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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 1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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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17:13~14) 

지난주간에 날씨가 매우 건조하였습니다.
겨울 가뭄도 극심합니다. 해결해 다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또 불조심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과 직장의 은총을 잘 보존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마 7:13 - 14을 통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주제로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1980년대에 KBS를 중심으로 이산가족을 찾는 운동을 벌렸습니다. 6·25 때 헤어진 부모와 자녀를 1·4후퇴 때에 떨어져서 30년이 지난 후에 만난 형제들이 서로 만나서 얼굴을 부비며 얼싸안고 통곡에 가까운 절규를 내 쏟으면서 잃어 버렸던 과거를 다시 찾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잃어버렸던 기쁨을 다시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절망에서 소망을 찾아내고 가난과 저주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찾아서 잃어버렸던 행복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는 하나 믿지 않는 사람
교회를 다니기는 하나 구원의 감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모든 분들께 묻습니다.
진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게 될 때입니다."
놀랍게도 이 대답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갖게되면 나는 웃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소유하면 그때 나는 하나님께 미소 담긴 나의 얼굴을 자신 있게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정말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와는 정 반대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에 넉넉한데 있지 않다" 눅 12:15의 말씀입니다.
잠 10:16도 경고합니다.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른다"

우리는 요즘 정치계를 바라봅니다.
악과 타협하여 죄를 짓고 방탕하면서도 막강한 권력과 세도를 부렸던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아 슬픔과 고통에 처하게 되면 처참한 모습을 당하는 경우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미련하게 보입니다. 어리석게 보입니다.
50-60년 동안을 떡볶이 팔아서 모은 돈 전부를 장학금에 바칩니다. 그러나 그 주름진 얼굴에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습니까?
기억하세요!
사람의 생명은 절대로 넉넉한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네! 행복하려면 나의 삶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나는 내 인생의 길을 함께 걸으며 평생 사랑을 나누어줄 동반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나는요 자녀가 없는데요 그저 아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네! 나는 말이죠. 고거 만나기만 해도 입맛이 사라지는 고 윗사람만 사라졌으면 행복하겠어요.
그런데 사실 우리의 행복은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태도가 어떤지 아십니까?
시 41:7에서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이르기를 악한 병이 저에게 들었으니 이제 저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다 하오며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하였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것도 물론 하나님의 크신 축복입니다. 이것을 범사가 잘되는 인복이라고 합니다.
오늘 모인 여러분 모두에게도 사람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사회에서 인복을 받아서 범사가 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만 의지한다면 시 41편과 같은 배신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주머니의 먼지를 집어낸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21세기를 믿을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표현합니다.
왜 21C를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시대라고 합니까?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에는 적이며 오늘 적이었던 사람이 내일에는 친구가 되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김연주라는 여인은 보험금 2억을 타내기 위하여 남편을 독살하려고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보이면서 여보 이 음료수를 마시세용 하잖아요 드세용! 그때 생명보존 하시려거든 꼭 이러세요.
"너부터 마셔봐라"

이런 말이 오고 갈 정도로 불신인데 사람만을 통해 진짜 행복해 질 수 있습니까?
네! 행복하려면 내가 가진 꿈과 목표가 다 성취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좋죠!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목표가 무엇입니까?
10억을 모으는 것인가요?
세상에서 명성을 얻는 것입니까?
박사학위를 받는 것일까요?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서는 것일까요?
바다 속에서 자라는 해초를 보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조류와 햇빛과 물빛과 함께 어우러져서 움직이는 모습은 그 어느 무용수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하기도 하고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바다 속에 있는 그 해초를 따서 밖으로 꺼내서 모래사장 위에 내다보면 거 별거 아닙니다.
오히려 흉칙하기까지 합니다.
인생의 목표와 꿈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다! 이루었고, 다! 가졌고, 다! 실현했을지라도 얻고 나면 싸늘하게 식은 잿더미만 남을 뿐입니다.
그러나 약 1:2은 이렇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함이라"
바로 이것입니다.
진짜 행복은 무엇을 가졌기에
      누구를 만났으므로
      무엇을 다 이루었기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인내하고 연단의 고난을 겪을 때에 그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바로 진짜 행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마 7장에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좁은 문일까요?
이 좁은 문은 어디에 있습니까?
요 10:7,9절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문이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요 3:16에서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 들어갑니다.
정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냥 아멘 하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습니까?
다스리고 지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습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가족과 나의 이웃에게 전하며 사시렵니까?
아멘 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미 좁은 문으로 들어가신 분들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위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줄을 믿습니다.

기억하세요!
우리의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입니다.
우리 다같이!
주여!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믿나이다.
장로교회의 교리문답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면 얼마나 섬기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한다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니 바울처럼 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희생한다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처럼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자문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공지영씨는 이렇게 이야기했더군요.
사랑이란 "좋은 것이라면 언제 함께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랑이다"
어디 좋은 데를 가면 함께 하고 싶고
어디 좋은 음식이 있으면 함께 먹고싶고
어디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싶고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저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과 함께라면 언제나 웃을 수 있는 것
그래서 사도바울은 감옥소에 갇혀있으면서도 "기뻐하라"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실 수 있습니까?

주와 함께라면 가난해도 좋아
참된 부요함이 내 맘에 가득하니까
때로는 날 유혹하려고 세상 바람 휘몰아쳐와도
나는 결코 놓을 수 없어 자비로운 주의음성을
주의 나라를

주의 손 붙들고 무슨 일을 만나도 즐거워한다면 주께서 우리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시고 저 천국에 들어가도록 우리 모두를 붙잡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좁은 문이란 고난의 문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도 고난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고민이 있다 하였습니다.
첫째> 물질에 대한 고민
둘째> 사람에 대한 고민
셋째>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있다.
사람은 노력에 의해서 첫째 고민이 해결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둘째 고민도 해결 될 수 있다. 그러나 셋째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은 절대로 풀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는 나 자신의 고민까지도 다 해결하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 126:5 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하였습니다.
또 요 16:22에서는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가 기쁜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10에서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잠깐이며 이 잠깐 분인 고난을 통해 우리의 터가 견고케 되리라" 하였습니다.
기억하세요! 고난은 잠시 뿐이요 오히려 터가 더 견고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리 시운 것이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힘이 듭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절대로 주시지 않는다는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이 믿음이 있었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아! 나에게 와 봐라. 오히려 고난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조각하게 할 것이다.
고난이여! 내 가정도 내 직장도 나의 조국에도 오는 구나!
그러나 이 고난은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나를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으로 만들어 줄뿐이로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기쁨과 소망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영생에 이르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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