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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찌 찬양 안 할까 - 고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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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찌 찬양 안 할까-고후1:3~6

조니 에릭슨이라는 미국 여성이 있습니다. 틴 에이져 시절에 미국 메릴랜드의 체스픽 베이라는 강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잘못되어 전신마비로 눕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시련을 감당할만한 믿음이 없었던 그녀는 절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할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이런 몸이라도 쓰임 받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양하며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직후에 자신의 입술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녀는 입술에 연필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그림이 알려지자, 유명한 볼펜회사에서 광고 모델을 제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나오는 모든 광고 아래 영어로 P.T.L(Praise The Lord/ 주님을 찬양하라!)이라는 글자를 삽입하기로 합의하고 출연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복음전도자로, 장애인을 위한 인권운동가로 미국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역경이 왔을 때, 원망 대신에 그 역경 중에서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왔을 때 불평 대신에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찬송하는 자에게 반드시 승리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원망과 불평대신 감옥 안에서 찬송했습니다. 그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찬송을 잃지 않으면 아무리 큰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반면에 찬송을 잃어 버렸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가장 큰 위기는 찬송이 사라졌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 가운데 처했다 할지라도 찬송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승리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찬송과 생활은 일치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몸부림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찬송가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찬송하는 사람과 그의 삶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취미이거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찬송은 믿음의 꽃이요, 가늠자요, 확증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해도 시험 중에 찬송하지 못하면 그 믿음의 본질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특히 오늘 성가대로 임명받는 대원들은 찬송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찬송해야 할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만이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아우슈비치 수용소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곳입니다. 그 참혹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런 일을 허용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피맺힌 절규는 연합군이 독일을 물리쳐 수용소를 탈환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연합군이 탈환한 수용소를 점검하러 들어갔습니다. 점검하던 연합군 병사 중 한 명이 한쪽 벽 후미진 곳에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 유대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니? 그 연합군 병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또 하나의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메마른 광야에서도, 넘실거리는 파도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당할 때, 모른 척하며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습니까? 그래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여러분! 고난 가운데 처해 있습니까? 그래도 찬양하십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바울이라고 불리우는 가가와 도요히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생출신이었고, 그는 첩의 아들이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지내던 중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얼마 후 안질에도 걸렸고, 척수염, 치질, 축농증, 심장병, 간장염도 걸렸습니다. 그는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고베의 빈민촌으로 들어가서 14년 동안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공장직공 출신의 지하루라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는 "내 아내는 빈민촌에서 일하는 식모입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상처투성이의 몸을 가지고 빈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일생동안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고통과 상처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당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핸디캡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 내가 당한 고통, 현재 나의 핸디캡은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귀한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낮은데로 임하소서’ 의 주인공인 안요한 목사님은 한때 잘 나가는,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신앙하고는 거리가 멀었고, 자기 뜻,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병이 들어 그만 시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안요한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소경된 뒤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위한 삶을 시작합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고 찬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소경 되었으면서도 기쁘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그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테레사 수녀는 죽는 날까지 만성 두통으로 고생하면서도 사람들을 돌보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잊지 못할 상처를 가지고 있었지만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좋은 조건에서보다는 상처받고, 아픔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료하고 위로하는 일을 감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 시로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위로하신다고 합니까? 우리로 하여금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워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찬송을 통하여 위로가 필요한 자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만이 의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1887년 10월 미국의 시카고에 큰 화재가 났습니다. 온 시가가 시뻘건 화염과 검은 연기에 휩싸였습니다. 그 중에 무디(D.L. Moody) 목사의 교회도 다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넋 나간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이 무디 목사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찌하여 자기의 성전이 저렇게 다 타버리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습니까?" 이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기에 더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자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낡은 교회당을 헐어야 하는 비용이 엄청난데 그 일을 하나님이 돕고 계신 것이오. "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돈이 있소?" 이에 대한 무디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화재 때문에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 그러나 써도 써도 끝이 없는 하나님의 금고인 이 성경책을 들고 나왔소." 무디는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무디 목사는 그 성경책 한 권만을 들고 영국으로 건너가 놀라운 부흥 운동을 일으키고 돌아와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는 무디 기념 교회를 건설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끊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더욱 큰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찬송은 더 이상 옛 노래가 아니라 부를 때마다 새롭고, 부를 때마다 뜨겁고, 부를 때마다 축복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에, 감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돌로도 맞아 죽을 뻔하고, 타고 가던 배가 세 번씩이나 파선 당하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 등 수많은 고난을 당하여,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난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 9절의 고백을 보면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큰 고난과 역경을 당하게 되자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는 것은 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이차대전 후 독일의 한 간호원이 혀암으로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했던 이 여인은 의사가 수술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이 여인은 ‘그동안 말할 수 있었던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고 고백한 후 조용히 찬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그리고 그녀는 “이후로 제가 입으로 찬송 못하지만 전 마음으로 찬송을 계속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진심으로 찬송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임명받는 성가대와 성도 여러분, 그러니 우리의 삶 속에서 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제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찬송가를 멋지게 부르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항상 찬송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찬송은 취미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쉬지 말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범사에 찬송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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