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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망중의 마른 뼈 / 겔 3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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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중의 마른 뼈 
겔37:1-12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에게 사랑하는 친구가 사냥개 두 마리를 선물했습니다. 내친 김에 토끼 사냥을 떠났지요. 그런데 이 사냥개가 땅에 뒹굴뒹굴 뒹굴기만 하고 토끼 잡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겁니다. 홧김에 내려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다음에 사슴 사냥을 떠났습니다. 저 만큼 사슴이 나타났는데도 전혀 좇아가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 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화가 난 알렉산더는 활을 쏘아 사냥개 두 마리를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그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토끼 한 마리, 사슴 한 마리 잡지 못하는 그 놈의 개를 사냥개라고 내게 선물을 했느냐고?” 친구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대왕 그 사냥개는 대왕을 위하여 사자와 호랑이를 잡을 때 쓰도록 특별히 훈련된 개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꿈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크고 높은 꿈 - 영원한 비젼이 있습니다. 토끼나 사슴 정도는 못 잡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별명이 있다고 하면 큰 꿈 - 꿈꾸는 사람입니다.


1. 이 땅에 희망이 없는가?

여러분, 우리 민족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통일 조국의 꿈이 있습니까? 우리 정치에 소망이 있습니까? 이 나라 경제에 희망이 있습니까? 한국교회는 기대할 만한 소망이 있습니까?

지난 주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로 안타까운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지하철 사고로는 지금까지만 해도 2번째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숨쉬는 것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유독가스, 그리고 뜨거운 불길.

그 속에서 주부 김인옥(30)씨는 남편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줘요.”라고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6살과 4살짜리 두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서 “오늘 빨리 퇴근해서 같이 저녁먹자”라는 전화를 받은 남편에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몇 분의 침묵이 흐른 뒤 “여보 사랑해요. 애들이 보고 싶어.”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습니다.

이제 갓 20살이 된 여대생 이선영양.

이선영 양은 어머니의 “정신 차리고 살아있어야 돼”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울먹이며 “숨이 막혀 더 이상 통화 못하겠어.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습니다.

지난해 결혼한 새댁 민심은씨(26) 역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오빠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라는 말만을 남겼습니다.

“아빠 뜨거워 죽겠어요.”라며 숨 가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구조를 요청했던 여고생.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 하세요”라며 어머니와 마지막 전화통화를 한 30대 남자.

“숨 막혀 죽겠어요. 나 좀 살려 주세요”라고 절규한 여고생.

핸드폰이란 유용한 기계이긴 하지만 이럴 땐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마지막 순간의 애타는 목소리는 가족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한 구조대원이 희생자를 수습하려 지하철 안에 들어갔을 때, 엄마 품에 안겨 새까맣게 타버린 아기를 보았다고 합니다.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조그만 아기가 제발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기를 바라는 마음, 잔인하지만 그렇게 밖에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도 홧김에 이런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마 어마한 희생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 합니다. 어떻게 4분 만에 지하철이 불로 번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성수대고, 삼풍백화점 사건, 씨 랜드 화재 사고가 날 때마다, 개선하여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그토록 다짐들을 하건만, 사고만 나면 대형 사고요, 아까운 생명이 덧없이 희생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또한 남북으로 갈리운 이 민족은 요즘 들어 북핵 문제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민족에게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시간은 언제 올 수 있단 말입니까?

미국 「비즈니스 위크」라는 잡지사의 서울주재 특파원이 한국을 일컬어 「4-TC공화국」이라고 혹평을 했다 합니다.

1. Total Corruption - 총체적인 부패의 나라
2. Total Confusion - 총체적인 혼란의 나라
3. Total Crisis - 총체적인 위기의 나라
4. Total Condemnation - 총체적인 유죄의 나라, 불량품의 나라라고 혹평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나라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문화 어디를 만져도 푹푹 썩어 주저앉습니다. 정치가들이 썩었다고요? 국민들이 썩지 않았는데 정치가들이 썩을 수 있는 것입니까? 기업인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특파원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이 타락과 부패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요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 인류의 문제요 바로 인간 실존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겐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이 있습니다. 경제난이 조금 풀렸다고 고급 양주나 사다 나르는 몰지각한 인사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근면하고 성실합니다. 우리는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많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은 민족입니다. 일제 35년의 수난과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다시 일어선 민족입니다. 욥처럼 고난을 디디고 일어선 민족입니다.

결정적으로, 이 나라에는 일천만 성도들이 밤낮으로 교회와 가정에서 기도원에서 몸부림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 도처에 의롭게 살려는 몸부림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 묵묵히 자신의 일들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왔고 부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역사해 주셨습니다. 캄캄한 죄악의 도성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계속 되어졌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고 여기 우리 민족의 비젼이 있습니다.


2. 본문의 역사적 배경

한 선지자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여러분 회개하십시오. 부정과 부패를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열방을 의지한 죄를 회개하십시오. 위정자들도 국민들도 회개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이 나라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200백 여 년 동안 예레미야를 비롯한 수많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비참합니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 한발과 재난, 땅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수많은 군대를 끌고 쳐들어 옵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옵니다. 도처에서 비명소리로 가득합니다. 유대의 마직막 왕인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묶여 개처럼 끌려갑니다. 그토록 화려했던 예루살렘 성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건장한 젊은이들이 포로로 질질 끌려갑니다. 성전과 회당에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이런 비극적 역사가 7년 동안이나 계속되어졌고 골짜기마다 마른 뼈로 흘러 넘쳤습니다.

그러할 때에, 에스겔 선지자가 포로의 한 사람으로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를 결국은 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그 골짜기 전체에 마른 뼈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에게 희망이 있겠느냐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3. 마른 뼈

마른 뼈 골짜기의 상황을 오늘 본문 2절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겔37: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뼈가 심히 많다는 말은 절망의 상태가 온 백성에게 퍼져있었음을 말합니다. 전 민족적인 참상이었습니다. 더욱이 아주 말랐다고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영적으로 재생의 기운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뼈가 온 지면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비참하게 죽었기에 장사지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버려진 시체를 짐승들이 뜯어 먹었습니다. 하늘을 날던 독수리 까마귀가 뜯어먹었습니다. 뼈들은 이리저리 굴러다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수치가 열방 앞에 여지없이 드러난 상황이었습니다. 7년 동안 이 비극은 계속되어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뼈를 가리켜 누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겔37: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합니다. 여기 앙상한 뼈들은 7000만 내 민족입니다. 굶주린 내 동포들입니다. 영적으로 메마른 한국교회요 내 교회요 내 영혼일 수 있습니다.

한없는 문제를 안고 있으나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내 가정이 골짜기의 마른 뼈입니다. 세계 앞에 커다란 수치를 당하고서도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과 위정자들이 골짜기의 마른 뼈입니다. 부흥이 멈추고 예배가 메마르고 전도의 문이 닫혀졌습니다. 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샤머니즘 무속신앙에 물들어져 있습니다. 몸부림할 줄 모릅니다. 바로 이 한국 교회가 골짜기의 마른 뼈입니다.

Vision 2003 ! 회복 - 이 해에 이제 살아나야 합니다. 주님 앞에 찾아 나올 때마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체험하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짓과 위선의 옷을 벗어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의 허울들을 벗어 던져야 하는 것 입니다. 이 민족 한국교회 성도들의 거룩한 신앙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Vision 2003 ! 회복 이라는 표어 아래, 우리는 이 한 해 동안 예배를 회복하고, 교회를 살리고 찾아오는 모든 성도들의 영성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타오르는 성령의 불길로 이 도시를 태우고 이 민족을 살려달라고 하나님 앞에 애원하며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4.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골짝 저 골짝 수북수북 쌓여 굴러다니는 마른 뼈들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고 있으나 어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남편을 바라보아야 하는 아내들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이제는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고 진리의 오묘한 세계를 맛보며 영광스럽게 신앙생활을 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성도들을 바라보아야 되는 목회자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두 눈이 빠진 채 마귀에게 질질 끌려가는 지도자를 쳐다보아야 했던 백성들 성도들의 마음을 볼 때 어떠할까요? 무너진 성전, 폐허가 다 된 예배를 바라보아야 했던 마음은 어떠할까요?

바로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겔37: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뼈들에게 희망이 있느냐. 너희 민족에게 희망이 있느냐.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느냐.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희망을 걸어도 좋으냐 그 얘기입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는 늘 절망해야 하는 것입니까? 개선한다는 말 만하고 여전히 그렇게 변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앞에 우리는 그냥 무릎꿇고 절망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에게는 과연 소망이란 찾을 수 없단 말입니까?

에스겔은 대답합니다. “주여 주께서 물으시오니 주께 대답이 있나이다. 주님이 원하시면 주님이 하실 수 있나이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나이다.” 주님이 원하시면 이 민족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이 민족이 살기 좋은 안전한 국가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휴전선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새로운 부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전무후무한 부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주님 앞에 영광스럽게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종아 이 모든 뼈들에게 외치라! 너희 속에 말씀이 들어가면 살아나리라. 메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불어오면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살아나리라.

마른 뼈 같은 내 심령에 말씀이 들어가면 살아납니다. 오, 성령이여 우리 가운데 오시옵소서. 우리가 성령님을 환영합니다. 여기 충만케 하시옵소서. 성령을 호흡 하면 살아납니다.

회복-2003 어떻게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창출할 수 있습니까? 말씀이 살아나야 합니다. 성령이 도와 주셔야 됩니다. 주님 앞에 찾아 나올 때마다 여러분 성령을 호흡하셔야 됩니다.

어떻게 여러분의 가정이 살아날 수 있습니까? 말씀이 여러분의 가정에 선포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믿음으로 고백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움켜쥐고 붙들어 사용해 주셔야만이 여러분의 가정이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한국교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까? 이 강단이 살아나야 됩니다. 성령이 역사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머리마다 성령이 역사해 주실 때에 한국교회가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무엇이 우리를 절망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주께서 아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전하라. 이 뼈들에게 명령하라. 선포하라. 순종했습니다.

에스겔은 순종했습니다. 주께서 마른 뼈를 향하여 외치라 말씀하니 외칩니다. 말씀을 전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 이 뼈들을 살려 내라. 이 곳 저 곳에서 뼈들이 살아나 무서운 군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창조의 종교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온 세상을 만들어 주신 분이 여러분 의 아버지 우리 하나님 되십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는 종교입니다.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 살려내는 종교입니다. 창조가 없는 종교 부활이 없는 종교는 부도 수표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벅 여사를 아십니까? 그의 작품 가운데에 「어머니의 초상」이라고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펄벅 여사는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22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인 남편을 따라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대륙 중국으로 건너갑니다. 본국과의 통신이 두절되어지고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은 채 굶주림과 많은 생명의 위험속에서 선교활동을 계속합니다. 여기서 일곱아들이 태어 나지요. 그 가운데 네 아들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리고 세 아들을 키워가는데 어릴 때 보았던 그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펄 벅은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의 얼굴 속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을, 우울한 어머니의 노래를, 어머니가 꾸며준 우리의 방에는 어두운 그림 들을 본적이 없다. 내 어머니가 들려준 얘기 가운데 절망적인 얘기를 내가 들 은 적이 없다. 언제나 희망이 넘치는 믿음의 얘기를 어머니는 우리에게 들려주시곤 하셨다.”

펄벅 여사 어머니의 모습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런지요. 여러분 절망스러운 얼굴을 걷어치우십시오. 여러분의 입술에서 우울한 노래 슬픈 노래를 멈추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에서 어두운 그림들을 다 걷어치우십시오. 여러분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얘기들 가운데 절망의 얘기, 근심의 얘기를 멈추십시오. 희망의 얘기를 선언하십시오.

오늘 에스겔의 외침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크리스챤의 절규입니다.

모든 사람이 절망할 때 우리는 소망을 선포합니다. “마른 뼈에도 소망이 있다고!”

세상 모든 사람이 울고 있을 때 성령 안에서 환한 웃음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캄캄한 인생의 밤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말씀의 등불을 밝혀줍니다. “여기 길이 있다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면 희망이 있다고.
말씀을 들으면 당신이 살아날 수 있고
당신의 가정이 살고 성령 안으로 돌아오면 이 교회가 살고 이 민족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마른 뼈에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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