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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장하는 믿음 (골 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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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골 1:20-23
제목: 성장하는 믿음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체하면 더욱 오래 가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자처럼 살자니 필요 이상으로 지출을 하게 되고, 결국은 가정 경제가 성장하고 나아질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은 더욱 무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는 체했으니 무식한 사람처럼 공부할 구실이 없기에 거짓되고 잘못된 지식 밑에서 평생을 무식하게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자유이며, 또한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는 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는 체 흉내만 낸다면, 그 믿음은 가짜이기에, 구원도 영생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표명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진짜인지, 아니면 믿는 체 흉내만 내는 것인지, 우리의 육신의 안목으로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며, 그 말씀은 변개되지 않은 순수한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최종권위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 위에 그 어떤 권위도 두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인들은 말씀의 권위 위에 목사나, 교단의 권위를 두고, 믿음을 판단하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교단도 아닙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신의 믿음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내 믿음은 이 정도야...이 정도란 누구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이 측정해야하며, 그 진위 여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열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그 열매로 그 믿음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 7:17-20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히 11:6).
"믿음"은 "소망"과 더불어 이 악한 현 세상(갈 1:4)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도록 지켜주는 요소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죄로부터 성별하는 것이고, 하늘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에게 믿음(faith)이 없고, 소망도 없다면,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믿음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믿음을 소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성도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진리 안에 정착되어야 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진리 안에 믿음이 정착되지 않고, 고정되고 않고, 확고하지 못하고, 뿌리 내리지 못하면, 그 믿음은 잘못된 신념이나, 완고한 고집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잘못된 신념이나, 완고한 고집으로 자신들의 종교와 신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진리 안에 정착된 믿음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마귀적인 것이고, 그 결과는 지옥의 저주일 뿐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하지 않는 믿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진전을 보일 수 없고, 움직이지 않음으로 인해, 오히려 마귀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믿음은 진리 안에서 정착된 믿음으로써 성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한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believe), 더 이상의 믿음(faith)의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믿음의 성장을 원하지 않거나, 더 이상의 믿음의 변화를 원치 않는 분이 계시다면, 이 설교는 무의미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믿음이 진리 안에서 정착되어 성장하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소망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리스도인은 주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이 드려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기 원한다면,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믿음을 행사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성도가 믿음을 행사했을 때, 그것은 성도 개인뿐만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의 기쁨인 것입니다.
죄인이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게 되면,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이겨온 혼으로 인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하십니다.
죄인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믿고 구원받았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믿음을 행사하시길 원하시고, 믿음이 성장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의 핑계를 대면서, 믿음의 성장을 유보합니다.
"주님, 저의 처지를 아시죠? 제가 이 정도 하는 것도 대단한 일 아닙니까? 주님께서 제 입장이 되셨다면, 아마 다 이해하셨을 겁니다. 주님께서 이것보다 더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환경 때문에 빛을 잃지 않습니다.

'바바라 카이저'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라크 조종사가 실수로 발사한 미사일에 남편을 잃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시체가 수송기에 오르는 모습을, 다섯 살 난 아들 '죤'과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제 남편은 하늘에 가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훨씬 더 편한 곳에 계십니다'. 그리고는 남편이 탄 함정을 공격한 이라크 조종사에게 전해 달라고, 신약성경 한 권과 친필로 쓴 「영원한 평화의 서신」을 바레인 주제 미국 대사에게 주었습니다. 바레인에 있는 남편과 휴가를 즐기러 왔던 '바바라 카이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늘의 소망을 생각하며, 용서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녀의 환경은 원망과 낙담과 불신이었지만, 그녀는 환경을 핑계 대지 않았던 것입니다. 환경은 우리의 믿음을 있는 그대로,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 주는 조명에 불과 할 뿐입니다.
환경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 진리 안에서 정착되어 있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믿음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작은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을 행사할 때에야 비로소, 믿음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늘려달라고 아무리 부르짖는다고 한들, 조그마한 믿음조차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믿음을 늘려달라는 기도는 헛된 간구일 뿐입니다.

누가복음 17장 5절에서 제자들이 주님께 이렇게 요청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늘려 주소서."
그때 주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문제는 믿음의 크기의 차이가 아닙니다. 자신의 믿음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작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 믿음을 실행에 옮긴다면, 뽕나무를 바다에 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커다랗게 보이는 믿음이라고 해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겨자씨 한 알보다 못한 믿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커다랗게 보이는, 거창한 믿음보다, 분명하게 믿고 실행하는 작은 믿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농촌에 오랜 동안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지역 성도들은 교회에 모여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회가 끝나서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밖에서는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고, 그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소녀만이 많은 어른들 틈에서 우산을 들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 소녀만이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미리 우산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장한 믿음입니다. 머리 속으로 가득 담겨진 이성의 믿음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실행에 옮긴 믿음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믿음을 실행에 옮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죄인의 옛 모습을 보여줍니다(21절).
'전에는 악한 행실로 인하여 멀리 떠나...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모든 죄인은 하나님과 원수였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롬 3:10-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소한의 믿음을 인간에게 주셨고, 그 믿음을 행사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처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원하기만 하며, 믿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서 믿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그 믿음을 주님께로 행사했을 때, 주님께서는 기쁨으로 죄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또한 본문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화해의 사역을 보여줍니다(20,22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화해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 없이,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보혈은 모든 것과 화해케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죄의 문제까지도 해결하셨던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해를 이루신 목적이 분명하다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바로 우리가, 정착된 믿음 안에 계속 있는 것과,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23절).
주님께서는 자신의 찢겨진 몸과, 쏟아진 물과, 피를 통해,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죄인을 자신의 보혈로 화해케 하셨음).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화해의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근거는 모두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진리 안에 정착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도록 드려지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보혈이 불완전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불안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착된 믿음 안에 계속 잇어야 하며,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더욱 성장해야 하며, 진리 안에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번은 '무디' 목사가 자신의 간증을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한 시간만 합쳐도 몇 달은 족히 될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믿음이란, 번개 불과 같이 어느 날 나를 확 달아오르게 할 어떤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기도해도 믿음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로마서 10장을 읽다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란 구절을 보았던 것입니다(롬 10:17). 그 즉시 난 성경을 부등켜 안고 믿음을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다시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진리의 지식을 공부하고, 기록된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더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더 달라고 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자신의 믿음을 먼저 실행에 옮겨야만 합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담겨진 믿음이란 이성을, 마음으로 끌어 내려서 몸으로 실행해야만 믿음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실행하려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데, 믿음이 어떻게 성장하겠습니까?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데, 어떻게 믿음이 더 성장하시길 바라십니까?
환경도, 지식도, 나이도, 학력도, 믿음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바탕 하에, 움직였을 때만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성도에게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믿음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졌습니까? 그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진리 안에서 정착된 성장한 믿음입니까? 아니면, 환경과 여건에 의해 이리 저리 밀려다니는 부초입니까? 아니면 기도하고 간구했음에도 신뢰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믿음입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져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정도의 믿음이란 없습니다(사람의 측정 방법으로 측량되는 믿음은 없습니다).
단지 성장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장한 믿음이란,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성장한 믿음이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장한 믿음이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성장한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장한 믿음이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는 것입니다.
성장한 믿음이란, 환경에 구애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성장한 믿음이란, 우산을 준비하는 믿음입니다.
성장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나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을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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