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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양보의 미덕 / 고전 10: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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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보의 미덕

본문: 고전 10: 23- 24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한 노인이 죽으면서 세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남긴 말 17마리를 가지고 큰아들은 1/2을 갖고, 둘째는 1/3을, 막내는 1/9을 가져라."
3형제는 눈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말 17마리를 놓고 계산을 했습니다. 큰아들이 17의 1/2이면 8.5마리이니 9마리를 가지겠다고 하자 두 동생은 욕심이 지나치다고 반대합니다. 둘째가 17의 1/3이면 5.5마리가 넘으니 6마리를 가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맏형과 막내가 반대합니다. 막내는 17의 1/9이면 1.9마리이니 2마리를 가지겠다고 하니 두 형은 계산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3형제가 유산의 분배 계산방식을 놓고 다투고 있을 때 어떤 전도자가 그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타고 온 말을 3형제에게 줍니다. 이제 3형제는 18마리를 가지고 쉽게 계산하여 각각 소원대로 9마리, 6마리, 2마리씩 나누어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처음 요구대로 나누어 가졌어도 1마리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깨달은 3형제는 그 한 마리를 전도자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물건이라면 정확히 나누어 가질 수 있지만 말은 생명 있는 재화입니다. 생명을 나누는 데 수학은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 왕이 자식을 둘로 나누어 반반씩 가지라 할 때 사랑의 모정은, 친자식을 양보했습니다. 뜨거운 모정은 생명이 차마 나누어지는 잔인 한 분배의 수학적 법칙을 수락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진짜 어머니는 포기하므로 자식을 다시 찾았습니다. 인생의 많은 문제들은 아무런 양보 없이 자기 것을 고집할 때 얽히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양보와 희생의 정신에서 산다면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얼마나 쉽게 풀려 나가게 될 것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참으로 양보가 없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분주하게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니 양보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찾기 힘듭니다. 차에 오르내릴 때, 문을 드나들 때, 좁은 길에서 승용차들이 왕래할 때, 매표소나 창구 등에서... 양보가 없으므로 말다툼. 욕지거리가 오가고 때로는 싸움이 벌어집니다. 무례하고 부도덕한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로 양보하고 섬기는 마음의 여유가 아쉽습니다.
양보하지 않아서 좋은 기회를 놓친 예입니다.
1. 전차좌석 양보 안 해 잃은 대사직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의원이었을 때 한번은 퇴근시간에 전차를 탔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올라왔으나 아무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할머니는 그 짐을 전차 맨 뒷자리까지 끌고 가 복도에 서있었는데 전차가 흔들려서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일어나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 할머니가 서있던 자리 앞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할머니를 보고는 일어나는 대신 읽고 있던 신문을 더 바싹 얼굴에 대고 못 본 척했습니다. 매킨리는 일어나서 그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후에 매킨리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마침 대사 후보 명단이 올라왔는데 검토해보니 옛날 전차 안에서 신문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 그 사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행한 예의 없는 작은 행동 때문에 그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전차 안에서 매킨리가 자기의 무례함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을 맡습니다.“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 (전도서 10:1)

2. 회로를 양보하지 않아 부인을 잃은 트럭운전사
미국에서는 C.B.라디오라는 것이 있어서 일반승용차에도 무전기를 부착하면 서로 다른 차량과 자유롭게 교신하며 연락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치는 누군가가 회로를 사용하고 있으면 다른 차량은 그 회로를 통해 교신을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콜로라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트럭운전사가 C.B.라디오의 회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다른 차량으로부터 그 회로를 양보해 달라는 신호를 받고도 양보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차량에서는 지금 급한 상황이라는 제보를 보내왔으나 이를 보고도 트럭운전사는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 다른 차량의 운전사는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구조요청이 절실해서 그 회로를 사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느 큰 쇠 파이프를 운반해 가던 트럭 뒤를 어떤 여자 운전자가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만 차끼리 충돌하는 바람에 그 쇠파이프가 그녀의 자동차 유리를 뚫고 그녀의 몸을 찔러 구조가 절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트럭운전사는 끝까지 회로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지난 뒤 그 트럭운전사가 마침 사고현장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그 사고를 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소식을 듣고 뒤 늦게야 현장에 도착한 의사는 만일 자신에게 좀더 일찍 연락을 취하여 자기가 5분전에만 당도하였더라면 그 부인은 생명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고장난 비행기의 세 승객
학생, 수도자, 정치가를 태운 비행기가 갑자기 기관 고장을 일으켜 추락하는 돌발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조종사는 승객이 있는 곳으로 와서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낙하산이 세 개뿐입니다. 나는 이 사고를 보고해야겠기에 낙하산 배낭 하나를 가져야만 합니다."하고 뛰어내렸습니다. 그러자 정치가가 나서서 "나도 하나 가져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류를 위하여 크게 공헌해야 하니까요"하며 배낭을 잡고 뛰어내렸습니다. 수도자는 학생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얘야, 나는 긴 생애를 살아왔다. 너의 생애는 앞날이 창창하게 남았다. 마지막 낙하산을 가져라. 행운을 빈다." 그러자 학생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에게 낙하산이 두 개 있습니다. 두 번째 뛰어내린 분은 제 짐 보따리를 가져갔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시비를 가리느라고 개에게 물리느니보다는 차라리 개에게 길을 양보하는 것이 현명하다. 개를 죽여보아도 물린 상처는 치유될 수 없는 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양보 없이 개와 다투다가 사람이 상처를 입는 것보다는 양보하는 것이 큰 지혜로움입니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양보를 한 사람들의 예를 봅시다.

1. 소대원 갈증 푼 수통 1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무더운 벌판에서 적에게 포위된 영국군 1개 소대가 있었습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길은 없고 포위망은 점점 좁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무더위와 갈증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덕이는 이들에겐 소대장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수통 한 개에 담긴 물이 전부였습니다. 소대장은 비장한 마음으로 수통을 열어 병사들에게 내주었습니다. 서로 돌려 가며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수통의 물은 1개 소대원이 다 마시고도 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다음에 마실 전우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물을 남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위하는 전우애로 뭉쳐진 이들은 결국 끝까지 견디어 지원군이 올 때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의 목자들과 조카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현실을 염려했습니다. 이 다툼을 해결하는 길은 자기가 양보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조카 롯을 불러 "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다투지 말자.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내가 왼쪽을 택하겠다"고 했습니다.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양보하는 미덕을 가집니다.
아브라함은 삼촌이었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어른이면서도 어린 사람에게 양보하며 화해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더 좋은 것을 양보했습니다. 롯이 택한 지경은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했고 기름진 애굽 땅 같았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더 좋은 것과 선택의 우선권을 양보했던 것입니다. 양보는 선취권을 타인에게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의 양보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삭도 그랄 목자들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힘들여 판 우물을 두 차례나 양보하였습니다.(창26:17-25)
유다도 동생 베냐민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았습니다.(창44:33,34)

2. 겨울 강물 속으로 사라진 사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젖줄기인 포토맥 강에 여객기가 추락하여, 긴급 출동한 구조 헬기와 구명보트는 탑승객들과 승무원들을 구조하고 있었고, 긴박한 구조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여객기의 은빛 동체는 겨울 강물 속으로 서서히 침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추락한 비행기 밖으로 모습을 나타낸 어떤 남자 분은 어찌 된 일인지 그가 구조될 수 있는 차례를 다른 승객들에게 양보하며, 강물에 추락하여 물 속으로 침잠해 가는 비행기의 트랩 맨 꼭대기에 서서 구조되는 승객들을 도와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승객들이 모두 구조되었고, 마지막으로 그 남자 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제 곧 그 분이 구조될 찰나였습니다. 그 때까지 물위에 떠 있던 기체는 갑자기 물 속으로 가라앉으며 그의 모습도 기체의 침잠이 만든 소용돌이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끝내 구조되지 못하고 희생되었습니다. 후일 미국의 대통령은 그 사람의 거룩한 희생을 기리고, 그의 가족을 위로코자 유가족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감동적이며 애틋한 사랑과 희생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한 따뜻한 이야기는 거의가 주로 가족 간 사랑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희생입니다. 물론 이러한 가족 간의 희생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고, 우리들 삶의 교훈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행기 추락사고와 관련된 그 남자 분이 스스로 택한 희생은 우리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혈연관계의 사랑이나 희생의 따뜻한 이야기와는 그 유형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승객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이 구조될 수 있는 삶의 기회를 타인에게 양보하였고, 결국 그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희생은 인간을 향한 보편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인간애 바로 그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희생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되고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 우리가 더욱 더 나누고 보태어야할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지, 그의 희생을 통하여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됩니다.

3. 빙점의 탄생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일본의 유명한 여류작가입니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 그는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활에 도움을 얻고 손님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자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가게가 너무 잘돼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와야 할 정도로 번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분주히 일하는 아내를 안쓰럽게 여겨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되는 것은 좋지만 주위 다른 가게들이 우리 때문에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하고 염려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아예 가게에 어떤 물건들은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그 물건을 찾으면 다른 가게로 안내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시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펜을 들어 글을 쓴 것이 빙점이라는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방법으로 보상해주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각기 개성과 가치관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대립과 마찰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양보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가 야기될 것입니다. 그러나 양보를 해야 할 경우에 자신이 모자라거나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되어 망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양보하며 사는 길일까? 채근담에서는 "좁은 지름길에서는 한 걸음 멈추어 남을 가게하고 맛좋은 음식이 있을 때에는 삼분을 감해서 남에게 양보하며 맛보게 하라.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이라 하였습니다.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 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 마지기를 잃지 않는다"는 소학(小學)의 교훈처럼 양보는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으나 두고두고 기쁨과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양보를 가능케 하는 것은 곧 겸양입니다. 매사에 자기 자신의 공로와 능력을 내세우며 자랑하는 사람에게서 양보의 미덕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고 하였고, 허버트도 "겸양은 새로운 명예에 이르게 한다"고 하여 겸양의 가치를 숭상하였습니다. 겸손한 자의 양보는 마음을 평안케 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화평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예화를 들었습니다. 두 마리의 산양이 냇가의 좁고 작은 다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은 도무지 뒷걸음치지 않는 고집쟁이들이었습니다. 좁은 다리 위라 그들은 서로 스쳐 지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모두 다리 밑으로 떨어지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한편이 양보해 무릎을 꿇어 엎드렸습니다. 다른 쪽이 그 위를 타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두 산양은 안전하게 자기 목적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도 이 산양과 같이 양보해 언쟁이나 다툼 없이 자기를 타고 넘을 수 있게 해준다면 좋겠습니다. 프로이트란 심리학자는 처음에 말로 양보하면 그 다음에는 행동도 양보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먼저 타십시요. 먼저 내리십시오. 먼저 가져가십시오. 먼저 하십시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다른 사람에게 '먼저'의 우선권을 양보하는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2-3)
그러나 우리가 결코 양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성도가 양보하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둘째, 영적인 명분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겨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창25:34)
셋째, 주의 법도를 지키려는 굳건한 마음입니다.(시119:87)
주일을 철저히 지키면서 사업을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의 물건을 판매하는 점포를 운영하려고 하면 주일에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여야 합니다. 회사에서 점포를 담당하는 직원이 사장에게 주일에 장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선뜻 점포주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장님께서 그것만 양보한다면 일년에 약 100개의 점포를 개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장은 그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주일 지키는 일을 계속 고집하면 일년에 몇 개 정도의 점포가 개설될 것 같은가?" 그 직원은 약 10개 정도가 될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그럼 10개만 개설하도록 하게."하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주일을 어기면서 100개의 점포를 운영하여 많은 연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일을 지키면서 10개의 점포만을 운영하여 적은 연보를 드리는 것이 더 옳고 좋은 것이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 믿음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서 무수히 많은 유혹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유혹은 그리스도를 믿되 적당히 타협해서 살라는 세상의 목소리입니다. 주일 성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써 여기서 우리가 무너지게 되면 우리의 믿음은 영향력 없는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믿음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거룩한 보루인 것입니다.
넷째,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입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4:20)
"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
다섯째, 착한 양심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착한 양심을 버리거나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섯째, 형제에 대한 사랑을 양보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인을 풍자한 얘기입니다. 어느 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열 사람이 배를 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배의 수용 인원은 7명이었습니다. 7명인데 정원을 무시하고 10명이 탄 것입니다. 배가 한참 항해를 계속하다가 물이 스며들어 오고 이 배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세 명을 이 배에서 내려놓지 않으면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음의 운명 앞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누가 양보를 해 줄 것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맨 처음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대영제국의 국민입니다. 제가 신사도를 발휘해서 여러분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맨 먼저 다이빙을 해서 물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 다음에 또 누가 뛰어들 것인가를 눈치를 보는데 두 번째 사람이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아메리카에서 왔습니다. 세계 최대 강국의 제가 양보를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도 물 속에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외치고 나서 갑자기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을 쥐어박더니 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말할 때마다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를 자신에게 먼저 적용시켜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일곱째, 하나님의 율례를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느10:39)
"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삼하 22:23)
이밖에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버리지 말아야 하고,(벧후2:21), 훈계를 버리지 말아야 하고(잠5:7), 순전함을 버리지 말아야 하고(욥27:5), 의와 인과 신을 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마23:23)
그러나 성도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재물(요일3:17)과 세상 지식(고전8:1), 세상 기쁨(약4:9), 자기 뜻(막14:36), 가족(막10:28), 생업(막1:17-20), 자신의 모든 소유(눅14:33), 자신에게 유익한 모든 것(빌3:7-9)도 버리고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바른 양보의 미덕을 가지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오!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겸손으로 무장케 하심으로 우리가 교만과 아집을 버리게 하시고 인자와 온유로 옷 입게 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살고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근면과 인내와 성실이란 무기를 갖춤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케 하시며 봉사와 양보의 마음을 갖게 하심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민첩하게 보는 눈을 주시고 그들을 가까이 돕게 하시며 주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을 의식함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 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하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주님의 거룩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한 태 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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