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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 민 13:25-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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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본문: 민 13:25-14:10

13:25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13: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13: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젓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13: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13:29 아말렉 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 인과 여부스 인과 아모리 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 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哭)하였더라
14: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14: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14: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14: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14: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14: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본문의 내용을 간단히 보자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 가는 중 가나안 땅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열 두 지파 중에 각 대표를 세워 그들을 가나안 땅에 정탐을 보냅니다. 40일 동안 12지파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40일 후에 와서 온 회중 앞에서 보고를 합니다. 그 가나안 땅을 보고 10지파는 어떻게 보고하였는가? 그 땅의 거민을 보니 우리가 메뚜기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크게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애굽 땅으로 다시 돌아가 종살이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한 장관을 세워서 돌아가자!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타나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 라고 보고를 합니다. 왜 그들이 우리의 밥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이게 결론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가 이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정탐꾼의 이야기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열지파와 두 지파가  똑 같은 것을 보았지만 전혀 다른 보고를 합니다. 그들이 다른 것을 보고 온 것인가? 아닙니다. 똑 같은 가나안을 보고 왔습니다. 똑같은 곳을 보고 왔지만 열 지파는 우리가 그들의 메뚜기와 같다라고 보고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이 우리의 밥이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어제 한 교회의 어떤 간사를 만나며 믿음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같이 묵상하고 나눠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현실과 믿음의 괴리감이 컸습니다. 목표를 세움에 있어서(또한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항상 이 두 가지가 부딪힙니다. 이것이 믿음인가? 세상 말로 허풍인가? 내가 하는 것이 현실이냐? 믿음을 잃은 모습이냐?

똑 같은 것을 보았지만 열 지파의 보고는 우리가 그들의 메뚜기라는 것이었고 두 지파는 그들이 우리의 메뚜기와 같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었던 것은 메뚜기와 석청입니다. 메뚜기가 정말 작고 보잘 것 없습니다. 열 지파의 보고는 그 가나안 앞에 우리가 그런 보잘것 없고 작은 존재, 그들의 밥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40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아주 긴 세월 동안 가나안만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오랫 동안 표류한 그들에게 무엇이 남았겠는가?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헤매 지칠대로 지친 백성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가나안 정탐을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너무나 초라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누구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것이 불가능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아주 현실적인 보고입니다. 열 지파의 보고란 정확한 보고였습니다. 자신들의 모습과 그 땅에 있는 성의 견고함을 보았을때 싸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백성들이 울며 다시 애굽의 종살이를 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다시 돌아가자 라고 합니다. 사실 이 모습이 맞습니다. 거기 가서 죽는 것보다 애굽으로 가면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그 상대가 너무나 강하고 커보입니다.

그러나 두 지파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 또한 광야의 백성이었으며 똑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그 현실을 무시했었던 자들이었을까요?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요? 이 사람들은 모든 현실 감각을 잃은 자들이었을까요? 그들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전혀 다른 보고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란 이렇게 다른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이렇게 생각이 다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불가능한 가능성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안되는데 된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았을 때 이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무기가 있었겠는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40년간 지친 백성들밖에는 없습니다. 열 지파가 이렇게 보고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 그러나 믿음이란 불가능한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 능력으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그것을 인정하고 난 다음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되지 않는다는걸 인정하고 나면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합니다. 안되는데 된다라고 이야기하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만입니다.

어제 그런 이야기했습니다. 믿음과 현실의 차이는? 믿음이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파악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이루려고 또 간구하고 매달리고 이루는 것입니다. 허풍은 이야기만 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일주일만에 백 명 전도할 수 있다고 보고할 수 있지만 그 다음에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매달리고 끊임없이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하면 이루어주십니다.

불가능한 가능성, 이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믿음이란 불가능해 보이는 그것을 이길 수 있다라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함에 있어서 할 수 있다라고 밀어 부칩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어,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고 합니다. 천 명이라도 할 수 있어 라고 하며 나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내가 할 수 없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과 허풍은 무슨 차이이냐? 허풍은 내 능력으로 하려 하는 것. 믿음이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고 홍해를 갈라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현실 앞에서 그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애굽에서 그들을 끄집어 내실 때 가나안 땅까지 이끌어주신다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이들이 믿어야 할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모든 현실을 무시하고 가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모든 현실을 무시하고 살아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현실에서만 멈추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넘어서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현실적인 것으로 보는 것, 맞는 이야기입니다. 당장 빚이 산더미 같이 쌓인 것. 그것을 놓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기도하며 구체적으로 그 길을 찾는 것, 그게 믿음입니다. 무작정 되겠지 하고 앉아 있는게 믿음이 아닙니다. 가장 이상적인 모형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을 파악하고 분석한 다음에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을 믿고, 하나님이 열어주시려 하는 그 세계를 믿고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서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허풍인지 믿음인지 뭘로 알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푯대를 세우고 그것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놓고 기도하며 이루어나갑니다. 결국엔 그것을 이루어냅니다. 그것이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곳은 푯대는 높이 잡고 아무 것도 안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이 두 지파가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입니다. 그들과 늘 함꼐 하시고 마지막까지 이끌고 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저들을 보니 우리가 메뚜기와 같더라는 열 지파의 말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뭐가 틀린 것입니까? 두 지파가 보았던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해주실 분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가능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불가능한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를 앞에 두고 심히 두려워 떱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자리는 너무나 두렵고 떨리지만 십자가 너머 더 높은 세계를 보셨습니다. 부활의 세계를 보시고 죽어도 산다는 믿음을 통해서 일어나 가자라고 하시며 일어나 가십니다.

이 두 지파를 보십시오. 불가능한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다음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약하고 초라한 모습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다라는 고백,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길,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싸움은 싸우기 이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싸움을 임하는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이 이길 수 있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끝날 때 유식한 것이 똑똑한 것이 우리에게 더 해가 됩니다. 그것을 넘어선 세계를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신앙생활을 해가며 푯대를 세우고 가야 할 때, 믿음을 드러내야 할 순간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 때 어떤 것이 믿음이고 어떤 것이 허풍인지 잘 기억하고 가길 바랍니다. 먼저 불가능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것을 가능케 해주실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나아갈 때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2월달까지의 목표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것을 넘어섰던 이 두 지파의 믿음을 보기 바랍니다. 단 하루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된다는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제 돌면 안됩니다. 이제 놀라운 역사를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밟는 땅이 너희 것이 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 약속이 공허한 외침으로, 표어로 끝나면 안됩니다.

14: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14: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담백한 믿음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간에 이 믿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의, 믿음의 싸움입니다. 사탄은 늘 우리를 현실에 가두려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죽이시지 아니하십니다. 예전에 최목사가 개척을 하며 이틀 동안 한 끼도 먹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결코 우리를 죽이시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가는 길이 험난하고 고단합니다. 그러나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죽지 않는다라는 걸 전제했을 때 얼마든지 싸울 수 있습니다. 죽지 않는다고 했을 때 두려울게 뭐가 있겠습니까? 종국은 이기는 싸움입니다. 과정은 굽이칠 수 있지만 종국엔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가야 합니다. 다만 우리에게 남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는가? 자랑스런 역사를 남겼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를 써나가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현실에 치여 열 지파같이 광야에서 쓰러지는 자들이 아니라 믿음을 드러내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두 지파의 모습이 임마누엘 성도들의 모습이 되십시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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