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전건축]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 학 1:4~11

  • 잡초 잡초
  • 467
  • 0

첨부 1


 

제목 :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본문 : 학개 1:4~11(구1310)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성전을 짓기 위해서 온 성도들이 기도의 시간을 쌓았고, 많은 관심을 갖고서 지금까지 준비해 왔다. 드디어 우리는 7월 6일 맥추감사주일에 성전 기공예배를 드림으로서 첫 삽을 뜨고 아름다운 성전 건축이 시작된다. 왜 우리가 성전을 지어야 하는가? 성전을 지으면 어떤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는가? 분명히 깨닫고 성경에 근거하여 아름 다운 성전이 지어지기를 바란다.


첫째로, 성전건축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한다.

본문 학개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지 70년 만에 돌아와서 기록된 말씀이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이미 무너져서 성전터가 황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개 선지자는 성전재건을 부르짖었다.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표현이었다.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너희들은 개인적으로 사치스러운 집에 살면서 성전은 황무해 졌는데 과연 이러한 모습이 바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도 성전을 짓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더욱 확실한 관계로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수술을 한 환자가 점점 좋아지는 것을 회복이라고 한다. 점점 않 좋아지는 것을 악화라고 한다. 회복되면 살지만 악회되면 죽는다. 우리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는 산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산에 나무가 있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산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다. 성전을 짓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표현이다. 성전 짓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성전 짓는 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올라가고, 성전 짓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이 있으니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분명히 우리의 믿음이 회복되고, 더욱 올라가고, 더욱 굳세게 되는 복이 우리에게 임할 줄로 믿는다.

축구 잘하는 나라 브라질의 국기는 녹색 바탕으로 되어 있다. 그 녹색은 바로 아마존을 상징한다고 한다.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운다. 아마존 숲을 통해서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먼 곳인지 모른다. 미국까지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서 브라질 상파울로까지 12시간을 타고, 상파울로에서 아마존의 도시 마나우스라는 곳 까지 3시간 반을 비행기 타고, 그곳에서 다시 3시간을 배를 타고 가면 아마존 정글에 도착하게 된다. 중간에 기다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서울에서 약 48시간, 이틀 정도 걸려야 갈 수 있는 먼 곳이다.
이번 기회에 일부러 나는 아마존 정글에 들어가 보았다. 깊은 자연 속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다. 깊은 정글 속에 들어갔는데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정글 속에서 몇일을 머무는 동안 나는 분명히 느낀 것이 있었다. 자연 앞에 섰을 때에 내가 좋은 옷을 입고 갔다고 그것을 알아 주지 않는다. 좋은 신을 신었다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좋은 차를 타고 갔다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좋은 반지를 끼고 갔다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머리에 파마를 하고 왔다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좋은 카메라를 손에 쥐고 왔다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내 몸에 두른 치장은 사람들 사이에서나 알아주는 것이지 자연 앞에 섰을 때에 내 몸에 두른 치장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깊은 자연 속에서 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맞다, 우리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내가 어떤 차를 타고 다녔는지, 내가 어떤 집에 살았는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다녔는지, 내가 얼마나 비싼 반지를 끼고 다녔는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눈을 감는 날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였는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얼마나 하였는가? 사람에게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뭔가 하는 일에 열심히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러나 열정도 방향이 바르게 설정되어야지 빗나가면 그 열정은 많은 문제를 가져다 준다.

어느 대학생이 명품을 갖고 싶은 열정이 있었다. 부잣집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보니 옷도 수 십만원짜리, 시계도 수 백만원짜리, 신발도 수 십만원짜리를 입고 싶은 열심이 있었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서 친구 집에 들어가 크레딧 카드를 훔쳐서 옷을 사다가 걸리고 말았다. 빗나간 열정이다. 빗나간 열정은 사람을 망쳐 놓는다.

도둑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작업하는지 모른다. 도둑에게서 배울 점이 몇가지 있다고 한다. 그는 밤 늦도록까지 일한다. 그는 자신이 목표한 일을 하룻밤에 끝내지 못하면 다음날 밤에 또다시 도전한다. 그는 시련과 위기를 견뎌낸다. 그런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가를 잘 안다.
도둑의 열정은 빗나간 열정이다. 우리의 삶에는 방향이 중요하다. 요즈음에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속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우리가 성전 짓는 일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다.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한다. 우리의 여러 가지 부족한 모습들이 회복되는 역사가 임할 줄로 믿는다.

하버드 대학의 전총장이었던 나단 퍼시(Nathan Pusey) 박사가 젊은이들은 “흔들 수 있는 깃발과 목숨걸 대상”을 찾는다고 했다. 어디 젊은이들 뿐인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흔들 깃발을 찾고 목숨 걸 대상을 찾는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가운데 ‘모던 타임즈’라는 영화가 있다. 어느 날 채플린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달리는 전차에서 웬 깃발이 하나 떨어졌다. 채플린은 무심코 그 깃발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채플린이 들고 있는 깃발을 보고 군중들이 채플린에게로 달려왔고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 채플린은 그 깃발을 들고 정신없이 뛰어간다. 그러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채플린이 들고 있는 깃발을 보고는 쫓아간다. 이것이 현대인의 단면이다.

채플린은 방향이 없이 표류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렇게 그린 것이다. 불행한 모습이다. 흔들 깃발이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우리 주위에는 정신적 공황, 비전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황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돈을 향해 달려가고 출세를 향해 달려가고 쾌락을 향해 달려간다. 마치 그런 것들이 흔들 수 있는 깃발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목숨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자연 앞에 선 내 자신의 모습을 볼 때에 참으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깨닫게 해 주셨다.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성전 건축을 통해서 우리가 주를 위해서 사는 방향이 분명히 회복될 것이다.


둘째로, 성전을 건축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돌아오는 길에 미국에서 몇일 머물렀다. 수정교회를 방문하였는데 그 교회에 멋진 조각 상을 만들어 놓았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모습이다. 탕자의 옷은 다 떨어졌다. 탕자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그런데 아버지의 모습은 함께 우는 모습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 껏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한 모습이다. 아름다운 성전을 짓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는 하나의 표현이다. 성전 짓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전라남도 묘도에 강집사라는 분이 계신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 약속하기를 묘도 땅에 성전 지을 것을 하나님과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 집사님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이 가정에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졸지에 가정에 슬픔이 닥쳐온다. 그러나 부인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1억 5천 만원의 보상이 나와서 부인은 이 돈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묘도에 성전을 지을 것을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 생각나서 기도 중에 전액을 성전 짓는데 바치었다. 끊임없이 부인은 남편을 위하여 기도한다. 아름다운 성전이 지어진다. 하나님께서 강집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의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게 남편이 회복되었다.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이같이 성전을 짓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을 건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을 보라.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씨앗을 뿌렸는데도 거두지 못한다. 먹고 마셨는데도 배가 부르지 않고, 늘 허기진다. 추워서 옷을 입었는데도 따뜻하지 못하고,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는데 전대에 구멍이 나서 없어지고 만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다.

그러나 성전 건축을 통해서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사 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얼마나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인가?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아이들 키울 때가 생각이 난다. 명절이 되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는 세뱃돈을 주머니에 준비해 놓고서 기다린다. 아빠한테 세배해봐. 엄마한테 세배해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세배해봐. 세배하기만 하면 세뱃돈을 내어 주려고 주머니에 준비해 놓고서 기다린다. 세배를 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뱃돈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주셨다. 성전을 지으라. 그리하면 회복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