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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을 버리고 갑시다 (빌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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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것을 버리고 갑시다.
성 경 : 빌립보서 3장 13~14절


바울은 인생(人生)을 경주하는 경주자에 비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푯대를 향하여 전심전력 질주하는 경주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목표가 사업일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목표가 학문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술을 위해, 어떤 사람은 과학을 위해, 어떤 사람은 의술을 위하여 평생을 바쳐 헌신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던지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일로매진 하는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류 역사는 창조되고 인류 문명은 발전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푯대는 이러한 세상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신앙인의 푯대는 진리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요8:32). 경주자에게는 이 목표가 확실해야 승리할 수 있고, 승리하는 경주자에게만 상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적 경주에 임하는 성도에게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빌3:12~13).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경주자가 버리고 가야할 것은 무엇인가 ? 최선의 경주를 하는데 짐이 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


Ⅰ.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는 습관입니다.

삼상 12장 23절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 ”이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 왜 죄인가 ?
메시야로 알았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예수님을 따르던 두 제자는 낙심 중에 엠마오로 향하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동행을 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집에 이르러 저희와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비로소 주님을 알아 볼 때, 예수님이 사라지셨습니다.

성도의 축복과 특권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령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아니하니 눈이 가려져서 곁에 계신 주님을 깨달을 수조차 없으니 그 삶에 무슨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접촉하지 못하고, 능력 있는 신앙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기도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능력을 상실한다면 기도하지 않는 행위야 말로 죄악 중의 죄악인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호흡하지 아니하면 육체가 죽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질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거듭난 영혼은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호흡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 좋은 공기를 섭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위에는 성도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어줄 신령한 공기는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하늘나라의 신령한 생기. 즉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의와 화평과 기쁨과 희락이라는 신령한 공기로 성도의 영혼을 새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50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하라는 말씀은 곧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Ⅱ. 불순종을 버려야합니다.

인간의 분쟁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부터 왔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창2:17). 그러나 하와는 이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그의 남편 아담에게도 먹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땅은 저주를 받고,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식물을 먹고,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여인은 잉태하는 고통을 겪어야 생산을 하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고 했습니다(요14:15).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삼상15:22).

부모가 자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 순종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의 사르밧의 과부가 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가루로 떡을 구워 먹고 자식과 같이 죽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는 “네가 떡을 만들어 나에게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했습니다(왕상17:13). 그녀는 그 말에 순종하여 그대로 했더니 지면에 비가 내리는 날까지 가루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순종의 사람 노아를 볼 수 있습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창7:13) 노아는 이 말에 순종하여 120년 동안 산꼭대기에 배를 짓고 홍수 심판 날에 그의 여덟 식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어라”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두 배에 차고 넘치는 고기를 잡았습니다.(눅5:4).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어라” 그 말씀에 순종한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을 고쳤습니다(왕하5:1).

신학자 본헤퍼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과 순종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과 축복은 즉각적인 순종을 통해서 옵니다. 거기에 “왜 ?”가 들어가면 그것이 곧 불신앙이요. 불순종인 것입니다.


Ⅲ. 용서치 못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관리하는데 제일먼저 생각할 것은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수를 맺고 풀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크리스챤의 심령은 언제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마18:22). 일흔 씩 일곱 번의 용서는 끝없는 용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하셨습니다(마5:44).

잠언 14장 30절의 말씀에는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라”고 했습니다(마5:43).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악한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기쁨과 행복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사도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바라”고했습니다(요일 3:14~15).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를 살인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엔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셨습니다.

용서합시다 ! 사랑합시다 !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 죄 을 지고서는 최선의 경주를 할 수 없고, 최선의 경주를 하지 못한다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상 받는 경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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