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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취하여 쪼개라(1) / 창 15:9-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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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여 쪼개라(1) / 창세기 15:9-11, 17 


창세기 15장 18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 15:18 / (읽기) / 이 구절에서 먼저 세 개의 단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언약, 땅, 그리고 자손! 먼저 언약, 그 날 하나님은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언약(言約)이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로 하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을 맺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먼저 대화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말이 오가지도 않았는데, 언약을 세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세기 15장은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아주 친밀한 대화 내용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장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말씀을 드리고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늘 하나님과 대화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내 인생의 방향을 놓고 고민할 때, 혹여 점쟁이한테 달려가지 마시고,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 오셔서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여 늘 하나님과 가까이 대화하면서, 마침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 그 언약 이루며, 가장 복 된 인생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점쟁이 말이 나왔으니, 여기서 한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2월 6일자, 유력 일간지의 광고를 하나 오려가지고 나왔습니다. “나한테 욕먹고 싸울 각오가 된 사람이라면 지금 전화하시오! 갑신년 신년 운세 특별 상담 중!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 말만 합니다... 천지가 뒤바뀔 지도 모르는 갑신년 새해, 대책 없이 맞이할 테냐?”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만, 소위 무속 인들의 영업 광고입니다.

광고 카피를 보면 정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나직한 목소리, 조신한 몸가짐이 천상 여자로구나 싶은“아무개”선생, 그러나 상담을 할 때면 평소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거친 욕에 싸움까지 서슴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싸우고 난 손님이 나중에 꼭 다시 전화를 걸고 오랜 단골이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녀의 신통력이 어떤지 알 수 있을 듯 하다. “아무개”선생과 통화할 때는 단단히 각오를 하시길...“  “공인자격증을 갖춘 점술 인들이 상담을 해 드리는 곳. 우리나라에서 점 볼 땐, 전국 어디서나, 060. 빵빵빵, 빠바빵빵!”

그런데 문제는 이런 광고가 우리나라의 유력 일간지마다 매일 실린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저는 이 광고를 보면서 말로 하기 힘든 분노와 비애를 느껴 왔는데요, 비애라 함은 얼마나 많은 광고료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혹세무민하는 이런 광고를 매일 5단 전면에 내주는 신문사에 대한 비애요, 분노라 함은 유력 일간지의 5단을 매일 살 수 있을 만큼 저들의 일이 장사가 잘 된다는 점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런데요, 여기 가지고 온 광고는 소위 전화로 점을 보는 집에 대한 광고인데요, 놀랍게도, 정보이용료가 30초당 990원이라는 점입니다. 1분에 2천원, 1시간이면 12만원입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현상입니다.

해서 조사를 해보니 2003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무속종교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가 무려 6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목회자는 겨우 8만 명 정도입니다. 목회자 수보다 저들의 수가 일곱 배 이상 많다는 결론인데요, 게다가 소문난 점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 총수로부터 정치인들까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복채 또한 엄청나서 1억 원씩 가져다 바친다니, 정말 부정하고 눈먼 돈이 많긴 많은 모양입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그런데요, 어느 대학 교수가 33년 동안 3천 명의 무속 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무속인들 대부분이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35%는 유전적인 요인 때문에 무속 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수 혹은 무당의 자손이기에, 싫어도 할 수 없이 그 길을 간다는 거지요. 어떤 사람은 자식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마치 다른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몰래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싫어도 하는 이유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자기 일신상에, 혹은 자기 가족에게 재앙이 내릴까봐 두려운 마음 때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보고를 들으며 참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는 사람들, 게다가 자기 인생, 자기 가정, 자기 기업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무엇을 알아보고 무엇을 받아온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불안해서 그렇습니다.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어디 믿을만한 구석이 없어서입니다. 이 점에선 한국 교회도 좀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가 믿음의 보루, 믿음의 기둥이 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 라인,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오늘의 운세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오늘의 운세는 왜 봅니까? 어떤 분은 믿지 않고 심심풀이 땅콩으로 본다고 하시는데요, 아니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심심할 새가 어디 있습니까? 심심하면 나가서 전도해야지요. 사랑해야지요, 봉사해야지요. 따라 외쳐 주시기 바랍니다. “심심하면 전도하자!” 여러분,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오직 모든 일을 주님께 아뢰고, 날마다 주님과 대화하며, 하여 언약 속에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다시 말씀으로 돌아오실까요? 창세기 15장 18절을 보니, 아브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언약의 내용이 두 가지이군요. 하나는 땅, 다른 하나는 자손인데요, 한 마디로 이 땅을 너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언약이지요. 그렇다면 이 말은 아직까지 아브람이 땅을 얻지 못했으며, 또한 자손도 얻지 못했다는 뜻이군요. 그랬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아직 자손도, 땅도 없었습니다.

해서 15장 1절을 보면, 지금 아브람이 무척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두려워 떨고 있는지 하나님, 친히 찾아오셔서 두려워말라고 격려해 주셔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람이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방금 전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람은 조카 롯을 사로잡아 갔던 주변국 동맹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승전가를 부르면 기뻐해야 할 그가 왜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일까? 바로 다음 2절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친밀한 대화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일단 한번 읽어보실까요? / 15:2 / (읽기)

이게 어인 일입니까? 지금 아브람이 하나님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대답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 하나님, 하나님이 제 방패요 큰 상급이라 하시는 말씀, 고맙긴 하지만요, 그렇다면 저에게 무언가를 좀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체 무엇을 주시려고 저에게 이러시는 겁니까? 하긴 지금은 저에게 천하를 다 주신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랬군요. 아브람이 슬퍼하며 두려워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자식이 없기 때문이었군요. 그도 그럴 것이, 너로 큰 민족을 만들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창대케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 하나 믿고 예까지 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식은 주시지 않고, 이제 곧 세상 떠날 것 같은데, 죽은 후에 누구에게 상속할까 둘러보니, 다메섹에서 데려온 종 녀석만이 보일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브람의 나이 85세, 그러니까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지 10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10년을 기다려도 그의 인생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아브람의 마음속에 의심과 불신앙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10년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하나님이 약속을 잊으신 것은 아닐까?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선 우선 내 자식이 먼저 태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젠 부인 사라의 태가 닫힌 지도 벌써 오래, 내 몸에서 자식을 얻기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아니, 하나님 오셔서 하시는 말씀, 무슨 방패 타령에 상급 타령이실까?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주시겠다는 건가?

정말 천하의 아브람이 번민하기 시작합니다. 점점 짙어져만 가는 의심의 안개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조심할 것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되면, 가장 먼저 나에게 불안이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은 이내 두려움으로 번집니다. 문제는 인간이 일단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더욱 철저하게 인간적으로 된다는 점입니다. 두렵기 때문에 더욱 더 인간적인 생각만 합니다. 기를 쓰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을 지키려고 합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하여 아브람,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상식적인 대안을 생각합니다.

아브람의 말대답을 계속 들어봅니다. / 15:3 / (읽기) / 지금 아브람이 무어라 합니까? “하나님, 저에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가 주어다가 내 집에서 기른 저 녀석을 저의 후사로 삼겠습니다. 아니, 하나님, 저에게 아들이 없는데 다른 길이 없잖습니까?”여러분, 이것이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이것이 가장 인간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요, 인간적인 생각은 우리 인간의 마음에 쏙 드는 생각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은 우리 마음에 가장 편안한 생각입니다. 해서 인간적인 생각은 내 속에서 아무런 저항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인간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 아브람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4절을 보실까요? / 15:4 / (읽기) / 우리 하나님,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는 너의 후사가 아니다. 너의 후사는 너의 몸에서 날 너의 자식이어야 한다.”무슨 뜻입니까? 나의 생각은 너의 생각과 다르다는 겁니다. 이제 내 생각을 알려 줄 터이니 내 뜻에 따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대개의 사람들은, 우리 크리스천들마저도, 내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삼으려고 합니다. 하나님한테 내가 내 생각을 통보하고, 하나님보고 나에게 순종해 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그래서 말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덤비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보고 뜻을 바꾸시라는 거지요. 내 뜻에 따라 달라는 거지요.

그러나 그건 이건 신앙이 아닙니다. 이건 억지 춘향입니다. 지독한 불신앙입니다. 분명한 사실,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점이요, 이 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나의 생각과 다릅니다. 따라서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인간의 나의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리거나 모두 다 쉽게 수용하기 힘든 것, 당연한 현상입니다. 해서 우린 날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현실 세계로부터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리도 오랜 세월을 기다리게 하시는 것일까? 아브람은 언약을 받은 이후 왜 25년이나 기다려서 아들을 얻어야만 했던 것일까? 난제입니다만, 거기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이 성숙하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대목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내 인생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나에게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이리 하나 있으니, 나의 믿음이 커지고 성숙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커져야 한다는 겁니까? 그 섭리, 그 역사, 그 언약의 성취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만 수용할 수 있고,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고, 믿음으로만 순종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났을 때, 그 엄청난 일을 감당할 만한 믿음이 나에게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그릇이 적은 자에게 하나님의 기적은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언약의 성취는 오히려 화근일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믿음의 사람인가? 상식의 사람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얼마나 믿음으로 선택했고, 또 믿음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는 나의 믿음은 얼마나 성숙했고, 나의 믿음의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믿는다고 하면서 모든 일을 그저 내 인간적인 상식과 인간적인 판단으로만 해 온 것은 아닌가? 한번 스스로 진지하게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사실은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서는 결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임하지 않고서는 언약의 성취를 맛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세계와 상식의 세계는 질적으로 그 차원이 다른 세계입니다. 정말입니다. 상식선에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 평생을 살아도 누군가에 감동을 줄만한 간증 거리 하나가 없습니다. 그런 분들,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만한 영적 힘을 갖지 못합니다. 상식으론 믿음의 봉우리에 올라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약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해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증거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 나라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돈으로는 못 갑니다. 힘으로도 못 갑니다. 오직 믿음으로 거듭나야 갈 수 있는 나라, 해서 그 천국을 믿음으로 품고 사는 자, 마침내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오늘 여기를 살면서 내일 거기를 품어, 오늘을 영원으로 잇대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담임목사, 간곡하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먼저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 하나님 자신이 먼저 언약을 파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나의 믿음입니다. 내 믿음이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기적을 감당할 만큼 성숙해야 합니다. 내 믿음의 분량이 자꾸 자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에 믿음만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해서 우리 하나님, 가장 먼저 아브람의 마음에 다시 믿음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상식선으로 떨어졌던 아브람이 믿음의 세계로 다시 올라서는 장면인데요, 5절을 보실까요? / 15:5 / (읽기) / 정말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참으로 은혜가 되는 점은 우리 하나님, 두려움에 싸여, 감히 하나님께 불경하게 말대답하면서 대들고 있는 아브람을 혼내지 않으십니다. 야단치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잠깐 밖에 나가보자!”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 하나님,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라 하십니다. 그러자 밤하늘의 별들이 아브람에게 쏟아집니다. 그러자 아브람, 저 별들을 하나씩 헤아리기 시작합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그러고 보니 우리 아브람 할아버지, 참 순진무구하십니다. 방금 전에 하나님께 투정부리던 그 마음 다 어디로 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밤하늘의 별을 세고 있으니 말입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심각한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가장 최근에 밤하늘의 별을 세어 보신 적이 언제입니까? 내 별 잘 있습니까? 이번 정월 보름달은 보셨습니까? 여러분, 오늘 밤이라도 옥상에 올라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가끔은 시간을 내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 하늘의 별을 내 가슴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시쳇말로 별을 봐야 별을 따지요. 그런데 우리 현대인들, 이런저런 이유로 고개 들어 하늘 한번 올려다 볼 겨를도 없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너무 바빠 그런 낭만적인 일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는 나 지금 너무나 힘이 들어 고개들 힘조차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고개 숙인 군상들뿐입니다. 별 하고 나 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 내 가슴에 별이 지면서 희망도 함께 집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야, 고개를 들어 하늘 좀 바라 봐, 내 손으로 만든 저 하늘, 내 손으로 걸어 놓은 저 달과 저 별들도 좀 바라보란 말이야, 너의 자손이 저 별과 같을 것이야!”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별을 가슴에 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여 별 빛 같은 은혜로만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너의 자손이 저 별과 같으리라!”

그런데요, 방금 전에 무엇을 주시려고 이러시느냐고 불경하게 투정하던 아브람, 고개 들어 별을 바라본 순간, 그 마음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별 빛 속에 빛나는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찬란히 빛나는 그 별 빛이 내 가슴에 들어오면서 의심과 두려움의 안개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할렐루야!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언제 그랬느냐 싶게 그를 괴롭히던 불안한 마음, 두려운 마음이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그 대신 아브람의 마음에 다시 믿음이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별이 내 가슴에 들어오자, 지난 10년 동안 쌓였던 감정의 응어리들과 불신앙의 찌꺼기들까지 모두 다 녹아버렸습니다. 스스로 비참하고 불쌍하다는 생각, 이젠 희망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했던 생각, 나는 지지리도 못났다는 열등감까지 몽땅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이젠 아브람의 마음에 밤하늘의 별들이 들어와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아름 가득한 그 별빛들이 아브람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여 새로운 믿음과 새로운 소망으로 충만해진 것입니다.

해서 아브람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로 합니다. 6절인데요, 성경은 그 감동적인 대목을 아주 간략하게 전해줍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 15:6 / (읽기) / 그랬습니다. 의심이 사라지고 믿음이 회복된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의심을 몰아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해서 아브람이 하나님을 다시 믿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회복한 아브람을 어여삐 여기신 하나님, 그 믿음을 그의 의로 받아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요, 놀라운 섭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일단 아브람의 믿음이 회복된 것을 확인하신 하나님, 그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시더니, 이내 하늘의 복까지 약속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의인에게 주시는 축복이요 선물인데요, 직접 확인하실까요? / 15:7 / (읽기) / 지금 하나님, 무어라 하십니까? “그래, 나를 믿는다니 고맙구나, 나는 너를 이 곳으로 이끌어낸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이리로 인도한 이유는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을 삼게 하려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려고 너를 이끌어 낸 여호와 하나님이다!”

자, 여기서 아브람이 할렐루야 아멘으로 화답하기만 하면 모든 스토리가 해피 앤엔으로 완성될 판입니다. 그런데 인간 아브람 좀 보십시오. 또 다시 볼멘소리를 합니다. 방금 전 충만했던 믿음은 다 어디로 가고, 인간적인 마음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지요. 그의 말을 들어보실까요? / 15:8 / (읽기) / 정말 한심합니다. 제가 하나님이라면 복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아브람, 넌 안 되겠다, 너 말고 다른 이를 세우겠다!”고 호통을 쳐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지금 아브람이 왜 또 딴지를 걸고 나선 것입니까? 아무 징표도 없이 믿으려니 잘 믿어지지 않아서입니다. 해서 지금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께 그 복을 주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될 줄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런데요, 이 불경한 요청에 우리 하나님, 놀라운 제안을 하십니다. 9절과 10절인데요,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취하여 쪼개라는 것입니다. 취하여 쪼개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풀어드립니다. 취하여 쪼개라 하신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아브람은 이 명령을 받고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선 다음 주일에 풀어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강조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늘 주님과 대화하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광 교회는 먼저 기도하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시고, 그 별 내 가슴에 품어내시기 바랍니다. 하여 별빛 속에 빛나는 주님 만나게 되시기 바랍니다. 별빛 같은 은혜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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