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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범사에 감사하라 / 살전 5:18, 엡 5:1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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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사에 감사하라

본문: 살전5:18, 엡5: 15- 21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범사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0-21)

‘범사’란 의미는 모든 환경, 모든 상황(all circumstances)이란 말입니다. 성공할 때뿐 아니라 실패할 때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기쁠 때뿐 아니라 눈물날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형통할 때뿐 아니라 고난을 만났을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형통하며 기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믿음의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고파합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축사’를 하십니다‘축사’라는 말을 사람들은 축복기도를 드린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축사’란 말은 빌 축(祝)자에 사례 혹은 감사할 사(謝)자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불평과 원망을 하는 상황에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까짓 것 가지고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이겠습니까? 라고 원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신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사로가 죽어 몸이 썩고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낙담하고 있을 때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감사해야 될지를 주님께서는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1946년 6월 공산주의자들은 일제하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 주영진 전도사를 잡아갔습니다. 이때 주기철 목사님의 부인되시는 오정모 집사님은 다음과 같은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제물로 받으시더니 또 그 아들까지 받으시려 합니까. 한없는 영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린 종에게 담대한 마음 주시사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참된 신앙인의 감사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감사(感謝)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誓願)을 갚으며" (시50:14)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로빈슨이란 트레일러 운전사의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교통사고 후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40일간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때 그의 눈이 치료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소망의 행동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가장 긴 밤'등을 집필한 작가 코넬리어스 라이언은 5년간 암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투병 중에도 매일 아침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이언은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라이언이 대답했습니다.
"새날을 맞는 다섯 가지 기쁨이 있어요. 첫째,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족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셋째, 병들어 눕기 전에 작품을 탈고한 것이 감사하지요. 넷째, 병마와 싸울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주님이 지금 저와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참 신앙은 죽음 앞에서 빛을 발합니다. 평온할 때는 모두가 참 신앙인처럼 보입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비로소 신앙의 진위가 가려집니다.
마틴 루터는 마귀에게는 감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골 3:15).
1620년 12월 26일 청교도 102명이 미대륙 플리머스 해변에 상륙했습니다 그들은 모래를 날리고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첫째 180톤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평균 시속 2마일로 117일간 무사히 항해했음을 감사했고, 둘째 항해 중 2명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을 감사하였으며, 셋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하였고, 넷째 큰 파도에 밀려 여자들이 바다에 빠진 사건이 두 번 있었으나 모두 구출됐음을 감사하였으며, 다섯째 신대륙 접근 뒤 일부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 못하다 한달 만에 플리머스에 안착하게 됨을 감사하였고, 여섯째 3개월 항해 중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개척민의 초대 지사가 된 브래드포드는 새 땅에 정착한지 3년 만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높으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넘치는 수확을 주셨다 옥수수 밀 콩 호박과 채소를 가꾸고 사냥을 하며 생선과 조개를 넉넉히 얻도록 축복해 주셨다. 야만인의 습격에서 지켜 주시며 질병에서 건져 주셨다. 무엇보다 우리의 양심을 따라 자유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순례자에게 선포한다 주후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어른과 아이들은 전원이 모여 이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라” 이들 미 건국의 조상들은 풍요한 수확과 행복한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무덤을 팔 수밖에 없었던 첫 겨울, 하루에 옥수수 5개씩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던 추운 겨울을 지내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1863년 남북전쟁이 극렬한 때 링컨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미국의 국경일로 선포하며 말했습니다.“모든 미국인은 이날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라" 그 후 역대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메시지를 발표하는 관례가 생겼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감사절 메시지에서 “오늘날 미국의 문제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고 윌슨 대통령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덕에 대해 미국인은 감사를 드리자”고 외쳤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 가을날 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정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 미국인의 위대한 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과거보다 여건이 좋은데도 불평은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100년 전의 미국인들은 꼭 바라는 것으로 16개를 꼽았는데 지금은 92개나 된다는 것입니다
바네트 깁슨의 저서 ‘행복한 하루'에 나오는 글입니다.
“행운의 손바닥에 얼마나 많이 쥐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그대의 행복과 관계가 없다 그대의 마음속에 감사한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라 감사의 예술을 터득할 때 그대는 비로소 행복을 찾을 것이다”

Ⅰ. 건강한 신앙생활
세상인심은 조석으로 변합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축구 감독을 맡았던 히딩크는 프랑스와 체코에 5:0으로 지자 "5:0감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던 매스컴이 한국이 4강에 들자 영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16강만 통과해도 한이 없다던 마음이 4강에서 탈락하자 원망이 재발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감사는 신앙생활의 바로미터입니다.
멕시코의 어떤 마을에는 냉천과 온천이 솟아오르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멕시코의 여인들은 그곳으로 가서 빨래를 하는데 온천에서 삶아 빨고 냉천에서 헹구어 빨래를 마칩니다. 관광객들은 그러한 장면을 보고 신기해하며 이처럼 온천과 냉천이 솟아나니 여기 있는 여인들은 너무 감사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멕시코 안내원은 “아니오. 이곳에서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냉천과 온천을 주시면서 왜 비누를 주시지 않아 우리가 비누를 가져와야 하는가”라며 불평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있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없는 것만을 생각하며 불평할 때 우리 인생은 불평이 끝이 없습니다. 받지 않은 것을 헤아려 불평할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헤아려 감사하고, 없는 것을 헤아려 불평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십시오
다음은 안데르센 동화집에 나오는 '썩은 사과'이야기입니다. 어떤 시골에 늙은 농부 내외가 살았습니다. 그 집 재산이라고는 말 한 필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남편에게 장에 가서 이 말을 팔거나 그렇지 않으면 더 좋은 것과 바꾸어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장에 가서 썩은 사과와 바꿨습니다. 이것을 본 어느 부자는 틀림없이 집에 돌아가면 그 부인에게 야단을 맞을 것이라 생각해서 노인과 내기를 했습니다. 노인은 집에 들어서자 부인에게 바꿔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말과 암소를 바꿨지." "우유를 먹게 되었으니 고맙지요"하고 부인은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암소와 양과 바꿨어." "그건 더 좋지요. 양이 먹을 풀은 들에 가득하고 또 양젖을 먹고 털옷까지 입게 되었으니 할아버지는 참 고마와!" "그런데 그걸 암탉과 바꿨지", "잘 바꿨어요. 암탉은 알을 낳고 알이 햇병아리가 되면 우리는 양계장 주인이 되겠군요." "이번엔 암탉과 썩은 사과와 바꿨어." "그럼 더 칭찬을 해야 겠네요. 글쎄, 옆집에 파 한 뿌리를 꾸러 갔더니 썩은 사과 한 개도 없대요. 이젠 그 집에 내가 썩은 사과를 꾸어 줄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와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심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4)
기독교는 '나'라는 개념을 절제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함께' 또는 '우리'라는 개념을 더욱 좋아합니다. '나'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살게 되면 사회는 삭막하게 되어갑니다. 그러나 '우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살게 되면 사회는 풍요롭게 되어갑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남'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래 창조했던 에덴의 사회에 '남'이란 개념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좋지 않은 의미의 '남'이란 개념이 단어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이란 개념을 되도록 없애고 '우리'란 개념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가장 소중한 실천적 삶의 원리 중의 하나는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나'와 '남'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범사에 감사하는 인격이 발달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나'와 '남'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조그마한 문제가 자기에게 닥쳐올 때 그것을 감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문제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눈만 뜨면 눈에서 항상 똑똑 떨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문제가 해결됐다 하면 다른 문제가 또 다가오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다가왔을 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반응하는 자세가 크게 다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먼저 갈보리 산상에서 이루어진 큰 일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갈보리 산상에서 어떠한 일이 이루어졌습니까? 놀라운 승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 사탄의 정수리를 짓밟고 승리하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갈보리 산상에서 위대한 약속이 생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는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위대한 약속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갈보리 산상에서는 인간들에게 놀라운 소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갈보리 산상에서 이루어진 소망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가다가 없어지는 소망도 아니었습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이루어진 소망은 담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이 소망에 우리의 인생을 걸고 있으니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문제가 닥쳤을 때 먼저 갈보리 산상에서 이루어진 이와 같은 큰 일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 이 문제! 갈보리 언덕에서 이미 해결됐다!"고 담대히 선포하는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어떠한 문제라도 갈보리 언덕에 가면 다 해결 받는다는 사실을 믿기에 그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영혼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반사적으로 "아이고 어떡하나! 큰일났네"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오직 큰 일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일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을 가지고 '큰일났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큰일났다'고 입에서 선포하면 그것으로 끝납니까? 바로 악한 사탄이 '염려'까지 가져다주어 마음의 평안을 해치고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큰일났네'라고 입으로 선포해버린 다음에 감사하려고 하면 되지가 않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말, 믿음의 대응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문제를 만났어도 '별일 아니네'라고 믿음의 대응을 하면 진짜로 별일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초동대응을 잘 하기만 한다면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더 큰 감사의 제목을 주실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촛불도 전등불도 달빛도 햇볕도 필요가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사와 축복은 정비례하며, 감사는 놀라운 역사를 나타냅니다.

2. 감사생활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모든 서신에서 먼저 감사로 시작한 것이 상례였습니다.(롬1:8, 고전1:4, 엡1:15, 빌1:3, 골1:3, 살후1:3, 딤후1:3)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없는 삶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환경과 조건 따라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영원불변하시는 '구원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는 인생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하면서,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성부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바른 교리 위에 바른 신앙생활을 함으로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불신자들은 성도들의 감사하는 삶, 기뻐하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전도가 됩니다. 평소에 감사하는 삶을 살면서 생활의 전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평생 2000여개의 발명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참 대단한 연구실적입니다. 그래서 에디슨은 지금까지 발명왕으로 통합니다. 그런데 에디슨은 천재가 아니고 어렸을 때는 저능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젊어서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환경으로 보면 최악의 악조건입니다. 그런데 그는 말년에 생을 회고하면서 이 점을 늘 하늘에 감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실에 들어가면 잡음이 들리지 않아 연구에 몰두하게 돼 연구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귀를 들리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할 원인을 찾는 것이, 우리의 삶을 꽃피게 해주고 기름지게 하며 풍성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너무 많은 것이 주어져서 감사하지 못 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3. 감사생활은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화란의 선교사 '코리 텐 붐'과 그의 언니 '베스티가' 리벤스부룩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던 날 코리는 수용소 막사의 더러움과 벼룩이 뛰어 다니는 침상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베스티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을 가지고 동생을 꾸짖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자비한 간수들도 막사 안에서 예배를 드려도 아무 상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를 의아해 하는 코리에게 한 동료가 '저 간수들은 막사가 너무 더럽고 벼룩까지 들끓기 때문에 벼룩이 옮을까 두려워서 막사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코리는 감격하여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때로 우리가 만나는 어려운 환경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그것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그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미국 청년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리를 절단한 후 얼마동안은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가 있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후에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한 마을로 선교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식인종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식인종들이 선교사를 보고 좋은 먹이가 왔다고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선교사는 자기의 고무다리를 빼 주었습니다. 한 식인종이 얼씨구 좋구나 하고 고무 다리를 입으로 꽉 물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빨이 우드득 소리와 함께 나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식인종들은 신이 왔다고 난리법석을 치며 그 선교사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이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고 결국 선교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원망의 표적이었던 의족이 나중에는 목숨을 살리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에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감사를 보증하시고 반드시 합력하여 선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그러한 삶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장 승리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령충만 받는 것과 동시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엡5:19-20)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충만한 삶은 감사생활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내 입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시키는 일입니다. 성도는 조그마한 일에도 먼저 감사하는 말을 함으로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글입니다. "만일 다리를 한 쪽만 잘렸으면 하나님께 두 다리가 다 잘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 만일 두 다리가 잘렸으면 하나님께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 만일 목이 부러져 버렸으면 그 뒤는 걱정할 일이 없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삽시다.

4. 진정한 감사생활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가운데서 감사하는 삶입니다.
어느 미국 성도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가 만원이 되어 비좁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흑인 여자가 아이를 다섯을 데리고 버스를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옆으로 다가와서 자기를 자꾸 밀어냈습니다. 아이들은 떠들고 냄새는 나고 흑인 엄마의 고함소리가 옆에 있는 목사님을 너무도 괴롭혔습니다. 성도의 마음에 화도 나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폭발 직전에 있는데 갑자기 그의 마음 속에 하나의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이럴 때에도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한참 생각하다가 그는 이렇게 감사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런 여자가 내 마누라가 아니라서 감사합니다" 억지인 감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범사에 감사하려고 노력하는 신앙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과 역경가운데서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바로 고난가운데서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유라굴로의 광풍 속에서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되었고, 추위와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에 떨고있는 선원들에게 축사한 뒤 음식을 먹도록 권면했습니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도착한지 1년 만에 그 어려운 처지와 환경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또한 어려울 때 더욱더 감사할 수 있는 성도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감사는 반드시 훗날 축복으로 바뀔 것입니다.!
* 기도: 영원히 찬송 받으실 하나님!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자가 되지 말고, 어려운 중에 더욱 더 감사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세상근심이 있을 때, 기쁨이 넘칠 때, 아픔이 있을 때, 축하함이 있을 때, 절망할 일이 있을 때에 사람됨으로 하지 않게 하시며 늘 우리 하나님을 먼저 생각케 하시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묵상: 최근에 어려운 중에 하나님 앞에 가장 감사 드린 일이 무엇입니까?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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