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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기도와 주님의 응답 / 막 1: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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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1:40-45
제목 : 우리의 기도와 주님의 응답 

오늘은 『우리의 기도와 주님의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40절을 보겠습니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본문은 문둥병으로 고생하던 자가 예수님께 와서 고침 받은 기사입니다. 
  예전에 문둥병은 불치병이었습니다.  이 병이 발병하면 처음에는 피부에 반점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다가 썩어 들어가면서 고름이 흐릅니다.  눈썹도 빠지고 눈동자가 노려보는 것처럼 됩니다.  성대도 변합니다.  거친 목소리가 나게 됩니다.  신경도 마비되고 호흡도 가빠집니다.  나중엔 신체의 부분, 부분이 떨어져 나갑니다.  손가락, 발가락의 마디, 마디가 떨어져 나가고 코도 문드러집니다.  얼굴모습이 흉하게 이그러져 가게 됩니다.  늘 눈에는 눈물이 흐릅니다.  마지막에는 균이 뇌에 침입하여 정신적인 쇠퇴를 가져옵니다.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결국 숨을 거둡니다.  이 병에 걸리면 20~30년을 고생하다가 죽습니다.  그래서 이 병에 걸리면 죽은 자 같이 취급했습니다.  중세기에는 장례식 예문을 낭독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쫓겨나고 사회에서도 격리됩니다.  일반 사람들과 같이 교제할 수 없게 됩니다.  옛날에는 법으로 규정하여 문둥병자들이 길을 갈 때 ‘나는 부정하다’라고 고함을 치며 다니게 했습니다. 
문둥병이란 말은 상당히 천시하는 말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얼굴모습이 흉하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문둥병이라는 말을 듣기 매우 싫어합니다.  우리는 나병이라 하던지 한센씨병이라고 해야 합니다.  한센씨가 나병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유전병인줄 알았습니다.  한센씨가 이 병의 병균을 발견했기에 한센씨 병이라고도 합니다.

  현대는 의술이 발전하여 나병을 100% 완치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성환자가 치료되면 음성환자가 되는데 병을 앓았던 환부가 보기 흉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사귀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고독합니다.  어떤 철학자는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고독하면 견디기가 참 힘듭니다.  나병은 전염병입니다.  나병균이 상처난 피부에 닿으면 옮겨집니다.
  예전의 나병은 고치기 힘든 난치병이었고 그 병에 들면 평생 고통을 받으며 그 병을 앓다가 죽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혼내기 위한 채찍으로 이 병을 사용하시기도 하셨습니다.
  ①모세의 누나 미리암은 동생 모세를 비방하다가 이 병에 걸렸습니다.
  ②엘리사 선지자의 종 게하시는 탐욕을 부리다가 이 병에 걸렸습니다.
  ③웃시야 왕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제사장에게서 가로채어 행하다가 이병에 걸려 성전에서 쫓겨났고 왕위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이렇듯 예전에는 이 병에 걸리면 인생의 끝과 마찬가지입니다.  불행한 최후를 마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와 같은 비참한 처지에 있었던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 병을 고침 받은 기록이 나옵니다.  그의 평생 소원이 성취된 것입니다.  최고의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먼저 그가 고침 받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40절입니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첫째, 그 환자는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신 이야기, 천국복음을 전파하심도 들었을 것입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심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앓는 자를 고치셨습니다.  각색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고통에 걸린 자의 고통도 제해 주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의 귀신도 물리쳤습니다.  간질환자도 고쳤습니다.  중풍병자도 고쳤습니다.  (마 4:23-24) 
  나병환자가 이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들을 고친 예수님은 내 병도 고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신세한탄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원망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나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문제가 있을 때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경험으로, 지식으로, 돈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너무 늦게 주님을 찾기도 합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찾습니다.  회복불능의 상태에서 찾습니다.  만사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때를 놓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했을 때 모세는 엄하게 명했습니다.(신 6:11-12)  “너희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었을 때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했을 때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물을 마실 때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여 배불리 먹을 때 너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주신 복인 것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복의 근원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다가 큰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늦기 전에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늦기 전에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복을 받았을 때 더 봉사해야 합니다.  더 충성해야 합니다.  더 헌신해야 하고 더 전도해야 합니다.  복 받고 평안할 때 더 기도해야 합니다. 
  몇 년 전 기도원 부흥 집회 때에 어떤 여자 집사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저를 만나 인사를 하는데 저는 잘 알아볼 수 없어서 머뭇거리자 자기 소개를 하였습니다.  여러 해 전에 과천에 이사와서 신앙생활 할 때 금요철야 때 우리 교회에 와서 기도하곤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과천에 살 때는 생활이 매우 어려웠답니다.  남편이 집안을 잘 돌보지도 않고 부정한 짓을 하므로 합의이혼을 하고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7년을 혼자 살았었는데 남편과 다시 결합을 하고 다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답니다.  그 날 대학교 다니는 딸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어려울 때 그렇게 매달려 기도했더니 회복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기도를 쉬면 안될 것 같아 일주일에 한번씩 이렇게 기도원에 와서 부르짖고 갑니다.  목사님을 위한 기도도 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른 신앙과 기도의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울 때는 부르짖어 기도하고 해결되면 기도를 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항상 주님께 나오는 것을 늦추면 안됩니다.  이 나병환자가 소원성취한 것은 주님께 나온 데 있습니다. 

  둘째, 주님께 나온 그는 예수님께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였습니다.  꿇어 엎드렸다는 말은 경배했다는 말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존경받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 시골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자들의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 환자는 주님을 알았습니다.  소문을 믿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치료했으면 내 병도 치료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나왔을 때 꿇어 엎드린 것입니다.  겸손한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드려 경배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간절한 소원의 표시도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병으로 죽을 수 없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더 이상 천대와 멸시를 받을 수 없다고 각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한 심정으로 주님 앞에 꿇어 엎드린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 경배한 것입니다. 
  주님을 경배하는 자는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뜻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의 노력을 보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받으시는 것입니다.  경배는 오늘의 예배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서 예배해야 합니다.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찬송도 힘껏 불러야 합니다.  지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참회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준비된 헌금을 정성을 다해 드려아 합니다.  그래야 주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주십니다.  이 복이 있기를 빕니다. 

  셋째, 그의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40절 하반절입니다.  “■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주님이 원하시면 나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적은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어떤 분인줄 알아야 합니다.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입술로 확실하고 분명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고 했습니다.  ‘주’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내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천지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주인님! 당신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저의 원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원하시는대로 될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만병의 의원 되시는 주님이 원하시면 나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 위에 주님은 응답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응답의 방법입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그 환자는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의 간절한 태도가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기도는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입니다.  인간의 뜻은 탐욕과 정욕에 취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셨습니다.  본문 41절입니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고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환자에게 손을 대신 것은 주님의 뜨거운 사랑의 표시입니다.  율법은 문둥병자와 접촉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율법을 넘어서 환자와 접촉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초월하신 분이십니다.  문둥병은 더러운 병입니다.  고름이 흐릅니다.  살이 썩어 냄새가 납니다.  그러므로 환자 자신도 사람에게 가까이 가기를 싫어하지만 다른 사람은 더구나 환자 옆에 가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몸에 손을 대었습니다.  지극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은 기적을 낳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구원합니다.  사랑은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만 인간의 죄를 없이해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피 흘렸습니다.  살이 찢겼습니다. 

  둘째, 말씀으로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상상 할 수 없는 능력과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시고 무소부지(無所不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만드신 천지는 질서가 정연합니다.  아름답고 신기합니다.  성자 하나님 되신 예수님도 이 권능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도 명령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원하시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가 원하실 때 자연과 바람도 잠잠해졌습니다.  그가 원하실 때 죽은 자도 살아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원하시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응답의 큰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서 건강진단을 받으라 했습니다.
  42절 말씀입니다.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절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44절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이 말씀은 두 가지 내용입니다.  하나는 병 고친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의 이적이 핍박의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들에게 먼저 말하기 보다 율법에 정한 예물을 가져 제사장게게 건강진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정한 예물은 산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입니다.(레 14:4)  8일 후에 다시 흠 없는 어린 수양 둘과 암양하나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레 14:8)  이것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건강진단은 제사장이 합니다.  이것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국가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법도 잘 지켜야 합니다.  사회의 법도 잘 지켜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나병은 난치병입니다.  고치기 힘든 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오면 됩니다.  주님은 해결해 주십니다.  나병은 영적으로 보았을 때 죄에 비교되고 있습니다.  죄는 영적인 문둥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핑계합니다.  책임회피합니다.  남의 탓합니다.  그러다 보니 죄가 더 깊어집니다.  심령이 무디어집니다.  화인 맞은 양심이 됩니다.  무딘 양심이기에 죄가 계속되어집니다.  양심이 썩어져갑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무딘 양심 그대로입니까?  우리는 성찬에 참여합니다.  떡은 주님의 몸입니다.  잔은 주님의 피입니다.  주님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주님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주님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안합니다.  주님 채찍에 맞았기에 우리는 건강합니다.  이를 확신하고 떡을 들고 잔을 드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피로 깨끗이 씻음 받은 몸과 마음으로 이 성전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성결을 체험하시고 기쁨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와 복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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