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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심하지 맙시다.(눅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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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낙심하지 맙시다.
성 경 : 누가복음 18장 1~8절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처럼 적군을 물리치고, 병에서 고침받기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처럼 신앙 파수를 위하여 - 바디메오처럼 빛을 위하여, 엘리야처럼 비를 위하여, 한나처럼 자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처럼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요나처럼 물고기 뱃속에서, 베드로처럼 지붕에서, 히스기야처럼 침대에서, 예수님처럼 산에서, 하갈처럼 광야에서, 야이로처럼 길거리에서, 다윗처럼 동굴 속에서, 죽어가는 강도처럼 십자가 위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나 세리처럼 짧게,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처럼 길게, 모세처럼 경건하게, 한나가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침묵 속에,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큰소리로, 막달라 마리아처럼 울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새벽에, 다윗처럼 아침에, 다니엘처럼 정오에, 실라와 바울처럼 자정에, 사무엘처럼 어린시절에, 디모데처럼 청년시절에, 백부장처럼 장년시절에, 시므온처럼 노년에, 욥처럼 질병으로 아플 때, 야곱이나 모세처럼 임종 순간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하셨습니다(막11:24). 야고보 사도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약1:6).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낙심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신앙에 가장 큰 적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때 낙심하면 안 되는가?


Ⅰ. 예수를 믿다가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 들어 넘어지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예 예수를 믿지 않은 것만 못하고, 중도에 예수를 포기하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다가 낙심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예수 때문에 낙심하지 아니하고, 사람 때문에 낙심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목사가 어떻고, 집사가 어떻고, 구역장이 어떻고, 회장이 어떻고, 어떤 성도가 어떻고, ....” 그래서 상처 받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확실한 신앙의 대상을 바로 정해야 합니다. 신앙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를 믿어야지, 사람을 바라보고 예수를 믿으면, 그 사람과 함께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를 메고 가는 제사장의 뒤를 따라 갈 때 2000 규빗을 떨어져서 따라가라고 했습니다(수3:4). 사람가까이 따라 가게 되면 사람 때문에 실망하게 되고, 너무 멀리 떨어져서 따라 가면 법궤(하나님)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천사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의인들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병원에 병든 환자들이 가는 것처럼 교회에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마9:13).

교회는 회개하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악마 같은 인생들이 천사 같은 사람이 도기 위해서 모이는 곳입니다. 성화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고, 성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인 중에는 성질 급한 사람도 있고, 혈기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아직까지 구습을 버리지 못하여 술 마시는 사람도 있고, 담배 피우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천국의 환상을 가지고 나왔는데, 천국 같지 않은 지상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 교회는 겉으로 보아서는 세상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이 보여도, 배추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처럼, 허물 가운데서, 양심의 가책을 받고, 회개를 통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죄인이기 때문에 죄 사함 받고, 죄 사함 받아 구원 받고, 천국 가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도 이 모양이라면, 만약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비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홉 가지 좋은 점은 보지 못하고, 한 가지 단점만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용하는 사람은 한 가지 단점은 보지 아니하고, 아홉 가지 장점을 보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보고, 사람을 따라가다가, 믿음에서 낙망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Ⅱ.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이유 없는 고난과 역경이 닥칠 때입니다. 내 스스로는 정직하게 살려고 하고, 의롭게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려고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힘쓰고, 애쓸수록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닥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임하기는커녕 세상의 악한 사람도 만나지 아니하는 환난을 만나는 것입니다. 남이 잘돼서 배 아픈 것이 아닙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받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이요 공의라면, 축복은 없을지라도 환난은 닥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욥이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라고 절규했습니다(욥21:7~9). 시편 기자도 “나는 거의 실족 할 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 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시73:2~3).

그런데 히브리 기자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히10:35-39).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낙망치 맙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Ⅲ. 기도하다가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본문 1절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너희에게 비유로 하여....”라고 했습니다. 맷돌은 천천히 돌려야 곡식이 부드럽게 갈립니다. 급하다고 빨리 돌리면 가루가 거칠어집니다. 큰 강물은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도 빨리 흘러갑니다.

그러나 도랑물은 빨리 흐르는 것 같아도 더디 흐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많이 지체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시간은 지체하거나 머무르지 아니하고 정하신 예정 따라서 부단히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되돌아온 반송소포가 많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응답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아니하고 기도하다가 돌아갔기 때문에
“수취인 불명”이라는 응답의 소포가 많이 되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하늘 문이 닫혀 우로가 내리지 않을 때 엘리야는 얼굴을 두 무릎사이에 묻고 기도하면서 사환에게 일곱 번 까지 언덕에 올라가 바다를 살피라고 했습니다. 일곱 번째 사환의 대답은 “바다에서 사람의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입니다.”라고 했습니다(왕상18:44).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눅18:8). 기도하고 낙심치 말고 끝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들어 주시리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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