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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의 책임 (신 6:5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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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책임  (신 6 ; 5 ~ 9 )

오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쉐마’ 라는 이름으로 매우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쉐마’ 라는 말은 들으라는 뜻으로 이 본문이 쉐마 이스라엘이라고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쉐마는 이스라엘 민족 신앙의 핵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핵심을 이스라엘 전체가 잘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 자녀들에게 까지 교육할 것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여러 면에서 유대 민족을 많이 닮았다고 말합니다.

오래 전 미국 LA 타임즈에 소수 민족이 미국 사회에 끼친 공과에 대해서 말하는 가운데 우리 한국 사람들을 논한 글이 있었는데 그 글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경제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돈을 번다고 합니다. 그것이 유대인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너 죽고 나 살자’ 식인데 한국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자’ 식이라서 참 감당하기 어려운 민족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은 교육열이 강해서 학군이 좋은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이사를 가고 좋은 집에 살다가도 학군이 나쁘면 미련 없이 이사를 간다고 평했습니다.

또한 종교열이 강해서 어디를 가든지 몇 명이 있든지 한국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민족이 바로 한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는 일이 없는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잘 싸우는데 자기들끼리 싸우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 크게 손해를 끼치는 민족이 아니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 니다.

우리가 이런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한국 사람들의 교육열은 유대인 못지않을 만큼 대단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교육열과 우리 민족의 교육열에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유대인들은 그들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우리가 읽었던 쉐마 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교육의 내용이 불분명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지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열심히 교육하고 있습니다.

단지 목적이 있다면 좋은 학교를 보내고 좋은 직장을 갖게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돈 잘

벌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유대인들은 가정을 기초로 교육을 합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학교가 있고 회당이 있습니다만 모든 교육을 가정에서부터 하는 것으로 철두철미하게 인식하고 또 그렇게 실천합니다.

그런데 요즘에 이르러서 한국에는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학교교육과 교회교육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학자금을 마련하고 과외공부를 시키거나 학원에 보내는 등의 학교를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학자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그 돈을 잘 아껴서 아이들 공부에 쏟아 부어서 우리나라 사회에 사교육비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들은 부모들이 가정에서 교육을 시키려고 하는 의식보다는 교육을 학교나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려는 경향이 생기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우리들이 가르쳐야 할 내용이 무엇이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모든 

백성과 자녀들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우리 모두가 배워야 될 내용과 가르칠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4절과 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쉐마 이스라엘 하면서 우리가 배울 것과 가르칠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이신 여호와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섬길 자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을 다른 말로하면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만을 신으로 섬기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생활을 가르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 땅에는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도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신을 섬겨오던 나라로 요즘에도 다른 것들은 다 폐했지만 아직도 조상을 신으로 섬기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물론 깨어있는 사람들은 그분들을 신으로 생각하지 않고 풍속으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제사 드리는 형식이나 방법을 보면 완전히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신에게 음식을 준비해서 드리고 조상들이 살아있어서 신이 되어 돌아온다고 생각해서인지 신위라고 써서 붙이기도 합니다.

각 나라마다 신이 있습니다. 또 이러한 구체적인 신이 아닐지라도 무형의 신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을 숭배하는 경향들이 있는 것을 보면 돈이 신이 되어 있고 가문과 학벌, 민족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에게 중요하게 여김을 받고 절대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는 존재들이나 대상들이 많이 있는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해주신 분은 오직 한분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 민족을 이뤄주셨다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이었고 오늘날 우리들도 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우리들이 배우고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는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인간과 돈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대상에 앞서서 정말로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사랑할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될 핵심이었고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핵심도 되고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이 무엇을 배우며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이들을 비싼 학비를 내고 학교에 보내는데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학교에서는 절대로 여호와가 하나님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는 것과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많이 가르치고 기독교의 폐해에 대해서 많이 가르칩니다.

도 무엇을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물론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라는 휴머니즘을 많이 강조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은 어디에서 가르쳐야 합니까?

이러한 것들을 가르쳐야 할 교육의 현장은 교회와 가정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를 떠나서는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서 특별히 이 내용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될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이 사명을 망각하고 이 세상의 교육에만 의존하고 있으니 그 자녀들이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며 어떤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렇게 우리가 가정에서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가르쳐야 할 내용을 말함과 동시에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6절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

우선 우리 자신이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먼저 우리 마음에 새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것을 믿지 않고 마음에 새기지 않고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의 부모들의 맹점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자녀들은 내가 가르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개 보여준 대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교육은 우리의 모범과 실천이 중요한 만큼 우리가 먼저 마음에 새겨야만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자녀 교육 특강을 하고 있었는데 강의가 끝난 후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목사님께 질문을 하고 자녀교육에 대한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뒤쪽에 있던 어머니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목사님과 이야기 하고 있던 사람의 말이 채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자녀가 참을성이 없고 예절이 없고 성급한데 이것을 고칠 수가 없는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자녀는 가르친 대로 하지 않고 보는 대로 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여러분들이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까?

여러분들이 먼저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참을 수 있는 인격을 갖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그렇게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 교육의 원리이고 그것이 자녀를 향한 부모의 책임입니다.

또한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서 부지런해야 합니다.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자녀 교육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부지런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기르는 것은 농사와 같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부지런하지 않으면 농사를 짓지 못합니다.

얼마나 할 일이 많습니까?

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씨 뿌릴 때에 씨를 뿌려야 하고 물을 줄때에 물을 주어야 하고 김맬 때에 김을 매어야 합니다.

가사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부지런함이 필요하고 돈을 버는 일에도 부지런함이 요구되는데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도 부지런함이 필요합니다.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우리 삶의 모든 시간을 자녀를 교육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집에 앉았을 때에 , 밥을 먹을 때든지 ,TV를 볼 때가 자녀를 교육할 때라는 것입니다.

길에 행할 때에, 여행을 하거나 외출을 할 때가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누웠을 때와 일어날 때에 아이들에게 교육할 것이 있으려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 교육을 위해서 쉴 틈이 없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아이들 셋을 기르면서 얼마나 바빴는지 모릅니다. 제 아내도 사모로서 얼마나 할 일이 많습니까?

그러나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은 더 많은 시간과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하고 같이 있을 때에 그런 것들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떼어 놓고 시간을 가질까를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집에 와도 늘 할 일이 많았습니다. 설교 준비도 해야 하고 밀린 교회일

도  해야 되는데 자녀들이 놀아달라고 하면 방문 걸고 못 들어오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 권사님이 된 어떤 교수님 부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저희들이 아이들 때문에 쩔쩔 매는 것을 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이들이 품에 있을 때에 아이들 키우는 것을 즐기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정말로 그 권사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은 굉장히 긴 것 같지만 그 아이들은 순식간에 자라납니다. 아이들이 셋이지만 저와 같이 있는 아이들은 없고 이미 장성해서 자기들의 길을 가는 것을 볼 때에 빨리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하는데 때를 맞추어야 하고  시기를 놓치면 농사를 다 망치고 맙니다.

저는 우리의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우리의 품에 있을 때에 아이들을 교육할 때입니다. 그 아이들이 금방 자라서 우리의 품을 떠날 때가  옵니다. 그 때에는 우리가 교육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기도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자녀들이 아직 집에 있고 어릴 때에 다시 오지 않는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을 알아서 아이들과 함께 앉았을 때에든지 ,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든지 , 일어날 때에든지 모든 시간이 교육의 기회인 것을 알아서 자녀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고 사랑하는 것을 그 삶의 목표로 삼으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8,9절에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며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 지니라 

모든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라는 뜻입니다. 손목에 매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행위를 다스리게 하라는 것이고 미간에 붙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생각을 지배하게 하라는 것이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말은 들고 나는 모든 활동이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유대민족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지켜서 손목에 말씀을 적어 매고 다니기도 하고 머리에 붙이기도 합니다. 유대인의 집에는 어김없이 쉐마 라고 적어놓은 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과 행위에 적용시키고 활동에 적용하면서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우리를 보면서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원리인 하나님 말씀이 우리 생활 전반에 미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학교나 선생님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저는 교회가 신앙생활을 잘 지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교회마저도 여러분의 자녀를 온전히 책임져서 떠맡는 곳이 아닙니다.

자녀 교육은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가정에 맡겼고 자녀 교육의 현장은 학교나 교회이기 이전에 바로 여러분의 가정입니다.

그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세워주신 교사는 바로 부모님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책임을 명심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들이 품을 떠나기 전에 ,때가 지나기 전에 , 자녀들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면 자녀들의 신앙과 인격이 형성되어서 우리가 섬겼던 하나님을 그들도 섬기고 신앙의 원리를 따라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부모들이 자녀 교육의 책임을 완수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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