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요 17:9~19)

  • 잡초 잡초
  • 332
  • 0

첨부 1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요17:9~19
 

미국의 유명한 회사 가운데 IBM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사람을 만들어 키우는 전략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투자를 잘못해서 회사에 천만불의 손해를 끼치는 프로젝트가 되어 실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원은 톰 왓슨 회장 앞에 와서 자신이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더 일할 면목이 없다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때 톰 왓슨 회장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이 사람아, 자네는 회사에 천 만불 손해를 끼쳤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우리 회사가 자네를 위해서 천 만불을 투자한 것이라네. 그러니 사표를 거두고 일을 하게"하면서 그 사람을 격려하고 사표를 반려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후에 IBM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톰 왓슨의 회사경영전략은 사람을 키워놓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사람을 키우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란 건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제도나 조직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변화된다는 것은 곧 사람이 변화된다는 말이며,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변화된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을 키우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하신 일 역시 12명의 제자를 훈련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자고 함께 먹으면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또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7장은 죽음을 목전에 두신 예수님의 최후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자들에게"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게 주신 자들인 제자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직이나 제도나 시스템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놓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그 어떠한 것보다 사람 만드는 일, 인재를 키우는 일을 우리 교회가 해야 합니다.

오늘은 교회교육을 위해 교사를 임명하는 주일입니다. 교사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우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교사들과 함께 우리 교회는 교회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투자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신 자들은 우리의 자녀들이고 합니다. 우리의 가족들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에게 깊은 영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도하여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 되게 하옵소서

크리스챤 작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유머가 넘치는 사람으로 하나되지 못하는 교회를 풍자한 글을 썼습니다. 어느 날 개와 고양이를 한우리에 넣었습니다. 사실 둘은 서로 원수인데 시간이 지나자 곧 친해져서 잘 지내더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새와 돼지와 염소를 한 우리에다가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당황한 눈치였는데, 조금 지나니까 그들도 역시 잘 지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장로교인과 감리교인, 천주교인을 섞어서 한 우리에다가 집어넣어 봤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곧바로 싸우기 시작하더라는 거였습니다. 좀 지나면 괜찮겠지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은 더 격렬해졌습니다. 물론 풍자 입니다마는, 그만큼 교인들은 하나되기가 어렵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하나 됨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제자들이 자리다툼으로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 분을 내며 분열되어진 모습을 보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의 하나 됨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위탁받은 자들에게 분열은 치명적인 약점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나라는 각개전투식의 활약에 의해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조와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마귀가 교회를 무너뜨리는 최고의 방법은 교회를 분열케 하는 것입니다. 서로 나뉘어 다투면 쉽게 넘어지기 때문에 성도간에 이간질시키며 교회를 분열케 합니다. 윈-윈(Win-Win) 전략이 아니라 루스-루스(Lose-Lose) 전략입니다. 즉 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생명력은 하나 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함께(Together)'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음식을 먹고” . 초대 교회는 나누어졌던 성도들이 하나될 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십자가의 역사는 갈라졌던 것을 하나로 합하게 하는 역사입니다. 죄로 갈라졌던 하나님과 나를 하나되게 하고 이웃과 이웃을 하나되게 하는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눈높이"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데리고 박물관 견학을 가지 전 날 미리 가서 무릎을 굽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전시물들을 보고 그 다음날 학생들을 인솔하고 가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었다는 데서 유래를 두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하나가 된 선생님이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내게 맡겨주신 이들과 하나되기 위하여 힘쓰며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보전하여 주옵소서

맥아더 장군의 자녀들을 위한 기도문이 있습니다.'하나님, 나의 아들을 쉬움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에 분투 항거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옵소서. 그리하여 폭풍 중에서도 용감하게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긍휼히 여길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이 기도문을 읽을 때 깊이 깨달아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기도하기를,'하나님, 우리 아들, 딸들은 고난과 역경이 있는 가시밭길을 피하게 해 주시고 안락하고 쉬운 길로만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의 기도는 달랐습니다. 환난을 없애 달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환난 속에서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아들로 키워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우리 앞에 있는 고난을 제거해 달라는 기도도 해야 하지만,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달라는 기도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고난이 올 때마다 그 고난을 없애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다음에 똑같은 고난이 올 때에 쉽게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게 주신 사람들이 세상의 환난 가운데에서 쓰러지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보호를 위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11절에'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하시며 거짓과 불의가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제자들을 지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름은 소유를 뜻합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달라는 것은 아버지의 소유로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책임져 달라는 것입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소유로 살 수 있도록 보호하여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들은 결코 외롭지 않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악한 세상과 담쌓고 살기보다는 오히려 악한 세상에서 더 적극적인 자세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들도 내게 맡겨 주신 이들이 눈앞에 닥친 고난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녀들이 되어 지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사람이 야간 공습이 있던 날 포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웃에 사는 친구 집에 갔습니다. 친구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딸은 쇼파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 사람은 그 소녀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섭지 않니? 어쩌면 그렇게 평안히 잘 자니?” 소녀가 말했습니다. "아저씨, 시편 121편 3절에 보면, 믿는 자들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하셨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믿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답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미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주신 이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거룩한 삶을 계속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참된 신앙이란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중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중심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로써 일본 도자기 계의 대명사인 심수관씨가 있었습니다. 그가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 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작업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흙덩어리를 뭉쳐 도자기를 빚는 물레 위에 올려놓고 바늘 하나를 조심스레 그 중심에 꽂았습니다. 그리고 물레를 돌리면서 무엇을 느끼는 가를 물었습니다. 그 때 심수관이 “물레는 도는데 바늘은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대답하니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움직이는 물레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중심을 찾는 것이 앞으로 너의 인생이다" 그때 수관은 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말은 일본에 끌려온 조선도공들이 가져야 할 조선의 후손으로써 자기 정체성에 대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의 패자로 눈물을 흘리며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들이 무려 400년 동안이나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까닭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인 `움직이는 물레 속의 움직이지 않는 중심을 찾으라'는 이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말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움직여도 절대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진리가 우리의 중심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내게 맡겨주신 이들이 세상과 성별 되어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임명받은 교사여러분,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이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하나됨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보전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거룩함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내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살아가는 교사들과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신 가족들을 위하여, 내게 주신 자녀들을 위하여, 내게 주신 전도할 영혼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