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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성숙의 표지(Marks of Spiritual Maturity) / 히 5:11 -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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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장 11절 - 6장 12절
영적 성숙의 표지(Marks of Spiritual Maturity)

히브리서는 신앙의 퇴보(backsliding) 내지는 포기의 유혹을 강하게 받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졌습니다. 그 가운데 5장의 큰 맥락은,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비교할 수 없이 온전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한 증거가 예수님은 죄를 벗지 못한 아론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세우신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멜기세덱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하니 히브리서 기자의 마음에, 이 이야기는 해도 잘 모르겠고, 하면 괜히 더 헷갈리게 할 수가 있다고 생각이 되니,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들이 신앙생활한 지 얼마 안되는 초신자들이 아니라, 오래된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더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알아 듣지도 못하는 멜기세덱에 대하여 설명하는 대신에, 교회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에 대한 깨우침과 더불어 영적으로 성숙할 것을 촉구합니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그 가운데 핵심 멧세지는 <6:1,2>입니다. <6:1>의 "버리고"는 "잊어버린다"거나 "폐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거기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이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6:2>의 "완전한 데 나아갈찌니라"는 "성숙한 데 나아갈찌니라"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십시오. 이런 권면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신체적으로 자라듯이, 사람의 영혼도 거듭난 이후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영적으로 성장, 성숙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영적으로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세상에서 승리의 경험을 많이 누릴 것이며 혼동되어 요동치지 않고 똑바로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더욱 더 실재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태어나서 발육이 멈춘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신체 발육도 그러하거늘, 정신이 성숙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난리가 나겠습니까? 하물며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를 쓰면서 생각하니, 참 답답합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 믿겠다고 고백한 지가 언제인데, 그 사이에 세월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데 여전히 어린아이의 수준이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는 무관심합니다. 사실은요, 당신의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심령에서 예수님이 약속한 평안과 담대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환경 탓도 아니고, 다른 사람 때문도 아니고, 당신이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환경이나 다른 사람은 항상 그 세상이 그 세상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얼마나 실재적으로 잘 사느냐의 관건은 당신의 영적 성숙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멜기세덱에 대한 설명을 하다 말고, "당신들, 제발 영적으로 성숙해 가기를 힘쓰십시오" 권면합니다. 그 권면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서 저희가 두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와 또 하나는 영적으로 잘 성숙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하는가입니다. 영적 성숙의 지표와 영적 성숙의 방편 이 둘을 오늘 본문은 잘 가르쳐 줍니다.

사실 이 둘을 한번에 다 하려고 했는데, 양이 많을 것같아서 이번 주와 다음 주, 둘로 나누어서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은 영적 성숙의 지표(MARKS)가 무엇인지 보고 다음 주에는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해 갈 것인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는 영적 성숙의 지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 사실 이야기하기 앞서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12절>,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입니다.
여러분, 신앙에도 경륜이 중요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6절에서 지도자를 세울 때에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한 것처럼, 영적 성숙은 분명히 시간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도 경륜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영적 성숙은 시간만 많이 지났다고, 교회 오래 다녔다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만 많이 지났다고 자연스럽게 영적으로 성숙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교회 오래다녔다고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그러지요? 거꾸로 매달아놔도 국방군 시계는 돌아간다고.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시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군대 용어로 다르게 표현하면 영적 성숙은 짠밥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월 자체가 당신의 영적 성숙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단테의 신곡에 의하면 이렇게 권계합니다. "한걸음, 한걸음 간다고 중국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한걸음 한걸음 그 자체가 가치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세월을 보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입니다. 우리 교회 같으면, 한 과정, 한 과정 거쳐 갔다고 인도자가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공부, 신앙훈련 거치긴 다 거쳤는데, 심지어 신학교에 다니고 외국 유학을 다녀왔다 할지라도, 그 자체가 영적 성숙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마음과 자세로 과정을 거쳐왔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때가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깁니다. 하나님께서도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냥 멍 하니 지내지 마십시오. 그냥 일요일에 교회 왔다갔다 하다보면 영적으로 성숙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무엇이 영적으로 성숙한 것을 증거해 줍니까? 때가 오래 되었든지 오래 되지 않았든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다음의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1.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초위에 선 사람입니다<5:12; 6:1,2>.

(a Man of Firm Foundation on the Permanent Truth.)
첫째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초 위에 선 사람입니다<5:12;6:1,2>. 히브리서 기자가 본문에서 책망하며 초청하는 것은, 언제까지 초보수준에 머물러 있으려느냐,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입니다.
실력있는 학생들은 기초가 튼튼한 학생들입니다. 영적으로도 성숙한 사람은 기초가 견고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혼돈하지 마십시오.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권면하는 것이 "기초는 대충 건너 뛰자, 생략하자, 무시하자" 이런 권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되돌아보지 않아도 다시 흔들림이 없도록, 기초를 견고히 하고 성숙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성숙의 발판, 그리스도에 대한 기초적인 앎을 확고히 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뿌리부터 흔들리는 어리석음을 탈피하고,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1년 전에 우리 나라가 월드컵 축구 때문에 온통 난리였지요. 그 흥분과 감격의 주연은 단연 히딩크 감독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히딩크 감독이 처음 우리 나라 감독데 부임했을 당시에, 선수들이나 우리 나라의 감독들이나 축구 관계자들은 우리 나라 축구팀이 개인기와 전술과 같은 기술이 뒤져서 발전이 안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기초체력이 약한 것임을 지적하고 그리고 무엇에 제일 역점을 두었습니까? 기초 체력에 제일 역점을 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본, 기초 체력이 뒷받침되니까, 밀리지 않고 지치지 않고 그래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결국 승리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단단한 기초가 이만큼 중요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돈벌이도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는 사람, 참 꼴불견이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는 무시하고 고급스런 폼만 잡으려는 것, 그것 참 꼴불견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기초가 견고한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초가 견고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백미를 단연 산상수훈을 꼽습니다. 여러분 그 산상수훈의 결론적 멧세지가 무엇입니까? 바위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입니다. 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까?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홍수가 나면 다 떠내려 가 버리는, 그때마다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하는,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신앙과 인생은 어떻습니까? 신앙인으로서의 당신의 인생 기초는 견고합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본 가르침이 확실합니까? 다음의 질문들에 얼버무리지 않고 명확히 대답할 수 있으면 신앙인으로서 당신의 기초는 견고합니다.

당신은 복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은 복음이 왜 인생의 진리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무엇이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왜 사람은 바르게 열심히 살아야 합니까? 당신은 교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은 일요일에 왜 교회에 나와야 하는지 아십니까? 무엇이 진정한 예배인지 아십니까? 어떻게 헌금하는 것이 바른 헌금인지 아십니까?

기초를 명확히 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기초를 다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교회를 5년, 10년 다녀도 맨날 그 모양일 것입니다.
신앙의 터전, 기초와 관계하여 <고전3:10-11>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우리의 기초는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도, 목사도, 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터전입니다.

이단집단에 가면, 대다수가 교회를 다녀봤다는 사람들입니다. 자랑스럽게 나도 장로였고, 집사였고 목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이단에 혹합니까? 다른 이유 없습니다. 10년, 20년 교회 다닐 때 수박겉핥기로 다녔으니까 그렇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의 기본 진리를 명확히 알았다면, 신앙인으로서의 기초가 견고하였다면 그렇게 뿌리채 뽑혀서 날아가 버리는 일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도 행여 날아가지 않도록 기초를 견고히 하십시오.
반대로, 신앙의 능력은 기초가 확실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네비게이토나 유비에프 선교단체가 적지 않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을 미치고 힘이 있었던 이유는, 암송과 같은 확실한 기초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능력있는 삶을 위하여 신앙인으로서의 기초를 확고히 하십시오.


2.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13절>

(a Man of Familiarization to the righteous Word)
둘째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13절>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 세월이 오래 되었어도 여전히 젖병이나 물고 있어야 하는 유아기적 신자의 특징을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단단한 식물을 먹는 사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의의 말씀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의의 말씀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영어 NIV에 의하면, "의에 대한 가르침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어구의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하기에,해석에 개연성이 많아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1.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 (소유격에 주목한 것)
2. 도덕적 기준, 의의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 바른 신학을 모르는 사람
  (전후 문맥을 중요시한 것)
3. 기독교의 가르침(단단한 식물)을 모르는 사람
4.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시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

이처럼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개연성이 있으나 언어학적인 관점을 중요하게 보면, 이런 의미입니다.
초대 교회 교부 중의 한 사람인 폴리갑이 똑같은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여, 인내로써 거룩한 믿음을 지키며 순교하였다."그의 이 표현에 의하면 의의 말씀을 경험한다는 것은 시련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로서 도덕적 가치와 믿음의 순결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즉 핍박과 환난, 연단 속에서 믿음을 순결하게 지키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도덕적, 영적 거룩함을 지킨 경험을 말합니다.

예컨대, 우리 나라에서는 예수믿는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생활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는 칭찬받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터키나 중동 지방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테러의 위협에 직면해야 하고 가족 및 친구들이 손가락질하고 핍박하는 곳에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뇌물을 안주면 안통하는, 탈세를 안하면 바보취급받는, 외도가 좋은 취미생활처럼 여기는 환락의 분위기 등 모두가 죄를 밥먹듯이 하는 세상에서 도덕적 순결함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 수 있겠습니까?
좋은 환경에서, 좋은 여건에서 영적, 도덕적 순결을 지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은 어려운 여건, 거친 환경, 만만치 않은 반대 등 시련과 연단을 거쳐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의 성숙은 지식의 증가도 우선적으로 아니고 다른 사람이 없는 특별난 은사의 소유 유무가 아닙니다. 신앙의 성숙은 당신의 신앙심이 의의 말씀을 경험했느냐, 시험을 통과하여 연단된 것이냐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 격려의 말씀, 사랑의 이야기... 누구나 다 듣기 좋아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복음성가는 안믿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의의 말씀, 올바른 가르침이 주어지면,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돌립니다.

의의 말씀, "이것이 옳은 것이 아니냐?" 깨우쳐 줄 때에, 그것을 순종하기가 만만치 않은 그 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경험하였느냐 가 영적 성숙의 지표입니다.
이 의의 말씀을 경험함이 없이, 입만 살았거나 머리만 키워놓은 모습이 바른 성숙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영적 허풍 내지는 영적 비만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신앙이 연단을 거친 사람입니다. 환난과 핍박, 타협의 유혹 속에서도 도덕적, 영적 가치를 지키는 사람, 의의 말씀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영적 허풍 내지는 영적 비만을 좋은 것인양 사모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의의 말씀을 체험하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이 옳은 것 아니냐 깨우쳐 줄 때에, 쉽지 않지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세상의 가치관을, 당신의 이기적인 감정을 거슬러 올라 의의 말씀에 순종을 드리기를 힘쓰십시오. 그것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3. 지각을 잘 사용하여 선과 악을 잘 분별하는 사람입니다<14절>

(a Man of Fractionation between the Good and the Evil)
셋째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지각을 사용하여 선과 악을 잘 분별하는 사람입니다<14절>. 영적 성숙의 중요한 지표는 분별력입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손길이고 마귀의 유혹인지, 어느 길이 생명의 길이고 어느 길이 사망의 길인지 어느 것이 좋은 것이고 어느 것이 나쁜 것인지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 속에 선악과 이야기를 떠오르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것에 대하여는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그들이 눈이 밝아" 라고 기록되었듯이, 인간이 스스로 선악을 구분하는 눈이 떠진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기 중심의 선악의 기준이 생긴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선악의 기준을 하나님께서 지키심으로써 인간을 보호하시고자 하시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선한 약속을 어기고,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어떤 결과를 맞이했습니까? 혼돈과 파괴, 황폐와 싸움과 사망을 낳았습니다. 인간 세상에 보이는 모든 사망의 편린들, 싸움, 원망, 분노, 전쟁.. 이 모두가 인간이 자기 중심의 선악의 기준, 선악과를 따 먹은 죄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에서 숱하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여야의 정치하는 모습에서, 북한과 미국의 대립되는 모습에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하는 기준이 달라서 인간과 세상이 사망 아래 거하는 모습을 우리는 숱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 세상 가운데, 그 삶의 여정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인으로 받아 들임은 자기 중심의 선악의 기준을 버리고, 폐기하고, 이제는 다시 선악의 분별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여 되돌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말씀하신 큰 뜻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선이라 하시고 무엇을 악이라 하시는지 선악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기준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선악을 분별하는 가치관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내 욕심과 야망, 자기 중심성의 옛습관을 벗고 그리스도 중심의 선악의 분별력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이전에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는데, 예수님을 알고, 성경을 배우면서 "아, 내가 잘못 생각하였었구나!" 이 깨달음이 많은 사람이 성숙의 은혜를 많이 누립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영적 성숙은 나의 욕심에 따른 이기적인 선악의 분별을 벗고, 그리스도 중심의 올바른 분별, 선악의 올바른 분별을 얼마나 잘 하느냐입니다.
쉽게 구분하여 이야기하면, 영적으로 성숙하면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기 중심의 기준을 더 많이 벗은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선악의 분별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예) 처녀 총각일 때는, 어느 애기가 똥을 싸면, "뭔 애기 똥 냄새가 그렇게 지독하다냐?"합니다. 그러던 그 사람이 자기 아이를 낳아서 자기 아이가 똥을 싸면, "아유, 우리 애기, 똥도 이쁘게 싸네."이 모습인 자연인, 인간의 자연스런 모습이지요. 그러나 이 자연스런 자기 중심성을 극복해 가는 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여러분 혹시 당신은, 당신의 마음에 미움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훌륭한 일을 해도 평가절하하지는 않습니까?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그 사람의 말은 혹시 다 진리처럼 여기지는 않습니까? 이런 모습들이 미성숙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기 중심성을 벗고서 그리스도 중심의 선악의 분별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 하나는 "지각"이라는 단어입니다. 신약 성경에 딱 세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필로라는 유대인 학자에 의하면, 이성과 감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감각기관을 말합니다.
선악을 잘 분별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바른 분별력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지각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연단을 받아 라고 번역되었는데, 영어에는 "by constant use"라고 되어 있습니다.
계속적인 사용을 통하여, 분별력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선악의 분별력은, 하나님의 뜻은 신비적인 체험이나 직관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지각을 사용하여 분별력을 바르게 갖는 것이 영적 성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음성을 빙자하여, 말귀도 못 알아듣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 사람은 신령하거나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 내지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주술적 방법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분별되어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지각을 사용함으로 분별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욕망을 벗고, 자기 중심성을 벗고서 그리스도 중심의 분별력이 바로 세우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연습하십시오. 과연 예수님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하셨을까? 물으시며, 예수님을 뜻을 잘 분별하십시오.
성숙한 사람은 선악을 잘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저와 같은 386세대의 중학교 때에 교과서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 여러분도 기억나십니까? 난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고 든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고 된 사람은 마음이 바른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곧잘 혼돈하는 것이 성숙한 것과 능력이 많은 것을 동일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안타까움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성숙하기를 사모하기보다 능력이 많기를 더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많은 것은 은사가 많은 것이지 영적으로 성숙한 모습과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이 능력이 많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능력과 은사는 사람마다 다르게, 각각 나누어 주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적게, 어떤 사람은 많게 하나님의 마음대로 나누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기대하시는 뜻은 우리 각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난 사람이나 든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적 영웅이 아니라 영적 성숙을 사모하십시오.

영적 성숙에 대하여 바른 개념을 품으십시오. 기초가 확고한 사람, 의의 말씀을 경험한 사람, 지각을 사용함으로 선악을 잘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난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든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된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정직한 사람,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바른 소망을 가지십시오. 바른 방향을 가지십시오. 기초를 확고히 다지며, 의의 말씀을 경험하기를 추구하고, 올바른 분별력을 얻기를 소망하는, 바른 소망을 갖는 데서부터 영적 성숙의 여정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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