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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취하여 쪼개라(2) / 창 15:9-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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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여 쪼개라(2) / 창세기 15:9-11, 17

이 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주신 날, 하여 그의 인생에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이 날, 하나님은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친히 밤하늘의 별을 보여 주시면서, 너의 자손이 저 별과 같이 되리라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자식을 얻지 못했던 아브람,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 놓고도 믿지 못하여, 그만 하나님께 그 언약의 징표를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늘의 별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불경한 태도였지요. 여기까지가 지난 주일에 받은 말씀의 대강입니다.

그런데요, 참으로 감사한 것은 아브람의 당돌하고도 불경한 요청에 우리 하나님, 혼을 내시거나 경을 치지 아니하시고, 대신 한 가지 제안을 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그 제안의 내용이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인데요, 명령어만 따라 읽으면 “취하여 쪼개라!”는 말씀입니다. 취하여 쪼개라! 자, 그러면 지난 시간에 약속드린 대로, 취하여 쪼개라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브람은 그 명령에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는지 차례로 확인하며, 은혜를 받겠습니다.

1. 언약의 첫 단계, 나를 위하여 제물을 취하라 하십니다.

15:9 / (읽기) / 먼저 이 구절에서 중간의“나를 위하여!”라는 단어와 맨 마지막의 “취할 지니라”는 단어에 주목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취하라!”그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취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 이 언약은 아브람을 위한 언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신다는 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 아브람을 위해 제물을 잡으라 하신 것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람 먹이려고 여러 짐승을 취하라 하신 것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좀 풀어 설명하자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선언입니다. 성경적 인간론의 핵심이지요. 우리 인생의 제일가는 목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랬습니다. 그 때까지 아브람은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땅이 필요한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요, 자식이 필요한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땅은 차치하고라도 자식 없음이 그리도 서글펐고, 그러다 보니 자식 없음에 그리도 두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 먼저 아브람의 그런 생각부터 완전히 바꾸어 주십니다. “아브람아, 네가 언약의 징표를 구한다만, 이 언약은 너를 위하여 세우는 것이 아니다, 나, 너의 하나님을 위하여 세우는 것이다. 왜?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 아니요,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를 세상에 보냄은 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 사실을 명심하라!”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나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확실하게 해야 하는 것, 바로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하여 이 부족한 종, 여러분의 담임목사는, 우리 동광 가족들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항상 떠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 가득한 가정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또 하나 있으니, 이 명령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 이유가 지난 시간에 읽은 8절에 기록되어 있었죠? 무엇이었습니까? 내용인 즉, 아브람이 언약의 징표를 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나와 내 자손에게 업으로 주신다는 언약을 내 무엇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반문하는 아브람을 향해, 하나님은 그렇다면 너는 나를 위하여 취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그 때, 주신 언약을 그냥 아멘으로 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왜? 공연히 언약의 징표를 구하다가 온갖 제물을 취하여 쪼개라는 까다로운 명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한 말씀을 드리고 갑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언약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언약이란 말로 하는 약속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을 언약으로 받으라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말씀 그대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다른 표징 없어도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 믿을 수 있는 마음이 복 받은 마음입니다. 다른 증거 없어도 그저 말로 해서 믿을 수 있는 사이가 정말 행복한 사이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할 때 언약의 징표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법, 내가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니 그 약속의 징표로 증인을 세워 공증을 하자고 덤비는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만으로 약속이 완성되지 못하는 사이, 참으로 각박한 사이입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내려앉을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징표 혹은 표징을 구하는 마음은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하여 요즘 아이들까지, 말로 해서 믿지 못하니,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로 도장 찍고, 검지로 사인하고, 손바닥으로 카피까지 해 두어야 안심하는 것입니다. 정말 말로서 약속이 완성되지 못하는 인간의 부족한 모습입니다. 그 사람의 말만 듣고 그대로 믿었다가는 어떤 손해를 당할지 모르는 각박한 세태입니다. 무어라 말로 하기 힘든 현대인들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최소한 우리 가정에서만은 말로서 언약이 완성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가정에서만은 부모 자식 사이에 말만 가지고도 언약이 완성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믿는 가정에서만은 아내와 남편 사이에 말로서 언약이 완성되기를 소원합니다. 부모가 자식의 말을 믿어 줄 수 있고, 자식이 부모의 말씀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곳, 아내가 남편의 말을 믿고 남편이 아내의 말을 믿을 수 있는 곳, 하여 말만으로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 바로 천국 가정인 줄로 믿습니다.

<말이 통하는 가정 / 언약이 살아있는 가정 /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9절 말씀을 보니, 좀 생경한 표현이 세 번 반복되고 있군요. 삼년 된, 삼년 된, 삼년 된! 제물을 취하되 삼년 된 것으로 취하라는 명령입니다. 에이 하나님, 그냥 보기 좋은 암소면 되지요, 실한 암염소나 흠 없는 수양이면 되지요, 꼭 삼년 된 것으로 취하라 하실 것까지는 없잖습니까? 반문이 일어나는 대목입니다.

왜 그러셨을까? 중요한 뜻이 담겨 있는 명령인데요, 우선 3이란 숫자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히브리 사상에서 3이란 완전수입니다. 하여 3이란 숫자는 완전한 것, 혹은 온전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삼년 된 것을 취하라는 명령은 완전한 것, 혹은 온전한 것을 취하라는 명령입니다. 다시 말해 완전히 성장한 것, 온전하여 아름다운 것을 취하여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요, 취하여 가져오라 하신 제물의 내용도 심상치 않습니다. 삼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입니다. 특히 암소, 암염소, 수양은 당시 가장 귀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재산목록 가운데 가장 귀한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온전한 것으로 취하여 바치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가장 귀하고 좋은 것으로 취하여 가져오라고 명령하신 것일까? 우리 하나님의 욕심 때문일까? 아닙니다. 여기서 언약의 표징을 구한 쪽은 아브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그가 표징을 구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언약은 벌써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언약의 표징을 구하자, 아브람을 향하여 우리 하나님 제물을 취하여 가져오라 하신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하나님, 처음엔 아브람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저 축복의 언약을 받으라고만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람이 믿음으로 아멘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 아브람은 아멘 하기 전에 먼저 언약의 표징을 먼저 보여 달라 요청했던 것입니다. 정말 바보 같은 요청이었죠.

그러자 우리 하나님,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 아브람 자네가 제대로 언약을 맺자 이거지? 쌍무 언약을 맺자는 거지? 그렇다면 최소한 이런 정도는 가지고 나와야 하지!”하시면서 삼년 된 것들로 취하여 가져오라 하신 것입니다. 그 정도는 가지고 와야 내 언약의 상대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그만큼 하나님이 제시하신 언약의 내용이 좋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가장 귀하고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기만 해도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이 연약하여 말만 가지고 믿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여 가장 귀하고 온전하고 아름다운 예물에 나의 믿음과 나의 마음을 담아 주께 드리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완성해 가라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된 아브람, 마침내 100세에 얻은 아들마저도 나에게 취하여 바치라 하시니, 주저 없이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왜? 언약을 세워 주시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그 언약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무엇을 드린다 해도 그 언약의 상대로 온전히 설 수 없음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진짜로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시면서 나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바치는 예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대한 대가가 아닙니다. 우린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살 수 없습니다. 취하여 바치라 하심은 오히려 우리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또 다른 배려이십니다. 믿음을 잃을 때 언약이 파기되고, 언약이 파기되면서 축복도 깨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가장 온전한 것으로 취하여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가장 온전한 복으로 복 주신다는 말씀에 다름 아닙니다. 해서 성경은 이 진리의 연장선상에서 이 귀한 언약을 다시 알려 주시면서, 언약을 통해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는 길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구절 하나만 확인하고 갑니다. / 말라기 3:10-12(1330쪽) / (읽기)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나는 하나님 주신 것의 십분의 일만을 가지고 약속 장소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좋으신 하나님은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는 복으로 나에게 복을 주시며, 당신의 언약을 완성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여 마침내 열방, 곧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이 우리를 가리켜 복되다 칭송하게 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부디 이 축복,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언약의 둘째 단계 - 취한 제물의 중간을 쪼개라 하십니다.

15:10-11 / (읽기) / 여기서 제물의 중간을 쪼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왜 제물의 중간을 쪼개라 하신 것일까? 궁금한 대목인데요, 이는 고대 사회에서 행해졌던 언약 의식을 반영하는 대목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계약을 맺을 때, 먼저 희생 제물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어 양쪽에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계약 당사자인 두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그 사이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런 언약 의식을 통하여 계약 당사자는 서로가 하나임을 확인했고, 동시에 이 계약은 파기될 수 없음을 모든 사람 앞에서 천명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언약을 파기하면, 여기 쪼개져 죽어 있는 짐승처럼, 쪼개어 죽임을 당해도 좋다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취한 제물의 중간을 쪼개라는 말씀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이 언약을 목숨 걸고 지키겠다고 서원하라는 명령입니다. 나도 목숨을 걸 터이니 너도 목숨을 걸라는 제안입니다. 우리 목숨 걸고 언약하고, 목숨 걸고 그 언약 지키자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아브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해서 아브람, 지금 비장한 각오로 이 언약 의식에 참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11절 말씀을 보니, 어인 일인지 하나님은 오지 않으시고, 쪼개어 놓은 제물의 사체 위로 솔개들만 날아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잘 자란 짐승들을 쪼개어 늘어놓았으니, 솔개들이 그냥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날쌔게 덤비는 솔개들을 쫓아내느라 아브람은 하루 종일 무진 애를 썼습니다. 쫓으면 또 오고, 쫓으면 또 오고, 그렇게 솔개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쪼개어 하나님 앞에 가져다 놓은 제물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브람은 바친 제물을 지키며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쪼개어 바친 제물까지도 사탄과 마귀는 호시탐탐 노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쪼개어 바친 제물을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이 점에서 한국 교회는 많이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친 제물을 잘 관리하고 지키는 일에 소홀했던 교회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동광 교회는 쪼개어 바친 제물을 건사하고 관리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투명하고, 가장 신인도 높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잘 쪼개어 바치고, 바친 제물 잘 건사하니, 우리 하나님, 명예목사이신 김인호 목사님과 동광의 1세대 어르신들께 맹세하셨던 그 모든 언약을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며 큰 복으로 채워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 특히 재정위원회의 여러분께 오늘 이 시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 여기서 우리에게 남는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물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어 바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쪼개는 일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주의 은혜요, 우리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아버지, 다 가져오라 하지 않으시고, 쪼개어 하나님의 것만 가져오라 하십니다. 그러니 쪼개어야 합니다. 이 명령의 더 깊은 뜻은 온통 나 혼자 다 먹겠다고 움켜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쪼개어 나누는 마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잘 쪼개시기 바랍니다. 쪼개지 않은 나무엔 불이 잘 붙지 않습니다. 잘 쪼개어 포개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붙는 법,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나의 것을 쪼개어 바치시기 바랍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쪼개시기 바랍니다. 쪼개어야 나눌 수 있는 법, 쪼개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내어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빵 한 조각도 쪼개어 나누시기 바랍니다. 내 시간도 쪼개어 나누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 있는 이 마음을 쪼개어 하나님께도 드리고, 내 이웃에게도 나누시기 바랍니다. 쪼갠 마음에 성령의 불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쪼개어 나누는 마음에 사랑의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잘 쪼개어 큰 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것, 가장 온전한 것을 쪼개어 드리자, 하나님께서 불로 임하셨던 것입니다. 그 장면에 대한 말씀을 직접 들어봅니다. / 15:17 / (읽기) / 정말 장관입니다. 쪼개어 바친 제물 사이로 하늘로서 연기 나는 풀무, 곧 연기 나는 불가마가 내려오더니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임하신 것입니다. 불로 임하시는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히브리 잠언에 “하나님은 쪼개지고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단단해진 흙이 쪼개지고 부서질 때, 씨앗을 품어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 땅에서 자란 곡식 역시, 쪼개지고 부서질 때 밥이 되고 빵이 되는 법입니다. 밥과 빵 역시 쪼개지고 부서질 때 우리 몸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 쪼개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가시며, 더 큰 은총과 더 큰 축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먼저 쪼개지고 부서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나는 쪼개지지 않고 너만 부서지라 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아니오, 우리 성도들은 내가 먼저 쪼개지고 부서지는 자입니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먼저 쪼개지는 자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어 주시고 하늘이 큰 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희생 제물만 쪼개어 바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목숨 보다 더 귀한 아들까지 쪼개어 바쳤던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아마 우리 같았으면, 아들을 쪼개어 바치라는 명령에, 차라리 이 에비를 바치라 하시지요, 소리 지르며 생떼를 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 자기 심장을 쪼개어 바치는 심정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쪼개어 바쳤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람이 너무나 마음에 흡족하시어, 우리 하나님, 즉각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십니다. 창세기 15장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축복의 언약으로 마감해 주신 것입니다. 그 대목을 우리 직접 읽으며 오늘 나에게 주시는 언약으로 받고 싶습니다. / 15:18 / (읽기) / 거기 주노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완료형입니다. 다가올 어느 날 줄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너의 자손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취하여 쪼개어 바치는 성도의 후손들,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린 이미 하늘의 복을 받은 믿음의 후예들, 이제 내가 온전히 쪼개어 바침으로 그 복을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열조로부터 그런 복을 대물림했는데도 복을 받지 못함은 전적으로 내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며 제 가슴에 떠나지 않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주님, 우리 동광의 하늘 가족들, 취하여 쪼개어 드릴 것이 풍성한 가장, 얼마든지 바칠 수 있는 복 받은 기업, 되게 해 주시옵소서!”그렇습니다. 바치고 싶을 때 바칠 수 있음은 복 중의 복입니다. 바치면 바칠수록 더 큰 복으로 채워주심을 간증할 수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주에 걸쳐 받은 창세기 15장의 말씀, 가슴 깊이 새기시고, 이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 부모 세대뿐만 아니라, 자녀 세대에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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