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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교회 [ 엡 4: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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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4:13-16                       
성숙한 교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4:13-16)


성년과 성숙의 문제

  1월 16일로써 우리 교회가 창립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20년이면 개인으로 따지면 成年입니다.  인간에게 성년이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년이란 곧 성숙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숙된 사람은 품위 있는 인격이 있습니다.  바른 판단력이 있습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분별력이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찾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랑과 관용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성숙된 교회는 신앙과 삶의 품위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숙된 교회에 속하였는지, 혹은 미성숙 된 교회에 속하였는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교회에 속했는지에 따라서 우리의 모든 삶에 영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교회의 성숙 여부에 따라서 개인의 신앙 등급이 결정됩니다.  성숙된 교회에 속한 자는 신앙과 인격이 성숙됩니다.  그러나 미성숙 된 교회에 속한 사람은 개인적 신앙도 미성숙 된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바둑을 약간 둘 줄 압니다.  대략 5급 정도의 실력입니다.  바둑을 특별히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냥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 따라서 어깨 너머로 배운 겁니다.  친구들이 9급이면 나도 9급이고, 친구들이 7급이면 나도 7급이고, 친구들이 5급 될 때 따라서 5급 되었습니다.  도둑놈 친구는 도둑놈이고, 사기꾼 친구는 사기꾼입니다.  공부하는 사람 친구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노는 사람 친구는 노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어디에 속했는지에 따라서 성숙도가 결정됩니다.  어떤 신자가 성숙된 교회에 속해 있는지 미성숙 된 교회에 속해 있는지는 몇 마디 얘기만 나눠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의 成熟度 만큼 성숙됩니다. 

둘째로, 교회의 성숙 여부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도 있고, 손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성숙된 교회는 사회에 큰 유익을 줍니다.  주님은 성도들을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성숙된 교회는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됩니다.  도덕적인 빛이 됩니다.  양심의 빛이 됩니다.  바른 생활을 하도록 정신적인 영향을 줍니다.  성숙된 교회는 그 존재자체만으로도 복음이 전파됩니다.  그러나 미성숙 된 교회는 세상에 유익을 끼치기보다는 손해를 끼칩니다.  걸림돌이 됩니다.  셋째로, 교회의 성숙 여부에 따라서 개인의 삶이 안정될 수도 있고, 불안정할 수도 있습니다.  성숙된 교인은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누립니다.  영적으로 안정되면 모든 생활도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성숙된 신자는 세상 풍파가 다가오거나, 유혹이 다가와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성숙된 교인은 작은 시련도 견디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성숙된 교회이고 어떤 교회가 미성숙 된 교회일까요?  우선 성숙의 증표보다 미성숙의 증표를 얘기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성경은 성숙의 얘기보다는 미성숙의 얘기들을 많이 보여줍니다.  미성숙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첫째로, 미성숙된 교회는 업적이나 역할은 없고 나이만 자랑하는 교회입니다.  가끔 해외 토픽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100살이 넘도록 장수했는데 자식들은 다 죽었습니다.  손자들도 다 죽고,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고 오직 연세만 므두셀라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별로 한 일도 없이 나이만 먹은 교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특징이 있습니다.  현상 유지에 급급합니다.  변화를 싫어합니다.  새로운 멤버들을 기피하고 기득권자들만 죽을 때까지 충성하겠다고 합니다. 

  둘째로, 미성숙한 교회는 싸움과 다툼이 많습니다.  고린도교회를 보세요.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예수파, 파벌이 많아요.  툭하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저는 지금도 “대한예수교 장로회”라는 간판을 붙인 총회가 대한민국에 60여개가 되어야 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중에는 신앙 노선 때문에 나누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치하는 사람들 감투싸움 때문에 생겨난 교단들입니다.  미성숙한 사람 신학교 보내면 목사가 된 후에 밤낮 교인들하고 싸워요.  개교회도 마찬가집니다.  미성숙한 사람 신학교 보내면 목사가 된 후에 밤낮 교인들하고 싸워요.  미성숙 된 사람을 장로로 뽑아 놓으면 밤낮 당회에서 싸웁니다.  미성숙 한 사람 교회 일군 세워 놓으면 이 사람 저사람 붙잡고 시비만 겁니다.  그래서 미성숙된 교회는 밤낮 다투고, 시기하고, 삐지고, 자빠집니다.  그런 교회 목사는 삐진 사람 자빠진 사람 일으켜 세우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셋째로, 미성숙한 교회는 내면보다는 외형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10대, 20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연예인들입니다.  그들은 스타에 따라서 열광하고 쫓아다닙니다.  요즘 교회의 트렌드도 똑 같습니다.  스타들의 무한 경쟁입니다.  얼마 전 어떤 스타급의 유명한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셨는데 매주 500명씩 등록한다고 합니다.  그런 추세라면 3개월만 지나면 최소한 5000 명 이상의 교회가 된다는 계산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오순절 날의 베드로 사역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사람들은 거의 100% 불신자들이었지만, 요즘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100% 기존 신자들입니다.  시장경제의 소비자 논리가 그대로 교회에 적용된 겁니다.  목회자는 설교와 목회 프로그램을 상품으로 하는 경영자이고 교인들은 그 목회프로그램의 소비자들입니다.  소비자들은 기호에 따라서 마켓을 옮겨 다닙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 목회자입니다.  스타는 브랜드 가치만으로도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그래서 대기업 급의 교회, 중소기업 급의 교회, 구멍가게 급의 교회로 구분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사회적 트렌드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흡수 병합됩니다.  구멍가게들은 대부분이 일, 이 년 버티다가 문을 닫아버립니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적 트렌드의 문제점이 뭘까요?  성도들은 교회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또 다른 스타급 교회가 부상하면 옮겨다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충성심이 아니라 소속감입니다.  내가 이런 멋진 교회의 멤버쉽을 갖게 되다니!  폼 나는 예배, 폼 나는 성가대, 폼 나는 예배당, 황홀해집니다.  교인들은 신앙보다는 외형에 매료됩니다.  교회가 뭔지, 왜 교회가 존재하는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몰라요.  그냥 스타급 교회에 소속된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교회는 스타를 따라 다니는 팬클럽이 아닙니다.  좋은 상품을 얻기 위해 옮겨 다니는 마켓이 아닙니다.  목숨 걸고 희생하고 충성해야 될 공동체입니다.  예배의 공동체요, 코이노니아의 공동체요, 봉사의 공동체요, 영혼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성숙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들을 뒤집으면 되겠지요?  첫째로, 연륜에 맞는 신앙의 足跡이 있는 교회입니다.  둘째는 화목한 교회입니다.  셋째는 외형보다는 내실이 있는 교회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말씀드릴 것은 건강한 교회입니다.  최근에는 “성숙된 교회”라는 用語 대신에 “건강한 교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워낙 교회들이 세속화 되다 보니 교회가 이상해졌습니다.  이상해 진 정도가 아닙니다.  이들을 교회라고 해야 될지, 기업체라고 해야 될지, 사회단체라고 해야 될지?  교회의 정체성이 없어졌어요.  정체성을 상실한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몸집이 아무리 크다 해도 참 교회라고 보기 힘듭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개념은 대형 교회, 중형 교회, 소형 교회가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입니다.  사람도 그렇잖아요?  덩치만 크고 건강하지 못하면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 각종 성인병에 걸려서 오래 살지 못합니다.  그러면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조직 관리가 잘 된 교회일까요?  주일학교 체계가 잘 잡힌 교회일까요?  재정이 풍부한 교회일까요?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일까요?  물론 그런 것도 잘 되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한 구조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건강한 교회의 구조를 명백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의 구조

  그러면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구조를 갖고 있을까요? 첫째로, 건강한 교회는 공동체적입니다.  오늘 말씀을 비롯해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교회를 인체에 비유합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  교회는 인체와 같은 유기적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왜 공동체여야만 하는가?  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에게 가장 유익을 주는 존재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1979년에 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는 살아 있는 존재처럼 행동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프로그램을 뽑는 컴퓨터 게임을 벌였습니다.  게임 방식은 각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과 서로 접촉하면서 점수를 쌓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상대의 점수를 빼앗고 상대를 갈아치운다든지, 상대에게 협력하는 척 하면서 배신한다든지, 될 수 있는 한 다른 것과 접촉하지 않으면서 점수를 지킨다든지, 상대가 적대적으로 나오면 경고하고 벌을 준다든지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은 프로그램은 협동, 상호성, 용서를 행동 규칙으로 삼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공격적인 프로그램들이 점수를 얻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협동, 상호성, 용서를 규칙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이기게 되고 나중에는 다른 프로그램들도 이 프로그램을 흉내 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인간 개체들에게 가장 유익한 존재 방식이 바로 공동체라는 점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공동체적인 삶은 모든 사람이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존재 방식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대 사회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둘째요 개인주의가 첫째입니다.  네오콘 주의자들의 특징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시키려 한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는 웬만한 不道德性도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부부관계, 자녀나 가족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자녀를 낳지 않아도 좋다고 합니다. 부부가 서로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혼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공동체도 구속력이 없습니다.  시청 앞이나 광화문 광장에 백만 인파가 모여서 “대한민국”을 외친다고 해서 공동체가 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아무 의무가 없습니다.  모이고 싶을 때 모이고 헤어지고 싶을 때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이것을 교회에 적용하면 현대 교회가 되는 겁니다.  가입하고 싶을 때 가입하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면 그만입니다.  교회원이 되었을 뿐이지, 공동체에 대한 어떤 의무도 없고, 책임도 없습니다.  이런 식의 삶은 위기가 다가올 때 다 망합니다.  개인은 공동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나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공동체가 약화되면 개인도 결코 건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는 공동체적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매일의 삶을 함께 나누는 생활 공동체입니다.  기쁨을 나눕니다.  슬픔을 나눕니다.  힘든 일을 함께 짊어집니다.  모든 생활을 교회 중심으로 합니다.  천국까지 함께 갑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창립하던 해에 등록하신 원년 교인들을 비롯해서 초창기 교인들로부터 새로 가입된 교인들이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모로부터 손자까지 3대가 출석하는 교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교회는 세상 풍조에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옆에 대형 교회가 있든지, 소형 교회가 있든지 별 영향이 없습니다.  교회 본연의 모습을 지켜갈 뿐입니다. 

  둘째로, 건강한 교회는 각 지체들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 합니다.  인체는 중요한 기관들이 연합되어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 코, 귀, 입, 심장, 폐, 간, 위, 소장, 대장, 콩팥, 쓸개, 뼈, 신경, 피부, 근육...모든 조직들은 각자의 고유한 업무가 있습니다.  심장은 피를 펌프질 하여 혈관에 공급합니다.  폐는 공기를 마시고 산소를 공급합니다.  간은 불순물을 분해합니다.  위는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장에서는 필요한 물질을 흡수합니다.  뼈는 몸을 지탱할 뿐 아니라 피를 생산합니다.  눈은 사물을 봅니다.  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코는 냄새를 맡고, 입은 말을 하고 음식물을 씹어 삼킵니다.  신경 세포는 각 부분의 정보들을 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할이 더 나뉘어져 있습니다.

  입에는 혀가 있고, 치아가 있고, 입술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 단 하나만 잘못되어도 몸 전체에 이상이 옵니다.  예를 들어 혀가 마비되었다고 합시다.  당장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소화에 이상이 오고 건강에 이상이 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불필요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가시 같은 사람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가시는 많은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단, 중요한 것은 각자가 남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자기 일을 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위는 간이 하는 일에 상관 없이 자기 일을 합니다.  손은 발이 하는 일에 상관 없이 자기 일을 합니다.  발은 얼굴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왜 나는 더럽고 힘든 3D 업종에만 종사하고, 생색은 얼굴이 다 내느냐?”  그것이 인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뒤에서 봉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 마담만 합니다.  그래도 서로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 공동체입니다. 

  셋째로, 건강한 교회는 지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치 뼈의 마디와 마디가 연결되어 있듯이, 몸의 부분 부분이 연결되어 있듯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은 불가분리적입니다.  절대로 몸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습니다.  공동체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끔 교회에 보면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이 사람 저 사람 욕하면서 떠나버립니다.  우리 교회의 초창기부터 불문율이 있습니다.  헌금 바구니를 돌리지 않습니다.  헌금자들의 이름을 강단에서 부르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얼마를 헌금했든지 헌금 액수는 일체 공개하지 않습니다.  금년부터는 주보에도 올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염려하지는 마세요.  여러분의 개인적 자료는 컴퓨터에 정확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연말 정산 카드가 곧바로 나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예산은 은행 창구로만 집행됩니다.  이런 우리 교회의 정서를 잘 모르고 가끔 외부에서 오신 분들이 자신의 헌금 사실을 알려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떠나버립니다.  만일 우리 몸의 지체들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느 날 오른 손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싹둑 잘려져 나갑니다.  어느 날 심장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에게 넣어달라고 떨려 나갑니다.  눈알이 빠지고, 코가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면 몸이 뭐가 되겠습니까?  교회도 그렇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교인들이 공동체에 단단히 붙어 있습니다.  어떤 시련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꾿꾿하게 교회를 지켜갑니다. 

  이와 같이 교회를 연결시키는 힘이 뭘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지체와 지체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겁니다.  교회는 체면 공동체가 아닙니다.  체면 떨어졌다고 떨려 나가지 않아요.  교회는 이익 공동체가 아닙니다.  얻을 것 없다고 떨려나가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붙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똑똑하지 못하다고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못난 자식일수록 더욱 열심히 돌봐 줍니다.  그 이유는 오직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끝까지 붙어서 충성하는 것이 바로 건강한 교회입니다. 

  넷째로, 건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공동체입니다.  목사도 머리가 아닙니다.  장로도 머리가 아닙니다.  성도들도 머리가 아닙니다.  다수결도 최선이 될 수 없습니다.  다수결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의 원칙이 지켜지는 교회입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신 것은 철저히 행해야 합니다.  예배, 전도, 봉사, 친교 열심히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금하신 것은 철저히 금해야 합니다.  우상 숭배, 간음, 살인, 다툼, 분쟁, 외식주의...철저히 막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공급되는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사용되는 은사들은 “메이드 인 지저스” 밖에 없습니다.  사랑도, 지혜도, 지식도, 권세도, 능력도, 말씀도 다 주님께로부터 공급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것을 사용치 말고 주님의 것을 사용하는 교회가 될 때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20주년에 맞춰서 우리 교회의 비젼이 무엇입니까?  큰 무리입니까?  조직입니까?  예배당입니까?  재정입니까?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숙입니다.  연륜만 자랑하는 므두셀라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연륜에 맞는 足跡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툼과 분쟁이 없는 화목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외형보다는 내면이 다듬어진 알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공동체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지체들이 자기 역할에 충실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지체들이 몸에 철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 되십니다.  모든 것이 머리로부터 공급됩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교회의 참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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