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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란 무엇인가(26)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것” / 눅 1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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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란 무엇인가(26)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것”         
눅18:9-14

오늘 아침 “죄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26 번째 설교를 합니다. 신약에 나타난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책망하신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시 답이 나왔습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멸시하던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죄가 가장 크고 가장 무서운 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하신 책망보다 더 강하고 무섭게 책망하신 일은 없었습니다. 마23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화 있을찐저” “화 있을찐저” “화 있을찐저” 라는 말씀을 다섯 번이나 하셨고 마지막에는 그들을 무섭게 정죄하셨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 가장 크고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죄가 옛날 바리새인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오래 믿은 신자들, 형식과 전통에 사로잡혀 있는 신자들, 보수적인 신자들에게도 있는 죄입니다. 자기를 괜찮게 여기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낱낱이 드러내는 사람들 가운데 존재하는 죄입니다. 자기는 믿음이 좋은 척 하고, 자기는 삶이 바른 척 하고, 자기는 성품이 좋은 척 하는,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존재하는 죄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허물들을 너무 잘 들여 다 보는 독수리나 매 같은 밝은 눈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존재하는 죄입니다. 이제 바리새인들의 죄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바리새인들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죄를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예수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성전에 올라가서 따로 서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은 괜찮은 신자처럼 보입니다. 요사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성적인 부도덕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소득의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 나오는 바리새인은 도덕적이고 의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주 모범적인 신자처럼 보입니다. 교회 안에 이만한 신자가 있다면 목회자가 고맙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 나오는 바리새인을 기뻐하시지도 않았고 옳게 여기시지도 않았고 의롭게 보시지도 않았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의롭다고 칭함을 받지 못하고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바리새인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내려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의 특성은 속은 더럽고 겉만 깨끗하게 보이는 위선이었습니다. 내면적이고 영적인 삶은 무시하고 외향적이고 형식적인 겉 치레만 치중한 이중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23장에서 바리새인들의 특성을 보다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 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5-27). 바리새인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겉을 깨끗하게 아름답게 단장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의식이 아닌 사람 의식과 자기 의식에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겉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를 의롭게 보이게 하려고 겉을 경건하게 단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며 겉을 그럴듯하게 단장하는 것이 죄입니다. 솔직하지 못하고 진솔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지금도 같은 책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여.”

둘째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멸시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죄를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예수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성전에 올라가서 따로 서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 바리새인은 세리를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세리를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의인 의식이 강한 사람은 세리와 같은 사람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합니다. 세리를 보면 화가 납니다.

누가복음 7장에도 바리새인이 하나 나오는데 그 사람도 죄인인 한 여자를 보고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도덕한 여자가 자기 집에 들어 온 것이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를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를 죄인이라고 정죄했습니다.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 인줄을 알았으리라”(눅7:39).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허물과 잘못을 발견할 때 도저히 참지 못하는 의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발견할 때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정죄 의식에 사로잡히는 의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와 같은 소위 자칭 의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마7:4,5). 하나님은 죄인을 멸시하는 의인은 외면하시고 오히려 멸시를 당하는 죄인에게 자비의 얼굴을 돌이키십니다. 성전에 올라와 따로 서서 기도하던 바리새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내려갔고 멸시를 당한 세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고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 죄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보고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것이 죄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지금도 같은 책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여.”

셋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의 공통적인 죄는 예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예수님을 비판했고 예수님에게 반항했습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은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죄인 인줄을 알았도다”(눅7:39). 그래서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세리 마태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며 비방했습니다. “예수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눅5:30). 그래서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6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 그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며 화가 나서 예수를 처치할 것을 의논했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눅6:11). 그래서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바리새인치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무릎을 꾼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불행한 일입니다. 너무나 무서운 일입니다. 죄 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 가장 무서운 죄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꿀 줄 모르는 건방짐의 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강제로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3:10). 아마 바리새인들은 마지막 날에 가서야 강제로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을 못 마땅하게 여기며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런 건방진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지금도 같은 책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여.”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바리새인들의 죄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죄입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죄입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죄입니다. 바리새인들 중에 행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화를 내는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언제나 비판만 하는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언제나 짜증을 내는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도 받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너무 불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습니다. 바리세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무릎을 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서 ‘사울아 사울아’ 라고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의인 중의 의인이었던 사울이 자기를 가리켜 ‘죄인중의 괴수’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자의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이방인들과 죄인들을 멸시하던 사울이 나중에는 이방인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자기의 가슴과 눈물과 사랑을 그에게 부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무릎을 꿇지도 않았고 자기들이 죄인임을 고백하지도 않았고 이방인들을 용납하지도 품지도 않았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바리새인처럼 자만하고 잘 나고 위선적인 우리들을 찾아와서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지만 우리는 귀를 틀어 막고 주님의 음성을 듣지도 않고 무릎을 꿇지도 않고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이 바리새인으로 남아 있겠습니까? 위선적인 의인으로 남아 있겠습니까? 차라리 세리가 되고 죄인인 한 여자가 되어 주님 발 앞에 무릎을 꿇겠습니까? 차라리 눅18장에 나오는 세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차라리 눅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그렇게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찬송가 331장을 세리와 죄인의 심정으로 부르겠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꾸는 자세로 부르겠습니다. 아무리 뻣뻣하고 교만한 죄인일지라도 사울처럼 무릎을 꿀면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소망이 없는 뻣뻣하고 교만한 죄인일지라도 사울처럼 ‘나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라고 고백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절을 김혜은 양이, 2절을 박치원 장로님이 부른 후 제가 기도하고 3절부터 다 같이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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