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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권세있는 가르침 / 눅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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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권세있는 가르침
본문 : 누가복음 10:25~37

미국 텍사스 레인저스 투수인 코리언 특급 박찬호 선수가 오랜 부진을 마무리 하고
금년엔 재기하려고 하는 중요한 순간
대 선배투수일 뿐만 아니라 스프링 캠프 인스트럭터 및 자문역인 놀란 라이언이
텍사스 레인저스와 결별을 선언하면서 마지막으로 박찬호에게 몇가지 가르침을 주었는데
다음과 같이 3가지를 주었습니다.

첫째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
둘째 불필요한 동작을 줄여라!
셋째 몸쪽 공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현역 시절 최고 구속 100마일(161km)의 광속구를 무기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등
메이저리그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전설로 인정받을 만큼 위대한 투수였는데..
그런 위대한 투수지도자가 지난 주중 한 수 지도한 것입니다.

그동안 박찬호 선수는 이 놀란 라이언을 마음 속의 지도자로 삼아
그의 전매 특허인 하이 킥 투구폼을 따라하면서 광속구를 던져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하면서 직접 그에게서 투구 지도를 받아왔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지도를 받게 된 지도가 그 3가지였다는 것입니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 불필요한 동작을 줄여라! 몸쪽 공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놀란 라이언 같은 위대한 지도자의 이 세마디의 가르침은
오늘 말씀 제목처럼 "권세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박찬호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듯 다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 가르침이 권세가 있다는 것인데..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시험하다가 오히려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되는데
그 가르침이 아주 비싼 가르침, 권세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사란 시내산(山)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을 지키며 전수하는 전문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예수님에게 율법에 대하여 질문한 것입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겉으로는 품위있게 질문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25절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말씀을 기록한 사람은 의사(醫師) 출신 누가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그래도 똑똑한 사람 축에 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질문이 몰라서 묻는 질문이지... 시험하는 질문인지... 알았습니다.

'저 율법사가 지금...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구나...'

율법사는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하면서
무엇을 "한다"는데 강조점을 두고 질문하고 있는데...
그 당시의 율법사들을 보면 "알기"는 많이 알고 있었으나 "행함"은 많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들은 당시 예수님 보다 6개월 앞서 등장하여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면서 그의 길을 평탄케 한... 세례요한의 세례를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세례도 받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누가복음 7:30).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당시 율법사들은 이처럼...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말은
세례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알기는 많이 아는데 행동이 뒤따르지 못하니......

그런데 율법사가... 바로 그러한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들의 모습은 성경 속에서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누가복음 11:46).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아는 것이 많아 말은 많으나.. 행동이 못따를 뿐 아니라.. 실제로는 안따른다는 것입니다!!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바로 이것이 율법사들의 실체였습니다!

그들은 아는 것은 많아... 남들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만
지기 어려운 짐은 다 남에게 지우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면서...
또 남들이 좀 배우려 하면 길도 열어주지 않고 막아버리는..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누가복음 11:52).

"화 있을찐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이렇다 보니 그들은 지도자는 지도자인데
공동체를 세워가는 지도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허는!! 이상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묻는 일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마태복음 22:34-40)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분명히 한 율법사가 묻기는 묻는데...
그 묻는 자세를 보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여 묻고 있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좀 삐딱합니다!

몰라서 묻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배운 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남은 가르치면서 자기는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잘못된 것이 고쳐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고... 지고 싶지 않는 짐은... 다 남에게 터 지웁니다!!
그러면서 질문은... 순수하게 하지 않고... 시험하는 질문만 골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시 율법사들의 실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사람인 한 율법사가... 지금!! 예수님에게 또 묻고있는 것입니다!!

자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본문 25절을 한번 다같이 읽어 보실까요?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묻기는 묻는데... 그 질문이 순수하지 않습니다.
시험성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도 이런 류(類)의 질문을 수 없이 받아 오셨지만 
이번 질문은 그대로 넘어 가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그가 묻는다고 답하고... 그러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오히려 다시 질문합니다. 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율법사의 시험성(試驗性) 질문에 예수님이 대답은 않고 오히려 되묻는 바람에
엉겁결에 율법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27절입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이 정답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는 본인의 입으로 다 탄로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율법사에게 대단히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우리 같으면 그냥 넘어가지도 않았을..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신은 다 알면서도 질문했군요!!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질문할 수 있죠?
다 알면서도! 나를 그렇게도 시험해 보고 싶었소? 그렇다면 그 저의는 뭣이죠?"

절호의 챤스를 결코 놓칠 수 없다는 듯!!.. 사냥개가 사냥감을 물 듯... 그렇게 했을 터인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창피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역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를 창피하게 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래, 네 말은 옳다! 그런데 이를 알기만 하지 말고 아는 것을 행해봐라!! 그러면 된다!!"

이쯤되면... 율법사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파악하고는
"죄송합니다, 선생님! 다시는 그런 시험성 질문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나와야 하는데!!.. 그는 엉뚱하게 나갑니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이웃이 누굽니까?"

질문은 질문인데... 그는 갈수록 수준이 떨어지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지난번에 시험성 질문을 던져 체면 구긴 것을 만회하려는 듯...
이번에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는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29절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지난번 같았으면 예수님이 이런 질문에 다시 묻는 형태로 진행하였을 터인데
이번에는 그의 자세 변화를 감지한 듯... 자세하게 그리고 좀 긴 대답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야말로 그에게 말씀하시는 "권세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일 뿐 아니라... 좀 어려운 작업입니다.

이런 사람은.. 알기는 많이 아는데 교만하고.. 말은 많은데 일은 안하는 그런 류형입니다.
또 이런 류형의 사람은 가냥 놔 두면 문제가 잘 해결될 일도
자꾸 건드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그런 류형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항상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무슨 일만 생기면 자기는 돌아보지 못하고 남만 탓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자 이런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만... 바르게 되겠습니까?

저는 이것이 오늘의 기독교 교육의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자기인식인... 正體性(character)과
사람들과 관계된 인간관계와 사건들 속에서의 바른 자기인식인... 主體性(subjecthood)
그리고 그렇게 해서 형성되어 나아가는 人間性 즉 人格(personality)에 대하여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야만!! 그들이 바른 신앙과 인격을 소유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한 명의 크리스챤이 된다고... 그렇게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율법사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인식인 正體性(character)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는... 율법에 대하여 알기는 많이 알지만
그 아는 것으로 남을 우습게 알고... 남을 시험이나 하며!!...
모든 백성들이 다 받는 세례는 의도적으로 받지 아니하여
세례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저버린 사람이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正體性(character)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主體性(subjecthood)입니다.
그에게 왜 主體性(subjecthood)에 문제가 있는가 하면
그가 많이 배운 지도자이면 많이 배운 지도자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남들이 배울 기회 즉 지식의 열쇠를 손에 거머쥔 그런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지식 속으로 더 들어가지 않고... 남도 못들어가게 할 뿐 아니라!!
지기 어려운 짐은 남에게 지우고... 자기는 한 손가락도 대지 않았기에!....
그가 과연 지도자 의식을 가진 지도자인가 하는 主體性(subjecthood)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人間性 즉 人格(personality)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 수록 신앙으로 인하여 사람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 사람의 달라짐이 人間性 즉 人格(personality)의 변화로 나타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일련의 행동을 보면 그 변화를 도저히 찾아 볼 수 없기에...
그의 인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 율법사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는 職分과 存在를 구별할 줄 몰랐다. 이것이 그의 失手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고 신학을 하여 교역자가 되었고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목사 안수를 받은 즉시 거룩한 존재가 된 것입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방 이해가 잘 안되는 분들을 위하여 다르게 예(例)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항존직 투표를 통해서 장로로 선출되고 권사로 선출되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소정의 교육과 절차를 밟아 안수를 받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안수를 받은 즉시 거룩한 사람이 된 것입니까?
그래서 그 직분에 걸맞는 신앙이나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즉시 변한 것입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분은 성도들에게 인정받아... 항존직분자로 선출된 것 뿐이고!!
그 이후 소정의 절차를 밟아..... 직분을 받게된 것 뿐이지!!
그가 안수를 받았다고... 신앙이나 인격이 즉시 거룩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이것을 혼동하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직분이 달라지는 즉시!!... 목소리도 달라지고... 자세도 달라지며...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그가 귀한 직분을 받았고... 귀한 직분을 맡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의 신앙이나 인격(personality)...
正體性(character)이나 主體性(subjecthood)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가 직분을 받았고... 직분을 맡은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율법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는 그 전에는 평신도였지만... 어느 날 율법사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사의 직분을 받았고!!... 율법사의 직분을 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존재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지금 질문하고 있는 태도나 내용, 질문의 수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율법사의 직분에 걸맞는 언어나 행동을 하며 살려고 애쓰기만 했었어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한계였고!!...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이 그의 실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가 정말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막무가내식으로 시험성 질문이나 하며 달려드는 이 율법사에게
권세있는 가르침으로 한 수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유로 든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 속에 세 사람을 등장시키는데...
거기에는 이 율법사 본인과 같은 류형의 사람을... 두 사람이나 등장시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이 두 사람이 바로... 율법사 본인과 같은... 그런 류형의 사람이었습니다.

날마다!!!... 율법을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뿐만 아니라!! 그 말씀 그 율법에 걸맞는 삶이 나타나도록... 기도하고 금식하며 구제하고
또 어려운 이웃을 내 몸처럼 도와주며 살아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유 속에 등장한 두 사람,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은 열심히 공부해서 아는 것이 많았고... 그래서 남 가르치는 것은 잘했다 할찌라도!!
이 율법사처럼... 행동이 뒷받침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은근히 비유하면서...
끝에 가서 결론으로... 한마디로 이렇게 내리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참으로 근사합니다!!
간단하지만 힘이 있는!! 그리고 권세있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 속에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하는데 대한 해답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유법사에게 하신 말씀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무슨 말씀인가 하면... 율법과 행함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율법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 속에 구현되어야 하고 또 삶 속에도 나타나야 하는데
그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항상 살아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며!!
또 그 말씀을 지킬 때 나에게 어떤 손해나 고난이 닥친다..할찌라도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인데!!...
그렇게!! 말씀과 삶이 하나되도록!! 일치되도록!!.. 하게..하는 교육이
참된 교육이며!! 우리가 추구하는 기독교 교육이며...
그렇게 가르치는 가르침이 "권세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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