 허리띠

귀신은 강하고 끈질긴 존재입니다. 그래도 귀신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미 귀신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은 종이 호랑이요, 늙은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그 종이 호랑이를 보고 놀라지 않고 그 늙은 사기꾼에게 속지만 않으면 귀신은 진리의 예수님(요 14:6)으로 굳게 무장한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우리보다 귀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시골에 사는 한 성도님과 대화를 하는데 그분이 사는 마을의 '경을 읽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는 다 교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평생 경을 읽었으면서 교회를 나오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

귀신들은 어떤 사람이 죽어서 그 사람으로부터 나오면 다시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야 하는데 그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대상이 '나온 그 죽은 사람의 자녀'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을 읽는 사람은 비록 자기는 평생 경을 읽었지만 자기 자녀에게만은 귀신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귀신으로부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서 죽을 때는 교회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신내림을 받은 사람이 귀신을 쫓아준다고 하고, 점을 쳐준다고 하지만 그것이 불행한 삶이라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는 말이고, 또한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운 분인가 하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귀신이 들어올 수도 없고, 귀신의 영향력도 차단되고, 들어온 귀신도 맥을 못추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

2. 의의 흉배

우리에게 두 가지 의의 흉배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의로움입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독함, 불순종, 교만, 불신 등을 그냥 두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벽하게 살지 못해도 항상 의를 생각하며 자신을 조절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4장 26절에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은 절대 분노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분노를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그처럼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은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순간적인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완전함은 '행위의 완전함'이 아니라 '동기와 헌신의 완전함', 즉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는 삶을 말합니다. 때로 우리가 분노도 할 수 있고, 성을 낼 수도 있지만 그때 즉시 자신을 낮추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 분노를 다스리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적인 완전함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귀신의 공격에서 우리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의의 흉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입니다. 귀신은 대개 교회의 성물에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그처럼 성물도 귀신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힘이 있다면 하물며 교회는 얼마나 큰 힘이 있겠습니까?

물론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위해주고 격려해주고 나누는 삶을 살면 귀신이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혼자 있으면 귀신에 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같이 있으면 귀신이 틈을 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이고, 단순히 모이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나아가 참여하고, 참여하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나아가 적극 협력하고, 적극 협력하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나아가 몸과 마음을 드려 헌신하는 삶을 살면 귀신은 꼼짝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꼭 동역자를 붙여주십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그는 낙심에 빠진 순간에도 잘난 척을 했습니다. "주님!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 명이 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도 동역자를 준비해 놓으셨는데, 그 동역자가 바로 같은 교회의 교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세워주고 격려하며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면 귀신은 결코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신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왔다갔다하는 변덕스런 마음입니다. 거라사 광인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서 달려와 절을 했지만(막 5:6), 곧 예수님께 "저를 괴롭게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변덕스럽고, 바다물결 같이 계속 감정이 흔들리면 귀신이 틈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감정을 잘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에는 우리를 평안케 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있고, 우리를 불안케 하고 두렵게 하는 마귀가 주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생각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대적하는 가장 견고한 진 중의 하나는 공산주의나 인본주의나 이슬람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를 대적하는 가장 견고한 진은 바로 '생각의 진'입니다(고후 10:4-5).

귀신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찾아와 "키가 작다! 못났다! 더럽다! 너는 지금 남편과 살면 행복할 수 없다!"고 속삭여 열등감과 죄책감을 주고 행복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런 소리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의 한 남자가 아내가 너무 싫어 이혼한 후, 결혼 상담소에 가서 자기의 이상형을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상담소에서 컴퓨터에 입력된 3만 명의 여성 중에 한 여성을 골라주었는데 사진을 보니까 얼마 전에 이혼한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아내나 남편을 바꾸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려면 배우자를 바꾸기 전에 자기를 바꾸면 됩니다. 자기를 바꾸지 않으면 배우자를 아무리 여러 사람 바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배우자를 두고 다른 남자와 여자를 사귀면 처음에는 신날 것 같지만 함께 살면 한 달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배우자가 제일이다, 나는 지금 이 상태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은 제 남편을 몰라서 그래요."라고 말합니다.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는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이란 문제가 없는 가정이 아니라 문제를 극복하는 가정입니다. 우리는 "너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행복할 수 없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과 함께 지켜야 할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지키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 성찰입니다. 특별히 일이 안될 때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고 침착해야 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경기가 안 풀릴 때 아마추어는 슛을 남발합니다. 그러나 프로는 그때 수비를 다듬고 슛을 절제합니다.

인생의 문제에서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이지 남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은혜 받지 못하고 축복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베드로가 배반한 것은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자꾸 다른 곳에 문제의 원인을 돌리게 합니다. 그 전략에 넘어가면 마음은 더 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차를 정비하듯이 자기를 정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탄원만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의 가장 큰 의미는 자기 성찰, 자기 정비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만큼 우리의 마음은 견고한 요새가 되고, 그러면 귀신이 결코 그 마음의 평안을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4. 믿음의 방패

본문 16절에 보면 믿음의 방패로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악한 자의 화전이란 '귀신이 쏘는 불화살'을 말합니다. 귀신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불화살을 쏘는데 특히 귀에 많이 쏩니다. 그래서 이상한 말, 거짓말, 부정적인 말을 만들어 듣는 사람들을 실망시킵니다. 그런 소리에 실망하면 귀신의 장난에 넘어가게 됩니다.

듣는 것을 잘 들어야 합니다. 잘 가려서 들어야 하고, 특별히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말씀의 귀가 열립니다. 그러나 귀신은 어떻게 하든지 말씀에 귀가 닫히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자신의 약점과 부딪치면 성령님은 반성하게 만들지만 마귀는 반발하게 만듭니다.

어떤 말씀에 대해서는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한 것이다."하고 반발합니다. 내게 주신 말씀이라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떤 말씀에 대해서는 "저것은 돈 얘기 같다."라고 반발합니다. 그것은 정말 인색한 태도입니다. 오늘날 신앙의 가장 큰 대적은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mammonism)'입니다. 신앙성숙에 가장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이 '물질에 대한 집착'이기에 물질적 헌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 말씀의 3분의 1이 돈과 관련된 설교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은 그 얘기는 단 한 마디도 듣기 싫다고 합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물론 물질적 헌신을 너무 강조하고, 헌금한 분의 명단을 강단에서 읽고, 또한 헌금으로 자기 교회만 배불리려고 하고, 땅을 사고, 건축을 하는 데에는 몰두하면서 선교와 구제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폐단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운영 및 선교와 같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십일조를 구별하고, 어려운 이웃의 구제를 위해서 1달 중 하루 분의 수입(신 14:28-29)을 구별하는 삶까지 외면한다면 그런 모습은 인색함의 표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어떤 말씀에 대해서는 "옛날에는 저렇지 않았는데 변했다."고 반발합니다. 그러나 옛날과 똑같은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대개 변하지 않는 것은 나쁜 경우가 많습니다. 본질적인 면은 변하지 말아야 하지만 비본질적인 면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변했다"고 하며 말씀을 안 들으려고 하는 태도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처럼 말씀에 귀가 닫히게 하려는 사단의 불화살을 우리는 믿음의 방패로 막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늙어도 영혼은 젊어지는 비결이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듣고, 배우려고 하고,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듣는다면 귀신은 결코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5. 구원의 투구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그 구원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성도들의 죄와 허물을 보면 그 죄와 허물을 확대시켜 "너는 위선자야! 너 같은 인간이 무슨 하나님이 자녀야!"라고 정죄합니다. 그 귀신의 노략질에 넘어가면 그때부터 그 영혼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우리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받아주신다는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의롭다고 하신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랬다 저랬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늘 긍정적이고 늘 진실하십니다. 귀신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걸고넘어지지만 그런 문제 때문에 지나치게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원래부터 우리의 행위 때문에 구원을 베푸신 것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6.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전신갑주 6가지 중에서 5가지는 모두 방어에 필요한 무기인데 유일한 공격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은 군인이 무기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사실을 귀신도 잘 알기 때문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말씀과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려고 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입술을 잘 지켜서 부정적인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은 하나님의 비전을 가로막습니다. 민수기 13장에서 열 명의 정탐꾼처럼 부정적인 보고를 확산시키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듭니다. 귀신은 "너는 할 수 없다"고 속삭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의외로 강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랑도 아니고, 교만이 아니고, 자존심도 아닙니다. 우리의 긍정적인 삶과 언어는 오히려 겸손함의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려고 하고, 말보다는 말씀을 앞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낼 때 말씀으로 쫓아 내셨습니다. 광야의 시험도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해서 물리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귀신 쫓는다는 사람은 무속인들처럼 귀신을 쫓으려고 합니다. 어떤 분은 귀에 대고 "귀신아 나가! 나가!"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어떤 분은 손을 대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가슴팍을 내려치거나 밀어 제칩니다. 어떤 분은 귀신이 눈에 들어 있다고 눈을 후비고, 몸 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가슴, 배, 팔, 다리를 때려 시퍼렇게 멍 투성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귀신이 발작한다고 손발을 묶어 놓고 복숭아 나뭇가지로 사정없이 때려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사람을 폐인으로 만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귀신을 쫓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을 내쫓으셨고, 귀신은 심하게 꾸짖었어도 귀신들린 사람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셨습니다. 그처럼 귀신은 증오하되 귀신의 피해자인 사람은 최대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이 마귀짓을 한다고 여기고 남편이 듣는 데서 "마귀!"라고 말하는 가벼운 입을 멀리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해서 남편을 내편으로 만들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함부로 말하면 남편이 진짜 '남 편'이 될 수 있습니다.

진짜 승리와 진짜 능력은 적을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옛날에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왜 미국 대통령보다 더 유명했습니까? 적을 내편으로 만드는 화술과 외교력이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외교 전쟁에서는 화술이 필요하지만 영적 전쟁에서는 말씀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전신갑주 6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여섯 가지 갑주를 입고 살려면 삶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무게 때문에 풍랑이 심할 때 우리는 인생 항해는 더 안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세상 풍랑과 유혹의 바람이 거세게 불 때 조금 편하겠다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벗어버리면 우리의 영혼은 귀신들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 힘들고 무겁고 귀찮아도 오늘 말한 6가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잘 무장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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