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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서 상 받는 자 (눅 6: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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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늘에서 상 받는 자 
본문 : 누가복음 6:20~26 

지난 주에 전교인 민속잔치가 열렸다. 아주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의 마지막에 행운권 추첨이 있었는데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었다. 행운권 추첨하는 시간이 되니 여기 저기에서 번호표를 하나씩 들고 나타난 자기의 번호가 불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좋은 상품은 자전거이었다. 내가 번호를 뽑아서 불렀는데 낯익은 얼굴이 흥분이 되어 앞으로 막 나온다. 내가 번호를 뽑았는데 글쎄 아들의 번호를 뽑은 것이다. 졸지에 그곳은 웃음 바다가 되고 말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자전거를 갖고 싶은데 내가 아들 것을 뽑았으니 그냥 갖고 가라고 할 수가 없어서 아들 중현에게 이 자전거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도록 다시 뽑자. 다시 뽑자. 아들이 안된다. 내가 탄건데. 그래서 내가 이 자전거하고 똑같은거 사줄테니 다시 뽑자. 그래서 결국 다시 뽑으려고 하는데 최목사가 나와서 이것은 중현이가 갖고 가는 것이 맞다고 하여 교인들이 박수를 쳐서 일단락 되었다. 결국은 이 자전거를 꼭 필요한 분에게 주기로 했다.

상을 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든지 똑같다. 특별히 요즈음은 졸업시즌이 되어서 상받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나 기쁠까?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분명한 상급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행한 대로 갚아준다는 말씀 속에 하나님의 상급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바울도 우리에게 말씀한다. 고린도교회에 분란이 있었다. 누구는 바울파이고 아볼로파이고 분쟁이 있어서 시끄러웠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기를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 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2장의 말씀에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신다.

최근 상금이 6천만원이라는 구절이 여러 차례 반복돼 있는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어느 잡지의 경품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편지에는 일순간에 부자가 되어 여생을 안일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둘째 페이지 맨 밑에서 깨알같은 글씨로 쓰여진 내용은 법적인 책임이 있기에 나의 당첨가능성은 80만대 1이라고 밝혀드립니다. 이 얼마나 가능성이 희박합니까.이 경품을 탈 가능성과 천국에서 받게 될 상을 기대하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대조해 보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8) 바울 사도은 확신을 갖고 있다..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으므로”라고 말합니다.`될지도 모른다' 혹은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가 아니라 `되어 있다'고 확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은 확률적으로 받는 그러한 상급이 아니다.

어느 선교사가 여러 해 동안 아프리카에 수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두 아들을 잃은 충격에 부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그 선교사는 한꺼번에 두 아들을 잃고 부인마저 세상을 떠나 보낸 슬픔에 비관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런 큰 시련을 주실까? 나에게 이 선교가 무슨 유익이 있는가.' 그는 고민하다가 결국 선교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모든 짐을 싸서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탔다. 마침 그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온 수많은 사람들이 선착장에 나와 있었다. 군악대들이 예포 소리와 함께 붉은 주단이 깔리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대통령이 선착장을 빠져나가자 군악대의 나팔 소리도 멈추고 사람들도 모두 돌아갔다. 그 뒤를 선교사는 홀로 고독하게 내려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휴가를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큰 환호를 받는데, 선교를 하다가 두 아들과 부인을 잃고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구나.' 그리고는 고독감과 실패감으로 정신없이 거리를 헤맸다. 그때 어디선가 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에는 군악대의 나팔 소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하늘의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직접 너를 맞이할 것이다.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의 유리 길을 깔고 내가 너를 마중 나오마. 사랑하는 내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이 음성을 들은 선교사는 그 자리에서 그 동안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했던 죄를 깊이 회개했다. 그리고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했다.
이 땅에서의 상급도 소중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받는 상급이 얼마나 소중한가? 나는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소문나는 것도 좋지만 천국에 소문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학입시가 지나면 학원마다 자기 학원에서 몇 명이 어느 대학에 합격했다는 광고를 낸다. 마치 우리 교회가 천국에 소문난 교회가 되어서 천국에서 상급을 많이 받는 우수한 하나님의 일꾼을 많이 배출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어떻게 할 때에 상급을 받을 수 있겠는가? 본문의 말씀을 보라.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 상이 큼이라. 그러나 화 있을진저 부요한 자는 이미 위로를 받았고, 배부른 자와 웃는 자는 결국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리라.”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가난한 자, 주린 자와 우는 자에게는 무조건 상급이 있고 배부른 자 웃는 자에게는 무조건 화가 있다는 말씀은 아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한 점을 찾아야 한다.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음이 있는 그곳은 마치 이 세상에서의 단맛이다. 단맛 속에 담겨져 있는 독을 조심하라는 말씀이다.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경고한다.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길 것 같아 염려가 된다.” 광야를 지날 때에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였지만 안정되고 평안하고 배부르게 되면 하나님을 떠날 우려가 있음을 경고한다. 단맛 속에 담겨져 있는 독을 경고한 말씀이다.

요즈음에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제는 있는 데로 먹는 시대가 아니라 골라먹는 시대가 되었다. 배부른 시대를 표현하는 말이다. 물론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 것 속에는 단맛 속에 담겨진 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주5일제가 실시된다. 이미 금요일부터 고속도로가 막히기 시작한다. 각종 레저 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할 점은 단맛 속에 담겨진 독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요즈음에 뉴스를 보면 우리의 마음을 허탈하게 만든다. 전직 대통령이 갖은 돈은 29만원 밖에 없다고 그러면서 주변의 사람들은 몇 백억씩 갖고 있고, 나라를 위하여 높은 자리에서 정치를 하던 분들이 끝나고 나면 몇 달 후에는 감옥에 가있는 분들이 많고.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높은 자리는 단맛의 기쁨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야할 것은 단맛 속에 담겨져 있는 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조금 형편이 나아질 때에,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자리에 있을 때에,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소유하였을 때에 단맛 속에 담겨진 독을 조심해야 한다. 왜 주님께서 부요한 자여 지금 웃는 자여 화있을지라고 말씀하셨을까? 단맛 속에 담겨진 독이 있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웃을 것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조건 배고픈 자와 우는 자에게 상이 있다는 말씀이라기 보다는 배고픔의 아픔, 눈물의 고통, 주님을 위한 희생과 헌신은 쓴맛의 체험이지만 그 쓴 맛 속에 약이 들어있다는 말씀이다.

사막이 어떻게 되는가? 비가 오지 않고 언제나 햇빛이 내려 쪼이면 사막이 된다. 죽은 땅이 되고 만다. 사람들은 대개 비오는 날을 원치 않는다. 햇빛이 내려 쪼이기만 하면 그 땅은 죽은 땅이 되지만 비오는 날의 어려운 날도 지나야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땅이 된다. 단맛은 좋은 것 같지만 그 속에 독이 들어있고, 쓴맛은 고통스럽고 힘이 들지만 그 속에 약이 들어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이 많다. 사업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건강을 잃고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자들도 있고, 식구들 간의 불화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도 있고, 대학입시철을 맞이하여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서 마음을 졸이는 가정도 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쓴맛의 고통이 있지만 그 속에 약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채워 주실 줄로 믿는다.

우리는 지금 성전을 짓고 있다. 물론 이 성전을 짓는 일에는 수고의 땀이 들어가야 한다. 기도의 눈물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헌신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쓴맛의 수고가 있어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행한 데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는 줄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백세에 귀한 아들 이삭을 선물로 주셨다. 한참 잘 자라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다. 그곳에서 제물로 아들을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에게는 너무나도 큰 시험이었다. 너무나도 쓴 맛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말씀데로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간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물을 때에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했겠는가? 너무나도 큰 희생의 제물이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쓴맛의 고통이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상급이 담겨져 있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번제할 양을 준비해 놓으셨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아브라함에게는 너무나도 쓴 맛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쓴 맛의 고통 속에 하늘의 상급을 준비해 두셨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 모두가 하늘의 상급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단맛 속에 있는 독을 경계하고, 쓴맛 속에 담겨져있는 하늘의 상급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주를 위해 헌신하고, 주를 위해 충성하고, 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쓴맛일 지라도 그 속에 담겨져있는 하늘의 상급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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