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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두가지 쳇바퀴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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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살전 5:16-18
[제목]  인생의 두가지 쳇바퀴

들어가는 말

성경을 읽다보면 인간에게 요구하기에는 무리한 요구들이 많이 있는데 오늘 본문 말씀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러한 주님의 명령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말하는 것이지 실제 현실 생활속에서는 실천 불가능한 이상론이라는 주장이 제법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또는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그 의도를 살려서 실생활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로 신앙인들 가운데는 이러한 주님의 명령들이 이중적인 삶을 갖게하는 원인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마음 속에는 이웃에 대한, 형제 자매들에 대한 미움와 증오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양 이웃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이중인격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명령들은 결코 인간들이 행할 수 없는 조항들인가? 그렇다면 주님이 이러한 명령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인간들이 연약하고 악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무리한 명령들을 하고 계신가?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으며,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고, 어떻게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결국 우리에게 새로운 올무에 넘어지게 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정말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뜻이라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궁극적인 뜻은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절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으로 이끄신 것이 아니라 소망과 행복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인생의 두 가지 쳇바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쳇바퀴가 있습니다. 하나는 행복의 쳇바퀴이며, 또 다른 하나는 불행의 쳇바퀴입니다. 일단 그 쳇바퀴 속에 들어가면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이 두 가지 쳇바퀴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불행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순간 행복의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으며 행복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순간 불행의 쳇바퀴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빛의 자녀로서 사느냐 혹은 어둠의 자녀로서 사느냐 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앞뒤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빛의 자녀는 선한 행위와 선한 결과이며 어둠의 자녀는 악한 행위와 악한 결과입니다. 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표현하면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는 행복의 쳇바퀴로 뛰어드는데 최대의 방해물입니다. 죄는 불행의 쳇바퀴로 뛰어드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품으신 뜻 중에 “항상 기뻐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 그러면 항상 기뻐하는 일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불행한 환경입니까? 어떤 일의 실패입니까? 죽음이나 다른 이유들 때문에 생겨나는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입니까? 일면 맞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기쁨을 근본적으로 방해하는 일들이 못됩니다. 기쁨, 기도, 감사를 서로 상호작용하는 쳇바퀴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없이는 기쁜 마음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이 있다할 지라도 그 내면에 기쁨이 없으면 온전한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지 않고는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 얼개가 원형구조는 아닙니다. 기쁨이 감사를 낳고 감사하는 마음이 기도할 마음을 낳고 기도함으로 감사의 마음과 기쁨이 생겨납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항상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도 않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항상’ ‘쉬지않고’ ‘모든 일에’라는 수식어구만 빼어버린다면 우리는 쉽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충족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항상’ ‘쉬지않고’ ‘모든 일에’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일을 방해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실패, 환경, 이별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도 오히려 감사와 기쁨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도들과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가장 열악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속에서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 인하여 핍박받고 매맞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죽음이 그들을 위협할 때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며 천사와 같은 얼굴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누가 우리를 주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들의 정신이 이상해서 입니까? 바울이 기쁨의 서신인 빌립보서를 쓰신 곳이 감옥에서 였습니다. 추측컨데 주님이 가장 기쁨의 희열을 느끼셨던 순간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스러운 환경은 우리의 기쁨을 빼앗는 근본적인 것이 못됩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기쁨의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의 환경과 상황이 어떤 경우에는 기쁨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불행과 좌절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고통스러운 환경이 오히려 기쁨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고통이 의미있는 고통일 때 그렇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고통중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일이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주님을 위한 일이라는 의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고통의 현장에 주님이라는 의미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패배감과 좌절감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좌절감은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패배감은 감사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을 사랑하는 주님과 관련시킬 때,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극복되고 오히려 기쁨의 이유가 되며 기쁨과 환희의 감정으로 승화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주님 안에서는 무의미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과 주님을 위한 일들입니다. 즉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의미있는 일들입니다. 현재 어떤 실패와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까? 그것도 사실은 주님 안에서 의미있는 상황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의 실패 중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위협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정도의 것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학과시험에서 낙제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까? 아니면 라마시험에서 실패해서 죽음의 그림자가 여러분을 엄습합니까? 모두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자존심과 자신감에 치명상을 줄지는 몰라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치욕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의미있는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순히 내가 실패한 것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게으름이라는 죄악때문이 아닌 실패라면 주님앞에 의미있는 실패입니다. 오히려 주님이 실패해 보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의미있는 일에 사용하시기 위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내가 의미있는 특별한 존재로 부르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일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가장 절망스럽게 하고 의미없는 일로 여겨지는 일이 무엇입니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직업입니까? 아니면 짭밥과 비례해서 발달하지 않는 언어장애입니까? 아니면 학업에 진보가 없습니까? 아니면 불행한 가정환경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보통사람은 경험하지 못할 나만이 겪는 어떤 고통이나 외로움입니까? 그것이야 말로 주님안에서 가장 기뻐할 일입니다. 세상 그 어느구도 감당하지 못할 일을 위해서 준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그렇게 기쁨의 이유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이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있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의미있는 관계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관계이어야 하는가? 그분이 내 목적이며 사랑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도 사랑하는 대상이 큰 일로 여기면 그것은 큰 일이 됩니다. 특별히 나만이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보다 기쁘고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그것이 설사 현실적으로는 내게 고통이 따른다할 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일을 만나도 물론이고 고통과 실패의 경험 속에서도 그것은 주님 안에서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해야 합니다.
 

쉬지말고 기도

그런데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어쩐지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불가능한 말씀처럼 보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절대적으로 기도할 수 없는 시간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쉬지않고 기도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럴 수 있고 또한 그리해야 합니다.

4-6절의 말씀을 읽어드립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이 말씀의 맥락속에서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은 심판자되시며 또한 구원자되시는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죄에 자신을 물들이지 않도록 긴장하는 생활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행위가 포함됩니다. 우리의 삶은 formal한 형태의 기도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기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물론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계속해서 의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삶 전체에서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산다면 그는 결코 죄로 달려갈 수 없습니다. 방탕할 수 없습니다. 아니 죄에 곁눈질 할 수도 없습니다. 죄를 범하는 순간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순간입니다. 즉 기도하지 않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해줍니다.

행복의 순환구조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죄의 침범을 막아야 합니다. 죄의 침범을 막으려고 하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의 쳇바퀴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쉬지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행복의 쳇바퀴를 떠나게 하는 것 ? 죄

그렇다면 죄가 어떤 작용을 하길래 우리를 행복의 순환구조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하는가? 죄가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느냐 하면22절에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모든 악의 결과인 죄는 기쁨을 잃게 하고 기도할 수 없게 하며 감사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즉 죄는 행복의 순환구조를 깨뜨려서 불행의 순환구조 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그러나 죄에 전혀 기쁨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죄의 동기가 기쁨을 얻기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는 “항상” 기뻐하는데 결정적인 장애물입니다. 죄가 잠시의 기쁨은 주지만 그것은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원인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누군가가 유흥비로 사용하기 위하여 강도행각을 벌이고 그것으로 한동안 즐겼다고 칩시다. 과연 그 일을 저질러 놓고 그 내면에는 항상 기쁨이 넘쳤을까요? 저지른 순간부터 불안이라는 고통이 그를 지배할 것입니다. 아니 유흥가에서 흥청망청 유희를 즐기는 순간에도 그 불안은 그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에 있어서 항상성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죄입니다.

더군다나 죄는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갈 뿐아니라 감사의 마음도 빼앗아 가버립니다. 죄를 범하면서 감사하는 사람 봤습니까? “오늘 한탕 잘 하게 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죄는 불안을 낳고 기쁨을 빼앗아 가며 감사의 마음을 송두리채 앗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행복의 순환구조를 깨는 요인입니다. 죄는 인간을 사망으로 인도하는 악순환의 구조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요소입니다. 오죽하면 악의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맺는 말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되길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늘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인생을 사시길 진정으로 바라십니다. 항상 기뻐할 수 없는 우리가 절망하며 항상 기도할 수 없는 우리가 자책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없는 우리가 좌절하도록 만드시기 위해서 또 하나의 속박의 올무를 던지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행복해지도록 하시기 위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의 순환구조를 깨는 가장 큰 적은 죄이며 이 죄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항상 깨어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기도입니다. 역시 불행에서 행복의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좋은 채널도 역시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기쁨의 삶을 사시기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여러분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이 여러분을 향한 선하신 뜻을 곱씹어보고 의미없는 사건들과 환경들을 의미있는 사건과 환경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여러분들만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을 기도를 통하여 깨닫고 감사하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주님은 지금 이순간 기도를 통하여 행복의 순환구조안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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