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싸움과 기도 - 약 4:1~4

  • 잡초 잡초
  • 332
  • 0

첨부 1



제목 : 싸움과 기도
본문 : 야고보서 4:1~4

지금으로부터 53년전 1950년 6월 25일 만물이 다 고이 잠들어 있던 주일 새벽
북한 공산 집단은 38°선 전역에서 전쟁(戰爭)을 도발(挑發), 남침을 감행(敢行)하였습니다.

소련제 전투기들과 소련제 탱크들의 지원을 받으며
북한 인민군들은 남으로 남으로 공격하였습니다.
하루만에 의정부가 함락되고 수도 서울은 3일만에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UN 연합군의 도움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등으로 인하여
전세(戰勢)가 회복되어 북한 공산집단을 다시 격퇴하게는 되었지만
전쟁의 결과는 참으로 처절했습니다.
국군, 연합군, 인민군, 중공군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실종되었습니다.
수많은 가옥 학교 교회 공장들이 불타고 온 나라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왜 이런 비참한 싸움판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wars)이 어디로, 다툼(fightings)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싸우고 다투는 도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사람들을 이렇게 싸우게 하는 주 원인은... 다!!
무엇을 얻고자 하는 정욕과 욕심인데... 바로 여기에서부터 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정욕과 욕심으로 인하여 싸움을 해도
능히 얻지도 못하고 취하지도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으며
또 설령 그렇게 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취한다 해도
그것이 정말로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렇습니다.
한국의 6.25 전쟁을 보아도 그렇고
과거의 제국들인 메소포타미아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이들의 수많은 싸움과 전쟁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싸움을 통하여 얻은 것 같았고... 취한 것 같았으며... 뺏은 것 같았지만...
결국 그것은 그들의 것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왜 그것들은 싸움을 통해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이 되지 못한 것입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모든 것은 위에서 은혜로 주셔야 진정 자기 것이 되는 법인데
위에서는 주시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정욕과 욕심을 부려 싸움을 통해 얻었기에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바로 이 질문이 오늘 말씀의 핵심적 질문이 되겠습니다만
인간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렇게... 싸우고 다퉈서 얻거나 취해서는 안되고
기도를 통해서... 위에서는 은혜로 주시고 아래서는 기도로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직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3절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무엇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으려고 기도는 했지만 받지 못했다면
기도가 잘못되었을 때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욕으로 잘못 구하면 응답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는데
오늘도 그 내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 것은 옳고 좋은 일이나
그 기도가 바른 기도가 되어야 하며 특히 정욕적인 기도, 이것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저는 설교 준비를 하다가 1절과 3절에서 두 번씩이나 정욕이란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싸움을 하든 기도를 하든 가장 큰 문제는 "정욕"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읽어봅니다. 1절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또 3절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사실 이 정욕이란 단어는 좋지 못한 단어이며 좋지 못한 개념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이 단어가 쓰인 내용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4)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디도서 2:12)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베드로전서 2:11)

무슨 말씀입니까?
인간의 정욕이란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고
만일 버리지 못한다면 적어도 제어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정욕을 버리지도 못하고 제어하지도 못한다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가?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게 되며... 기도를 해도 정욕으로 기도하게 되어...
열심히 기도해도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4절입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성도는 하나님과 벗이 되어 살아야지 세상과 벗되어 살아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과 벗이라 하면서 자기가 얻고자 하는 바를 기도 하지만
실제적 삶은 세상이 더 좋아 하나님과 벗하여 사는 것 보다 세상과 벗하여 살기에
이러한 사람은 마치 간음하는 여인과 같고 이중적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이 부분에 대하여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성도가 기도한다고 그의 기도가 전부다 응답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도가 기도를 했으면 기도 후 삶의 현실에서는 하나님과 벗하여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간절하게 해 놓고 살기는 세상과 벗하여 산다면 그의 기도는 응답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그때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너는 그동안 기도를 통해서 하도 거짓말을 많이 해서... 들어주고 싶지 않다."

무슨 말씀입니까? 기도를 정욕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무엇을 얻으려면 싸움과 다툼을 통해서 얻으려 하지말고 기도를 통해서 얻어야 하며!
그리고 기도를 한 다음에는 세상과 벗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과 벗하여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기도하며 하나님과 벗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더욱 큰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겸손하라!!" 본문 5-6절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교만하게 살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7가지 큰 죄(the seven deadly sins)가 있는데
그 중 첫 번째 죄가 무엇인가 하면 "교만"(pride)이라는 죄입니다.
(참고http://www.rushman.org/seven/).

물론 "교만"이라는 죄 외에도 여러 가지 죄들...
탐심(avarice/greed) 시기(envy) 분노(anger) 색욕(lust) 탐식(gluttony) 게으름(sloth)
이러한 죄들이 있지만... 가장 큰 죄, 가장 우선적인 죄는... 교만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사실 "교만"의 반대되는 개념인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자산(資産)입니다.
한번 보실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언 18:12)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언 22:4)

특히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무슨 말씀입니까?

겸손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며... 겸손해야 받은 은혜도 은혜 되는 법이지
겸손하지 못하면 모처럼 받은 은혜도 다 쏟아버리는 법이며
겸손해야 받은 은혜를 잘 보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겸손을 위해 이렇게 기도해야만 하겠습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정말로 겸손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 해도 겸손!!... 말을 해도 겸손!!... 일을 해도 겸손!!... 오직 겸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은 잘 해 놓고... 입으로 행동으로 그 잘한 일들을 망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들여다 볼 줄 알고 궤도 수정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여기에 대하여 본문은 8가지 지침(指針)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 다 내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도 응답도 있고 은혜도 있는 법이지 하나님 앞에 순복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기도 응답이 있을 수 있으며 은혜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둘째는 7절에서 말씀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아무리 겸손하고 온유해도 마귀 앞에서 마귀에게 온유하고 겸손해서는 안되고
마귀는 대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란 하나님과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당연한 말씀입니다 마는 항상 당연한 것이 잘 안될 때가 많은데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만 하겠습니다.

넷째는 8절 말씀입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성경에는 이것을 결례(潔禮 ceremonial washing, 요 2:6)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는
늘 손 씻는 자세로 살아야 하고 또 손 씻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편 24편 3-4절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오직 손 씻은 자만이... 손이 깨끗한 자만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다는 말
가슴 깊이 새겨둘 말씀입니다.

다섯째 8절 말씀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어떻게 해서 두 마음입니까? 하나님과도 벗하고 세상과도 벗하는 마음이 두 마음이라는
것으로서... 그렇게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손 씻듯... 마음도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모습은 예배와 기도 봉사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과 벗하고 사는 모습이지만
한 주간 살아가는 모습은 교회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세상과 벗하고 사는 모습이라면
바로 이것이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의 모습인데... 그런 마음을 성결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9절입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느끼는 대로 회개에 대한 말씀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서 손을 씻어 깨끗이 하고 마음을 씻어 성결케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진정한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죄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의 슬픔, 애통, 눈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곱째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높이시리라" 

다시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면 항상 자신을 낮추면서 사역을 감당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디모데전서 1:13)

우리는 이 사도 바울의 겸손한 자세를 배워야만 할 것입니다.
일도 잘하고... 말도 겸손하게 하고... 그래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 칭찬 받을 것입니다.

마지막 여덟째 11-12절입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믿는 형제 자매간에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한 권속이기 때문입니다. 한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구약 레위기 19:16입니다.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신약 로마서 14:10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나서 사도 야고보는 아주 구체적인 한 예(例)를 듭니다.
그 예가 13-17절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읽어보겠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얼핏 보기에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우선 삶의 계획성이 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때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장소를 볼 줄 아는 눈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행선지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
과정을 내다보는 혜안(慧眼)도 있습니다.

그리고 "장사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 자기가 할 일, 일의 내용도 분명합니다.
이걸 할까 저걸할까... 망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利)를 보리라"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 일의 목표도 분명합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목표는 오직 이윤(利潤)입니다.

이 사람은 나쁜 것을 구상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괴롭히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의 생을 보람차고.. 행복하게 하려고 치밀하게 계획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가 나쁜 짓 해서 돈 벌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열심히 장사해서 돈 좀 벌겠다고 한 것이었는데
성경은 이 사람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 것입니까?
4가지인데, 이 사람이 열심히 살려는 것은 좋으나 4가지를 간과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 생명입니다.
생명의 주관자가 누구냐를 이 사람은 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안개 같은 존재이기에... 열심히 살고 미래를 계획하며 사는 것도 좋지만
인간의 생명이 무엇이며 주관자는 누구인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자이다!!
이것이 분명하면 살다가 장사가 잘 안된다 할지라도 혹 주님이 부르신다할지라도 
하던 일을 놓을 수 있으며... 평안하게 주님께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의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항상 부딪치는 것은 두 가지 뜻입니다. 내뜨과 주의 뜻... 그런데...
내 뜻과 주의 뜻이 같을 때는 갈등도 없고 문제도 없지만 이것이 상충될 때는 고민입니다.
그러나 답은 간단합니다. 내 뜻 버리고 주의 뜻 따르면 되는데
이 사람의 계획에는 주의 뜻이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랑입니다.
이것도 두가지입니다. 나를 자랑하며 사느냐 주님을 자랑하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이 사람의 자랑은 자기 자랑 뿐이니 허탄한 자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계획은 해야 하지만 이 계획이란 자랑할 것이 못되고
자랑이란 계획과 섭리를 주도하시는 오직 주님만 자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선행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게 열심히 계획하고 열심히 돈벌어 어디다 쓸 것인가?
이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쓰며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쓰며 살 것인가?
그런데 이 사람의 계획을 보면 바로 이 부분도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이것 만이 목표입니다.
참 똑똑한 사람이고 괜찮은 사람인데 이 4가지가 부족하여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다 아시는 유행가 중에 이주호 작사 작곡 「사랑으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리라

무슨 말입니까?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는... 그런 삶!!
그런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삶은... 싸움이나 다툼으로 얻어지고 취해지는 삶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기도를 통해 위로부터 주시는 것을 받아 누리는 사람은... 생명의 주관자가 누군지도 알고
자기 뜻 대로 물질 쓰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물질 쓸 줄도 알며
허탄한 자랑은 하지 않고 오직 생명의 주관자만 자랑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주신 물질 가지고 선을 행하며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말씀이 주는 교훈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싸움이 아니라 기도!! 기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