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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것을 염려하지 말라 (삼상 9: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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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것을 염려하지 말라 (삼상 9:15-27)


암나귀를 잃은 아버지 기스: 이스라엘에 기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목축업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암나귀를 잃었습니다. 기스는 그 아들을 불러서 잃은 나귀를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보다 막연한 일도 없습니다. 도대체 이 나귀들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기스라는 분은 그저 답답한 나머지 그의 아들을 보내보는 것입니다. 나귀를 잃은 것도 딱한 노릇이겠지만 잃은 나귀를 찾아오라고 어린 아들을보내는 아버지도 딱하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순종하는 기특한 아들 사울: 그런데 아들을 잃은 나귀를 찾으러 나갑니다. 아들은 군소리가 없습니다. 왜 잃었느냐고 묻지도 않고,어디 가서 찾으란 말이냐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반드시 찾는다는 어떤 보장도 없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집을 나섭니다. 그는 무려 사흘이나 잃은 나귀를 찾아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헤맵니다. 이렇게 헤매던 아들은 마음속에 아버지께서 걱정하시겠구나, 아들을 보내고 사흘씩이나 소식을 듣지 못하여 걱정하실 아버지를 걱정합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사환에게 말합니다.“자 돌아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는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 하노라.”(삼상9:5)

그 주인에 그 사환: 사환은 주인의 아들의 말을 듣고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어디로 가야 잃은 암나귀를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자고 제의합니다. 그런데 사울에게 또 하나의 걱정이 생깁니다. 모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는데 빈손으로 가서야 되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여행길에 노자도 다 떨어지고 예물을 마련할 길이 막연하기만 합니다. 겨우 주머니를 다 털어보니 한 세겔의 사분의 일입니다. 두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찾아갑니다. 어떤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본문의 말씀(15,16절)을 봅시다:“사울의 오기 전 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하나님은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기 전에 이미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이는 엄청난 명령입니다. 이리하여 10장에 가서는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웁니다. 사무엘은 오늘 본문 말씀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줍니다. ‘잃은 것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네가 이스라엘 왕이 되리라.’이미 준비한 소 넓적다리로 요리를 만들어 파티까지 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흐뭇한 해피앤드입니까? 걱정거리로 시작해서 왕관을 받아쓰게 되는 것으로 끝나니 얼마나 근사 합니까? 2004년 한양교회에 이러한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울은 이런 일이 생기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을 하였을 뿐입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굉장한 결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편지에서 이런 권면을 하였습니다.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걱정이 있고 근심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걱정은 잠간으로 끝나야 합니다. 염려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더욱 적극적으로 권면합니다. (약 1: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을 만나거든 어떻게 하라고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왜요? 이로 인하여 이루어질 축복이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데 어찌 걱정거리가 없겠습니까?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로 인하여 주어질 더 큰 축복,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을 인하여 오히려 기뻐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누가 염려함으로 그 미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6:27)? 여러분 걱정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소용없는 걱정을 왜 합니까? 걱정한다고 건강 해지나요, 걱정한다고 키가 크나요, 걱정한다고 밥이 저절로 들어오나요, 걱정한다고 더 젊어지나요. 아무 유익이 없으며 도리어 해로울 뿐입니다. 그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걱정을 왜 합니까? 그 걱정 이제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요14:1) 그리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걱정의 방향을 돌려서 이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어떻게 이룰 수 있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일까? 그 목적에 이끌려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베드로는 후일에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9:20)“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사울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되 이의 없이 그저 순종했습니다. 좋은 태도입니다. 사울은 염려하되 염려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나귀는 고사하고 아들을 걱정하실 아버지를 걱정합니다. 참 기특한 아들입니다. 나귀가 아니요 자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기특한 아들입니다. 나귀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엇이 더 욱 소중하게 생각됩니까? 먹는 것 보다는 건강이 그리고 믿음이 진실이 덕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사울의 하나님의 종에 대한 태도가 본받을 만합니다. 선지자를 찾아가는 태도도 또한 일품입니다. 이는 기도로써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걱정거리가 있나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없는 걱정은 마귀의 노예가 됩니다.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로써 모든 문제를 풀어 가시기 바랍니다. 사흘 전에 잃은 나귀를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걱정이 해결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모리아산에 갔다 바치라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이의 없이 그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이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귀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잃은 것을 인하여 더 큰 것을 찾았습니다. 나귀를 잃었기에 왕관을 쓰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이제 잃은 것을 생각지 말고 얻은 것을 생각하십시오. 돈을 잃었지만 진실을 얻지 않았습니까? 건강을 잃었지만 믿음을 얻지 않았습니까? 혹 명예를 잃었지만 겸손을 얻지 않았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신비와 섭리가 있습니다. 잃은 것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직 순종함으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겸손으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진실을 얻을 때 모든 것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잃은 것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네가 왕관을 쓰리라.”오늘 아침 이 하나님의 귀한 음성을 들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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