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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 안에서 / 왕하 2:8~14, 엡 2: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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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 안에서" 
본문 : 열왕기하 2:8~14 (에베소서 2:17~22 참조)

 
  어떤 그늘 아래서 사느냐 하는 문제는 인생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문제가 됩니다. 구름이 가득한 날에 하루를 사는 기분과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고 푸르고 맑은 하늘 아래서 하루를 사는 기분은 전혀 다릅니다. 올해는 다행스럽게도 황사 현상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유난히도 황사가 많이 몰려와서 온 하늘이 잿빛 구름이 덮인 것처럼 우울한 날들을 많이 보냈습니다. 눈병으로 고생한 사람들도 참 많았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떠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삶의 기분, 인생의 기분, 삶의 방향과 목적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탄의 그늘 아래서 사느냐 하나님의 그늘 아래서 사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 마음속에 악령이 역사하느냐, 성령이 역사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악한 영이 역사하면 거짓과 탐욕과 미움과 갈등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달려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는 마음은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자리잡고 소망과 미래가 있는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건강한 생존과 본질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잘 살 수 있습니다. 아니 물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식물은 수분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살아가는 공간은 신선한 공기입니다. 지난 번 대구 지하철 참사 때에 많은 사람들이 유독 가스에 질식이 되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또 지난 6월 6일에 북악 터널을 지나 홍지문 터널에서 자동차가 충돌해서 화재가 났습니다. 터널에서 화재가 나니까 연기가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다행이 사망한 사람은 없었지만 뉴스에서 보니까 터널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코가 시꺼멓게 되어서 입을 막고 겨우 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터널에서 나오자 마자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물 속에서가 아니라 신선한 공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육체가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면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 안에 사는 것이 영혼의 환경이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 안에 있을 때만 강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성령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이 없이, 성령의 은혜 안에 살지 않고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영 안에서 살아가느냐 성령 안에서 살아가느냐의 종말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천양지차의 삶의 차이를 만들게 됩니다. 오늘날 사탄의 영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을 납치합니다. 사람들을 죽이고 돈을 선택합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탐욕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함께 공유하며,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 안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혼자만 잘 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래서 남을 해치면서 자신만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사탄의 영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꾸만 분리되고 고립되고 소외되고, 속이고, 탐욕을 내게 하고, 결국은 멸망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들을 그렇게 인도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영입니다. 성령 안에 살면 우리는 걱정 근심을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그냥 맑은 물에 물고기가 마냥 즐겁게 노닐 듯이, 우리는 성령 안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심령이 평안하니까 행복합니다. 마음에 의지함과 신뢰가 가득하니까 즐겁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연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수목원에 가면 좋은 공기,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림욕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심령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시면 우리는 성령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은 평안과 행복을 자동적으로 깊이 체험하게 되는 법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활짝 여시고 우리 주님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바로 그 때에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깊이 들어오실 것입니다.

  엡4:3 말씀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마음과 생각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분쟁이 아니라 하나된 마음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갈등이 아니라 일치된 마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하나된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탄도 자기들 안에서는 하나입니다. 도둑이나 강도도 자기들 안에서는 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조직 폭력배들은 굉장히 하나가 잘 되지요. 말 한 마디에 죽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악령도 자기들의 세계 안에서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크고 놀라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정말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생활을 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함께 공유하며 서로 나누고 욕심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하나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광야교회도 성령 안에서 모든 교우들이 하나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령 안에서 믿음도 하나되고, 성령 안에서 사랑도 하나되고, 성령 안에서 봉사와 섬김도 하나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은 또한 능력이 있는 삶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어느 선생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음악을 가르치는 중학교 선생님입니다. 예전에는 학교에 갔다오면 매일 TV만 보고 잠만 자는 것이 자기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 때에 감동과 은혜를 받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기도 이렇게 살지 않고, 무엇인가 선교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노래하는 재능으로 때때로 선교사님들을 따라다니며 찬양으로 선교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얼마나 열심히 살게 되었는지 모른답니다. 열심히 외국어도 배우고, 각종 자격증도 따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힘입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엘리야는 성령의 인도 속에서 많은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제자였던 엘리사는 많은 제자들 가운데서 수제자 노릇을 한 듯합니다. 엘리야가 자기 소임을 다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제자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가 많은 능력과 기적을 베푸는 장면들을 보아왔습니다. 그것이 참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싶어했습니다. 엘리야의 기적과 능력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엘리사는 바로 그런 성령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스승이 하던 능력을 자신도 실천해보고 싶은 것은 제자의 당연한 자세인지 모르겠습니다.

  스승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 자신도 성령의 은사를 받고야 말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하였습니다. 스승 엘리야가 승천하는 순간까지 따라다니면서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의 큰 은사를 받게 됩니다. 그런 연후에 엘리사는 스승보다 훨씬 많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변화와 역사를 일으키는 삶이 됩니다. 우리 안에 새로운 변화와 의미를 원하십니까? 성령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에 민감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능력을 오늘도 깊이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지식욕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알고 습득하고 유능한 인재가 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지식과 기술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인간의 탐욕의 도구가 되고, 의심과 갈등의 원인을 만들기만 할 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니고데모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상당한 학식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성령에 대하여 전혀 알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알지 못했기에 니고데모의 학식과 신앙과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성령에 대하여 배우고 알고 받아들여야만 진정한 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능력있는 삶을 원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며 온전하고 보람된 인생을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뿐이고 실재적인 삶은 늘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마음에 신선한 아침 이슬같은 생동감을 회복해야합니다. 오순절 성령의 감동을 받은 초대교인들 같이 되어야 합니다. 스가랴 4:6 말씀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능력있는 삶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존귀한 삶이 있습니다.

  성령은 또한 생명의 영이라고 합니다. 성령 안에 있으면 생기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즘은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화분에 자라는 꽃들이 물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물이 없으면 시들게 되고 죽게 됩니다. 수돗물은 시들고 있는 식물들을 생기있게 만드는 최고의 자원입니다. 성령의 생기가 사람들에게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시들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기를 잃어버린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있던 마른 뼈들이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역사할 때에 다시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요즘 더위와 함께 여러분들은 생기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 여러 가지 걱정거리로 삶의 생기를 잃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 경제의 어려움으로 영혼의 생기를 잃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 안에서 새로운 생기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그가 성령 안에서 살지 못할 때는 다시 옛날 직업인 어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기를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을 때 과거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베드로가 다시 능력있는 사람으로 거듭난 것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사람, 성령 안에서 거하는 사람이 될 때 가능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시원한 바람은 산 위에서 불어옵니다. 무더운 바람은 아스팔트 위에서 불어옵니다. 에어콘 환풍기가 부는 곳에도 무더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은 하늘로부터 불어옵니다. 성령의 바람은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삶이 생기와 능력으로 건설적인 삶, 의미있는 삶, 창조적인 삶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단비를 맞지 못해서 고갈되고 메마른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분이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의 성령 안에 깊이 잠기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성령의 단비를 흠뻑 맞으면, 우리 마음에 활기가 살아납니다. 복음에 대한 용기도 살아납니다. 인간 관계의 어려움도 극복될 수 있습니다. 사업의 고민도 감사로 바뀔 수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도 은혜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감사와 기쁨과 은혜와 감격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정말 행복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괴롭히는 어둠의 영, 사탄의 영이 말끔히 사라지고 성령 안에만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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