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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삶의 현장에서 만납시다 / 요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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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삶의 현장에서 만납시다
요한복음21:1-14

  한 주택에 붙여서 지은 작은 목공소가 있었습니다. 목공소 작업장은 아주 소박하게도 작았습니다. 그 목공소는 침대제작소였습니다. 목공소 뒤쪽에 굵은 껍질이 붙은 채로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목재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 나무로부터 목수는 다듬고 다듬어서 아름답고 멋진 침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침대는 각기 튼튼하고도 멋진 예술작품으로 변했습니다. 목수가 목공소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곳을 지나던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여기 일하는 사람이 모두 몇 명입니까?" 목수가 "둘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나그네는 다른 사람이 있나 둘러보았습니다. 여전히 한 사람 밖에 없는데 둘이라고 하니 어리둥절했나 봅니다. 그 때 목수가 웃으면서 손끝을 하늘로 가리켰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여기서 일하지요. 하나님은 나무를 만드시고, 나는 침대를 만들어요."

  여러분은 이 목수처럼 나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모시고 동행하며 임재를 체험하고 그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고있나요? 오늘의 본문은 나의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 수 있을까? 를 권면해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게 죽고 무덤에 장사지내자, 제자들은 다 자기 고향 자기 직업으로 돌아갔습니다. 제자들은 고향 어부의 일로 다시 돌아가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 때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신 줄 모릅니다. 예수님은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합니다. 이에 던지니 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을 들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베드로가 주님이신 줄 알고 육지에 올라와 주님을 맞이합니다. 고기가 153마리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육지에서 아침 식사를 같이 합니다. 이 때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인 줄 알아보게 됩니다. 이 사건은 부활 후에 세 번 째 나타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여러 가지 메시지가 있지만 저는 여러분들에게 도전합니다. 이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한번 설교 제목을 따라합니다. <주님을 삶의 현장에서 만납시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본문을 통해서 도전합니다.

  첫째,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디에 가서 만났습니까?
 
  본문 요한복음 21장 1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그랬습니다. 디베랴 바다로 제자들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있는 삶의 현장에 가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현재 제자들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예수님이 죽었다는 것에 실망한 제자들이 고향에 가서 고기나 잡아먹고 살자하고 고기를 잡으러 나간 현장입니다. 옛 생활로 돌아간 삶의 현장입니다. 고기를 잡으면서 애썼습니다. 저녁 내 고기를 잡았지만, 그러나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삶의 현장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와 계십니다. 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의 삶의 현장은 어떻습니까? 예수운동에 대한 좌절의 상태입니다. 과거로 돌아간 허탈한 상태입니다. 수고하여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은 실패의 현장입니다. 이런 삶의 한 복판에 예수님은 찾아갔습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나의 삶의 현장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공했을 때뿐만이 아니라, 내가 좌절해 있을 때도 오십니다. 내 삶에 힘과 능력과 희망이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내가 실패하고 낙심해 있을 때도 오십니다. 내 삶의 깊은 현장에 오십니다. 심지어 주님의 제자로써 등돌린 삶의 현장에도 찾아오셨습니다.

  이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사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내가 예뻐서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내가 가진 것이 있어서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내가 헌신을 해서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나를 가치 있게 보기 때문에 찾아오십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찾아오십니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였던 죤 길모어 목사는 어느 날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어느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요즘 장사는 잘 되시는지요?" "예, 그럭저럭 잘 됩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지요" "그래요? 그게 뭔데요?" "그건 나를 구원해 준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내 삶의 현장에서 주님과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삶의 현장에 찾아갔습니다. 제자들의 삶의 현장은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던 좌절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포기하고 고기잡이로 돌아왔는데 고기잡이도 안됩니다. 삶의 위기입니다. 이 위기의 상황에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제자들은 돌파해갈 방도가 서지 않는 한계선상에 처해있습니다. 이런 삶의 정황에서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는 삶의 현장, 내가 있는 삶의 정황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비록 절망의 시간이어도, 내 삶이 비록 실패의 상황이어도, 내 삶이 좀 잘 나가는 상황이어도, 그 삶의 현장에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나며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제자들이 예수님인 줄 알아 봅니까? 못 알아 봅니까?

  여기서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왜 알아보지 못했습니까? 왜 제자들이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제자들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이들이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칠흑 같은 밤도 아닙니다. 동이 떠오르는 때에 스승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 의아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이들 제자들이라면 스승의 그림자만 보아도 알아봐야 했던 것 아닙니까? 그물을 오른 편에 던지라는 음성만 들어도 제자들은 예수의 음성인 줄 알아봐야 했던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제자들이 현장에 찾아오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까? 다 까닭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너무도 깊은 패배감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현장에서 우리가 깊은 실패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 합니다. 주님을 찾고 부를 힘을 상실합니다. 우리가 깊은 상처와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에 주님이 내 삶의 현장에 와 계시지만 우리는 주님을 찾을 힘도 그런 자세도 알아보는 눈도 잃어버립니다.

  사실 가장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에게 인생을 의탁해야할 때,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바로 스승 예수의 힘이 결정적으로 요구되는 때입니다. 자기들의 전문 경험으로 고기잡이를 했지만 도저히 그것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 한계상황입니다. 이 때 정말 주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 때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나 정작 제자들은 이 때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마치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지금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이 주었던 충격이 아직도 다 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현실의 압박감이 워낙 무거웠던 때입니다. 그런데 살아생전 함께 다닐 때에는 무슨 일이건 예수님에게 의지했던 이들이 그걸 아예 까먹어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스승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작 의지하고 인식하고 임재를 느끼고 살아야 할 때, 우리는 현실의 무거운 중압감 때문에 주님을 생각지도 알아보지도 의식하지도 임재를 느끼지도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러의 신앙 각성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미국 선교여행에서 실패함으로써 허탈한 마음을 안고 자기 고향인 영국 행 배를 탔습니다. 심한 풍랑으로 인하여 배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승객들은 모두가 죽는다고 아우성들입니다. 웨슬러도 배 한 귀퉁이에서 시시각각으로 죄어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배 어느 모퉁이에서 우렁찬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웨슬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것은 경건파 모라비안 성도들의 찬송이었습니다. 그 찬송은 충만했고 그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으며 그들의 기도에는 힘이 넘쳤습니다. 순간 웨슬러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저것이 바로 믿음이구나!”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가 정말 나의 주인이라면 이 위험 천만한 지경에서도 저 소망, 저 기쁨, 저 평화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난 파도가 배를 삼킬 듯이 흉흉한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도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에게 실망의 추파를 던지지 않고 오히려 힘있는 찬송과 확신의 기도를 올렸던 그들의 믿음을 똑똑히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불안, 좌절, 무기력은 내가 예수님을 진정한 나의 주인으로 의식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환경이 너무나 힘들면 그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그 때가 바로 주님이 찾아오신 현장이며 그 분을 만나야 할 시간입니다. 주님은 내가 좌절과 절망과 실망과 낙심으로 다운되어 있을 때, 그 곳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새롭게 도전하라.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 하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때 주님을 다시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임재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다시 부르고 그분을 인식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5절에 “예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묻습니다. 제자들이 “없다”고 하자 6절에 “그물을 오른 편에 던지라 그러면 얻으리라” 하신 데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물을 오른 편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고기가 153 마리가 잡혔습니다. 놀라운 사건입니다.
 
  주님이 내 삶의 현장에 찾아오실 때 그분을 알고 그분의 도움을 받고 새로운 힘을 얻어 그분의 지도를 받고 살 때 그것이 바로 내 삶의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삶의 방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고기 잡는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지도를 받고 사는 삶이 바로 우리의 능력입니다.

  주님이 내 삶의 현장에서 나를 지배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자체가 능력이 됩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등장한 디베랴 바다는 그리하여 실패를 넘어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물을 던지는 방향을 바꾼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좌절과 낙담으로 끝날 뻔했던 현실이 새로운 희망과 귀중한 결과를 얻게 된 것에 진정한 의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왕창 무너지려는 순간, 그래서 이제 끝났구나 하고 불가피하게 포기해야 하는 때에 주님을 현장에서 만남으로 이 모든 사태를 일거에 역전시키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난 인생의 역전 드라마입니다. 이제 디베랴 바닷가는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좌절과 절망이 희망의 바닷가로 다가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부활한 주님을 만나고 동행할 때 이루어지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까? 동행하는 순간, 내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부활한 주님과 생명을 교류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이제 절망이 아니라 삶의 멋이 드러납니다. 그 능력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도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난 후에 무엇을 하십니까?

  식사를 하십니다. 함께 교제를 나눕니다. 주님은 나의 삶에서 교제를 원하십니다. 12절에 보면 주님이 먼저 뭍에 있으면서 “잡은 것을 가져와라 아침을 먹자” 숯불을 피워 놨습니다. 밤새 일하고 나와서 불 피워야하는데 이미 피워놨습니다. 주님이 떡과 고기를 먼저 준비했고, 제자들은 이것을 함께 나누면서 아침 식사를 합니다. 제자들과 주님이 다시 만찬을 들면서 식탁의 교제를 하십니다.

  이 식탁의 교제를 하시면서 주님과 제자들은 여러 가지 간담을 나누고 주님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합니다. 부활한 주님과 직접 만나서 이제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받습니다. 식사 자리 옆에 베드로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였습니다. 세 번에 걸친 이 질문은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세 번의 질문은 한가지 중대한 과제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네 양을 먹여라”였습니다. 다시 사명을 찾아주십니다.

  예수께서는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가 감당해야 할 일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름 아닌 스승 예수를 사랑하는 일이며, 이를 몸과 마음으로 증명하는 것임을 일깨우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그 분을 통해서 삶의 힘을 얻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얻는 것은 인생의 사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를 하면서 내가 해야할 사명을 발견하게 되고 주님은 내 삶에 능력이 되어주신다는 말입니다. 다시 사명을 찾게 해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와서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 그 사명을 일러주십니다.

  우리가 지치고 피곤해 있을 때 삶에 지루함을 느끼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나의 사명에 대해 흐릿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현장에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교제를 나누시면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십니다. 그 주님은 우리에게 늘 사명을 새롭게 해주시고 새로운 길들을 제시해 줍니다.

  맺는 말

  오스왈드 샌더스가 소개한 우리가 잘 아는 시 하나 있지요? 「모래 위의 발자국」열 번, 백 번 들어도 은혜로운 시입니다. 여러분, 눈을 조용히 감으시고 한번 감상을 해 보십시오. 제가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참 은혜스런 시입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 쌍은 내 것 또 한 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 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 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 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 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다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였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 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의 현실이 어디입니까? 나의 삶의 현장은 어디입니까? 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 곳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구분과 함께 인생을 거닐어야 합니다. 주님과 인생의 여정을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내 삶의 현장에 오셔서 나를 부르십니다. 나를 찾으십니다. 찾아오신 주님 앞에 우리가 이제 응답할 때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어요. 그리고 주님의 지시를 받으며 동행해 보십시오.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주님과 삶을 영위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능력이 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잘 못된 방향을 지적해주실 것입니다. “왼 쪽이 아니고 오른 쪽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이제 그 주님과 조찬을 같이 하듯이, 함께 동행하며 교제하며 사십시오. 인생의 사명을 다시 찾게 해주십니다. 새로운 사명을 불러일으킵니다. 주님과 현장에서 만나 인생을 거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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