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벧엘로 올라가라 (창 35:1-15)

  • 잡초 잡초
  • 249
  • 0

첨부 1



설교제목 : 벧엘로 올라가라
성경말씀 : 창세기 35:1-15


한 세상 살면서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때때로 실패하지만 다시금 실패를 딛고 일어섭니다. 우리는 성공 보다는 실패를 통해서 인생을 배웁니다. 실패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이전보다 고상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면 인생의 패배자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창세기 35장에 기록된 야곱의 사건은 우리에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귀중한 가르침을 제공해 줍니다.

팥죽으로 거래한 장자의 명분

성도님들께서도 잘 아시는 대로, 야곱은 형 에서와 함께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항상 장자가 되지 못한 것을 억울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복은 장자라야만 계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같이 약속하셨습니다.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얼마나 위대한 약속입니까! 그런데 야곱은 막간의 차이로 형이 되지 못하고 동생이 된 까닭에 이 약속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장자권에 대한 미련은 어른이 된 후에도 야곱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야곱이 부엌에서 팥죽을 쑤고 있는데, 사냥 갔다가 돌아온 형 에서가 팥죽 냄새를 맡고 부엌에 들어왔습니다. 에서는 평소에 팥죽을 매우 좋아한데다가 짐승을 사냥하려고 들판을 헤매고 다녔으니 얼마나 시장했겠습니까? 그래서 다짜고짜로 야곱에게 말하기를 “배고파 죽겠다. 그 붉은 죽 좀 먹자”고 했습니다. 야곱이 대답하기를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에서가 말하기를 “배고파 죽겠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야곱이 “그러면 내게 맹세하라”고 하자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이에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었더니 맛있게 먹고 갔습니다. 이처럼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에서의 장자권이 야곱에게로 넘어갔습니다. 물론, 이것은 둘만의 일이었지, 아버지 이삭은 여전히 에서를 장자로 여겼습니다.

축복을 가로챈 야곱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맏아들 에서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이 말을 할 때에 마침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하러 들로 나가자 곧장 야곱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었는데,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오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잡수시고 여호와 앞에서 에서에게 축복하시겠다고 하시더구나, 그러나 야곱아,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살진 염소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아버지께 드려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잡수시고 죽기 전에 너에게 복을 빌어주실 것이다”

어머니 리브가의 말을 들은 야곱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를 속이려 한 것처럼 되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그러자 리브가가 말하기를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그대로 순종하니 리브가가 별미를 만들고, 에서의 좋은 의복을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야곱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몄습니다. 그런 다음, 야곱이 별미를 가지고 아버지 이삭에게 들어가서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고 나간 지 오래되지 않아서 에서가 별미를 만들어서 아버지에게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일어나셔서 이 아들이 사냥하여 만든 별미를 잡수시고 저에게 복을 빌어 주십시오" 그 때 이삭은 놀라며 ”대체 너는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에서의 대답을 들은 이삭은 몸을 심히 떨면서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에서가 방성대곡하며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였으나 이삭은 더 빌어줄 복이 없었습니다. 이 일로 에서는 야곱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야곱을 죽일 생각을 했습니다.

벧엘에서 만나 뵌 하나님

이 말을 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걱정이 되어 남편 이삭과 의논하고 야곱을 하란에 사는 자기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리하여 야곱은 괴나리봇짐을 둘러메고 에서의 눈을 피해서 몰래 집을 떠났습니다.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졌습니다. 야곱은 빈들에서 돌을 베개 삼아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외딴 들판에 누워 잠을 청하는 야곱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합니까? 멀리서 들려오는 들짐승들의 울음소리에 머리털이 곤두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워낙 몸이 곤한지라 금방 깊은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보니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보니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보니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였습니다. 야곱은 아침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고 했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은 명실공히 아브라함과 이삭의 계승자로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과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으므로 내심 자기의 비열한 행위에 대한 가책과 함께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꿈에 하나님을 만나 뵙고 약속의 말씀을 듣고 나니 날아갈 것같이 기분이 상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거부가 된 야곱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고, 몰래 하나님의 축복을 훔친 자가 아니라 당당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야곱은 어딜 가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교활한 방법으로 야곱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시니 타향살이 20년 만에 많은 양떼와 소떼를 소유한 거부가 되었습니다. 또 외삼촌 라반의 두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열 두 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거부가 되자, 외삼촌과 외사촌들의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외사촌들은 말하기를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채서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가나안으로 돌아온 야곱

야곱은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는 화를 당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두 아내와 상의한 끝에 외삼촌과 그 아들들이 양털 깎으러 멀리 간 틈을 타서 자기의 모든 재산을 다 가지고 가나안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그러나 삼일 만에 야곱의 도망한 것을 알게 된 라반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칠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따라잡았습니다. 라반은 이번에 야곱을 죽이고 그의 모든 재산을 빼앗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밤에 라반의 꿈속에서 현몽하여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야곱을 만나 좋게 대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야곱의 아내인 라헬이 자기 아버지의 우상인 드라빔을 훔쳐 왔다는 사실입니다. 드라빔은 크기가 한 30센치 정도 되는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우상을 말합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이제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기를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적질한 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라헬은 드라빔을 낙타 안장 밑에 넣고 그 위에 앉아 있었으므로 라반은 그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야곱은 무사히 팔레스틴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원한의 칼을 갈고 있을 형 에서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 야곱

야곱은 사람을 세일 땅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보내서 정중하게 자기의 귀향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사자들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자기의 종들과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이는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할 심산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내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자기의 모든 소유와 종들과 가족으로 하여금 얍복 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홀로 남아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창세기 32장에는, 야곱이 홀로 남아 어떤 사람과 더불어 날이 새도록 씨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야곱이 어찌나 끈질기게 덤비는지 그 사람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환도뼈가 위골되었으니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래도 야곱은 사자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그러나 야곱은 말하기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야곱이니이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그 사람에게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했습니다.

나중에야 야곱은 그 사람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자였음을 알았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사자는 곧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현현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그 생명이 보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환도뼈가 위골되어 절었습니다.

에서와 화해한 야곱

어제 밤까지만 해도 야곱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만은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으나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대열의 맨 앞에 서서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 에서를 향하여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때에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니 절뚝거리면서 나아오는 동생을 보자 그만 연민의 정이 솟구쳐서 말에서 내려 달려와서 야곱을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입을 맞추고 피차 울었습니다. 20년만에 감격적인 형제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과거의 원한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그 날로 세일 땅으로 돌아갔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집을 짓고 짐승의 우릿간을 지었습니다. 집을 짓고 우릿간을 지었다는 것은 그곳에 오래 머물 생각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동안 숙곳에 머물던 야곱은 요단강을 건너 세겜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는 세겜 성에 이르러 은 일백 개를 주고 성 앞에 있는 밭을 사고 장막을 쳤습니다. 땅을 샀다는 것은 그곳에 정착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야곱이 지난날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망각했음을 의미합니다.

참담한 낭패를 당한 야곱

지금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손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형 에서의 위협으로부터도 벗어났습니다. 이제야말로 가슴을 펴고 활보하고,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문화가 발달한 세겜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서 가나안 땅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야곱은 그 계획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불상사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외동딸인 디나가 세겜 성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가 그 성의 추장인 세겜에 의해 강간을 당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의 딸이 이방인에게 욕을 당하다니 가당치 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장인 세겜은 디나를 사랑한 나머지 자기 아버지 하몰을 야곱에게 보내어 결혼을 승낙해 달라고 했습니다. 또 말하기를 “너희와 우리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취하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취하며 너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고 했습니다.

세겜은 디나를 아내로 맞이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으므로 고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모든 남자가 다 함께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 옛날에 무슨 수술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싯돌을 갈아서 만든 칼로 표피를 제거했습니다. 마취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할례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할례 받은 지 삼일 되는 날에는 고통이 심해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 삼일에 그들이 고통할 때에 디나의 오라비인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성을 엄습하여 추장 세겜을 비롯한 모든 남자를 죽이고 디나를 데려 왔습니다. 아무리 여동생을 욕보인 데 대한 복수라고 하지만 너무나 사악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안 야곱은 너무 놀라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인근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이 알고 몰려오면 야곱의 집안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하였더니 두 아들은 뉘우치기는커녕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라고 반발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이 얼마나 곤란한 형편에 놓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그는 이제까지 밤잠을 자지 않고 이룩한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언제 가나안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그와 그의 가족을 죽일는지 모릅니다. 야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당시 야곱의 영적 상태가 그만큼 침체되어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야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올렸던 서원을 갚기 위해 곧바로 벧엘로 갔더라면 디나가 욕을 당하고 그의 두 아들이 세겜 성 남자들을 살해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평안해지자 하나님께 대한 서원을 망각하고 물질에 대한 욕심과 생활의 편의만 추구하다가 무서운 징계의 채찍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려면 우리 생애에서 가장 어렵던 시절에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곁길로 가고 세상에 마음 빼앗기는 것은 받은 은혜를 망각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을 때, 야곱은 그 동안 벧엘의 서원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근래에 생겨난 불상사의 원인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가족과 자기 집에 함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조치

“벧엘로 올라가자” 이 말씀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첫 걸음이 벧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시간 여러분께서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겜이냐, 벧엘이냐, 둘 가운데 한 가지 답이 나올 것입니다. 혹시라도 세겜에 머물러 있거든 야곱처럼 낭패를 당하기 전에 세겜의 생활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벧엘에 올라가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말하기를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예배 생활의 회복이 새 삶의 본질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를 등한히 하는 사람은 아직 세겜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예배가 성도들의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악된 삶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말하기를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야곱의 아내 라헬은 하란을 떠날 때에 자기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쳐 왔습니다.

라헬은 명색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야곱의 아내인데도 여전히 우상 숭배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다른 사람들의 형편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야곱의 말에 순종하여 자기에게 있는 모든 이방 신상을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거듭난 성도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탐심은 곧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탐심을 품을 때 사신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작을 원하는 성도들은 먼저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 다음,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성 주민들을 살해한 피로 더러워진 자신을 정결케 해야 했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원망과 음란과 탐욕과 같은 더러운 것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복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야곱의 집안사람들은 이방인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2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5)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6)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 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인이 불신자들과 같이 옷을 입고 머리를 꾸미고 걸음을 걷고 말투를 흉내내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것들을 내버리고,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3)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고 했습니다. 야곱은 집안사람들이 가져온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파묻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 이하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죽은 사람을 땅을 파고 묻듯이 우리의 육신에 속한 생각과 습관과 욕심 따위를 죽여서 장사지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배생활의 회복

야곱은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 따위를 땅에 묻고 집안사람들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게 한 후에 벧엘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시니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야곱의 아들들이 용맹스럽기 때문에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야곱이 경외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에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합니다.

야곱은 벧엘에 올라가서 서원한 대로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열납하시고 야곱에게 복을 주시고 이르시기를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야곱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정상이 되었습니다. 이 후로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계승한 선민의 조상으로서 손색이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보다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 자신과 닮은 모습을 많이 발견합니다. 그만큼 야곱의 생애는 결함이 많고 실수가 많습니다.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형과 아버지를 속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 것과 대조적으로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잘못을 지적 받으면 곧바로 회개하고 바른 방향으로 돌이켰으며,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알았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야곱의 신앙자세를 본받고, 세속적인 삶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가는 신앙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야곱과 항상 함께 하셨던 하나님, 그의 환난 날에 응답하셨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길에 늘 함께 하시며 동일한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