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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마 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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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마태복음 21:12-17)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는 국내외에서 몰려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3백만 명 정도가 모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빈 손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매체로서 꼭 제물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됩니다.

이렇게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온 수백 만명의 사람들이 드리는 소와 양의 숫자가 30만 내지 40만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가까이서 오는 사람들은 제물을 끌고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먼 지역이나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제물을 끌고 오겠습니까? 제물을 끌고 오다가 제물이 병들 수도 있고 상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매우 번거로웠습니다.
이런 번거로움에 편리를 봐주기 위해서 제물을 ‘이방인의 뜰’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는데 비둘기를 드리도록 해 주셨습니다. 돈있는 사람들은 소와 양으로 제사를 드리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소나 양으로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이방인의 뜰’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1. 예수님 당시 성전의 모습

예수님께서 성전에 오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賣買)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床)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장소에서 이런 일들이 이루어 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전은 성전의 본 건물이 있습니다.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데 한 건물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주변으로 하여 네 개의 뜰이 있습니다. 

맨 위, 성전이 있는 곳에 같이 있는 뜰이 ‘제사장의 뜰’입니다. 그보다 조금 낮은 지역에 ‘남자들의 뜰’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뜰입니다. 그보다 좀 더 낮은 곳에 뜰이 있는데 이곳은 ‘여인들의 뜰’입니다. 여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뜰입니다. 그리고 제일 넓고 제일 아래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뜰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이방인의 뜰’입니다.

제사장의 뜰에 들어가려면 ‘니가놀’이라는 문이 있는데 이 문은 청동문입니다. 장정이 한 이십 명이 열고 닫아야 되는 아주 큰 문이어서 남자들이 제사장의 뜰로 들어가려면 그 문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여자들이 남자의 뜰로 들어가려면 역시 문이 있는데 그 문은 ‘미문’이라는 문입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에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에 올라가다가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를 보고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했을 때 일어났던 그 문이 바로 미문인데 미문은 여자의 뜰에서 남자의 뜰로 가기 위해서 통과해야했던 문이었습니다.

이 ‘이방인의 뜰’에서 오늘 본문에 나와있던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전을 가리킬 때 ‘나오스“라는 말과 ’히에론‘이란 말을 같이 쓰는데 ’나오스‘라는 말은 ’지성소가 있는 성전의 건물‘을 가리키고, ’히에론‘은 성전 뿐만 아니라 성전에 딸려있는 모든 뜰을 포함할 때 쓰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셨다>는 말은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이 아니고 성전에 딸려있는 이방인의 뜰에 들어가셨다는 말입니다. 뜰에 들어가니까 성전에서 10배나 폭리를 취하는 강도짓을 하고있는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분개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좋은 제도, 다시 말하면 멀리서 오는 사람들의 제물구입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이 좋은 제도를 악용을 해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은 흠없는 제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드릴 때 제사장이 제물에 흠이 있는가를 검사하고 흠이 없다는 도장을 찍어주어야 흠없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가져오는 제물은 무슨 구실을 대서라도 흠이 있다고 해서 다 퇴짜를 놓고, 이방인의 뜰에서 제공되는 제물은 흠이 있어도 없다고 도장을 찍어주어서 제물로 허락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하나님께서 가증스러워하는 제사를 드렸겠습니까? 가난한 자도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한 비둘기도 얼마나 비싸게 팔았던지 보통 가격보다 10배나 비싸게 팔려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성전세로 반 세겔을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멀리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은 그런 돈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로마의 화폐를 사용하는데 로마의 화폐에는 황제의 화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 돈을 드리는 것은 불결하다고 해서 그 돈을 드리지 못하고 반드시 유대인의 화폐로 바꾸어서 반 세겔로 드려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환전 때에 엄청난 차액을 남겼습니다. 제물을 시중가보다 10배나 더 비싸게 받았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편리를 보는 것이 아니고 강도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강도짓을 하다시피해서 얻어진 대부분의 돈이 당시의 제사장에게 다 상납되어졌습니다.

제사드리는 사람의 편리를 위해서 환전소를 만들거나, 멀리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물을 구입할 수 있게 한 제도는 참으로 좋은 제도였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책을 팔기도하고 빵을 팔기도하고, 우리보다 더 큰 교회에서는 교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여러 가지 매매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것 자체에 분노하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제도를 악용해서 강도짓을 하고 있다는데 있었습니다. 제도에 대한 불만이 아니고,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제사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강도짓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순결하고 깨끗해야 되는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중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권(利權)에 매달려서 거기에 따라서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분개하신 것입니다.

그린도전서 3장 17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것은 두 번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한 번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돈바꾸는 사람,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다 쫓아내셨습니다.

그 때 한 번 성전을 청결케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직전, 그 주간에 또 한 번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셨던 것을 보면 그때 청결하게 하셨던 성전이 또 다시 더럽혀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이 청결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3장 1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파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깨끗하고 거룩해야만 성전의 기능을 잘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거룩한 성전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인되어 주시고,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고,  하나님께만 예배가 드려지고, 인간이 중심되지 않고, 인간의 이권(利權)이 조금도 용납되지 않는 아름다운 성전 될 수 있도록 늘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의 몸도 성전입니다.

성전만 성전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殿)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몸은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악이 벌어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셔야 하는데 내 마음이 정상적인 상거래가 아니라 10배나 폭리를 취하려는 강도짓이 예루살렘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도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간데 없고 오직 돈, 돈, 돈만이 내 마음에 자리를 하고, 물질만이 우리 마음에 판을 치고, 내 이기심만이 횡행하고 내 만족과 내 편리, 내 욕심만이 판을 쳐서 우리 마음의 성전이 더럽혀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돌리고, 하나님만이 주(主)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절대로 물질이, 돈이, 어떤 사람이, 어떤 권세가, 어떤 다른 것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면,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던 예루살렘 성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내 몸이 주의 성전이라는 이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경건해지는지 모릅니다. 내 속에 주님께서 거하신다, 나는 주님을 모시는 성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우리의 몸을 마음대로 더러운데서 절대로 굴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 속에 마약을 투여한다든지, 이 거룩한 성전, 주님께서 계시는 이 곳에 독한 술을 넣는다든지, 담배로 온 몸을 더럽힌다든지 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거룩하게 지켜 나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이 시간, 우리 교회에 오셔서, 또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마음과 교회를 보시면 우리 마음의 성전과 이 교회를 어떻게 보실 것 같습니까? 책망하는 성전이 아니라 기뻐하시고 좌정(坐定)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고, 하나님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 만이 경배를 받으시는 그런 아름다운 성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이 주인이 되고, 내 이기심이 판을 치는 우리 마음과 교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받으시고, 하나님만이 예배를 받으시는 그런 아름다운 성전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힘쓰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 뿐 아니라 내 몸의 전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성소가 있는 성전만이 성전이 아니고 거기 딸려있는 마당과 뜰까지 다 성전에 포함시켰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마음만이 우리의 성전이 아니고, 우리의 사지백체가 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거룩한 성전임을 깨닫고 주님을 위해서 우리의 몸을 잘 드려서 사용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마음 속에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믿어지십니까? 여러분들 마음 속에 예수님을 확실히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 마음은 이미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전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성전에 더러운 생각, 더러운 음식, 더러운 말로 채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을 주인으로 모시는 아름다운 성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본래 이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너희들이 장사하는 집 뿐만 아니고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56장 7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컫음이 될 것이니라>.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굴혈로,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으니 예수님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분노하신 것입니다.

성전이 깨끗한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당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정치하는 곳도 아니고,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장사하는 곳도 아니고, 교회는 사회개혁하는 곳도 아니고, 교회는 사회사업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상처받고 버림받은 영혼들이 와서 기도하여서 치료받고 새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는 곳이 교회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시 사람들은 성전인 하나님의 집을 사람들의 집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거룩한 분노를 터뜨리게 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당이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원을 찾기도 합니다. 물론 기도원에 가면 집을 떠났기 때문에 온전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교회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나는 실로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고 아기를 가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간절히 기도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평생의 소원인 아기를 허락하여 주시고 다시 아들, 딸을 다섯이나 더 두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이상을 보게되고 평생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기브온 성전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천 번을 드렸다는 말도 되고, 천 개의 제물을 드렸다는 말도 되는데 여하튼 어느 제사이든지 정성을 다 해서, 최선을 다 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정성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면 되겠느냐?> 솔로몬이 즉각적으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나는 출입할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위 백성의 선악을 분별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무릎을 쳤을 겁니다. <그래 되었다, 네가 원수의 생명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래 사는 것, 귀하게 되는 것, 부자되는 것 구하지 아니하고 주의 백성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지혜도 주고, 온갖 것을 다 너에게 주겠다.>
그 기브온 성전에서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 뿐만 아니라 부귀영화까지 주셔서 이 땅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여서 응답받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역대하 7장 12절에 보면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소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 곳에서 하는 기도,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하늘이 닫히고 비가 오지 아니하는 삶을 살 때가 있습니까? 여기 가도 막히고, 저기 가도 막히고, 사방이 다 막히는 때가 있습니까? 그 때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 기도 들어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메뚜기가 토산을 먹어치우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느냐? 그때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내가 그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마 네가 번 것을 내가 먹어야지, 내 자녀가 먹어야지, 사람이 먹어야 하는데 메뚜기가 먹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질병이 먹어치우고, 사고가 먹어치우고, 생각치도 못했던 일 때문에 물질이 소리치며 나가는 때가 있느냐? 교회 나와서 기도하면 내가 그 모든 기도를 들어서 네 모든 경제적인 삶을 지켜주마.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때가 있느냐? 교회 나와서,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의 기도를 들어주마,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응답해 주마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시고 내 눈과 내 마음,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이 항상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집중해 있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 나와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듣고 있는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고 응답받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 들어와서 나라를 협박하니까 히스기야가 조공을 바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은과 금을 바치느데 얼마나 많이 달라고 하는지 바치다가 바치다가 나중에는 나라에 은과 금이 없어져서 하나님의 성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기둥에 입혀져 있는 금까지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주어야할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서 앗수르 왕에게 “이제는 당신을 더 이상 섬길 수가 없습니다.”하고 말했더니 앗수르 왕 산헤립이 18만 5천 명의 대군을 이끌고 쳐 들어와서 너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를 배신하느냐, 애굽을 의지하고 배신하느냐, 어디 한 번 해 보아라 하면서 협박을 합니다. 온갖 저주를 퍼붓습니다. 하나님 앞에 욕을 합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내서 항복하지 않으면 너희 모든 백성들에게 오물을 먹일 것이라고 모욕을 합니다.

히스기야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산헤립의 편지를 펴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이방인이 이렇게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렇게 모욕합니다. 이제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십니다.‘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앗수르 군사에게 보냅니다.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 명을 다 송장이 되게 했습니다. 앗수르로 도망갔던 산헤립은 자기 아들의 칼에 맞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성전에서 하는 기도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사밧 왕 때에 암몬과 모압이 연합군을 형성해서 쳐들어왔습니다. 이길 힘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을 <여자가 아기를 임산했지만 낳을 힘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기를 배었으면 아기를 낳아야 하는데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아기도 죽고 엄마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이 그 지경에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런 처지에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계시를 합니다. <이 큰 무리를 인하여서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너희는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을 뽑고 그에게 거룩한 옷을 입혀 앞에 나가면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노래하면서 나가고 백성들은 칼들지 말고 활들지 말고 뒤따라 가면서 복창만 해라 그러면 너희가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 예언의 말씀대로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가운을 입혔습니다. 앞서 가며 무기 하나 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하고 찬송하니까 백성들이 따라서 복창을 합니다. 그럴 때에 어디에서 나왔는지 복병이 나오고, 모압과 암몬 군사들이 자기끼리 찔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기 하나 들지 않고 대승리를 얻어서 전리품을 거두는데 얼마나 많이 거두었든지 사흘동안을 전리품을 거두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하나님 앞에 찬송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찬송의 골짜기’라고 불러서 ‘브라가-찬송의 골짜기’라는 말이 생겨진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는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마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인줄 알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마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부산영락교회가 <기도하는 집>으로 소문나는 교회로 만들어 가는데 우리 온 성도들이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 새벽기도 많이 나오십니다마는 새벽에도 나와서 뜨겁게 기도하고 낮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도 기도하고 밤에도 기도하여서 우리 교회의 기도소리가 끝나지 아니하는 교회로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서는 우리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우리 교회를 기도하는 교회로 만들어 갑시다

예루살렘 성도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날마다 모이고 기도하기에 전혀 힘쓰는 사람을 살아서 그 시대의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루에 꼭 한번씩 하나님의 성전에 들러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보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분은 출근할 때 꼭 교회에 들러서 기도하고, 퇴근할 때도 교회에 들러서 기도하고 퇴근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그런 교육을 한번 시켜 보십시다. 학교 갈 때에 교회에 들러서 “하나님 제게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기도하고 등교하게 하고, 하교시에도 교회에 들러서 갈 수 있도록 교회를 사랑하는, 성전을 사랑하는 자녀가 되도록 교육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운동이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학생들에게, 온 성도들에게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산에 한 백 여명 모이는 좋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한 장로님이 그 교회를 잘 섬기고 계시는데 그 분은 부산대학 교수이십니다. 그 장로님이 전도에 대한 신앙간증집을 내셨는데 그 책 마지막에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다른 교회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기도 침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밤을 새워 기도하는 성도들을 위해 솜씨좋은 집사님이 열 두어 개를 만들었다. 예배당 의자 쿠션 밑에 합판을 절묘하게 붙여 침대를 만들어 필요에 따라 접고 펼 수 있도록 하였다. 여전도회 회원들로 구성된 철야기도 용사들이 기도하다가 피곤하면 편한 자세로 잠깐 눈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1년 내내 밤새도록 예배당에는 기도의 불이 타고 있다. 기도침대의 수가 부족할 정도다. 예배당에서 성도들의 기도릴레이가 일어난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한 시간 정도까지 몇몇 사람의 기도가 지속된다. 오전에는 여전도회 회원들이 바쁜 가사시간을 쪼개어 예배당을 기도로 지킨다. 이른 오후시간에는 중고등 학생들이 기도하기 위해 귀가길에 들러거나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다. 늦은 오후에서 저녁시간까지 청년들과 직분자들이 기도로 예배당을 데운다. 수요일이나 금요일 오후에는 예배 시간 전까지 예배당 곳곳에서 기도소리가 웅얼웅얼 거린다. 밤 아홉시가 지나면 기도의 불침번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벽녘을 맞이하기까지 기도의 향연이 하늘로 올라간다. -

기도하는 교회의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여기서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교회당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성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도 항상 기도의 향연이 올라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제자대학에는 하루 한 시간 기도를 의무화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온 성도들 자체가 기도하는 성전인 줄 알고 한 시간 기도에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부산에도 1천 6백 여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마는 우리 교회처럼 24시간 내내 본당을 개방해서 기도하도록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1천 6백여 교회 속에 10개 교회도 안될 것입니다. 특별히 큰 교회는 더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길 가에 있어서 24시간 교회를 개방하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 24시간 교회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서 이 교회의 기도소리가 끝나지 아니하는, 기도의 향불이 늘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언제든지 기도의 향불이 끊이지 않아서 분향단에서는 언제나 기도의 향이 올라갔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늘 기도가 끊이지 아니하는 교회로 만들어 나가리라고 다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기도의 집을 만들었습니까? 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그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도의 집을 만들어 주시고, 이곳에서 기도하면 내가 응답해 주마고 약속까지 하시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살아가면서 하늘이 닫힐 때, 앞길이 막힐 때, 여기 가도 안되고, 저기 가도 안되고 사방이 다 막힐 그 때에 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면 그때에 내가 그 기도를 들어주마, 그 길을 열어주마, 하늘을 열어주마, 축복의 문을 열어주마, 너희가 살아가면서 메뚜기가 먹어치워서 먹을 것이 없게 되는 그 때에 경제적으로 피폐할 그 때에 이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경제적인 삶을 회복시켜주마,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 당할 때에 네가 이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너의 건강을 회복시켜주마, 우리를 위하여서 기도의 집을 만들어 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한가지씩 다 부족한 것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럴 때 혼자서 울고섰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어떤 사람을 찾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성전에서 기도하여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해서 출가시키고, 성가시켜서 다 내어 보내고 부모님 들만 남아 있을 때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뭡니까? 자녀들에게 전화가 온다든지, 찾아온다든지, 자녀와 이야기 할 때가 제일 즐겁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자녀들인 우리가 이 성전에 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대화하는 것을, 사귀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오늘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 필요를 채워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보면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가장 매력적인 두 마디가 있는데 하나는 <무엇이든지>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이것은 너무 커서 불가능하고, 이것은 너무 시시해서 하나님 앞에 이야기하기 힘들고, 그래서 기도를 내가 선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내용을 선별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내게 기도하면..>이라고 하시고 <그러면 다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다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기도하면 피할 길을 주시고, 기도하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모든 길들을 기도 속에 다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도의 집을 마련해 주시고, 기도의 약속을 주시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교회가 기도하는 집으로 소문나고, 만인이 기도하는 성전이 되어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소문나는 교회와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해 주셔서 기도의 집을 주시고, 기도의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집에서 기도하는 성도들 되셔서 늘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체험하고 늘 응답받아서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아름다운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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